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과의 일상다담] 인간 ‘ 연장론’ 꺼낸 스님의 사찰 ‘ 단골집 개론’ 제1강

2020-05-29     최호승

“조금만 참아요.” “끄떡없다.” “소중한 당신.” “힘내요.” 분홍, 노랑, 파랑 연등에 주렁주렁 희망 메시지가 매달렸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고자 애쓰는 공무원과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 그리고 봉사자에게 보내는 응원이었다. 따뜻한 봄볕이 사찰 마당에 한가득, 서울 화계사는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게 봄소식과 응원을 실어 보냈다. 연등에서 눈을 돌리자 종무소 옆 아기자기한 진입로의 정원이 시선을 붙든다. 이름 모를 꽃들이 가지런했고, 작은 불상이 옹기종기 앉았다. 누군가의 바지런한 손길이 느껴졌다. 법당에서 바쁜 걸음으로 다가오던 주지스님. 멀리에서도 쉽게 보이도록 크게 손짓했다. 작은 정원을 지나 객을 맞이하는 공간에서 주지스님과 마주앉았다.

 

| ‘거리두기’ 대신 부처님과 ‘끌어안음’

한국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권한다. 코로나19 확산을 막자는 암묵적 합의이자 캠페인이다. 불필요한 만남이 줄었고,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이 생겼다. 반면 도량에서 공부하고 기도하며 수행하는 사람 역시 줄었다. 대중이 많이 모이는 종교 특성상 피할 수 없는 시대 흐름이다. 최근 수암 스님이 분주한 이유다.

스님은 대화 도중 양해를 구하고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유심히 점검했다. 차담을 약속한 날, 마침 화계사 불교대학(학장 수암 스님)이 온라인 강의로 봄 학기를 시작했다. 유튜브에 ‘화계사 불교대학1 TV’ ‘화계사 불교대학2 TV’ 채널을 개설해 처음 중계하는 날이기도 했다. 1TV에서는 기본반, 불교대학 1학년, 경전반 강의 그리고 2TV에서는 불교대학 2학년과 대학원 강의를 방영한다. 이 대목에서 스님의 ‘단골집 개론’이 실체를드러냈다.

“단골집도 자주 가야 합니다. 한 번 발길 끊으면 안 가게 되죠. 화계사가 어마어마한 목적을 갖고 불교대학 강의를 유튜브로 중계한 게 아니에요. 마음이 멀어지면 발길도 멀어집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상황이지만, 우리는 ‘심리적 거리 줄이기’를 하고 있어요. 오프라인이 아니라도 온라인상에서 기도에 동참하고 법문 듣고 불교대학 수업도 수강한다면, 부처님 도량과 일체감이 커지지 않을까요? ”

코로나19로 신도가 사찰에 나오지 않아서, 보시가 줄어서, 살림이 어려워져서가 아니었다. 혹여 불자가 ‘부처님과 거리두기’를 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였다. 물론 불교대학 개강 연기나 수강 취소는 난감한 상황이지만,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을 노릇이다. 화계사는 슬기롭게 해결한 셈이었다.

 

| 가장 좋은 절은 ‘친절’

수암 스님의 고민은 ‘부처님과 끌어안기’ 혹은 ‘부처님과 끌어안음’에 닿아 있었다. 사실 얼마전, 스님이 쓴 편지가 화제였다. 좁게는 화계사 신도와 불자, 넓게는 국민을 향한 기도와 위로 메시지에 애정이 듬뿍 담겨서다. 게다가 직접 손으로 펜을 잡고 쓴 손편지였다! 편지에는 코로나19로 위축된 일상을 걱정하면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독려하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다. 자발적 격리로 몸도 마음도 피곤해져 일상과 기도에 어려움을 겪는 불자를 떠올리면서 자신의 원력과 기도를 반성했고, 헌신하는 의료진과 공무원 그리고 봉사자를 향한 감사와 격려 또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를 요청했다.

‘부처님과 끌어안기’를 고민하는수암 스님에게 올해 부처님오신날은 코로나19로 애쓰는 이들을 응원하는가장 밝은 등을밝히는 날이다.

“이 시대를 사는 수행자 혹은 성직자들 역할이 물리적인 부분은 아닐 거예요. 진정한 힐링이나 안심, 위로의 자리가 돼야 합니다. 정형화된, 일상적인 언어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손편지가 주는 감성에 제 마음을 담았는데 좋아들 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에요(웃음). 참! 올해 부처님오신날에 가장 밝게 빛을 밝혀야 하는 등은 바로 의료진과 공무원 그리고 보이지 않은 곳에서 애쓰는 봉사자를 응원하는 등이어야 합니다.”

스님이 절을 닮은 걸까. 아니면 절이 스님을 닮아가는 걸까. 화계사는 달라이 라마, 틱낫한 스님, 마하 고사난다 스님과 함께 세계 4대 생불로 추앙받았던 숭산행원 스님에서 시작한 선풍, 환경도량으로서 위치, 염불도량으로서 위상 등 간판이 많다. 하지만 굳이 하나의 틀에 가둬서 이 도량을 어떤 ‘주인공’으로 만들지 않았다. 내세우지 않아도 화계사가 어떤 도량인지 알 사람은 다 안다. 지장기도도량, 관음기도도량 등 하나의 이미지로 굳어질 필요도 없다. 대중가요 제목처럼‘나 이런 사람이야’라고 주장하면서 목에 깁스하지 않겠다는, 스스로 낮추겠다는 하심 같았다. 그래서 화계사는 모토가 ‘기도와 나눔으로 함께하는…’이다. 말 줄임표는 어떤 단어도 넣을 수 있다. 도량, 주지스님 쉽게 만나는 절, 신도, 불자, 스님 등등. 닫지 않고 여니 더 많이 품을 수 있다는 게 수암 스님 생각이다. “아마 화계사는 주지스님을 가장 쉽고 편안하게 만날 수 있는 절일 겁니다. 오래된 모양이에요. 주지스님이 절 마당에서 안 보이면 화계사를찾은 불자는 스님이 으레 아프거나 출타 중으로알고 있다고 합니다. 우스갯소리 하나 할까요. 불교사회연구소장 원철 스님이 한 말씀인데, 세상 가장 좋은 절이 어딜까요? 적멸보궁인가요? 아닙니다. 바로 친, 절입니다, ‘친절’.”

 

| ‘오만과 편견’ 그리고 백신

수암 스님은 인류만이 혹은 자신만이 독보적인 존재라는 생각을 경계했다. 코로나19가 지구 대기를 깨끗하게 하는 역설을 보이자 다시 친환경적인 삶이 화두로 떠올랐다. 스님은 인류만이 지구와 환경에 뭔가 해줄 수 있다는 오만과 편견을 버리는 지점에서 진정한 환경운동이 시작한다고 했다. 불과 도구를 사용하면서 문명을 발전시킨 인류는 지구에 사는 여러 생명 가운데 운 좋게 지적 진화를 거친 하나의 존재일 뿐이라고. 적어도 지구를 오염시키는 인류의 생활방식을 깨닫고, 나아가 삶을 변화시키는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게 스님 지론이다. 여기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코로나 소멸 후 감염이 사라진 시대)’를 준비하는 스님의 사고도 녹아 있다.

“우리는 두 가지 백신을 맞아야 합니다. 지혜와 자비죠. 인류는 어느 순간부터 독보적인 존재라고 착각하고 자신의 왕국을 건설했습니다. 전염병 코로나19는 지구에 사는 수많은 생명 중 소외된 존재의 역습이죠. 또다시 어리석게 산다면 코로나는 다시 찾아올 겁니다. 지혜의 백신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코로나19는 나 혼자서 살 수 없다고 충고하며 자비의 백신을 요구합니다. 예를 들어 의료진과 먼저 필요한 이들을 위해 마스크 사재기를 하지 않는 자비가 필요하죠. 이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이 상대방을 배려하는 생활을 한다고 상상해보십시오. 참 따듯하지요?”

 

| 볕 잘 드는 곳에 걸린 괭이

수암 스님은 품에서 비장의 카드(?)처럼 ‘연장론’을 꺼내 들었다. ‘단골집 개론’에 이어 ‘연장론’으로 연장됐다. 한 사람의 수행자로서, 도심사찰 화계사 주지로서, 지역사회 연합단체 강북구사암 연합회장으로서 역할은 너무 많았다. 정월 대보름 달집태우기, 산사음악회, 여름철 아이들을 위한 물놀이장 거기에 20년 넘게 이어온 난치병 어린이 돕기 3대 종교 연합 바자회까지…. 예불이나 기도, 신도 상담 등은 말할 것도 없다. 스님은 허허 웃고 만다.

“집에 연장이 있으면 누구나 필요할 때 가져다 쓰면 됩니다. 집을 짓든 책상을 만들든. 나라는 연장을 쓰면 돼요. 부처님과 함께 아름다운 극락을 만들 때 쓰이면 더 좋습니다. 화계사 주지 등 직함은 시절인연일 뿐입니다. 주지라는 ‘아상’을 내가 주장하지 않아도 다 주지라고 부릅니다..”

낫, 쇠스랑, 괭이…. 논밭 잘 갈고 제 역할 다한 농기구나 연장은 잘 씻어 보관한다. 스님은 여기저기 쓰인 뒤 볕 잘 드는 벽 한 귀퉁이에 걸린 연장이라면 이번 생 잘살았다고 했다. 이날, 화계사에는 봄볕이 아주 잘 들었다.

 

 

글. 최호승
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