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와 경상도가 맞닿아 만든 명당 수행터_경남 지리산 칠불사

포토 에세이 | 경계의 조화

2020-05-29     유동영

 “백두태백 길이 뻗어 방장영봉 솟았으니
반야봉 남녘기슬 칠불출현 성지로다.
가락국 김수로왕 일곱 아들 출가하여
장유화상 가르침에 일시성불 하였어라.
담공화상 아자방은 동국제일 선원이요
서산·부휴 양대 선사 선풍 진작하였으며
금담·대은·양대·율사·해동계맥 수립했네
근세의 용상대덕 무수히 쏟아지니
이 어찌 천하제일 명승도량 아니런가.”

일타 스님이 칠불사 사적비에 남긴 내용 가운데 일부를 적은 것인데, 몇 줄의 문장으로 칠불사를 이렇듯 명쾌하게 설명한 글이 있을까 싶다. 

 

절에서 겨우 100여 미터 거리에 있는 운상선원은 사방으로 균형이 완벽하다. 부족하지 않으니 가라앉지 않고 넘치지 않으니 들뜰 일이 없을 것 같은 편안한 자리다. 선원 우측에는 서산 스님과 함께 조선 불교의 한 맥을 이루는 부휴 스님의 승탑이 있다. 조계산 송광사 문중이 부도전 안 보조 국사 탑비 바로 하단에 모시는 그 부휴 스님이다. 당시에는 칠불사가 송광사의 말사 격이어서 스님은 거처를 칠불사로 옮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입적했다. 그 외 백암성총 스님 또한 송광사와 칠불사를 자주 오갔다. 석간수가 나오는 사진의 암굴은 선방스님들의 포행로에 있고, 두어 사람이나 앉을 수 있는 정도의 크기다.

김수로왕과 허황후는 칠불사로 출가해 공부를 이룬 일곱 왕자를 보고 싶어 했으나 직접 만나지는 못했고, 이 연못에 비친 그림자로만 볼 수 있었다. 왕자들의 성불을 기뻐한 왕은 절 아래 마을에 범왕사를 지어 찬탄해 마지않았다. 이후 칠불사 아래 마을에 있었던 범왕사는 사라졌으나 동네는 여전히 범왕리로 불린다.

해발 800m에 위치한 칠불사의 기온은 쌍계사에 비하면 적어도 3도 가량이 낮다. 그래서 아랫마을의 목련과 벚꽃이 질 무렵 경내의 목련이며 살구꽃이 비로소 꽃망울을 터뜨린다. 그런데 올해는 무슨 일인지 봄이 한창인 4월에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고, 아무것도 모르는 채 금방 나온 목련 꽃잎이 얼어서 누렇게 말라버렸다. 막 움트턴 우전 찻잎마저도 냉해를 입었다. 이뿐인가. 눈부신 모습으로 소곤대던 살구꽃이 단 한 방의 펀치에 기운을 잃고 힘없이 스러지기 시작한다.어설픈 장갑으로도 새벽의 찬공기를 버티기 어려운데 여린 꽃잎이야 오죽하랴 싶다. 

스님들이 동서를 구분하지 않고 왕래했듯 골짜기 안의 마을 사람들도 서로 산을 넘으며 오고갔다. 칠불사와 산 하나를 두고 있는 하동의 목통마을과 또 산 하나를 두고 있는 구례의 농평 마을 사람들이 그러했다. 막다른 길 끝에 위치한 두 마을 사람들은 각기 지역색이 뚜렷할 것 같으나, 당재 고개를 넘으며 서로를 잘 알다 보니 처녀총각이 만나 혼인도 했다. 계곡이 큰 목통 마을에는 물레방아가 돌아서 농평마을 사람들이 방아를 찧으러 오가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동서의 지역 차이는 없고 말투까지 닮았다. 칠불사 계곡의 경상도와 전라도는 가까이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다. 산 아래 사람들에게는 먼 뒷날의 이야기만 같다.

 

 

글·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