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만나는 불교] 여성 수행자들의 유리천장 깨부수기 / 김천

2020-07-29     김천
달라이 라마가 게셰마 학위를 주고 있다. 출처 달라이 라마 공식 홈페이지.

미국 불교 잡지 「트라이시클(Tricycle)」이 주관하는 북미지역 불교 축제 ‘붓다페스트(BuddhaFest)’가 개막했다. 지난 6월 22일 시작한 제10회 붓다페스트는 8월 16일 막을 내린다. 불교에 관한 강연, 법문, 명상 그리고 음악과 영화가 축제의 주된 내용이다. 올해는 행사 대부분이 온라인으로 치러지는데, 이번 영화제에는 7편의 불교 영화가 초청됐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끄는 영화는 다큐멘터리 <게셰마의 탄생(The Geshe Ma is Born, 2019)>이다. 

<게셰마의 탄생(The Geshe Ma is Born, 2019)>이 상영된 미국 제10회 붓다페스트 온라인 배너 캡처화면.

 

| 수행의 길은 여성에게만 다르다?

인도 출신의 마라티 라오 감독은 티베트 승가에서 벌어진 조용하면서도 혁명적인 사건을 영화에 담았다. ‘게셰’란 ‘지혜의 덕목을 갖춘 자’란 뜻으로 티베트 주요 종파인 겔룩파(Gelug)에서 학승이 받는 최고 학위다. 불교학 박사 또는 삼장(三藏) 박사에 해당할 것이다. 17년 동안 강원 교육을 마치고 시험을 통과하면 게셰 학위를 받는다. 이후 2~3년간 공부를 해 스스로 논지를 세울 정도가 되면 ‘하람 게셰’라는 학위를 취득한다. 게셰는 강사, 하람 게셰는 강주 또는 강원장 정도가 되는 셈이다. 게셰를 받은 이들은 한마디로 거의 모든 경전과 논서를 외울 정도로 오랫동안 열심히 공부해 까다롭고 복잡한 시험을 치열하게 통과한 학승들이다. 오랜 세월의 학습 덕에 지혜가 몸에 배어 언행 또한 고요해지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게 된다. 

티베트 승가에서 정규 강원 교육은 전통적으로 남성들에게만 허용됐다. 여성 출가자들이 있음에도 비구니 계맥(戒脈)이 끊긴 관계로 비구니가 아닌 ‘아니 라(Ani La)’, 즉 여성 수행자란 어중간한 호칭으로 불리고 가톨릭의 수녀처럼 보조적인 존재로 치부됐다. 이 같은 경향은 티베트뿐 아니라 전 세계 거의 모든 종교가 갖는 근본적인 문제다. 여성도 똑같은 신의 피조물이지만 원죄의 근원이며, 같은 진리를 향해 나아가지만 깨달음과는 먼 존재로 치부된다. 과연 이것이 올바른 태도일까?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인 남돌 푼촉 스님은 고향인 티베트에서 불교를 공부하려 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거절당한다.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에 도착한 후에야 강원을 갈 수 있었다. 데릭 왕모 스님은 히말라야를 넘을 때 겨우 글씨를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남인도 카르나타카 주(州) 문곳에 있는 강원에서 공부를 마치고 시험을 통과한 후에 동료들과 함께 게셰 학위를 받았다. 함께 길을 나섰던 46명 중 26명의 스님들이 마지막까지 남아 게셰 시험을 통과했다. 2016년 티베트 승가에 1,000년 이상 가로막혔던 하나의 유리천장이 부서진 것이다. 여성에게 주어진 게셰 학위는 ‘게셰마’라고 불린다. 여기서 ‘마’는 티베트어로 ‘여성’을 뜻한다. 

게셰마 학위를 받고 있는 남돌 푼촉 스님. ⓒOlivier Adam

| 깨달음으로 향하는 길엔 차별 없다

영화 속에서 달라이 라마는 “(게셰마를 주는) 나의 결정에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여성이 명상과 수행에 적합하지 못하다는 견해는 그 주장을 한 사람이 남자이기 때문이다”고 단언한다. 게셰마들을 가르쳤던 스승은 “여성들은 특유의 감성 덕분에 훨씬 더 잘 배우고 기억했다”고 증언했다. 여성이기 때문에 불교 공부에 맞지 않고 성취에 장애가 된다는 주장은 틀렸다. 

티베트 강원의 주요 학습방법은 논리학 공부이고 논쟁을 통해 철학적 인식을 세우는 토론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달라이 라마는 승단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몇 해 전부터 여성 수행자들에게도 토론 교육을 허용하고, 심지어 일반 불자들에게도 개방했다. 최근에는 어린 학생들에게도 불교 논리학인 인명학(因明學)을 가르치고 남녀노소 승속 모두에게 논증학 교육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티베트 승단이 독점해온 특권 하나를 포기한 것이다. 부처님께서 펼친 진리는 특정한 집단에게만 허락된 것이 아니며 깨달음과 보리심으로 향하는 길에 남녀승속의 차별이 있을 수 없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수행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과 도구가 있다면 모든 이들에게 적극 권해야 할 것이다. 그 당연한 사실을 막는 제도는 당연히 없애야 한다. 

게셰마가 되면 자신의 강의를 만들 수 있고 제자를 길러낼 수 있다. 또 다른 학인을 배출하고 강사를 교육할 수 있다. 교육받기 위해, 또 가르치기 위해 더 이상 여성이란 이유로 종속적인 입장에 서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30년 이상 티베트 여성 승가를 지원해온 린첸 캰도 최겔은 인터뷰에서 “단순히 공부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래 성공을 위해 스스로 모델이 되고 교육할 수 있으며,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순간 여성 스스로 지도자 역할을 할 수 있기에 이런 출발

이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게셰마 학위를 받은 스님들은 인도 전역에 있는 7개 여승강원에서 700명 이상의 스님들에게 논리학과 중관(中觀), 유식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2016년 이후 매년 게셰마 학위 시험이 열리고, 새로운 게셰마들이 탄생하고 있다. 불교의 역사를 새로 써나가고 있는 셈이다. 

2016년 이후 매년 새로운 게셰마들이 탄생하고 있다. 영화 캡처 화면.
게셰마들은 불교의 역사를 새로 써나가고 있다. 영화 캡처 화면.

| 법의 등불 앞에선 모두가 평등

부처님은 여성의 출가를 허용함으로써 당시 거의 모든 종교와 기득권으로부터 저항을 받았다. 불교는 외형적으로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승단의 운영이나 여성에 대한 관습적인 처우가 반드시 평등하다고만은 볼 수 없다. 일단 우리나라 최대 종단에서도 비구니스님들의 참종권은 제한받고 있다. 종단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됨으로써 남성 중심의 종책과 권력 쏠림이 일어날 수 있다. 한마디로 주류에서 밀려난 주변부 역할만을 강요받는다. 평등과 진리를 주장하는 종교 내부에서 남녀평등은 결국 말로만 그치고 있음을 뼈아프게 여겨야 한다. 

마라티 라오 감독은 말한다. “불교 가르침의 핵심은 모든 이들이 해탈 가능하다는 것인데, 실제로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차별을 받고 있지만 스님들은 가르침을 배우겠다는 의지를 꺾지 않고 법의 등불을 조용히 지켜냄으로써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감독은 이런 과정을 필름에 담으면서 현실 세계에서 진실에 다가서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길 하나를 찾아냈다고 한다. 

인간의 고귀함은 그의 출생이나 신분, 성별이나 용모나 입은 옷이 아니라 그가 하는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결정된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게셰마의 탄생’은 그 가르침에 한발 가까이 다가선 영화다. 진리와 깨달음을 향하는 길이 여성들에게 더 멀고 가혹할 리는 결코 없는 법이다. 여성들이여 불의와 차별에 굴복하지 말라.

 

글. 김천

김천
동국대 인도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방송작가, 프로듀서로 일했으며 신문 객원기자로 종교 관련기사를 연재하기도 했다. 여러 편의 독립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지금도 인간의 정신과 종교, 명상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