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 따라 결과는 정해진다 (因果)_구마라다(鳩摩邏多) 존자

직지(直指)로 만나는 선지식

2020-05-29     범준 스님

| #1 경전 연구를 끝내다

구마라다(Kumarālabdha, 鳩摩邏多) 존자는 스승 가야사다(伽耶舍多) 존자의 당부에 따라 출가한 이후 항상 부처님 가르침을 연구하는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논사로 뜨거운 존경을 받았다. 구마라다에겐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일상이 있었다. 매일 뜨거운 태양이 사라지고 선선한 바람 부는 새벽이 오면 별자리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산책했다.

어느 날 구마라다는 별자리의 움직임과 기운이 심상치 않음을 유심히 관찰했다. 이제는 평생의 과업이었던 경전 연구를 정리하고 이곳을 떠나야 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음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동안 한결같이 자신을 존경하고 의지하며 잘 따라주었던 제자들과 이별을 하고 길을 떠났다.

 

| #2 제자를 만나다

구마라다가 발길 닿는 대로 걸음을 재촉하던 어느 날, 중인도의 어느 도시에 이르렀다. 이미 번성한 도시의 모습을 갖춘 시가지는 많은 사람의 왕래로 분주하고 활기차 보였다. 구마라다는 이곳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리라 기대하고, 조금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 자리하며 명상에 잠겼다.

며칠 지나지 않아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웅성거리며 깊은 명상에 잠긴 구마라다의 수행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시끄럽고 분주한 장소에서 미동도 없이 명상에 빠진 수행자의 거룩한 모습은 종종걸음을 재촉하는 대중의 눈에는 기이한 존재였다. 구마라다는 서서히 명상에서 나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대중을 응시하며 따뜻한 미소를 보냈다. 몇몇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자애로운 눈빛을 보내고 있는 구마라다에게 경계심을 풀고 질문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뭐하는 사람인가.” “스승은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가.” “무슨 공부를 하는 것인가.”

소소한 질문들이 며칠 동안 이어졌다. 그때마다 구마라다는 싫어하거나 지친 기색 없이 성실한 답변으로 그들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었다. 아직도 그가 만나고자 하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번화한 거리의 수행처에서 명상하며 사람들의 크고 작은 질문들에 답변을 이어가던 어느 날 한 사야다(闍夜多)라는 수행자가 찾아왔다. 그리고 질문했다.

 

| #3 행복과 불행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사야다는 구마라다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저의 부모님은 일찍부터 부처님을 숭상하고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고자 노력했으며, 스님들에게 항상 공양하고 공경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어쩐 일인지 부모님은 항상 병환에 시달리며 괴로워했고, 집안에는 우환이 끊이지 않아 부모님의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부모님의 덕행과 삼보에 대한 공경심을 잘 아는 사람 모두가 매우 안타까워했지만, 누구도 명확한 답변을 해 주지 못했습니다.”

사야다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우리 마을에서 이런 사람도 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비천한 계급인 찬달라(candāla, 栴陀羅)로 주로 마을에서 가축을 도살하는 일이나 사형수를 죽이고 시신을 수습하는 일을 하며 비루하게 하루하루 연명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알 수 없는 것이 그 사람은 항상 건강하여 의원을 찾아가는 일이 없고, 또한 1년 내내 생기 있게 살아가며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어렵지 않게 이루어지는 듯합니다. 찬달라는 무슨 행운이 있기에 아프지도 않고 뜻하는 바가 이루어지는 것이며, 부모님을 비롯한 우리 집안은 무슨 죄를 지었기에 끊임없이 불행과 고통이 따라다니는 것입니까?

수행력이 뛰어난 스님께서 제 질문에 명쾌하게 답변 주시면 의심이 풀리고 진리에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4 원인과 결과에 대해 말하다

질문을 마친 사야다를 구마라다는 다시 한번 자애로운 눈빛으로 살펴보며 말하였다.

“모습을 보아하니 그대 역시 수행자인 듯한데 어찌 그런 문제를 아직 해결하지 못하고 의심을 일으키며 괴로워하는 것입니까? 이제부터 내말을 잘 들어 보기 바랍니다. 사람들에게 결과로 나타나는 것을 ‘과보(果報)’라 하는데 이것은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행하던 행위와 행동을 원인으로 결과라는 과보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인이 되는 행위와 행동의 결과는 금방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의 오랜 시간과 연결되어 지속해서 나타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마라다는 이해하기 쉽도록 사례를 들어 설법을 이어갔다.

“예를 들어 지금 이 자리에서 부모 없는 어린아이를 돌보고, 배고픈 사람을 돕는 선한 행위를 원인으로 행동하더라도 그 결과는 지금 당장 선한 과보로 나타나지 않고 누적되어 쌓이고 쌓여 시간이 지나 조건을 만나면 결과인 과보의 힘을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보의 특징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과보의 특징을 알지 못하고 눈앞에 나타난 현상만 보고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항상 착하고 어진 사람은 온갖 고생을 하고 병고에 시달리다 일찍 죽고, 남을 속이고 악한 일을 저지른 사람은 아프지 않고 오히려 장수한다. 그렇기에 선한 일을 한 원인에 따른 결과적 과보는 없다. 그렇기에 악업으로 죄를 지어 나쁜 과보를 받는다는 것도, 선업으로 복을 받
는 것도 다 부질없는 속임수의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비유하자면 마치 한낮의 태양 아래에 그림자가 나타나고, 깊은 산 위에서 메아리가 존재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물이라는 원인이 존재하지 않으면 그림자라는 결과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원인 없이 존재할 수 없듯이 인과의 법칙은 천만년이 지나도록 결코 없어지거나 소멸하지 않을 것이니 의심하지 말고 수행에 전념하시기 바랍니다.”

사야다는 구마라다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답변을 듣고서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의심이 한꺼번에 해결되어 기뻐했다. 구마라다는 사야다가 자신의 가르침을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여 곧 본래의 지혜가 드러날 것을 알고 있었다. 구마라다는 사야다에게 출가를 권하며 그 자리에서 구족계를 주고 법을 부촉하는 게송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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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품에는 본래부터 생겨나고
소멸함이 없는데[性上本無生]
해답을 찾으려는 사람을 상대하여
말하는 것일 뿐이네[爲對求人說].
무상의 진리도 이미
얻을 것이 없는데[於法旣無得]
어찌 해결하고 하지 못함을
생각하는가[何懷決不決].


해설

초기경전의 가르침은 대부분 인과(因果)를 주제로 하고 있다.

인과는 ‘원인과 결과’를 말한다. 불자에게는 설명의 여지도 없이 당연하지만, 현재 당면한 결과는 반드시 원인을 바탕으로 나타남을 알아야 한다. 부처님 당시부터 수많은 사상가와 수행자는 자신의 수행과 명상의 결과를 주의와 주장으로 재생산하여 대중을 미혹하기에 이른다.

그것을 ‘62가지 모든 외도의 견해[62見]’라 한다.

제자와 대중을 위해 부처님은 62가지 견해를모아 ‘경계해야 할 세 가지 외도의 가르침[3種外道說]’으로 정리했다. 그리고 세 가지 주장은 진리에 이르는 길이 아니기에 경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 세상에는 지혜가 있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세 가지가 있다. 보통의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며, 이 세 가지 가운데 하나에 의지하게 된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주장을 믿고 따르는 사람은 아무런 이익도 얻지 못한다. 그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숙명론(宿命論)
인간의 존재는 과거에 행한 행위에 규정된다는 견해로 인간의 모든 행위는 지난 세상에 의해 결정된 것이며 바꿀 수 없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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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론(神義論)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전지전능하고 절대적인 유일신의 존재가 창조했고, 인간의 행복과 불행, 길흉화복은 절대적인 신의 의지로 결정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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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론(偶然論)
세상의 모든 것은 그 어떤 원인이나 조건이 없이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우연의 연속일 뿐이다는 주장이다.

그러면 불교에서 주장하는 논리는 무엇인가? 불교는 인과론(因果論)을 말한다. 구마라다에게 질문한 사야다의 집안 이야기로 설명하면 이해가 쉽다. 사야다의 부모님이 겪고 있는 현재의 고통과 병증들은 모두 지난 생애의 행위를 원인으로 받는 결과적 과보이다. 또 찬다라 계급으로 행운과 복을 누리며 사는 듯한 삶은 현재의 살생에 대한 과보로 머지않아 그 악업의 과보를 받게 될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사야다가 품고 있는 부모님의 덕행과 삼보공경이 부질없다는 의심은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진실로 이해하지못해서 일어난 의심이다.

『금강경(金剛經)』 제16분 「업장을 맑히는 공덕[能淨業障分]」에서는 “금강경을 받고 지니고 읽고 외우는 선남자 선여인이 남에게 천대와 멸시를 당한다면 이 사람이 전생에 지은 죄업으로는 악도에 떨어져야 마땅하겠지만, 금생에 다른 사람의 천대와 멸시를 받았기 때문에 전생의 죄업이 소멸하고 반드시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이 내용 역시 인과의 법칙을 설명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참고하자면 구마라다는 제2의 석가모니로칭송을 들을 정도로 경전 연구와 수행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저서로 『일출론(日出論)』, 『비유론(譬喩論)』 등을 남겼다. 확실하지 않지만 대략 기원후 3세기에서 4세기 사이에 생존했다고 전해지는 구마라다는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 의하면당시 사람들에게 “일출논사(日出論師)”라는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또 동쪽에는 마명보살, 남쪽에는 제바보살, 서쪽에는 용수보살, 북쪽에는 구마라다보살이 계셔서 사방에서 태양이 비추는 것과 같이 네 분의 위대한 스승이 세상을 밝게 비추고 있다[四日照世]”고 했다.

선지식이 지혜의 눈으로 보는 세상에 나타난 현상은 우리가 보는 육안의 견해와 다르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상황의 결과로 행복과 불행을 재단할 일이 아니며, 나아가 모든 결과는 원인을 따라 나타난 것임을 바로 보아야 한다.

 

 

범준 스님
운문사 강원 졸업. 사찰 및 불교대학 등에서 출재가 불자들을 대상으로 불교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봉은사 전임 강사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