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스크리트로 배우는 불교] 불교의 세계관(2)_공간적·시간적 차원: 삼천대천세계와 대겁

2020-07-26     전순환

지난 호의 내용을 종합하면 이렇다. 중심에 서 있는 수미산(須彌山)에서 외곽의 철위산(鐵圍山)에 이르는 사방의 평면적 공간, 그리고 최하층인 풍륜(風輪)에서 최상층인 무색계(無色界)의 천계에 이르는 상하의 계층적 공간이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단위라고 말할 수 있다. 

『장아함경』 제18권 『세기경(世紀經)』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구사론』 제8~12권의 「세간품(世間品)」은 묘하게도 4대주에서 색계(色界)의 초선천(初禪天)인 범천(梵天)까지가 세계에 포함되는 부분이라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프루덴(Pruden)의 『구사론』1 영역본(Vol.2 p.468-469)과 라모뜨(Lamotte)의 『대지도론』1 14장에서도 『구사론』 한역본과 같은 내용이 확인된다. 

 

| 삼천대천세계

무엇이 포함되고 배제되든, 인간이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이와 같은 세계는 단순히 한 개에 그치지 않는다. 불교의 공간적 세계관에 따르면 하나의 세계는 ①천개(1x1,000) ②백만 개(1,000x1,000) ③십억 개(1,000x1,000x1,000)라는 상상 초월 수치로 무리를 지어 존재한다. 천(sahasra)의 제곱으로 늘어나는 이 세 부류의 세계들은 바로 『팔천송반야경』등 여러 불전에서 자주 등장하는 ①소천세계 ②중천세계 ③대천세계다. 

소천세계  하나의 세계가 천 개가 되면, 하나의 소천세계(小千世界)가 이뤄진다. 소천세계라는 명칭은 『팔천송반야경』의 경우 세 개 단어, 즉 사하스라(sāhasra) 출리카(cūlika) 로카-다투(loka=dhātu)로 구성되는 명사구(Noun Phrase)로 나타난다. 각각의 의미는 보통 형용사 ‘천 개의’, 형용사 ‘작은’, 명사 ‘세계’로 알려져 있다. 반면 『이만오천송반야경』과 『십만송반야경』에서는 소천세계가 cūlika를 제외한 두 개의 단어로만 표현한다. ‘소(小)’로 번역하는 산스크리트 cūlika가 정확한 어원을 알 수 없지만 ‘볼록 튀어나옴, 종기, 닭 볏, 머리, 정점, 정상’을 뜻하는 cūḍa에서 파생된 형용사라는 필자의 소견에 따른다면, ‘소(小)’라기 보다 ‘초(初)’의 의미를 갖는 단어라고 볼 수 있다. cūlika는 팔리어 대장경에서 cūḷanikā로 나타나는데, 라이스 데이비스의 팔리어 사전에 따르면 이 단어는 ‘small, minor’를 뜻하는 culla에서 파생됐고, culla는 산스크리트 kṣulla를 거쳐 kṣudra에 소급된다고 설명되어 있다. 사실 같은 의미의 culla와 kṣudra의 어원 관계는 아직 밝혀져 있지 않은 상황이다. 

중천세계  천 개의 소천세계로 구성된다는 중천세계(中千世界)의 산스크리트 명칭은 『팔천송반야경』과 『십만송반야경』에서 세 개의 단어, 즉 드위-사하스라(dvi=sāhasra) 맛야마(madhyama) 로카-다투(loka=dhātu)로 나타난다. 『이만오천송반야경』의 경우 ‘중(中)’에 해당하는 madhyama가 빠진 두 개의 단어로 표현하기도 한다. 수사 ‘2’의 dva에 ‘1,000’의 sahasra가 더해져 만들어진 합성어 dvi=sahasra는 보통 ‘2,000’을 의미한다. 그런데 브룻디(vṛddhi)가 적용되어 첫 모음이 장음화된 sāhasra는 ‘천’ 외에도 ‘천배; thousand-fold’라는 의미가 있다. 이 때문에 ‘이천’에 대응하는 dvi=sāhasra는 실제로 ‘두 번의 천배로 구성되는; consisting of 1,000x1,000’으로 이해돼야 하는 형용사다. 이 명칭의 한역은 ‘중천세계’보다 ‘이천(二天)중천세계’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대천세계  천 개의 중천세계로 성립한다는 대천세계(大千世界)의 산스크리트 명칭은 『팔천송반야경』과 『십만송반야경』의 경우 두 개의 단어로 구성되는 명사구, 즉 트리-사하스라-마하-사하스라(tri=sāhasra=mahā=sāhasra)와 로카-다투(loka=dhātu)로 나타난다. 반면 『십만송반야경』은 첫 단어의 합성어를 tri=sāhasra와 ‘대천’에 해당하는 mahā=sāhasra, 두 개의 단어로 표현하는 정도의 차이를 보여준다. 수사 ‘3’의 tri에 ‘천’이 붙은 tri=sāhasra는 ‘세 번의 천배로 구성되는; consisting of 1,000x1,000x1,000’이 되기에 명칭의 전체적인 의미는 대략 ‘세 번의 천배로 구성되는 위대한 천배의 세계’ 정도가 된다. 한역으로는 보통 ‘삼천(三千)대천세계’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대천세계에는 천계, 해(sūrya)와 달(candra), 수미산이나 철위산, 대지옥 등 한 세계의 모든 구성 요소가 10억 개씩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이러한 삼천대천세계가 소천이나 중천세계와 달리 범본 불전들에서 ‘항하(恒河)의-모래알들(의 수)과-같은(gaṅgānadī=vāluka=upama)’이라는 형용사 수식을 받으며 예외 없이 단수가 아닌 복수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팔천송반야경』의 6장 「수희와 회향」편에서 수보리 장로가 미륵 보살마하살에게 대천세계의 분포와 수량에 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다음과 같은 한 문구를 볼 수 있다.

“…미륵이여…시방(十方)에〔분포하는〕 무량무수의 삼천대천세계들에서, 각각의 방위에〔존재하는〕 각각의 삼천대천세계에서 무량무수의 불타세존들이 열반에 드셨습니다…(..maitreya·daśasu·dikṣu·aprameyāsaṁkhyeyeṣu·trisāhasramahāsāhasreṣu·lokadhātuṣu·ekaikasyām·diśi·ekaikasmin·ca·trisāhasramahāsāhasre·lokadhātau·aprameyāsaṁkhyeyānām·buddhānām·bhagavatām·parinirvṛtānām..).” 

 

| 대겁

붓다-크세트라(buddha=kṣetra), 즉 불-토(佛土)로서 붓다의 광채(raśmi)가 두루두루 미친다는, 과거와 미래의 여래들이 존재했고 존재할 것이라는 공간적 차원의 삼천대천세계는 시간적 차원의 선상에 놓여있다고 한다. 유정의 생로병사와 윤회(saṁsāra)처럼 유정들이 거주하는 대천세계 또한 만들어지고[生] 지속되며[老病] 사라진다[死]는 것인데, 대천세계의 경우 사라진 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비어있는 상태가 더해진다. 반복된다는 이러한 네 가지 과정은 성(成)·주(住)·괴(壞)·공(空)이란 용어로 정립되어 있다. 각 과정을 거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겁(怯)으로 표현하기에 각각의 단계는 성겁(成劫)·주겁(住劫)·괴겁(壞劫)·공겁(空劫)으로 불린다. 이 사겁(四劫)의 한 주기를 마하-칼파(mahā=kalpa), 즉 대겁(大劫) 또는 일대겁(一大劫)으로 칭하고 있다. 

  칼파(kalpa)를 음역한 겁은 어원적으로 ‘정돈/결합되다’의 어근 KALP와 접미사 a로 구성된 명사다. ‘규칙, 순서, 질서’를 뜻하는 단어이고, 이후 어느 정도의 기간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과연 이 용어는 얼마만큼의 시간을 가리키고 있는 것일까? 시간과 관련된 kalpa의 쓰임은 『마하바라타(Mahābhārata)』에서 처음 언급되었다고 하여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문구(12.291.14)를 볼 수 있었다.

“〔천신들의 나이로〕 12,000살은 유가(yuga)에 해당하고, 네 개 〔의 하위 유가들〕로 구성되는 이 유가의 천배가 일 칼파가 되는데, 이는 브라만의 〔하루 가운데〕 낮 또는 밤에 대응한다(yugam·dvādaśasāhasram·kalpam·viddhi·caturguṇam·daśakalpaśatāvṛttam·tat·ahaḥ·brāhmam·ucyate·rātriḥ·caitāvatī·rājan·yasyānte·pratibudhyate)3.” 

베다에 소급되는 yuga는 ‘연결, 멍에, 세대, 혈통’을 의미하는 단어로서 삿탸(satya) 트레타(tretā) 드바파라(dvāpara) 칼리(kali)의 네 단계로 구성된다. 각각의 의미는 ‘진실/순수함의 시기’, ‘세 번째 시기’, ‘두 번째 시기’, ‘불화/반목/다툼의 시기’로서 이는 법, 지혜, 지식 등의 쇠퇴 순서를 나타낸다고 한다. 

천신의 하루는 인간의 1년에 맞먹는다고 한다. 360일을 기준으로 하여 12,000x360=4,320,000년이 되고, 여기에 다시 1,000을 곱하면 일겁(一怯)은 43억 2,000만 년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와 유사한 내용은 『바가왓기타(Bhagavatgītā)』 8장 17절과 『바가와타-푸라나(Bhagavata=Purāṇa)』 12권 4장 2절에서도 볼 수 있다. 불교에서 겁의 쓰임은 경전마다 다르기도 하고 다소 복잡한 문제이기에 이 정도로만 이야기하기로 한다. 『팔천송반야경』 28장 「산화여래」편에서 세존이 반야바라밀다가 사라지지 않도록 아난다 장로에게 맡기는 장면에서 겁을 표현하는 문구를 소개해 본다.

“…아난다야, 또한 나는 반야바라밀다를 네게 위탁한다고 매우 오랜 시간동안 한 겁(劫)이나 한 겁 이상, 백겁 천겁 십만겁 천만겁 십억겁 백억겁 십조겁 그 이상〔이 걸린다하더라도〕이야기할 것이라…(bahu api te Ānanda aham bhāṣeyam prajñāpāramitāyāḥ parīndanām ārabhya kalpamkalpāvaśeṣamkalpaśatamkalpasahasramkalpaśatasahasramkalpakoṭimkalpakoṭiśatamkalpakoṭisahasramkalpakoṭiśatasahasramtatas vā upari).”

사겁  위에서 언급한 네 개의 겁 가운데 앞서 소개한 『구사론』과 『대지도론』에서 분명하게 확인되는 산스크리트 용어는 성-겁으로 번역하는 위와르타-칼파(vivarta=kalpa), 괴겁으로 번역하는 상와르타-칼파(saṁvarta=kalpa)이다. 그러나 『대지도론』의 경우 주겁과 공겁은 각각 성겁과 괴겁의 지속(sthiti)이기에 위와르타-스티티-칼파(vivarta=sthiti=kalpa)와 상와르타-스티티-칼파(saṁvarta=sthiti=kalpa)란 용어의 사용이 가능하다는 암시를 주기도 한다. 괴겁의 경우 삼천대천세계가 같은 시점에 모두 사라진다는 이야기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앞서 yuga에서 언급된 것처럼, 『팔천송반야경』의 7장 「지옥」편에서는 이와 다른 해석, 즉 동시가 아니라 악업의 쌓임 정도에 따라 차례대로 파괴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문구가 등장한다. 겁화는 테자흐=상와르타니(tejas=saṁvartanī)의 번역이다. 

“그들은 대지옥에서 대지옥으로 옮겨 다닐 것이니라. 매우 오랜 시간 동안 대지옥에서 대지옥으로 옮겨 다닌 그들에게는 겁화(劫火)에 의한〔세간의〕 파괴가 일어날 것이니라. 겁화에 의한〔세간의〕파괴가 일어난 후, 그들은 다른 세계들에 존재하는 대지옥들, 그곳에 내던져지고, 그 대지옥들에 다시 태어날 것이니라.” 

현겁  사겁 외에도 현겁(賢劫)이란 표현이 존재하는데, 이는 주겁에 속하는 기간으로 현재의 붓다가 존재하는 겁을 가리킨다고 이야기한다. 이 단어는 바

드라-칼파(bhadra=kalpa)의 번역이고, 여기에서 bhadra는 ‘은혜로운, 행운의’를 뜻하는 형용사다. 『팔천송반야경』에서 단 한 번 등장하는데, 그 장면은 13장 「불가사의한 업」에서 세존이 수보리 장로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는 문구에서다.

“…6,000명의 우바새(優婆塞)…3,000명의 우바이(優婆夷)…2,000명의 보살마하살이 불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느니라…이는 바로 현겁에서 세존이 예언한 것이며, 또한 그들이 무-집착에 기대어 수많은 번뇌들에서 해방될 것이라는 것도 세존이 예언한 것이니라.” 

현겁에는 현재의 붓다(Gautama) 외에도 과거의 붓다와 미래의 붓다가 순서대로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전자의 경우 카쿠찬다(Krakucchaṁda) 카나카무니(Kanakamuni) 카샤파(Kāśyapa)이고, 후자의 경우 마이트레야(Maitreya)이다. 과거의 시기는 뷰하-칼파(vyūha=kalpa)를 번역한 장엄겁(莊嚴劫), 미래의 시기는 낙사트라-칼파(nakṣatra=kalpa)를 번역한 성수겁(星宿劫)에 해당한다고 한다. 

문득 ‘색즉시공 공즉시색’ 문구를 처음 접했던 때가 생각난다. 색(色)이 공(空)이라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공이 색이라는 표현은 필자에게 거리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호를 포함하여 지난 열여섯 번의 글을 써 오면서 여전히 혼란스럽지만, 『반야심경』의 이 글귀는 처음 그때보다 필자의 마음에 편안하게 다가온다. 경전의 글귀를 읽고 공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글귀의 배경이 되는 넓고도 제대로 된 지식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름 쉽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현재에까지 이른듯 싶다. 글을 써오면서 여러 경전, 2차 문헌과 인터넷 자료들을 검색하면서 생각보다 잘못된 정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것들을 바로잡아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필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필자는 이제까지의 내용을 바탕으로 다음 호부터는 현재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범본 『금강경』에 관해 이야기하려 한다. 참고로 『금강경』은 6종의 범본과 8종의 한역본을 가지고 있다.

 

1  Pruden, Leo M. (1991) Abhidharmakosabhasyam, translated from the French translation by Louis de la Vallée Poussin. Asian Humanities Press, Berkeley.

1  Lamotte Étienne (1949) Le Traite de la Grande Vertu de Sagesse de Nagarjuna (Mahaprajnaparamitasastra). Tome I: Chapitres I-XV. Louvain - Leuven. Réimpr. 1967. 

2  Rhys Davids T.W. & Stede William (1921-25) Pali-English Dictionary. Motilal Banarsidass. 

3  원문: http://gretil.sub.uni-goettingen.de/gretil/1_sanskr/2_epic/mbh/mbh_12_u.htm

 

 

글. 전순환

전순환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대학원 졸업. 독일 레겐스부르크 대학교 인도유럽어학과에서 역사비교언어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9년부터 시작된 한국연구재단 지원 하에 범본 불전(반야부)을 대상으로 언어자료 DB를 구축하고 있으며, 서울대 언어학과와 연세대 HK 문자연구사업단 문자아카데미 강사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팔천송반야경』(불광출판사), 『불경으로 이해하는 산스크리트-반야바라밀다심경』(지식과 교양), 『불경으로 이해하는 산스크리트-신묘장구대다라니경』(한국문화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