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7세기 전 모습 지켜온 21세기 인류의 보물 “박물관이 살아있다!”

위대한 유산_산사, 이제 세계로

2020-07-24     김정은

2년 전, 2018년 6월 30일 바레인에서 개최된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이하 산사)’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확정되었다. 산사는 통도사(경남 양산), 부석사(경북 영주), 봉정사(경북 안동), 법주사(충북 보은), 마곡사(충남 공주), 선암사(전남 순천), 대흥사(전남 해남) 7개 사찰로 구성된 연속유산으로 우리나라의 13번째 세계유산 등재였다.

 

| 감격의 순간 “세계유산 등재”

산사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2011년 산사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이 시작되고 2018년 등재되기까지 8년 동안 사찰, 문화재청, 해당 지자체, 그리고 산사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 관계자의 많은 협조와 노력이 있었다. 추진위는 2017년 등재 신청서를 제출한 이래 현지실사, 보완자료 및 중간보고서 답변서 작성 등 일련의 과정을 통해 세계유산위원회의 자문기구인 이코모스(ICOMOS,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의 평가를 받았다. 최종 심사평가서에서 이코모스는 연속유산으로서의 선정 논리 부족 등 이유로 등재 신청한 7개 사찰 중 통도사, 부석사, 법주사, 대흥사 4개 사찰만 등재를 권고했다. 

추진위는 권고안에서 제외된 3개 사찰의 가치와 역사적 중요성에 대한 확신 하에 이코모스 심사평가서 내용상 사실관계의 오류들을 정정한 정오표를 작성하여 세계유산센터에 접수하였다. 더불어 세계유산회의 현장에서 위원국들을 상대로 7개 산사의 일괄 등재 정당성을 설득하여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 외교지지교섭 자료를 작성하기로 하였다.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외교부, 주 유네스코 대표부, 문화재청으로 이루어진 대한민국 대표단은 위원국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외교교섭 활동을 펼쳤다. 7개 산사 중 4개 산사만 등재 권고를 받았지만, 무형적 가치로서 스님들의 수행과 생활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승원 문화는 이미 인정받은 상태였다. 이에, 산사를 대표하는 스님이 직접 지지교섭 활동에 참여하기로 하였다. 스님의 참여로 지지교섭 활동은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다. 가사와 장삼을 입은 스님들은 바레인 현지에서 큰 관심을 끌었으며, 한국불교와 산사에 대한 설명뿐 아니라 위원국들과 전문가들에게 7개 산사가 모두 등재되어야 하는 점을 설득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산사에 대한 심사 순서에서 빛을 발했다. 등재 논의에서 예상보다 많은 위원국이 지지 발언에 동참하여 21개 위원국 중 20개국이 지지 발언에 나서 7개 사찰의 등재를 주장하였다. 7개 사찰 전체에 대한 성공적인 등재가 이뤄지는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 자급자족·안거 등 특수한 시공간

전래 이래 1,600여 년 동안 한국인의 정신세계 깊숙이 자리 잡은 불교는 통일신라와 고려 시대 동안 전성기를 누리며 일찍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석굴암·불국사’(1995)와 ‘해인사 장경판전’(1995), 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2007) 등을 남겼다. ‘경주역사유적지구’(2000)와 ‘백제역사유적지구’(2015)에도 사지, 탑, 조각 등 다수의 불교 유적이 포함되어 있다. 

산사는 한국불교의 역사적 변천과 지속성을 보여주는 유·무형적 문화유산의 보고다. 우리는 산사를 방문하면 사찰의 가람 배치, 불전, 불상과 같은 유형적 유산에 주로 관심을 가진다. 물론 통도사 금강계단, 부석사 무량수전, 법주사 팔상전과 같은 7개 사찰의 주요 건축물은 현재까지 한국불교 유산 중 가장 우수한 걸작으로 남아있다. 

반면 이코모스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의 초점을 한국불교의 선 수행과 사찰 경영, 승가 교육과 같은 한국 산사의 독특한 무형적이고 역사적인 측면의 특수성에 두었다. 따라서 세계유산위원회는 산사 7곳에 대해 7~9세기 창건 이후 현재까지 스님들의 신앙, 수행, 생활이 온전하게 유지되어 온 한국불교의 깊은 역사성과 지속성을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 OUV)로 평가하였다. 산사는 스님들의 수행, 생활, 교육 등 무형적 요소들이 여전히 그 기능을 활발히 유지하고 있는 ‘살아있는 유산’이다.

산사는 오랜 역사 속에서도 선 수행의 전통을 원형에 가깝게 계승하고 있는 살아있는 유산이라는 점이 큰 특징이다. 선 수행은 선불교가 널리 수용된 동아시아 불교에서도 한국의 산사만이 유지하고 있는 특성이다. 오늘날에도 스님들은 여름과 겨울 각 3개월 동안 선원에서 안거에 들어가 외부와 단절된 채 오직 선 수행에만 전념하며 수행도량으로서 산사의 가치를 지켜오고 있다.

인도 및 남아시아의 상좌부불교 전통에서는 스님들의 경작 활동이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어 탁발하기 위해 도시 근처에 사원이 자리한다. 산사에 거주하는 한국의 스님들은 직접 농사를 지어 자급자족하며 신앙과 수행을 지속해왔다. 

 

| ‘한국 산지승원’의 탁월한 가치

선암사와 대흥사의 스님들은 지금까지도 넓은 차 밭을 직접 경영하여 한국 선종 산사의 전통 차 문화 전파를 선도하고 있으며, 자급 자족적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 억불정책이 시행되던 조선 시대에는 불교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축소됨에 따라 스님들은 사찰의 경제적인 자립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였다. 사찰 유지를 위해 스님들 또는 스님과 신도로 구성된 계모임을 결성하여 사찰의 경제적인 자립을 뒷받침하였는데, 특히 통도사, 법주사, 대흥사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한편 봉정사는 불교경전의 간행을 위해 간역소를 운영하였는데, 이곳에서 지역 문인들의 문집도 출판하고 관리하면서 사찰 경제에 일조하였다. 조선 중기 이래로 승가에 대한 박해가 강화된 와중에 성리학의 중심지인 안동에 있는 봉정사 스님들은 지역 성리학자들과의 지속적인 문화 교류를 통해 사찰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다했다. 불교 존립의 위기 속에서 스님들의 고된 노동과 노력을 바탕으로 한 재정적 뒷받침은 한국불교를 지속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일상적인 산사의 관리 외에도 스님들은 사찰의 건축 및 보수에 참여하였고, 불전을 단청·조각·불화로 장엄하였으며, 낡은 건물을 관리하였다. 선암사의 승선교는 스님들이 축조했으며, 부석사의 여러 대석단 또한 스님들에 의해 관리되어 오늘날까지 예전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승병의 집결지였던 마곡사는 일본의 침략(1592~1598)으로 막대한 피해를 보았지만, 전란 직후 뛰어난 초기 괘불 작품들이 마곡사를 중심으로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불교 회화를 제작하기 위한 화승들의 교육을 담당한 중심지이기도 했던 마곡사는 남방화소(南方畵所)로 불릴 정도로 많은 승려 화가를 배출했다. 

 

| 살아 숨 쉬는 인류의 산사

무려 천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 온갖 역사적 사건과 풍파를 견뎌낸 산사에는 여전히 스님들이 살고 있다. 우리에게는 낯익은 풍경이라 당연하게 여길 수도 있지만, 세계사적으로 찾아보기 드문 현상이다. 천년 전부터 오늘날까지 선 수행과 의식은 물론 공동체를 이루어 생활하는 모습까지 수많은 세대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생생하게 이어져 오고 있다.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특정한 사찰에 국한된 것도 아니며, 한국 산사에 한결같이 현재 진행형으로 지속되고 있다. 스님들이 지켜낸 산지승원의 문화는 산사만의 탁월한 가치가 되었다. 신앙, 생활, 수행이 살아 숨 쉬는 산사는 이제 한국의 문화재를 넘어 민족과 국경을 초월하여 모든 인류에게 속하며 전 인류가 공동으로 보존하고 후손에게 전수해야 할 유산이다. 다가올 미래 천 년을 준비하며 세계유산위원회의 권고처럼 산사통합관리단이 하루속히 구성되어 산사가 체계적으로 보존되고 윤리적으로 활용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글. 김정은

김정은
충남대 강사. 영국 런던대에서 불교미술사 전공으로 석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산사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업무를 수행했다. 현재 충남대에서 미학을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