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만물을 움직이는 것이다.

특집, 마음이란 어떤 것인가.

2007-09-16     관리자

우리들은 누구나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합니다. 그러나 막상 나는 누구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이 우주의 근원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인가. 필경 나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참으로 진리란 있는것인가... .
무엇 하나 분명한 대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은 인간의 참모습, 존재의 참모습, 모든 존재의 근원적 실재, 절대적 주체적 진리, 생명의 실제를 눈앞에 불을 대고 "이것을 보라"하듯이 명백하게 들어 보이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이란 어떤 것인가. 우리 정신의학계의 태두이신 이동식 박사님과 통도사 극락선원장이신 명정 스님께 그 답을 구해보았습니다만 역시 어렵게 느껴집니다.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언외(言外)의 것이기에 영원한 우리의 화두가 아닌가 합니다.

민중서관 에서 나온 <국어대사전>을 보면 '마음은 사람의 정신 기능을 관장하는 기관 또 그 작용. 육체, 물질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쓰임'이라고 되어 있다.
사람의 지.정.의 움직임, 또 그 움직임의 근원이 되는 정신적 상태의 총체감정, 시비선악을 판단하고 행동을 결정하는 정신활동 등등의 풀이를 하고 있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 보면 도(道)로써 마음을 다스림으로써 병을 미리 나지 않게 하는 것이 옛날의 신성한 의사가 한 것이고, 오늘날 세속의 보통의사는 병이 난 뒤에 약이나 침을 사용하는 것은 근원은 두고 말초를 다스리는 것이라고 하며, 마음을 비우는 것(虛心合道), 모든 감정을 순화하는 것이 도라고 하고 있다.
그러면서 정신이 몸의 주인(神爲一身之主)이라고 하고 다섯 가지 감정을 서로 이기게(五志相勝爲治)해서 병을 다스리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17세기에 서양에서 현미경을 발명해서 세포(細胞)나 박테리아를 볼 수 있게 되기 전까지는 동양의학이 서양의학보다 앞서 있었다. 전에 눈으로 볼 수 없던 세포나 세균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자 서양의학은 세포병리학과 세균을 중심으로 편향적으로 발달해서 질병의 원인을 세포의 병리와 세균을 중심으로 보게 되고 몸 전체, 몸과 마음을 전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있다가 정신분석이나 정신치료 면역학(免疫學) 신경과학의 발달로 인해서 근자에는 환자를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인 존재로 봐야 한다는 설이 자리잡아가고 있다.
세균이란 바이러스 세포의 병리가 몸의 면역력이 떨어져서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어 결국 면역력을 기르는 것이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병은 먹는 음식, 생활방식, 습관, 행동, 인격이 문제가 되고 적당한 운동을 하고 스트레스를 적게 해야 된다는 결론이다. 사람은 항상 세균이란 병에 노출되어 있으므로 병에 걸리지 않게, 걸리더라도 병을 이길 수 있게 면역력을 길러야 된다는 것이다.
모든 종교나 정신치료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목표다.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방법이 근본적으로 현실을 직시해서 착각을 없애는 방법이 있고 착각을 유지시켜서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고식적인 방법이 있다. 마음이 무엇이냐. 몸과 마음의 관계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논란을 거듭해오고 있다. 막스 세길라라는 1928년에 작고한 독일의 철학자가 말한 것이 가장 타당하게 보인다. 몸과 마음은 객관적으로는 같지만 주관적으로는 다르다는 견해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실상은 하나인데 우리가 느낌으로는 다르게 느낀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통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지적인 면보다 주로 감정 의지의 면을 말한다. 이것이 동물과 식물을 구별하는 기준이고 컴퓨터와 인간을 구별하는 척도다. 정신이란 마음, 생명이라는 것은 따져 보면 물질의 일정한 수준의 조직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동물과 식물의 구별은 운동이 있느냐 없느냐지만 식물이 전혀 운동이 없는 것도 아니다. 생병이 생물과 무생물을 구별하는 척도이지만 무생물도 생명 즉 태어나고 죽는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별도 태어나고 죽는데 그 시간이 길 따름이다. 정신을 자꾸만 캐들어가 보면 결국 움직임, 변화로 돌아간다. 우리가 육안으로 보면 정지해 있는 물체가 미시적으로 보면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밝혀져 있다. 불교에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의 뜻이 만물을 움직이게하는 것을 말한다고 볼 수도 있고,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우리가 마음에서 만들어내고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서양의 정신치료나 정신분석에서도 마음에서 해결 못하는 마음을 밖으로 투사한다고 본다. 이것은 부처의 깨달음의 핵심이 바깥 모양을 취하지 말고 스스로의 마음을 돌이켜 비추어라(不取外相 自心返照)는 것과 일치한다.
<원각경>에서 중생고(衆生苦)는 미움과 사랑에서 비롯되는데 미움은 사랑을 갈구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정신분석치료에서 발견한 것도 같은 결론이다. 사랑을 갈구하기 때문에 미움을 일으키고 갈등을 벗어나지 못한다. 사랑 받으려는 마음을 줄이는 것이 수도와 정신치료의 목표다.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육체가 있는 한 감정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모든 지식은 착각이다. 진리에 도달하려면 죽어야 한다. 죽음으로써 진리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기꺼이 죽는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불교에서는 열반이라고 하는 것은 육체가 있으면서 육체 거기에서 생겨나는 감정을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얼마 전에 미국에서 감정지수(EQ)라는 것이 우리 나라에 소개되었다. 이것을 보면 우리 전통에서 말하는 도(道)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공감과 자기지배능력이 핵심이다. 공감이 되려면 자기 마음속의 해결 못한 응어리, 참선에서 말하는 애응지물(碍膺之物)이 없어야만 공감을 할 수 있고 자기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
정신치료하는 의사가 환자를 공감하려면 치료자 자신의 문제에 걸리지 말아야 한다. 자기문제에 걸리게 되면 자기지배, 불교에서 말하는 자기조복(自己調伏),유교에서 마하는 극기(克己)가 안 된다. 사람이 금방 태어났을 때에는 모든 것을 의지해야 한다. 그렇게 주위의 보살핌과 사랑을 받아야 자랄 수 있지만 사랑과 보살핌을 받아 자기힘이 자라면 외부에서 받을 필요성은 줄고 스스로 해결하는 범위가 불어나고 어른이 되어 가면서 남을 사랑하고 보살피게 된다. 이것이 인격의 성숙이고 정신건강이다.
어려서 보살핌과 사랑을 받을 것을 못 받았거나, 보살핌을 안 받아도 될 수 있는데 계속 받아서 커서도 필요가 없는데 자꾸만 받으려고 하는 것이 정신불건강이고 인격미숙이다.
불가(佛家)에서 인생고통은 어머니 뱃속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데에서 생긴다는 말이 바로 갈애(渴愛)를 의미한다.
신경과학의 연구 결과로 인간은 파충류의 뇌(腦)와 고포유(古哺乳)동물의 뇌 즉 대뇌변연계(大腦邊緣系)와 신포유동물의 뇌인 신피질(新皮質) 세가지 계통의 노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각 부분의 기능 내지 작용이 밝혀지고 있다.
파충류의 뇌인 뇌간(腦幹)은 호흡 심장기능 자율과 피질의 각성을 조절하고 대뇌변연계는 '내장(內臟)뇌' 라고도 한다. 시상하부(視床下部)와 신경내분비 자율신경계 전부와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감정을 정교화하고 표현하는 작용을 한다.
신피질은 상징화(象徵化)를 포함한 인지(認知)기능을 담당하고 있어 '말의 뇌' 라고도 한다.
신경과학에서는 마음 정신은 뇌의 작용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파충류 고포유동물 신포유동물 여러 가지 발달단계의 뇌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감정조절이 되지 않고 눈에 아무 것도 안 보이는 정도이면 파충류의 뇌만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여러 가지 감정에 휩싸여서 헤매고 있다면 고포유동물단계의 뇌의 수준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도를 닦아서 도가 높은 단계는 신피질이 고포유동물단계인 대뇌변연계 즉 감정을 자각하고 지배하는 것이고, 호흡이나 심장기능을 자각하고 조절지배하는 것을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가는 주로 신체적 지배를 하는 것이고 도를 닦는다는 것은 신체와 감정에서 일어나는 것을 자각하고 지배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동식님은 1920년 경북 왜관에서 태어나 대구 의전을 졸업, 서울의대와 뉴욕대학교 신경정신과, 미국-뉴욕의윌리암 알란 손화이트 정신분석연구소에서 수련을 거친 전문의이자 의학박사이다. 수도의대(현 고려의대)와 경북의대 교수 및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회장과 한국카운슬러 협회 고문을 지낸 바 있으며, 저서로는 <현대인과 노이로제>,<현대인과 스트레스>,<현대인의 정신건강>등이 있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생호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