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기행

테마 에세이 - 살며 사랑하며 2

2020-05-29     김형중

처음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했을 때는, 과거의 사스나 메르스처럼 잠깐 지나가는 바람인 줄 알았다. 일기장에 코로나의 명칭이 처음 적힌 날이 2020년 2월 24일이다. 이날 공공기관의 미술관, 기념관의 ‘관람 폐쇄’ 명령이 내려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때만 해도 방송에서 외출할 때 마스크를 착용하는 정도로 권고하고, 여행을 자제하는 단계는 아니었다. ‘추사의 서예 세계와 불교와의 인연’에 관심을 두고, 충청도 예산에 있는 김정희 선생의 고택과 추사기념관을 찾았다.

첫 여행지인 수덕사는 한산하고 고요했다. 조계종이 방역 당국의 집단 감염에 대한 종교활동 연기 권고에 동참하는 취지로 재빠르게 산문을 폐쇄했기 때문이다. 수차례 수덕사에 왔지만 외롭게 홀로 계실 부처님부터 참배했다. 부부가 큰 법당에서 절을 올리며 ‘부처님, 코로나19가 빨리 지나가도록 해 주셔요’라고 기도했다.

절 입구에 있는 이응노 화백이 살았던 수덕여관과 선미술관을 관람했다. 관람객이 세 사람뿐이었다. 미술관에 전시된 이응노 화백의 문자(文字) 추상도가 눈길을 끌었다. 그가 쓴 ‘佛’ 자는 크고 격조가 있었다. 수덕여관 모퉁이의 너럭바위에 새긴 그의 문자 추상도는 충청남도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었다. 절 입구에 미술관이 있어서 불교 문화예술의 발전과 포교 차원에서 너무 좋았다.

승용차로 10분 거리에 윤봉길의사기념관(충의사)이 있었다. 잃어버린 나라를 독립시키려고 25세의 젊은 나이에 산화한 의로운 대장부의 애국심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기념관에는 “제 시계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선생님의 낡은 시계와 바꾸어 차시죠”라며 김구 선생과 바꿔 찬 윤봉길 의사의 회중시계도 있었다. 전시된 『염락풍아』의 필사본에 ‘윤봉길이 8세 때 지은 한시집’이라 되어 있어서, 살짝 오류를 바로잡기도 했다. 『염락풍아』는 송나라 때 대표적인 성리학자의 시문을 모아서 편집한 책이다. 여직원에게 책 소개가 틀렸다고 알린 뒤, 기념관을 나와 추사고택으로 향했다.

추사의 고택 역시 맞이하는 주인이 없고, 손님은 우리 부부 둘뿐이다. 아무도 없는 추사의 방에 들어가 누워도 보고 앉아도 보았다. 작년에는 제주도 대정마을의 추사 귀양지를 다녀왔다. 추사의 예술세계와 불교와의 관계를 연구해 불교 인문학의 지평을 넓히는 일은 필요하고 중요하다. 아들의 고시 합격을 위해서 추사가 평생의 지우인 대흥사 초의 선사에게 써준 『반야심경』을 모본으로 사경(寫經)을 하고 있어서인지 감회가 남다르다.

추사의 작품을 보기 위해 고택 옆에 있는 추사기념관에 갔는데 아뿔싸 ‘관람 폐쇄’ 팻말이 붙었다. 1시간 전에 관람 폐쇄 명령이 내려졌다고 한다. “하는 수 없지. 추사를 보러 또 오면 되지.” 우리 부부는 아쉽지만 차를 서울로 돌렸다. 코로나19의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14세기 서구 유럽을 휩쓸었던 죽음의 흑사병(페스트)으로 유럽 인구의 절반이 사망했고, 그 여파로 중세 신의 권위에 대한 회의가 일어났고, 인본주의 르네상스 운동이 일어나는 계기가 됐다. 동시에 죽음 앞에 선 부유층들은 화가와 조각가를 동원해 구원을 바라는 예술품을 만들어 교회에 헌정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과정에서 많은 명작이 탄생했다.

미국의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코로나19 이후 세계질서는 혁명적 변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코로나19를 퇴치한 후 세계경제 위기와 국가 간의 자국 이기주의가 팽배, 봉쇄 고립 등의 변화에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고 했다.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말을 고려하지 않아도 피부로 느껴진다. 우리 사회의 일상생활에도 큰 변화가 왔다. 집단 감염 때문에 외부 활동이 자제되고 가족들과 집에서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결혼식과 장례식 문화가 바뀌었다. 컴퓨터에 앉아 있는 시간이 역시 늘었다. 유튜브로 유명한 스님과 교수의 설법과 불교교리 강좌를 보았는데, 일반인도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강의의 질도 매우 뛰어났다. 최근 초중고대학교의 개학이 연기됐고, 학생들은 강의실이 아니라 집에서 온라인으로 수업을 받고 있다.

부처님 말씀처럼 세상은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이제 유튜브는 현대사회의 커다란 물줄기다. 소위 대세다. 한국불교도 불교TV와 온라인을 통한 법회 봉행, 유튜브 불교교리, 불교문화, 불교인문학 강좌 등을 개발해야 한다. 불교대학에서 유튜브 강의가 시작됐다는 소식이 반갑다. 무상의 법칙을 아는 것이 지혜요 깨달음이다. 이번 코로나19를 통해서 세계가 하나의 그물코(인타라망)처럼 연결된 연기(緣起)의 세계로서 “고통받는 이웃이 행복해야 나 자신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았다.

하루속히 코로나19 사태가 종결되고, 추사기념관이 다시 열리게 되어서, 추사의 아름다운 작품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김형중
평론가다. 동국대 불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중국 연변대에서 고전문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동국대 사범대학부속여자중·고학교 교법사와 교장을 역임했다. 동방대학원대학교 불교문예학과 객원교수, 불교신문·법보신문·주간불교 논설위원, 전국교법사단장을 역임했다.
현재 현대불교 논설위원이며, 동국대 경영대 사찰최고위과정 강의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