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초대석] 관세음보살 된 아이돌 팝아티스트 마리킴

불광초대석

2020-05-29     정태겸

 

팝아티스트 마리킴.

‘마리킴’이라는 이름은 내로라하는 세계 미술계의 큰손들을 열광케 한 예술 분야의 BTS(세계적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와도 같다. 
눈 큰 소녀를 아바타로 둔, 그가 수월관음도를 들고 돌아왔다. 

 

| 세계 미술계 뒤집은 슈퍼스타

고려 시대 불화는 한국 미술의 정점을 보여주는 척도다. 수려한 곡선과 색의 사용, 장엄한 붓다의 위엄 등이 당대 회화의 결정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만큼 아름답다. 일명 ‘물방울 관음’이라 불리는 수월관음도는 고려 시대 불화 중에서도 천하의 명작으로 손꼽힌다. 수월관음도의 전시가 결정되면 해당 미술관은 이를 보려는 사람으로 장사진을 이룬다. 그만큼 귀하고 또 귀하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수월관음도가 21세기에 다시 그려졌다. 마리킴이라 불리는 작가가 고려 시대의 관세음보살을 이 시대에 되살려 놓았다.

마리킴은 국내 미술계에서 가장 핫한 이름이다. 구구절절 늘어놓는 설명보다 그에 관한 일화를 소개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우선 국내 미술계의 반응이다. 서울옥션 김순응 전 CEO는 그를 두고 이렇게 평가했다. “마리킴은 한국 미술계의 슈퍼 블루칩입니다. 투자 가치에서도, 미적 보유 가치에서도…해외 컬렉터 사이에선 지금 마리킴 돌풍이 일고 있어요.” 이게 진짜일까 의심이 된다면? 그럼 이번에는 미국 마이애미 사교계의 거물 데이비드 그룻맨의 사례다. 2016년, 어마어마한 팬덤(Fandom, 특정 분야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사람)을 보유한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마리킴의 작품을 올렸다. 포스팅에 달아 놓은 그의 감상이다. “마리킴의 작품을 선물로 받았는데 이 작품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완전히 반했다(I received a @x.marikim.x today as a gift and I can’t stop staring at it. Blown away).” 그의 이 포스팅에는 “놀랍다”, “대박이다”라는 감상평들이 댓글로 따라붙었다.

LA아트쇼에서는 한국의 단색화 전시와 함께 마리킴의 특별전이 열렸는데, 마리킴은 이 전시에서 자신의 모든 작품을 ‘솔드아웃(Sold out, 매진)’시키는 기염을 토한다. 세계 최고의 자동차 경기리그인 ‘포뮬러 원(F1)’의 운영자 버니 에클레스톤 회장이 그의 작품을 샀고, 영국 런던에서도 작품 주문이 폭주했다. 가히 ‘세계 미술계를 뒤집어 놓은 슈퍼스타’라는 평이 어울릴 만한 활약이다. 그런 그를 서울 가나아트센터에서 만났다. 마리킴의 전시가 4년 만에 국내에서 열렸고, 숱한 매체와 관람객이 그의 작품을 만나러 전시장으로 몰렸다.

마리킴의 이번 전시 제목은 ‘마스터피스: 불멸의 사랑’이다. 그간 독특한 그만의 화법으로 다채로운 작품을 선보였지만, 이번에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이전까지 보았던 마리킴의 스타일이 펑키하고 사이버틱한 면이 강렬하게 다가왔다면, 이번 전시에 걸린 작품은 다소곳하거나 온유한 느낌이다. 작품의 면면도 이채롭다.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의 명화를 다시 그려 전시장에 내걸었다. 보티첼리의 ‘이상적 여인의 초상’이며 에두아르 마네의 ‘철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 구스타프 클림트의 ‘생명의 나무’ 등. 현존하는 온갖 명작을 한자리에 다 모아놓은 듯하다. 그런데 명화의 인물은 하나 같이 마리킴의 아바타(avatar), 아이돌의 얼굴을 하고 있다. 아이돌, 우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눈 큰 아이라는 의미의 ‘EYEDOLL’이다. 물론 전자의 의미를 포함해서 생각해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이제는 워낙 유명한 그만의 상징이 되었으니.

 

| 그가 훔친 고려의 유산

압권은 전시장 2층에서 만나는 수월관음도다. 마리킴의 아이돌이 우리에게 익숙한 그 관세음보살로 되살아났다. 수백 년 전 이 땅에서 탄생한 명작이 그녀의 손에 의해 21세기의 방식으로 환생한 셈이다. 의문이 일었다. 대체 왜, 지금 이 시점에 마리킴은 고려불화인 수월관음도를 다시 그렸을까? 

마리킴이 입을 열었다.

“오마주(Hommage, 경의의 표시로 바침)예요. 위대한 예술가들이 남긴 작품을 제 방식으로 되살려낸 거예요. 세계의 명작과 어깨를 마주할 우리의 예술로 선택한 게 고려불화고요. 하지만 한국의 명화를 재연한다는 게 참 어려웠어요. 지금 우리에게 남아 있는 세기의 작품이랄 게 별로 없었거든요. 그나마 한반도의 역사를 관통하는 명화라고 할 만한 게 고려불화라고 생각했어요. 그나마도 대부분 도난당했거나 해외로 팔려나갔고, 훼손의 정도가 심해서 자료를 구하기도 어려웠어요.”

그러니까 그가 고려불화를 선택한 건 세계에 드러낼 우리의 대표적인 예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번 전시에서 눈여겨봐야 할 포인트 중 하나는, 24점의 작품 모두 각기 다른 원작의 기법과 터치를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화는 그 거칠고 몽환적인 붓 터치의 질감이 살아 있고, 작가 각각의 손놀림마저 그대로 살려 두었다. 서양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린 고려불화마저 원작의 느낌을 고스란히 담았다. 모든 작품에 그려진 등장인물의 얼굴이 ‘아이돌’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복제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수준이다. 논란이 일어날 만한 기획이지만, 다분히 의도적이다. 바로 이 지점에 마리킴은 피카소의 말을 끼워 넣었다. “유능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그렇다면 마리킴은 작품을 훔친 것일까? 명확한 답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하이데거가 말하길 예술작품의 근원이 되는 것은 예술, 예술가, 작품이라고 했다. 이 정의에 따르면 작품을 훔친 것도 아니고 예술가를 훔친다는 건 말이 안 되니 결국 예술을 훔친 셈이다. 

그런데 정작 그가 한 것은 보티첼리의 작품에 아이돌의 얼굴을 넣어 재생산한 것이니, 이는 훔쳤다고 할 수도 없는 것. 결론은, “새로운 형태의 예술작품을 시도해 보고 싶었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철학적이다. 더불어 그가 얼마나 똑똑한 사람인지를 잘 보여주는 일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리킴은 고려불화의 기법과 터치를 모두 수용하면서 자신의 색깔을 온전히 드러냈다.

사실 마리킴은 한 번도 미술 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다. 워낙 유명세를 치른 탓에 모르는 이는 그가 정규 교육을 받고 엘리트 코스를 밟아 이 자리까지 올랐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이는 명백한 편견이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미술을 자기 진로로 삼고 싶었지만, “뭐해서 먹고 살래?”라는 질문에 일찌감치 그의 꿈은 무너져 내렸다. 예고 진학을 포기하고 좌절해 버린 그는 고등학교 내내 잠만 잤다. 혹은 만화를 보거나. 그 시절은 채우고 싶어도 채울 수 없어 하얗게 비워놓았던 도화지 같은 시기였다.

졸업은 했는데, 딱히 뭘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다 텔레비전에서 본 호주의 풍경. 그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를 졸라서 무작정 날아간 호주,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그의 앞에 펼쳐진 하늘을 보고 마리킴은 생각했다. ‘진짜 천국이구나.’ 그렇게 인생의 새로운 장을 시작했다. 어학연수를 하며 틈틈이 준비해 대학에 진학했다. 그런데 미대가 아니라 공대다. 로얄 멜버른 공과대학. 그곳에서 그녀는 크리에이티브 미디어라는, 당시만 해도 아주 생소했던 전공을 선택했다. 컴퓨터를 이용해 영화, 애니메이션부터 온갖 예술을 다 시도하는 그런 전공이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마리킴의 2층 전시관은 온통 고려불화를 오마주한 아이돌 작품이다.
마리킴이 재탄생시킨 수월관음도.

| 역사에 남을 인물이 되리라

“제가 아이돌을 그릴 수 있었던 건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남들이 다 받는 교육의 틀에 갇혔다면, 이런 작업은 생각도 못 했을 거예요. 호주는 아주 다르더라고요. ‘이건 잘못된 거야’가 아니라 ‘기왕 왜곡할 거면 더 과감하게 해 보라’는 식이었어요.”

공부를 마치고 9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다시 막막해졌다. 작가가 되려면 전시를 해야 한다는 것도 몰랐다. 미대를 나오지 않았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그때는 학원 강사를 하면서 돈을 벌어 쓰기도 했지만, 하루 중에 가장 열심히 했던 일은 창작이었다. 그때 한창 유행하던 ‘싸이월드’에 2년 동안 매일 1점씩 작품을 그려서 올렸다.

“싸이월드 잘하면 1년에 1억도 벌 수 있다는 소문이 돌던 시절이었어요. 그래서 열심히 했죠. 매일 한 점씩 그린다는 게 말은 쉬운데, 보통 일이 아니에요. 어쩌면 그 2년이라는 시간이 저를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요. 정말 많은 연습이 됐거든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걸 대중이 알아주지 않으면, 교육하면 된다. 이거 좋은 거라고 계속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2년의 세월이라는 게 그런 교육의 일환이었던 셈인데, 결과적으로는 성공한 거죠.”

전시 한 번 하지 않은 마리킴의 작품을 누가 눈여겨보기나 했을까 싶었는데, 아니었다. 그만의 스타일을 눈여겨본 프랑스계 갤러리에서 그의 작품을 대량으로 구매해 전시했고, 이를 계기로 스타가 탄생했다. 왠지 음산하고 조금은 퇴폐적인 느낌도 가미된, 어떤 작품이든 피가 등장하는 그의 작품을 사람들이 무섭다고 받아들이는 줄만 알았는데, 대반전이 일어났다. 그 뒤로 마리킴은 한 계단씩 올라가며 빠르게 스타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메시지다. 매번 무표정한 눈 큰 소녀의 얼굴을 복제하듯 그리면서도, 다양한 배경과 몸짓으로 이 사회에 뚜렷한 메시지를 던진다. 자기의 피를 뽑아 수혈한 명품 주스를 마시는 모습이나, 태아를 쓰다듬는 사이보그 임산부, 겁에 질린 표정으로 태극기를 손에 쥔 유관순 등 복제를 변주로 이용해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놓는다.

앞으로의 꿈이 궁금했다. 위대한 예술을 훔친 이 시대의 예술가는 어떤 꿈을 꾸고 있는 걸까. 마리킴은 우선 자기에게 지워진 ‘네오팝의 선두주자’ 같은 수식어를 거부했다. 이제는 작가가 사조로 분류되는 것이 아니라, 사조를 가진 작가가 그 자체로 브랜드가 되는 시대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리고 드러내는 그의 꿈. 아, 이 사람 정말 멋진 사람이구나!

“저를 ‘떴다’고 하는 분이 많은데, 동의하지 않아요. 진짜 성공을 말하려면 알을 열 번쯤 깨야 한다고 보거든요. 저는 이제 한두 개쯤 깨기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역사책에 남을 전설과 같은 인물이 되고 싶어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활동하는 아시안 여류작가로서 대가가 되고 싶어요. 생각해 보세요. 레오나르도 다빈치부터 지금까지 열 명의 작가를 선정한다면, 아시안, 심지어 여성이 낄 수 있을까요? 저는 그 벽을 넘고 싶어요.”

 

 

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