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스크리트로 배우는 불교] 불교의 세계관(1)_공간적 차원: 수미산

2020-06-23     전순환

불교에서 말하는 세계는 과연 어떠한 모습일까? 지난 6회에 걸쳐 이야기한 지옥계, 인간계, 천계, 그리고 그 중심에 우뚝 솟아오른 수미산(須彌山)이 기본적으로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고 말한다. 이러한 물리적 세계는 범본 구사론에서 바자나-로카(bhājana=loka)로 표현하고, 바자나(BHĀJ-ana)는 어원적으로 담는 용기(容器)를 의미한다. 지난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지옥계는 팔한지옥과 팔열지옥의 대지옥들로 구성된다. 인간계인 승신주(勝身洲), 우화주(牛貨洲), 섬부주(贍部洲), 구로주(倶盧洲)의 4대주(四大洲)는 수미산의 동서남북 각각에 위치하고, 천계는 사대천왕-천과 도리천을 포함한 욕계의 육욕천, 색계의 19천 그리고 무색계의 4천으로 짜여 있다. 

원통형의 세계를 반으로 자른 위의 단면도에서 중심은 단연 수미산이다. 과연 이 산은 어느 정도로 높고 넓은 것일까? 치수를 잰다는 것이 가능할까? 수미산은 『팔천송반야경』에서 단 1회 언급되고 있는데, 이는 천제석이 묻고 세존께서 답하시는 26장 ‘환영’ 편에서 볼 수 있다.

“세존이시여, 처음으로 대승에 올라 〔깨달음을 향해〕 나아간 보살마하살들의 발심에 수희하고, 〔그들의〕 불퇴전 법성도 수희하는 선남자나 선여인은 어느 정도로 더 많은 복덕을 얻겠습니까? … 교시가야, 〔신통력을 가진 어떤 이는〕 산들의 왕인 수미산의 치수를 짚의 선단(先端)으로 파악할 수 있겠지만, 보살마하살로서의 선남자나 선여인이 갖는 발심, 더욱이 수희가 수반된 그러한 발심이 갖는 복덕의 정도는 치수로 결코 파악될 수 없는 것이니라.” 

세존의 답변에 따르면 수미산의 크기를 재는 일은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범본 반야경들은 치수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필자는 프라단(Pradhan)이 편집한 바수반두(Vasubandhu)의 범본 구사론(俱舍論)❶ 3장과 푸르던(Pruden)의 영역본❷ 내용에 근거하여 수미산을 비롯한 그 밖의 구성 요소들의 길이나 거리에 관한 이야기를 진행해 보려 한다. 참고로 구사-론은 아비다르마-코샤-바스야(abhidharma=kośa=bhāśya)에 유래하는 용어로서 ‘구사’는 코샤의 음역이고 ‘론’은 바스야의 의역이다. ‘구사론’이란 명칭에 누락된 아비다르마는 ‘법문’(法問), 코샤는 이 법문을 담는 ‘용기’, 바스야는 ‘말, 이야기’로 풀이한다. 그 전체 명칭의 의미는 대략 ‘법문-집-설’(法文-集-說)이라고 말할 수 있다.

❶  P. Pradhan (ed.) 1975 Abhidharmakośabhāṣyam of Vasubandhu. K.P. Jayaswal Research Center. 
❷  Pruden, Leo M. (1991), Abhidharmakosabhasyam, translated from the French translation by Louis de la 
 Vallée Poussin, Asian Humanities Press, Berkeley.

 

| 수미산 

수메루 파르와타(sumeru-parvata-). 이 두 개 단어를 음역하고 의역한 것이 수미-산이다. sumeru는 일반적으로 meru에 접두사 su가 붙은 단어로서 ‘빼어난/경이로운 메루’를 뜻한다. meru의 어원은 아직 알려져 있지 않은 상태다. 필자가 백방으로 알아본 후 내린 결론은 meru나 sumeru가 비교적 후대 문헌들에서 등장한다는 점에서, 산스크리트 고유 단어가 아닌 인도 외부에서 들어온 차용어일 가능성이 높다. 금이나 보석으로 치장된 신비의 산이라고 전해지는 수미산은 구사론에 따르면 네 개의 면을 갖고 있으며 북쪽은 금(suvarṇa), 서쪽은 은(rūpya), 남쪽은 청금석(vaidūrya), 동쪽은 크리스털(sphaṭika) 재질이라고 한다. 

유순  구사론은 수미산 높이가 지상에서 80(aśīti)x1,000(sahasra)=8만 유순(由旬)이고, 수면 아래에 잠겨 있는 정도의 길이라고 이야기한다. 유순은 산스크리트 요자나(YOJ-ana)의 음역이다. 요자나는 어원적으로 소 등의 동물들에 멍에를 연결하는 행위를 뜻하는데, 이후 멍에가 채워진 상태에서 가축들이 갈 수 있는 거리로까지 그 의미가 확대된 것이다. 필자는 요자나의 길이를 대략 12km 정도로 본다. 

 

| 철위산 

수미산이 세계의 중심에 존재하는 반면, 철위산(鐵圍山)은 이 공간의 가장 바깥쪽을 둘러싸고 있다. 구사론에 따른 철위산의 높이는 12.5(ardhatrayodaśa)+3(trīṇi)x100(śata)=312.5 유순이다. 철위산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는 철륜위산(鐵輪圍山)으로도 불리는데, 이 표현이 ‘원형의 둘레를 에워쌈’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 명칭 차크라-와다(cakra=vāḍa)에 비추어 볼 때 더 적절하다고 말할 수 있다. 철(鐵)이란 표현의 부가는 이 산이 철로 되어 있다고 전하는 구사론 등 영향으로 보인다. 불교에서 ‘세계’라는 하나의 단위는 철위산이란 용어로 표현되기도 한다. 수메루 산을 중심으로 3계가 상하로 뻗어 있고, 가장 외측의 가장자리가 산들로 둘러싸여 있기에 철위산이 하나의 세계가 끝나는 경계로 정해지고, 따라서 세계를 셈하는 하나의 단위로 자리 잡은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본다. 

산스크리트 명칭에서 cakra-가 ‘바퀴, 원형’을 뜻하는 단어라는데 이견이 없는 반면, 문제는 아직 정확하게 어원이 밝혀지지 않은 °vāḍa-이다. 한 가지 가능성은 °vāḍa- ‘?’ < vāṭa- ‘울타리’ < vaṭa- ‘둘러싸인’의 변화 과정이고, 모니에르(Monier)의 사전은 vaṭa-는 vṛta-의 프라크리트(Prakrit) 어형으로 추측하고 있다. 필자가 생각하는 또 다른 가능성은 차크라-와다보다 덜 알려진 차크라-왈라(cakra=vāla)에서 엿볼 수 있다. 그 이유는 ‘휘감겨진 머리카락’을 뜻하는 명사 vāla-가 ‘덮다, 가리다, 둘러싸다’의 어근 var에 접미사 a가 붙어 형성된 vāra- ‘덮음/가림/둘러쌈’에서 온 어형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추측이 맞든지, 차크라에 붙는 와다 또는 왈라가 ‘원형의 울타리’나 ‘원형으로 에워쌈’을 의미하는 데 문제는 없어 보인다. 참고로 철위산은 팔리어로 착카-왈라(cakka=vāḷa)이다. 

 

| 9산8해

하나의 세계에는 산(parvata)이 아홉 개가 있다고 한다. 구산(九山)이라 불리는 이유는 중심인 수미산과 가장 외측에 위치한 철위산에, 그 사이에 존재하는 일곱 개의 산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팔해(八海)는 산들 사이에 여덟 개의 간격이 있고, 그 각각에 대하(大河)를 뜻하는 시타(sītā)가 존재하기에 붙여진 용어이다. 

칠산  구사론에 따르면 7산은 철(āyasa)로 하고 있고, 그 높이는 수미산에서 가장 가까운 ①의 산에서 가장 멀리 있는 ⑦의 산으로 갈수록 반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① 높이 4만 유순의 유간-다라(yuga-ṁ=dhara) ‘멍에(YUG-a)를 지니고 있는’: 멍에로 서로 연결되어 쌍을 이루는 산이라는 의미에서 지쌍산(持雙山)으로 번역. ② 높이 2만 유순의 이샤-다라(īśā=dhara) ‘최고의 힘/지배자(ĪŚ-ā)를 지니고 있는’: 강력한 중심축을 갖추고 있는 산이라는 의미에서 지축산(持軸山)으로 번역. ③ 높이 1만 유순의 카디라카(khadira-ka) ‘매우 단단한 나무(khadira)를 지닌’: 아카시아(Acacia)가 빽빽한 산이라는 의미에서 첨목산(檐木山)으로 번역. ④ 높이 5,000 유순의 수다르샤나(su-darśana) ‘빼어난 경관을 지닌’: 선견산(善見山)으로 번역. ⑤ 높이 2,500 유순의 아슈와-카르나(aśva=karṇa) ‘말의 귀 모양을 지닌’: 마이산(馬耳山)으로 번역. ⑥ 높이 1,250 유순의 위니타카(vinata-ka) ‘굽은 모양 또는 가파른 경사를 지닌’: 유장애산(有障礙山) 또는 상이산(象耳山)으로 번역. ⑦ 높이 625 유순의 네민-다라(nemi-ṁ=dhara) ‘바퀴 테두리(nemi)의 모양을 지니고 있는’: 어원적 의미에 대응하지 않게 지산(持山) 또는 어명산(魚名山)으로 번역. 앞서 언급한 철위산의 312.5 유순은 ⑦의 산 높이를 반으로 하여 계산한 것이다. 

팔해  구사론에 의하면 여덟 개의 대하는 각각의 속성을 갖고 있으며, 횡단 거리는 수미산에 가장 가까운 ①의 대하에서 가장 멀리 있는 ⑦의 대하로 갈수록 반으로 줄어든다고 이야기한다. 대하의 명칭들은 나와 있지 않지만, 속성에 따라 순서대로 열거하면 ① 거리가 8만 유순이고 차가운(śītala) 대하, ② 거리가 4만 유순이고 달콤한(svādu) 맛의 대하, ③ 거리가 2만 유순이고 마시기에 편한(laghu) 대하, ④ 거리가 1만 유순이고 맛있는(mṛdu) 대하, ⑤ 거리가 5,000 유순이고 속이 잘 보이는 투명한(accha) 대하, ⑥ 거리가 2,500 유순이고 악취 없는(niṣpratika) 대하, ⑦ 거리가 1,250 유순이고 마시는 데 목과 위에 해를 주지 않는(kaṇṭham·na·kṣiṇoti·pītam·ca·kukṣim·na·vyābādhate) 대하. 마지막 대하는 ⑦의 대하와 철위산 사이에 있으며, 그 횡단 거리는 영역본에 따르면 three hundred twenty-two thousand, 660만 유순이라고 한다. 

 

| 삼륜

지하의 층들을 가리키는 삼륜(三輪)은 상부에서부터 금륜(金輪), 수륜(水輪), 풍륜(風輪)으로 구성된다. 여기에 풍륜 밑에 존재하는 허공(ākāśa)의 공륜(空輪)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둥그런 바퀴의 형태라는 륜은 산스크리트 만다라(maṇḍala)에 대한 의역이다. 이러한 층들은 신통력이나 자연적 현상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니다. 구사론에 따르면 유정들의 ‘업을 통해 생겨난 힘’(karma=ādhipatya), 즉 업력(業力)으로 생성된 것이라고 한다. 

락사  삼륜의 높이를 이야기할 때 표현되는 길이의 단위, 락사는 사실 어근 lakṣ에 접미사 a가 붙은 단어로서 ‘상금, 표식, 목표’ 등을 나타내는 단어다. 하지만 수사로 사용할 경우 모니에르(Monier)나 뵈틀링크(Böhtlingk) 등의 사전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hundred thousand, 즉 십만이 된다. 아래에서 계산되는 높이는 끝에 유순이 붙고, 구체적인 치수는 범본 구사론과 영역본에 따랐음을 밝힌다. 

금륜  칸차나-만다라(kāñcana=maṇḍala)를 의역한 금륜은 유정들의 업력으로 초래된 바람의 영향으로 수륜의 상부가-휘저어진 우유가 크림이 되는 것처럼-굳어져 금이 만들어져 생긴 층이라고 한다. 금이 된 수륜의 상부 높이는 아스타-락사며, 이는 8(aṣṭa)x105(lakṣa)=80만 유순으로 표현할 수 있다. 

수륜  아파스-만다라(āpas=maṇḍala)를 의역한 수륜은 유정들의 업력으로 구름(megha)이 끼어 이내 비(varṣa)가 내리고, 이 빗물이 풍륜 위에 떨어져 형성된 층이라고 한다. 수륜의 높이는 범본 구사론과 영역본에서 묘하게도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범본의 경우 높이는 11(ekādaśa)x1,000(sahasra)x20(viṁśati)으로 표현하고, 영역본의 경우 eleven hundred twenty thousand로 이야기하고 있다. 금륜의 높이를 생각해 본다면, 범본에 hundred에 대응하는 100(śata)이 11과 1,000 사이에 누락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며, 그렇다면 수륜의 높이는 2,200만 유순에 이른다. 

풍륜  와유-만다라(vāyu=maṇḍala)을 의역한 풍륜은 허공 위에 유정들의 업력으로 만들어진 층으로서 높이는 16x105 유순이며, 둘레는 ‘계산 불능’(asaṁkhya)이라고 한다. 이 수사는 범본 구사론에서 16의 소다(ṣoḍa)와 105의 락사(lakṣa)로 표현하며, 실제로는 순서가 바뀐 lakṣa=ṣoḍa로 나타난다.

 

● 다음 어원 여행은 시간적 차원의 세계와 관련된 불교 용어다.

 

글. 전순환

전순환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대학원 졸업. 독일 레겐스부르크 대학교 인도유럽어학과에서 역사비교언어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9년부터 시작된 한국연구재단 지원 하에 범본 불전(반야부)을 대상으로 언어자료 DB를 구축하고 있으며, 서울대 언어학과와 연세대 HK 문자연구사업단 문자아카데미 강사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팔천송반야경』(2019, 불광출판사), 『불경으로 이해하는 산스크리트-반야바라밀다심경』(2012, 지식과 교양), 『불경으로 이해하는 산스크리트-신묘장구대다라니경』(2005, 한국문화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