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명 스님의 온에어(On Air)] 가톨릭 신자의 손편지

2020-07-24     진명 스님

하얀 데이지꽃이 온 도량을 순백으로 물들이더니, 그 꽃 진 자리에 빨간 꽃 양귀비와 더불어 금계국과 노란 낮달맞이가 황금빛으로 수놓고 있다. 온 지구촌이 코로나19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나지막한 산 아래 이 도량은 무심하게 그대로 여여한 정토다. 매년 봄을 지나 여름으로 가는 이즈음이 되면 도량을 살피는 일손이 바쁘다. 그래서 나는 풀 매는 울력을 풀 한 포기에 집중하는 노동선이라 이름 붙였다. 이 또한 정진하는 시간이다. 풀 한 포기에 삼매를 담고 또 한 포기에 추억을 담다 보면 도량은 어느새 말쑥하게 차림새를 갖춘다. 

오늘은 노동선 중에 찾아온 오래된 팬레터의 감동을 전한다. 생방송을 하는 일은 흐르는 물 같은 시간이자 지나가는 바람 같은 시간, 그 찰나의 시간에 보이지 않는 대중을 만나는 시간이다. 그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희망과 격려, 위로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 시간이기에 방송을 진행하는 나에게는 매일 새롭고 기대가 되는 시간이다. 언젠가 이런 편지를 받았다. 

“스님 저는 가톨릭 신자인데 요즘 금강경 강의를 듣고 있습니다. 오늘도 스님이 들려주시는 방송을 들으며 불교를 하나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그 편지를 받고 나는 ‘아, 가톨릭 신자도 이 방송을 듣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누군가는 이 방송을 불교를 바르게 알아가는 좋은 스승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방송을 더 섬세하고 친절하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사실 방송을 듣는 대중들은 방송에서 전하는 뉴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반에 걸친 모든 내용을 그대로 믿고 따르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방송을 제작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들고 있는 방송이 대중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인지 잘 생각하고 만들어야 한다.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의 의무이자 책임감이다. 정확하지 않고 잘못 전달된 정보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되는 경우가 있다. 사회를 유지하는 어떤 제도든 작은 단체의 룰이든 양면성이 있지만, 방송의 양면성은 그 간극이 크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매일 내가 진행하는 방송만큼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고 위로와 격려가 되는 시간을 만들어 가고자 노력해 왔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예전에는 방송 청취자의 참여 편지가 거의 다 손편지로 왔다. 그 가톨릭 신자라는 분의 사연도 손편지로 간간이 도착해 있었다. 그런데 그날 받은 편지는 나에게 큰 기쁨이었고, 내가 방송해온 시간의 보상을 받은 느낌이었다. 오래된 기억이지만 나에게는 잊지 못할 방송의 인연이기에 그 내용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스님, 제가 오늘 휴일이라 도봉산을 오르며 걷고 있는데 스님께서 방송에서 제 이름을 부르고 제가 보낸 편지를 읽어 주시는데 너무 기뻐서 털썩 주저앉아 스님의 방송을 다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생각에 잠겨 쉬었다가 너무나 가볍게 등산을 잘 마무리했습니다. 그런데 스님께 꼭 전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다시 편지를 씁니다. 사실 제가 금강경 공부를 마무리하고 불교로 개종했습니다. 지금은 새내기 불자지만 앞으로 무궁무진한 부처님 말씀을 잘 배우고 실천하도록 하겠습니다. 새롭게 알아가는 불교가 너무 좋아 매일 기쁨으로 살아갑니다. 제가 개종을 하는 데 큰 힘이 된 것은 바로 스님께서 진행하시는 프로 덕분입니다. 이제 저에게 잘 맞고 편안한 옷을 입은 느낌입니다.” 

이런 내용이었다.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는 그 청취자가 가톨릭 신자로서 살아온 시간이 있었기에 개종을 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렇지만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옷을 입은 듯이 불교가 좋다고 하니 그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글 내용을 통해 그분의 성품이 진지하고 성실하게 느껴졌다.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지금은 어느 회상에서 신심이 돈독한 불제자가 되어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런 기억을 떠올리며 방송을 통해 내가 하는 말 한마디와 행동에 더 큰 무게를 느끼는 오늘이다.

 

글. 진명 스님

진명 스님
시흥 법련사 주지. 1982년 청도 운문사에서 정심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84년 해인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1988년 범어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운문사 승가대학과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선학과를 수료했다. ‘(사)맑고 향기롭게’ 사무국장,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장, 중국 북경 만월사와 대련 길상사 주지를 역임했다. 문화재청 문화재건축분과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문화재청 무형문화재 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