모든 것이 마음에서 비롯된다

세계의 불교, -리차드 기어와의 대담(1) -

2007-09-16     관리자


뉴욕타임즈 기고가이며 '감정적 지성'(밴텀사刊)의 저자인 심리학자 대니얼 골맨과 정념과 치료의 결합에 관한 책을 쓰고 있는 심리정신분석가 타라 베넷 골벤이 트리사이클지를 대신하여 9월에 뉴욕시에 배우이자 티벳 독립운동가이며 뉴욕 티벳하우스의 공동 창설자인 리차드 기어를 면담했다.
이 내용중 일부를 불광 독자를 위해 박정애 님이 번역, 2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주-

이 주일간의 은거를 막 끝내셨죠. 실제로 어떤 수행을 하셨습니까?

티벳의 신성 요가수행인데 대부분 만다라와 심상수행이었습니다.  그건 꽤 복잡한 수행이지요. 분명히 저는 지금으로선 그걸 완벽하게 할 줄 모릅니다. 아마 몇 년 지나야겠죠. 그건 마치 피아노를 치는 것과 같아서 계속 하고 또 하고 해야 하죠.

하루 대부분을 수행으로 보내셨습니까?
네, 스승께서 제게 지침들을 주시면서 그걸 하려면 삼 주일 가량 걸릴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제가 다른 할 알들이 좀 있어서 두 주일 동안에 그걸 해야만 했죠. 그래서 하루에 10-12시간 동안 수행했습니다. 저는 아주 열심히 해나갔죠. 어느 날인가 아주 힘들고 지루한 날이 있었는데 그날 전 글자 그대로 완전히 엉망이었어요. 티벳인들은 그걸 두고 '호흡'이 미쳐버렸다고 하지요. 저는 제가 어디 있는지를 몰랐어요. 방향을 잃고 어찌할 줄을 몰랐죠. 그런데 불행히도 스승께서는 그때 인도에 계셨습니다.

이야기할 상대도 없었습니까?
한 비구 친구에게 이야기했는데 그는 "당신이 너무 밀어부쳐서 그런 것이니 그냥 쉬어라. 그냥 그만 둬라.
지금 당장 모든걸 떨쳐버려라. 밤에는 쉬어라." 하고 기본적으로 말하더군요. 저는 새벽 두 시까지 수행을 하고 있었지요. 대부분의 은거 중에는 수행시간과 수행기간을 보리씨앗 모양처럼 하라고 말해줍니다.
처음엔 짧고 쉽게, 그리고 그것에 익숙해지면 더 두텁고 길게, 더 무겁고 더충실하게, 그리고 끝날 무렵이 되면 그것이 점차 가늘어져서 다시 이 삶으로 내려오는 거죠.

당신은 그 하락하는 시간을 갖지 않았던겁니까?
저는 싹이 돋는(상승하는) 시기나 강하시기를 갖지 않았습니다. 저는 마치 쾅! 하고 시작했는데, 하루에 12시간씩 했으니 너무 많이 했던 거죠.

수행은 당신의 정서적인 생활에 어떤 영향을 줍니까?

전 언젠가는 제가 제 자신을 맑히고 확장해서 제가 원하는 무엇이든지 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부처가 되는 거죠. 그러나 그때도 저는 이 모든 부정적인 순간들- 고통의 순간들, 집착에서 비롯되고 모든 오염에서 비롯되는 불안의 순간들을 마치 배우가 하는 것처럼 되살려낼 수 있을 겁니다. 저는 배우로서 감정을 사용하는 데 있어선 상당히 분명합니다. 감정은 저를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요소입니다. 고도로 진화된 생물의 경우에도 그건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이 감정이 없는 스승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감정에 대한 집착이 없습니다. 위협을 하거나 해를 끼치려고 감정을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감정은 분명히 있으며 기술적으로 사용됩니다.
저는 문수보살(지혜의 보살)이 기술적으로 자신을 야마천(죽음의 신의 제압자)의 형상으로 내보였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모든 종류의 인간의 감정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숙련된 스승이 될 수 없다고 봅니다.

배우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글쎄요, 그건 직업이지요. 제가 달라이라마 성하께 이것에 대해 여러 번 말씀드렸는데, 그분은 연기를 할 때 느끼는 감정들이 진짜 감정이냐고 물으셨습니다. 한 번은 제가 이렇게 말했죠.
정말로 느낄 때, 즉 감정이 저절로, 신비하게 충만하게 우러나올 때 궁극적으로 더 나은 작업을 할 수 있다고요. 그 감정들은 진짜입니다.

당신은 그것들이 진짜라고 믿습니까?
성하께선 제눈을 아주 깊이 들여다 보셨어요. 아주 오랫동안이라고 느껴졌는데요. 그러더니 그냥 웃기 시작하시는 거예요. 그분은 그게 정말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하셨죠.
그분이 농담으로 생각하신 게 뭐였지요. 글쎄요. 아직도 그게 궁금합니다. 제 생각으론 감정이 환영적 성질 때문에 그분이 웃으셨던 것 같아요. 그 감정들이 진짜라고 생각하다니 얼마나 웃깁니까.
연기라는 이 가짜 상황에서조차 저는 제가 이 감정들이 얼어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감정들이 나타나게 만드는 마술사이면서도 그 감정들이 여전히 진짜라고 생각한단 말입니다.
그것이 저와 깨달으신 분의 차이지요. 깨달은 분은 항상 아십니다.

당신의 경우 수행이 연기에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가져왔다거나 혹은 연기가 수행에 어떤 변화를 주었거나 했습니까?
제 경우 연기가 저의 수행을 약간 쉽게 만들어주는 게 가능하지요. 상상과정, 심상과정은 제 직업입니다.
제 신경기관은 그것에 맞게 되어 있습니다. 이담(신성요가 수행)에 빠져드는 것과 같은 방식입니다.
제 신경기관과 제 마음은 이런 방식으로 움직이는 데 능숙합니다. 사실, 저는 제가 행해보았던 첫 탄트라 입문 - 칼라차크라(시간의 수레바퀴)- 중 하나를 아주 명확히 기억합니다. 이건 아마 80년대 초반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알렉스 비진(미국인 스승/번역가)이 탄트라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 이 과정을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것에 대해 전혀 모르는 서양인들을 돕기 위한 이 조그만 강좌들을 열고 있었는데, 그것을 극장에서의 리허설과 아주 흡사한 것으로 묘사했지요. 당신이 아주 상세하게 이담의 이 신성한 역할을 리허설 한다 이겁니다. 그리고나면 개막의 밤이 됩니다. 그 개막날 밤에는 당신이 거기 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건 더 이상 리허설이 아니야. 난 그걸 하고 있어.'

당신이 그걸 하고 있다고 느낍니까.
아니면 그것이 되어지고 있다고 느낍니까? 그것을 하고 있다는 느낌에는 어떤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취감입니다. 모든 수행에서는 당신이 그것이 일어나게 하는 기초를 만들어 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는 게 중요합니다. 당신이 그것이라거나 당신의 자아가 그것과 동일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나게 하기위한 풍부한 기반을 창조한다는 책임을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올바른 조명과 의상, 올바른 에너지로 그것을 키워나가야만이 마술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것에 대한 신용을 지니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것이 수행에 자신감과 힘을 더해줍니다.

그러나 동시에, 궁극적으론 그것이 진짜 당신은 아니지요.
아니지요. 절대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의 자아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당신의 자아를 긍정적으로 키울 수 있다는 것이 모순인데, 당신이 누구인가, 당신의 업적은 무엇인가.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가 하는 느낌 말입니다. 자신감은 아주 중요합니다.

뉴욕 시라큐즈의 한 젊은이가 어떻게 이 기묘한 것을 끝냈습니까?
앉아서 결가부좌를 할 때마다 저는 제 자신의 이런 이미지를 봅니다. 그리고는 '도대체 이것이 어디서 왔는가?'하고 말합니다. 저는 모릅니다.

당신에게 영향을 준 첫 책이나 스승이나 강좌가 있었습니까?
그것은 철학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청소년기에 장 폴 사르트르에게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존재와 무'를 품에 안고 다녔죠. 아마 한 쳅터 이상도 안 읽었을 겁니다. 그러나 어쨌든 실존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존재인가. 무엇이 실제인가를 알기 위한 탐구, 탐험에 가담하는 것이 제겐 중요했습니다.
제게 커다란 의미를 준책은 <우주달걀의 균열>이었는데 이건 실재에 대한 어떤 사람의 추정에 관한 책이었습니다. 또 버클리 주교라는 이름의 철학자도 있었는데 그의 논제는 주관적 이상주의였습니다.
본질적으로는, 주관적 사고주의, 실제와 마음자체의 주관성, 실제의 유동성이라 할 수 있겠죠.
그래서 제 마음은 다르마가 제게 다가오기 전, 제가 다르마를 알게 되기 전에는 그쪽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저는 흥미를 느꼈지만 감정적으로는 지독하게 불쾌했습니다. 전 한 방 먹었죠.
완전히 한 방 먹어서 어떻게 그걸 멈출지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왜 내가 불쾌한 거지? 어떻게 하면 여기서 벗어날 수 있지?" 하면서 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아시겠지만 삼법인이 실제로 들어맞습니다.(웃음)
저는 아주 절망적인 상황에 있었고 빠져나갈 길을 찾지 못했는데 동양적인 것들이 제게 와 닿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그것들을 불가사의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수냐타, 즉 공의 사상-내가 사라지게 되는 -이 제겐 긍정적인 것이었습니다. 내가 부정되고 나면 내가 없기 때문에 더 이상의 고통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아직도 그것이 일어나길 바라고 있다고 봅니다.(웃음) 그러나 저는 이제 그것을 약간 다른 방식으로 바라봅니다. 저는 웨스트 빌리지에 있는 책방들을 자주 들렀었습니다.
거기서 힌두 관련 서적, 수피 관련 서적, 불교관련 서적, 자이나교 관련 서적, 찰스 타트, 캐스터네더 등 거의 모든 것들을 읽었죠. 그리고 그건 재미있었어요.
저는 태극(태극권;중국의 체조적 권법)을 하기 시작했죠.

티벳 불교가 당신이 한 첫 수행이었습니까?
제가 처음 한 수행은 사실 초월명상이었습니다. 저는 강좌에 좀 다녔었지요.
그러나 그 대 저는 주위를 둘러보곤 아, 여기는 전부 초심자들뿐이고 진짜 스승은 한 명도 없구나하고 말했죠. 보조자들도 있었고 어떤 정보를 전해주는 사람들도 있긴 했지만 진짜 스승들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로 어떤 수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 다르마의 흐름속으로 들어가는 어떤 종류의 훈련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때 저는 좀더 진지하다고 여겨지는 것, 진짜 지혜를 지닌 스승들과 연결되어 있는 것에 더 흥미를 갖게 되었는데, 선은 정말 저를 매혹시킨 것이었습니다.
-계속-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생호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