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만나는 불교] 인생은 어떻게 요리하고 먹을까 / 김천

'하우 투 쿡 유어 라이프' (네 인생을 요리하는 법, How To Cook Your Life. 2007)

2020-06-23     김천

| 넘쳐나는 먹방 그리고 음식

요즘 음식에 관심이 높아졌다. 먹방(먹는 방송)이 대세고 신문, 방송, 영화까지 음식을 다루는 내용이 지천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하우 투 쿡 유어 라이프(네 인생을 요리하는 법, How To Cook Your Life. 2007)>는 불교 관점에서 무엇을 어떻게 만들고 어떤 방식으로 먹을까를 다뤘다. 

독일 출신 도리스 되리(Doris Dorrie)가 연출한 이 영화는 다소 엉뚱한 경험에서 시작됐다. 감독은 10대 후반부터 미국에서 연극과 철학, 심리학을 공부했고 그때 불교를 접했다고 한다. 그는 “15년 동안이나 참선을 한다고 해봤지만 실패했다”고 말했다. 독일에서 영화 <마음의 중심(1982)> <남자들(1983)> 등으로 주목받은 후 <파니핑크(1994)>로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그 후에 자신의 질문을 담아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냈다. 

감독은 미국에서 주방에서 참선을 가르치는 스님을 통해 10대 소녀를 만났는데, 너무나 행복하게 명상수업을 듣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소녀는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해 휴대전화를 비롯한 모든 디지털 기기에서 벗어나 즐겁게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감독은 사찰 주방에서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했다. 이 영화는 그렇게 시작됐다.

영화 주인공은 에드워드 에스페 브라운이다. 그는 순류 스즈키 스님의 제자이다. 스즈키 스님은 샌프란시스코 선 센터를 건립해 미국에 일본 조동종과 묵조선을 소개했다. 브라운 스님은 스승으로부터 청산 해령(靑山 海寧)이란 법명을 받고 후계자의 길을 걷게 된다. 브라운 스님은 1980년대 중반까지 샌프란시스코 교외 타사하라 선원에서 참선을 지도하고 농사와 요리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그의 책 『타사하라의 빵 만들기(1970)』는 100만 부 가까이 팔린 베스트셀러다. 그가 음식과 불교에 관해 쓴 여러 권의 책들은 여전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고 있다. 

대부분의 음식 관련 콘텐츠들은 음식의 맛과 모양, 조리법에 집중하고 있다. 얼마나 맛이 있고 몸에 좋으며 보기 좋은가를 드러낸다. 하지만 이 영화가 음식에 접근하는 방식은 다르다. 브라운 스님은 “음식을 만드는 일은 단지 조리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과 삶에 집중하는 일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헌신의 의미도 담겼다”고 주장한다. 음식 자체 또는 재료보다 음식을 만드는 자세와 과정에 주목하는 것이다. 

| 스님이 만든 빵과 명상 콜라보

명상은 대부분 자기 앞에 놓인 것들에 집중함으로써 시작된다. 간화선은 화두에 집중하고, 위빠사나는 숨결과 동작에 집중하며, 요가는 자세와 호흡에 집중한다. 다른 명상법들도 차이는 있으나 이런저런 것들에 집중하며 출발한다. 브라운 스님은 음식 만드는 일에 집중하는 것도 명상이자 참선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빵을 구울 때 집중하지 않으면 태우게 될 것이다. 선정에 들겠다고 자리에 앉아 있어도 마음은 다른 곳을 떠돌 수 있다”며 재료를 준비하고 다듬는 과정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음식을 만들 때는 타인을 위하는 마음을 내야 한다고 가르친다. 식탁을 차릴 때는 접시를 내려놓는 일에 몰입해야 하며, 먹을 때는 또 철저히 음식의 맛과 향과 식감을 음미하라고 권한다. 영화 속에서 스님은 “선이란 지금 자신이 있는 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마음과 육신이 동시에 느끼는 자각과 경험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그러니 온전히 마음을 다해 빵을 반죽하고 화덕에 굽는 일이 참선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영화는 타사하라 선원의 일상과 요리 강좌, 그리고 선방의 일과를 담고 있다. 스즈키 스님은 샌프란시스코 시내의 선 센터와 함께 선농일치를 체험하는 그린컬처 농장과 미국 최초의 선방으로 꼽히는 타사하라 선원을 세웠다. 타사하라에서는 집중적인 좌선과 함께 붓글씨 쓰기를 가르치고 요리법을 통해 행선을 수행한다. 텃밭에서 손으로 채소를 키우고 함께 모여 음식을 만든다.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남을 위해 기쁘게 음식을 만들고 재료를 다듬어 변해가는 과정에 집중하며 느끼는 요리과정 자체의 경험을 수행으로 삼고 있다. 요즘 국내에도 사찰음식이 주목받고 있지만 이처럼 온전히 수행의 과정으로 음식 만들기에 접근하는 노력은 흔치 않다. 

타사하라에서 굽는 빵은 유기농 제품으로 샌프란시스코 일대에 많은 애호가가 있다. 일반 빵보다 몇 배 비싼 값에 팔리지만 대부분 일찌감치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사람들이 환호하는 것은 빵 자체의 맛과 품질뿐 아니라, 만드는 과정의 진지함과 만드는 이들에 대한 믿음이다. 만드는 노력에 당연히 비싼 값을 치른다. 

영화 속에서 브라운 스님과 함께 채소를 썰고 반죽을 하는 이들의 표정은 대체로 고요하고 행복해 보인다. 아이들도 같이 샐러드를 요리하고 즐겁게 맛을 본다. 참선 시간이 되면 벽을 보고 내면을 지켜보는 모습은 그 어느 선방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진지하다. 이 영화는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하면 수행에 가깝게 만들 수 있으며, 세상 속에서 참선하고 명상하는 길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도리스 되리는 이 작품을 만든 후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2008)>을 비롯해서 <베를린의 연인(2012)> <보헤미안 걸(2014)> <후쿠시마 내 사랑(2016)> 등 다수의 성공작을 만들어냈고 장편소설을 썼으며 여러 편의 동화책을 펴냈다. 아마도 타사하라 선원의 주방에서 진지하게 참선을 배우고 영화에 담았던 공이 아닐까 싶다. 

영화 속에서 브라운 스님은 바로 이 자리에서 지금 즉시 수행의 길로 나서는 방법을 일러준다. “쌀을 씻을 때는 쌀만 씻고, 밥을 먹을 때는 마음을 다해 밥알을 씹자.” 어떤 일이라도 그 결과를 위해 애쓰지 말고, 다만 일의 과정에 몰입하여 느끼고 즐기라는 것이다. 그럴 때 모든 일이 수행이 되고, 하는 일이 모두 불사가 된다는 것을 이 영화는 일깨우고 있다.

 

● 영화는 아마존 프라임에서 보거나 DVD로 구할 수 있습니다.

 

글. 김천

김천
동국대 인도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방송작가, 프로듀서로 일했으며 신문 객원기자로 종교 관련기사를 연재하기도 했다. 여러 편의 독립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지금도 인간의 정신과 종교, 명상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