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루 매화를 심어

선심시심

2007-09-16     관리자

재득일주매 栽得一株梅
고풍화이개 古風花已開
여견응결실 汝見應結實
환아종자래 還我種子來

한그루 매화를 심었더니
옛 바람에 이미 꿏이 피었더라.
그대가 응당 열매를 보았으려니,
내게 종자를 돌려 보내라.

이 오언절구는 효봉(曉峰) 큰스님께서 구산법자(九山法子)에게 내린 전법게송(傳法揭頌)이다. 1950년 6.25 전란으로 가야총림(해인사)이 문을 닫고 남하하여 그해 겨울 효봉 방장스님은 부산 금정선원에서, 구산 스님은 진주 응석사에서 각각 안거 중이었다.
이때 법제자 구산으로부터 아래와 같은 소식을 받고 이에 화답한 것이 저 내용이다.

대지색상본자공 大地色相本自空
이수지공기유정 以手指空豈有情
고목입암무한서 枯木立岩無寒暑
춘래화발추성실 春來花發秋成實

대지의 색상이 본래 스스로 공했거늘 손으로 허공을 가리키니 어찌 욕정이 있으리요.
마른 나무와 부동의 암석은 춥고 더움이 따로 없지만,
봄이 오면 꽃이 피고 가을에는 열매를 맺도다.
매화야말로 백화(百花) 중에 선구자요, 추위에 초연하여, 그 고아한 자세는 눈 싸인 차가운 달빛 아래 더욱 그 멋을 드러내니, 설산 구도자의 모습 그것이 아닐 수 없다.
양춘가절에 잡연히 피어나는 천종만화(千種萬花)는 그 대개가 세속적이고 관능적인 데 비하여 이 화중어사(御史)만은, 살을 저미는 한파 속에 인고(忍苦)로써 패기를 과시한다.
게다가 눈 속의 맑은 향기는 삭연한 중생계를 맑히는 보살의 자비 그것이기도 하다.
공들여 심어 가꾼 한 그루의 매화가 옛 조사들의 길을 따라 어느새 일찍이도 꽃이 피었으니 그 스승은 이것을 무견견(無見見)하였으리라.
삼세 여래와 역대 조사들도 이렇게 매화를 심어 설향빙염(雪香氷艶)의 소식을 전해 받았다. 관음 보살이 무설설(無說說)하고 남순 동자가 무문문(無聞聞)하듯 한 번도 입을 연적이 없고 한 번도 귀를 기울인 적이 없이 법을 전하고 법을 받았다. 과거도 그랬거니와 미래도 현재도 또한 그럴 것이다.
개화가 만발하고 그 가향이 넘쳐 흘러 산하대지를 수놓고 적시니 몰록 중생계가 일조에 정통으로 변한듯하다.
이토록 화려한 전시 뒤에는 다시 고요한 제 모습으로 되돌아갈 시절이 온다. 사물의 결실은 언제나 그윽한 곳에 갈무리게 된다. 색은 나타나는 것이라면, 공은 항상 그 속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꽃이 있어 열매가 있고 다시 열매가 있어 꽃이 있듯이, 색(色) 속에 공(空)이 있고 공 속에 색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한 그루의 종자는 두 그루의 매화를, 두 그루의 씨앗은 네 그루의 그것을 심어 가꾸기 위하여. 불조의 혜명은 이렇게 길이 이어지고 널리 퍼져 나간다.
이런 과업은 역대조사들의 막중한 임무이기도 하다. 세세생생을 통해 법등은 이렇게 전해진다. 구원(久遠)의 사간을 향하여 힘차고 줄기차게.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할 때까지.
그때를 대비하여 그 스승은 그 제자에게 "네가 거둔 종자를 나에게 가져오라." 하였다. 제자는 이씨앗을 은사에게 돌려보냄으로써 그 빚을 갚는 것이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생호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