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근 에세이] 하루살이의 ‘특별한 하루’

2020-07-24     김택근

갈수록 여름나기가 힘들다. 올해는 인류가 기온을 측정한 이래 가장 뜨거울 것이라고 한다. 이런 예측에도 우리는 매우 놀라지 않는다. 이미 지구가 건강을 잃어가고 있음을 알고 있고, 이에 적당히 체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기상청의 감시망을 찢어버리는 불길한 기록들이 작성되고 있다. 이제 인간의 체온보다 뜨거운 날들이 예사로 찾아온다. 이런 여름을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건너야 한다. 

여름이 이토록 사납고 습하지만, 자연은 그래도 의젓하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 체념해서는 안 된다. 둘러보면 날마다 살아 있는 것들의 축제다. 온통 야생초가 우거져 야성(野聲)을 지르고 있다. 하늘에는 구름이 몰려와 하늘을 가리고, 땅에는 온갖 초목이 땅을 가리고 있다. 한마디로 장엄하다. 

겨울에 소한(小寒)과 대한이 있다면, 여름에는 소서(小暑)와 대서가 있다. 소한과 대한이 들어있는 1월(음력 12월)이 얼음이라면 소서와 대서가 박혀있는 7월(음력 6월)은 화덕이다. 옛사람들도 소서와 대서를 지내기가 무척 힘이 들었다. 닷새 단위로 천기 변화를 기술했으니 그만큼 숨이 막혔다는 얘기다. 더운 바람이 불어오고, 귀뚜라미가 벽을 타고 다니며, 매가 사나워지기 시작한다(소서). 반딧불이가 나타나고, 흙이 습하고 뜨거우며, 때때로 큰비가 내린다(대서).

더운 바람이 불어오면 날개가 있는 생명체는 일제히 날아오른다. 우리 눈은 벌과 나비만 찾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름을 알 수 없는 것들이 형형색색의 날개로 세상을 휘젓는다. 숲과 벌판에는 날갯짓 소용돌이가 끊이지 않는다. 이름을 외울 수 없어서 우리는 그저 나방이라 부른다. 우리 땅에서만 1,500종이 넘게 발견되었다. 땅 밑은 개미들이 장악하고 있다면 땅 위의 세상은 나방들이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나비와 매미 정도는 학교에서도 그 생을 추적한다.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화려한 날개를 펄럭임은 또 다른 개벽(開闢)이라며 특별히 챙긴다. 곤충의 변태는 살펴볼수록 신비롭다. 알에서 유충으로, 다시 번데기에서 성체에 이르는 과정은 우리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생명의 외경, 그 자체다. 매미의 유충은 짧게는 7년, 길게는 17년 동안 땅속에 있다. 그러므로 도시에 여름마다 매미가 찾아옴은 실로 귀한 일이다. 매미들 울음은 가로수를 더욱 푸르게 하고 우리네 도시를 살아 있게 만든다. 그래서 매미들 울음이 날카로워도 가만히 귀를 막을 일이지 눈을 흘겨서는 안 된다. 하지만 나방들의 생은 잘 알려지지 않았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나방들도 땅속에서, 또 물속에서 ‘간절한’ 시간을 보내고 비로소 날개를 얻는다. 나비처럼 알에서 애벌레가 되었다가 번데기로 변한다. 그리고 마침내 나방이 되어 대자연의 일원으로 허공을 헤집는다.

하루살이의 일생은 더욱 특별하다. 하루살이 알은 호수 밑에서 그날을 기다린다. 알이 성충이 될 때까지는 대략 천일이 걸린다고 한다. 하루살이에게도 천적은 있다. 천적과 다른 위험을 피해 살아남는다는 것은 하늘이 도와야 가능할 것이다. 어쩌면 인간이 몸을 받기만큼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루살이는 허물을 25번이나 벗는다. 그렇게 수많은 변신을 해야만 단 하루를 얻을 수 있다. 천일 동안 하루를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하루에 할 일을 점검할 것이다. 하루살이는 하루를 사는 것이 아니라 단 하루를 기다리는 것이다. 하루살이가 천일 동안 하루를 준비한다면 지상의 하루는 생의 마지막 불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루살이에게는 입이 없단다. 하루를 보내는 데 먹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루살이는 물속에서 숙성시킨 계획을 하루에 실행해야 한다. 물론 그중 가장 큰 임무는 종족을 번식시키는 일이다. 그래서 하루살이는 그렇게 정신없이, 쉬지 않고 날아다니는지도 모른다. 하루살이의 어지러운 비상(飛翔)에는 이런 절박함이 묻어있을 것이다. 불만 보면 뛰어드는 하루살이, 그것은 물속에서 태어나 불 속에 생을 태우는 가장 극적인 순간일 것이다. 

물속에서 천일, 지상에서 하루. 하루살이와 천년을 사는 은행나무, 어느 삶이 더 치열한 것인가. 긴 것이 무엇이고 짧은 것이 무엇인가. 하찮은 것이 무엇이고 또 귀한 것이 무엇인가. 한여름 밤 하루살이의 군무, 참 슬프면서도 장하다. 또 아름답다.

 

글. 김택근

김택근
시인, 작가.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오랜 기간 기자로 활동했다. 경향신문 문화부장, 종합편집장, 경향닷컴 사장,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1983년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용성 평전』 『성철 평전』 『새벽, 김대중 평전』 『강아지똥별, 권정생 이야기』 『뿔난 그리움』 『벌거벗은 수박도둑』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