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방의 미술 세계] ‘세계 르네상스’를 꿈꾸다

2020-07-31     강우방

독일의 대문호인 괴테는 1786년 9월부터 1788년 4월까지 로마를 여행하며 르네상스 미술에 심취해 『이태리 여행기』를 남겼다. 르네상스 미술의 대표적 미술사학자인 부르크하르트도 로마를 여행한 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문화』를 1860년에 출간했다. 그는 근대 미술사학의 기초를 확립하였으나 그도 괴테와 마찬가지로 르네상스 미술에 심취했을 뿐 그 뿌리인 그리스 땅을 밟지 않았다. 

필자는 여행이 아닌 답사를 했으며 그리스 첫 답사로 그리스 문화의 핵심을 짚었으며, 필자의 시선이 닿는 유적과 작품이 원래의 생명력을 회복하고 있음을 확신했다. 그 이후 필자의 학예(學藝) 영역은 세계 문화로 확대됐고, 세계 문화가 많은 오류로 얼룩진 것을 알았다.  ‘유럽의 르네상스’는 실패작임을 알았으며, 새로운 ‘세계의 르네상스’를 꿈꾸기 시작했다.

 

| 그리스 기와와 강렬한 첫 만남

“그리스 첫 여행. 2005년 7월 31일, 이스탄불 공항 도착. 8월 1일, 아테네 도착. 오후 수니온에 있는 포세이돈 신전(448~440 BC.) 도착. 아름다운 지중해를 배경으로 포세이돈 신전이 우뚝하다. 길게 돌출된 수니온곶에 신전이 자리 잡고 있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봉안했던 신전은 긴 구릉의 높은 끝 위에 기둥들만이 서 있다. 잔잔한 바다가 평화스러웠고, 고요했다. 지금 생각하니 폭풍전야였다.” 

15년 만에 펴보는 답사 노트다. 모두가 지중해를 바라보고 에메랄드빛이라고 감탄하지만, 우리 동해의 빛도 만만치 않다. 고대 그리스가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뿌린 씨앗들이 싹터서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고대 삼국시대 미술이 중요한 것도 마찬가지다, 특히 고구려 문화가 오늘날까지 맥맥히 흐르고 있음을 안 것은 그리스 답사 후였다.

그리스에 도착한 지 며칠이 지났다. 고린도스의 신전과 부속박물관을 답사한 8월 2일 저녁, 갑자기 허리통증이 심해졌다. 허리에 복대를 하고, 목발 하나를 받아 걸었으며, 약을 지어 먹었다. 동행이 항상 필자의 두 팔을 붙들고 일으켜야 했고. 밤에도 필자를 잠자리에 눕혀야 했다. 아침에 박물관에 들어가 저녁에 나왔고, 평생 국내외 모든 답사나 조사를 강행해왔지만 이렇게 허리가 갑자기 아픈 적은 처음이었다. 그나저나 큰일이었다. 그리스에 오자마자 이렇게 아프니 이번 여행은 이것으로 끝이 아닌가. 구슬픈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버스로 동행들은 떠나고 홀로 남았다. 숙소 근처에 스파르타 박물관이 있는 것을 알고, 목발에 의지해서 한 발자국씩 조심스럽게 접근해 갔다. 그 박물관은 우리 여행계획에 없을 정도로 규모가 작았다. 그곳에서 그리스 기와를 처음 보았다. 서양미술사 전공자들도 그리스 기와를 모르고 있었다. 평소 한국 기와를 연구해온 필자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기와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 상징이 얼마나 큰지 알아낸 필자는 매우 흥분했다. 

사진1 사자 모양 영수 입의 양쪽으로 영기문이 발산하고 있다.

그리스 기와의 사자 모양 입에서 이른바 영기문이 양쪽으로 발산하여 나오는 것을 보고 놀랐다. 사자는 현실 속의 사자가 아니었다. 영화(靈化)된 사자이므로 그런 조형이 가능한 것이다. 형태는 사자이지만 동양의 용처럼 영기문을 발산한다. 지금도 서양학자들은 물론 세계의 모든 학자는 현실의 사자로 알고 있다. 현실의 사자 입에서는 영기문이 나오지 않는다. 말하자면 서양의 모든 사자는 영화된 존재로 영수(靈獸, 사진1)다. 그 작은 박물관에서 동양의 용과 같은 성격의 사자라는 영수를 만났다!

영기문에서 만물이 생성하므로 용, 약샤(사천왕 중 한 명이라는 비사문천을 모시는 정령), 사자 모양 영수들이 바로 만물 생성의 근원이 아닌가. 이미 여래의 정수리에서 무량한 보주가 나온다는 것을 알아냈고, 동시에 그 보주에서 긴 태극 모양 영기문이 나온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스 기와의 사자 모양이 내뿜는 영기문 발견은 기쁨을 넘어 환희작약할 대사건이었다. 그래서인지 하루 만에 심한 허리통증이 씻은 듯 나았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으며 다행히 극적인 답사를 계속할 수 있었다.

 

사진2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 폐허 터에서 필자.
사진3 코린트의 폐허에 있는 거꾸로 서 있는 주.

| ‘유럽의 르네상스’를 다시 보다

열흘 동안 코린트, 미스트라, 미케네 궁터, 사자의 문, 올림피아(사진2) 및 박물관, 플라톤의 아카데미, 델리 신전, 중세 바실리카, 아테네 국립박물관…. 배를 타고 크레타섬의 크노소스 궁전, 다시 육지로 와서 파르테논 신전, 아고라 및 아고라 박물관 등 그리스 여러 곳을 답사했고 매일 드라마였다. 일행이 로마 역사 전공자인 교수에게 역사 이야기를 듣는 사이에 필자는 홀로 폐허의 건축 부분들을 흥분하며 촬영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리스 건축, 회화(모자이크 그림), 조각, 공예 등 일체가 명료히 보였다. 특히 올림피아는 제우스 신전이 있으며 올림픽경기가 처음 열린 곳으로 부속 건물이 매우 많았다. 기둥들이 쓰러진 채로 그대로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훗날 제우스신은 불교미술을 풀어줄 많은 암시를 주었다. 어느 신전 터에나 기둥이 있었고, 필자는 이미 한국 법당의 건축을 풀어내고 있었기에 서양 건축이 분명히 보였다. 이른바 다섯 오더(Five Orders)는 유럽 건축의 핵심이어서 그 기둥과 주두(柱頭, Capital)에 큰 관심을 가졌다(사진3). 유적 도처에 이런 주두가 많아 세밀하게 조사할 수 있었다.

사진4 레타 섬의  크노소스 궁전 벽화. 동양의 봉황과 같은 영조(靈鳥).
사진5 미노스의 궁전, 사자의 문.

유럽문화의 시작이라고 인식하는 ‘미노아 문명(기원전 2600년~1400년)’, 그 대표적 유적인 크레타섬의 크노소스 궁전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사진4). 궁전 벽화에는 몸은 짐승 모양이지만 얼굴을 새 모양이어서 영조(靈鳥)라고 짐작할 수 있다. 머리 깃털 모양은 연이은 제1영기싹 영기문이고, 몸에는 무량보주가 태극처럼 표현되어 매우 놀랐다. 그리스 본토의 미케네 문명(기원전 1600년~1200년)의 대표적 유적, 미케네 왕궁터를 답사하며 ‘사자의 문(Lion Gate)’의 상징을 읽어냈다(사진5). 중앙에 기둥이 있고 양쪽에 영화된 사자 모양이 있는데, 이러한 만물생성의 근원을 상징하는 조형들은 모든 문명의 발상지에서 보이는 것이다. 이 또한 필자가 풀어내어 훗날 아테네 학회에서 발표하기도 했다. 미케네 시대의 금속공예는 충격적이었다. 우리나라 삼국시대 금속공예와 공통점이 많았다.

그러면서 유럽의 르네상스는 그리스 정신의 참된 부활이 아님을 알았다. 그리스 문화 중 가장 중요한 기둥에 대한 개념을 잘못 이해하면서 오늘날의 그리스 건축에 대한 이해에 결정적 오류가 발생했음을 알게 되었다. 건축뿐만 아니라 그 외 모든 조형 예술품이 그랬다. 미노아 문명과 미케네 문명을 모르고 어찌 그리스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비록 10일 동안의 답사였으나, 매일 유적지에서 드라마의 격정을 체험하며 유럽문화는 다시 쓰여야 한다고 확신했다. 일반적으로 르네상스를 그리스 예술정신의 부활이라 알고 있다. 괴테와 부르크하르트 두 사람이 그리스를 방문한 적이 없다는 것은 비판받아야 한다. 도대체 그리스의 조형 정신을 모르고 어떻게 르네상스를 논한단 말인가.

귀국해서 곧 착수한 것이 Five Orders에 대한 해석이었다. 마침 미국 컬럼비아 대학 미술사학과 박사 과정이었던 김영준 씨와 필자가 블로그를 통해 서로 이야기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르네상스 미술이 전공인 그에게 Five Orders에 관한 서적을 모두 모아 주도록 부탁했다. 즉시 영국, 프랑스, 미국의 유수한 명문 대학의 건축학 교수들이 펴낸 기둥들의 실측도가 망라된 서적들을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즉시 채색 분석 작업에 들어갔다. 30점가량 채색 분석하면서 그리스, 로마, 르네상스 시대의 기둥과 주두에 대한 논문을 써서 9년 후인 2014년 7월 7일에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리는 학회(Athens Institute for Education And Research, 4th annual International Conference on ARCHITECTURE)에서 발표했다. 논문 제목은 「Architecturalization of the Forest of Cosmic Trees-Through a New Analysis of the Greek and Roman Five Orders-」(우주목 숲의 建築化-그리스와 로마의 다섯 기둥 양식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었다. 서양에서 말하는 주두는 기둥머리로, 법당의 공포에 해당한다. 이미 불교 법당의 공포를 풀어냈으므로 그리스의 주두가 쉽게 파악된 것이다. 주두(capital, 서양 건축의 가장 중요한 주제)를 올바로 해석함으로써 서양 건축사의 가장 중요한 그리스-로마 신전의 올바른 개념을 새로 정립한 셈이다. 현지 반응은 매우 컸다. 서양 건축사의 근본을 뒤엎는 발표였기 때문이다. 한국 목조 건축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공포와 비교하며 한국 건축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도 알렸다. 

이듬해인 2015년 4월 27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World Academy of Science, Engineering and Technology’라는 학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주제로 발표했다. 「Transcendental Birth of the Column from the Full Jar Expressed at the Notre Dame of Paris and Saint Germain-de-Pres」(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과 제르맹 성당에 표현된 기둥의 만병화생). 2015년 6월 24에서 27일까지 3일에 걸쳐 일본 와세다[早稻田] 대학에서 발표와 강연을, 앞서 일본 데쯔카야마[帝塚山] 대학에서는 기와 강연을, 규슈[九州] 대학에서는 고려 불화를 발표했다. 

이처럼 세계 여러 나라를 자비(自費)로 다니며 강연하고 발표해오면서 수많은 학자와 만나 교유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한 해에 서너 번 전국 어디서나 강연하고, 국립중앙박물관과 지방의 국립박물관에서 매번 새로운 주제로 강연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널리 퍼진 오류에 마비된 인류를 구원하려는 염원에서 나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지기 시작했다. 처음 듣는 용어와 이야기들이 한번 듣고 이해할 수 없는 피안의 세계여서 세계를 순례하는 계몽의 발걸음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글·사진. 강우방

강우방
1941년 중국 만주 안동에서 태어나, 1967년 서울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 미술사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과 국립경주박물관 관장을 역임하고 2000년 가을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로 초빙돼 후학을 가르치다 퇴임했다. 저서로 『원융과 조화』, 『한국 미술, 그 분출하는 생명력』, 『법공과 장엄』, 『인문학의 꽃 미술사학 그 추체험의 방법론』, 『한국미술의 탄생』, 『수월관음의 탄생』, 『민화』, 『미의 순례』, 『한국불교조각의 흐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