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하기

물처럼 구름처럼

2007-09-16     관리자

예전 에는 노래 잘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는데 출가한 지금은 염불 잘하는 도반들이 부럽다. 목청이 좋은 스님네의 염불소리는 몇 번을 들어도 물리지 않는 청량음(淸凉音)이다. 노래는 우리를 신명나게 하고, 지극한 염불은 듣는 이에게 절로 신심나게 한다. 더군다나 많은 스님네들이 운집하며 만들어내는 범창(梵唱)은 또다른 환희심이다.
특히 산사의 새벽예불에 참석한 장엄한 분위기를 두고두고 잊지 못한다. 법당에서 목탁소리 끊어지면 어쩐지 빈 절 같다. 그래서 불공 올리는 이들이 없는 날에도 법당에서 마지(摩旨)밥은 꼬박꼬박 올린다. 신심이 풍만한 날은 메아리 울리듯 나의 창음(唱音)을 또렷하게 다시 가슴으로 들을 수 있다. 이런 날은 힘들지도 않고 몇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아마도 내 청음에 젖어 염불하는 일에 순수하게 몰입했기 때문일 게다. 그렇지 않고 억지로 하는 염불은 목소리도 작아지고 깜빡깜빡 엉뚱한 망상을 피우는 일이 많다. 이는 참선 할 때의 이치와 똑같다. 화두가 성성하고 정신이 똘똘하면 저절로 호흡이 깊어지고 혼침에서 깨어나듯, 신심으로 하는 염불은 단전에서 힘이 생기는 탓에 종일 기도를 하여도 지치지 않는 부사의신력(不思議神力)이었다.
흔히 말하는 공염불은 이와 반대로 신심을 자극하는 울림이 없다.

"부처님을 생각하거나 부처님 명호를 소리내어 부르는 것을 보통 염불이라고 한다. 그러나 염불의 참된 의미는 중생이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佛)이 중생을 염려하는(念) 것을 깨닫는 일이다.

염불선 수행을 하는 현장 스님의 법문이다. 결국 염불은 자신의 부처님을 만나는 일이며 내가 나를 부르는 수행이다. 때로는 게으름이 생겨 얼렁뚱땅 염불을 끝내고 싶은 날은 이러한 '염불수행'의 의미를 되새긴다.
어느 절에 보살 한 분은 관세음기도를 할 때 '관세암보살, 관세암보살...'했다. 그때 지나가던 다른 노보살이 이를 보고 따져 물었다.
"아니, 관세음보살을 관세암보살 이라고 하십니까?"
"관세음보살이라니요? 관세암보살이 맞습니다."
두 보살은 서로 자기가 옳다고 우기다가 결국은 큰스님께 물어보자고 합의했다. 조금있다가 관세암보살을 외웠던 노보살이 만두를 큰스님께 드리면서 다음날 관세암보살이 맞다고 해주길 아뢰었다. 조금 뒤에 관세음보살을 주장했던 노보살도 국수를 큰스님께 드리면서 자신이 맞다고 해주길 부탁했다. 이윽고 날이 밝고 판결의 시간이 오자 큰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두경에 보면 관세암보살이라고 나와 있고 국수경에는 관세음보살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지대방에서 나누는 우스개소리지만 만두와 국수를 맛있게 잡수신 큰스님의 재치있고 지혜로운 답변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염불은 지극한 정성이 수선이다.
경구 하나하나를 빼놓지 않고 또박또박 읽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어떤 이들은 천수경이나 금강경을 줄줄 외운다며 경전을 펴지도 않고 독송하기도 하는데 이는 잘못된 버릇이다. 스님네들은 다 외우는 경전이라 할지라도 결코 소홀히 책장을 넘기지 않는다. 경구를 틀리게 읽는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다.
내 목청은 그렇게 좋은 편이 못된다. 그래서 신심나게 하는 염불성은 분명 아니다. 염불 잘하는 도반이랑 재식(齋式)을 할 때면 괜히 기가 꺾이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역시 목소리는 타고나는 모양이다. 범패음(梵唄音)을 감히 따라 하지도 못하고 노래 못하는 이가 고함지르는 식으로 큰 소리로 염불하면 그래도 들을 만한가 보다.

"졸음 쫓아 정신나고 마귀 놀라 도망가고, 시방중생 두루 듣고 삼악도는 휴식 얻고, 잡된 소리 물리치고 염불 마음 통일되고, 용맹정진 이뤄지고 모든 부처 기뻐하고 삼매경지 나타나고 극락정토 왕생하네."

고성염불하면 이같은 열가지 공덕이 나타난다. 실제로 큰소리로 염불하거나 기도해보면 졸음이 적고 망상도 훨씬 덜하다. 그러므로 큰소리로 염불하는 탓에 자주 목이 쉬는게 내 생활이다. 그리고 신명나게 목탁을 치는 습관 때문에 얼마 전에 새목탁으로 또 바꾸었다. 깨진 목탁은 소리가 맑지 못하고 둔탁하다. 목탁은 마치 연주할 때의 악기와 같으므로 목탁소리가 좋지 못하면 염불은 역시 시원스럽지가 않다.
메아리가 울리는 석굴법당이 염불정진하는 곳으로는 으뜸이다. 벽에 부딪혀 울려 퍼지는 은은한 목탁소리에 염불이 절로 나오는 까닭이다.
예불하는 이들로 꽉 찬 법당보다는 텅 빈 법당에서의 염불소리가 더 큰 감동을 줄 때가 있다.
어느 해 여름 낙산사 홍련암 법당에서 아침 예불을 끝냈을 때 보았던 일출의 그 장엄했던 분위기를 잊지못한다.
아무래도 새벽예불 때의 염불이 경건하고 엄숙하다. 그래서 번민과 갈등으로 마음이 뒤숭숭할 때에는 조그마한 소리보다는 차라리 큰소리로 염불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다.
해인사 스님네의 염불은 빠른 듯하면서 음절이 정확하므로 장중한 느낌을 준다. 이에 비해 송광사 스님네들의 창음은 한 소절을 길게 마무리하는 분위기로서 그윽한 맛이 있다. 염불의 창법은 그 산중의 기풍이나 스님네의 성격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는 것 같다. 해인사에서 익힌 창법 덕분인지 내 경우에는 염불을 느릿느릿하게 하는 성미는 아니다.
출가한 이들은 예불과 헌공의식에 올리는 염불 정도는 줄줄 외우고 있다. 천수경은 잠을 자면서도 읊조릴만큼 행자시절부터 익히는 기본 염불에 해당되며, 머리 까까고 반야심경 틀리게 외는 스님은 사이비에 가깝다 할 수 있다. 그리고 경허 스님 참선곡이나 순치황제 출가시는 선방의 구참 스님네들에게서 들을 수 있으면 신심나는 일이다.
진짜 염불은 역시 하는 이(能禮)조차 구분되지 않는 공적한 상태를 말하는 것일 게다. 마치 소리하는 이가 득음을 하는 경지처럼.
이러한 진짜 염불은 흉내도 낼 수 없는 일이고 나는 그저 탁자밥 내려 먹기 위해 소리내는 얼치기 염불이라는 말만 듣지 않았으면 싶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생호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