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홀릭] 곽정은, 고통에 건네는 다정한 인사

롤모델 ‘언니’에서 마음 ‘메신저’로 작가 곽정은

2020-07-06     송희원

서울 옥수동 한 건물, 드림캐처(악몽을 걸러주고 좋은 꿈을 꾸게 해주는 장신구)가 매달린 문을 여니 새하얗고 아늑한 공간이 나온다. 명상 스튜디오 ‘헤르츠(Herz)’다.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등받이 좌식 의자, 손수 양재동 꽃시장에서 사다가 다듬어 장식한 식물, 발리에서 구매해 직접 들고 왔다는 조명까지. 어느 것 하나 손길이 안 닿은 데가 없다. 지난 2년간 연령도 직업도 다양한 수백 명의 사람이 이곳에서 명상하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봤다. 

여성잡지 출신 기자이자 10권의 책을 낸 베스트셀러 작가, 유명 방송인이자 전국을 누비는 강연자. 20·30대 여성들에게 연애와 인생 조언을 해주며 ‘닮고 싶은 언니’이자 ‘만인의 언니’로 꼽힌 이. 모두 곽정은을 수식하는 말들이다. 그가 외연을 넓혀 마음챙김(Mindfulness) 명상지도자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불안함과 조급함을 가진 현대인들에게 명상을 꼭 추천하고 싶다는 그를 ‘헤르츠’에서 만났다.

 

| 자신을 다정히 보는 시선이 자존감

대학 졸업 후 여성잡지 「휘가로걸」, 「싱글즈」, 「코스모폴리탄」에서 피처 에디터로 활동했다. 2013년 예능 프로그램 <마녀사냥>에 연애 카운슬러로 고정 출연하면서부터 대중에게 각인되기 시작했다. 여성들에게 속 시원한 조언을 건네는 세련되고 당당한 ‘언니’로 인기를 끌었다. 유명세 덕에 책도 여러 권 쓰고 강연도 하고 수많은 일의 기회를 잡았다. 

“방송에서 연애 테크닉, 남녀관계 전문가로 유명해지다 보니까 ‘곽정은은 남자 좋아한다’, ‘연애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오해받았죠. 연애 전문가라는 타이틀 덕분에 명성과 경제력을 얻었지만, 한편으로는 제 역할이 축소되는 느낌이었어요. 저는 연애든 혹은 삶의 다른 소재이든 그걸 통해 언제나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기자·방송인·작가·강연자로 승승장구하던 그의 삶에 2016년 큰 균열이 일었다. 사람 관계 때문이었다. 이제껏 이 문제만큼은 책과 강연으로 남들에게 조언해줄 만큼 자신 있던 그였건만, 이번엔 극복하기 힘들었다. 

“심신이 많이 지친 상태에서 찾아갔던 요가센터에서 우연히 명상을 접했어요. 처음에는 별 기대가 없었는데, 눈을 감고 몇 분이 지나자 바로 깨달았어요. ‘그동안 나 자신조차도 나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구나’, ‘명상을 하면 나 자신과 굉장히 긴밀하게 연결되는구나’라고요.”

그의 인생 2막이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과거 대중매체에 비친 그의 모습은 언제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었다. 누군가에게 조언할 수 있으려면 최소한 남들보다 평균 이상의 자기 확신과 강고함이 있어야 한다. 더구나 그 일이 항상 대중들에게 날선 평가를 받아야 하는 방송인이라면 웬만한 자존감 없이는 버틸 수 없는 일이다. 

“예전에도 자존감이 약한 편은 아니었어요. 제가 일했던 잡지와 방송 업계가 기본적으로 자신을 믿는 마음 없이는 버티기 어려운 곳이기도 했고요. 그때 세속적인 성공은 거두었을지 몰라도 깊은 행복은 느끼지 못했던 것 같아요. 겉으로는 웃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속은 완전히 전쟁터였죠.”

그는 명상을 꾸준히 하게 되면서 ‘진짜 자존감’을 알게 됐다. 

“진짜 자존감은 자신을 다정하게 보는 시선이에요. 명상을 계속하다 보면 기쁨도 고통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조금씩 천천히 찾아와요. 예전엔 외로우면 친구에게 전화하거나 슬픈 음악을 들으며 울었어요. 이제 외로우면 ‘아 외로움이다’, ‘아 허전함이다’, ‘이 감정은 어디서부터 왔을까?’라고 관찰자 모드로 바라볼 수 있게 됐죠. ‘요즘 몸이 지치고 친구들이랑 못 만나서 이런 감정이 나왔나 보다’하고 관찰할 수 있게 되는 순간, 그것에 사로잡히지 않게 돼요.”

명상을 알게 된 후에도 인생에서 감당하기 힘든 일들은 여전히 계속 찾아온다. 달라진 점은 그 일에서 뒷걸음질 치지 않고 대처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생긴 것.

“뼈가 부러졌는데 좋은 향기를 맡는다고 낫는 게 아니에요. 명상으로 고통스러운 외부상황을 바꿀 순 없지만 적어도 자신의 태도는 정할 수 있게 돼요. 명료함과 평온함이라는 쉽게 훼손되지 않은 삶의 방식이 마음으로 들어오기 때문이죠.” 

강연, 프로그램 등 명상을 하기 위한 다양한 경로가 있다. 요즘은 유튜브나 애플리케이션으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명상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방법을 물었다.

“더 깊은 체험을 원하면 직접 현장에 나와 선생님을 만나야 해요. 명상은 내면을 관찰하는 혼자서 하는 경험이지만 현장에서 사람들과 함께하면 더 강력한 무언가를 느끼게 돼요. 비슷한 아픔을 갖고 있거나 삶이 풍요롭길 원하는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명상하고 마음을 나누게 되면 서로 연결되고 자신의 일부가 확장되는 체험을 하게 되죠.”

그는 명상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에게 조바심을 내지 말라고 조언한다. 명상은 즉각적인 효용을 가져다주는 기술이나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것. 대신 삶을 유연하게 살아가는 힘이 언젠가는 커질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꾸준히 하길 권한다. 오히려 즉각적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 도전적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명상 도구로 사용하는 티베트 전통 악기 띵샤(Thingsha)와 싱잉볼(Singing Bowl). 소리를 듣다보면 긴장이 해소되고 심리적 안정을 찾는다.

 

| “한국의 타라 브랙이 되고 싶어요.”

곽정은에게 ‘전달’은 익숙하고 또 자신 있는 분야다. 칼럼이든 책이든 강연이든 방송이든 그는 늘 대중에게 무언가를 끊임없이 전달해 왔다. 

계속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무언가를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한다는 것, 그건 그의 천부적인 재능이기도 했다. 이번 그의 역할은 ‘마음 메신저’다. 2016년 인도에서 마음 치유 프로그램을 처음 경험했다. 2018년에는 한국에서 명상지도자 코스를 밟았고, 지난 봄에는 인도 오앤오 아카데미의 명상지도자 트레이닝 코스를 수료했다. 올해는 한양대 상담심리대학원 졸업도 앞두고 있다.  

“어떤 것을 알면 그걸 제 안에 녹이고 체화해서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게 제 삶이에요. 다양한 직업들을 거쳐오면서 글솜씨, 말하는 능력, 전달력 등이 단련됐어요. 이런 재능으로 명상을 단지 수식이나 테크닉, 자기계발법, 트렌디한 취미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 있는 삶의 방식으로 이해시키고 싶어요. 뛰어난 스님과 학자들도 많겠지만, 저는 대중과 좀 더 가까이 맞닿아 있는 지점에서 그걸 전달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런 차원에서 ‘헤르츠’라는 공간까지 열게 된 거죠.”

명상 스튜디오 ‘헤르츠(Herz)’는 독일어로 마음, 감정, 영혼, 용기를 뜻한다. 동시에 ‘여성(her)’이라는 의미 또한 내포한다. 2019년 2월부터 이곳에서 마음챙김 명상을 기반으로 한 프라이빗 마인드 워크샵을 진행해왔다. 찾아오는 사람들은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하다. 대학생이 혼자 찾아오거나 모녀, 직장 동료끼리 함께 오기도 한다. 

“잡지기자 땐 여성지다 보니까 주로 패션·뷰티 혹은 가벼운 라이프스타일 분야를 다뤘어요. 글의 메시지가 보통 유익하고 재밌는 정보에 치중된 반면 철학적인 고민, 삶의 어두운 측면 같은 주제는 다루지 못했죠. 지금은 삶에 있어 더 폭넓고 깊이 있는 주제 전반을 얘기할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헤르츠 공간은 올해 말 2년의 임대 기간이 끝난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가 “내 삶은 명상을 알기 전과 후로 나뉜다”라며 운을 뗐다. 눈빛에서 강한 확신이 흘러넘쳤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 마음을 이야기하는 명상 프로그램을 지속해 나갈 계획이란다. 강의와 명상을 결합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많이 부족하지만 한국의 타라 브랙이 되고 싶어요. 『호흡하세요 그리고 미소지으세요』(불광출판사)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았거든요. 낭비할 시간이 없어요. 인생의 중요한 맥락을 깨달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더 열심히 살아야죠. 이 일에 저는 확신이 있어요. 앞으로 어떤 고통이 다가오든 그걸 토대로 더 많은 것들을 느끼고 경험해서 사람들에게 잘 전달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 인생에 초인종을 누르는 모든 고통에게 저는 ‘들어오세요, 밥 먹고 가요’라고 할 생각이에요(웃음).”

 

글. 송희원

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