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의 한 물건 - 어쩌면 누구나 한때는 돌

2020-04-29     황현진

기다랗고 하얀 이 돌은 몇 년 전 강원도의 어느 바닷가 도시에서 주운 것이다. 


한겨울이었다. 나는 바다 앞 절벽에서 해변을 내려다보기 위해 걷던 참이었다. 친구들과 함께였다. 절벽 안쪽, 전망대까지 가는 길은 위태로웠다. 나와 친구들은 좁은 길을 일렬로 서서 조금씩 나아갔다. 안전을 위해 세운 울타리가 있긴 했지만 기대지 마시오라는 경고 팻말이 어째 불안을 더 부채질했다. 


얼핏 봐도 울타리는 부실했다. 자칫 힘주어 잡았다가는 통째로 뽑혀 아래로 떨어질 위험이 커 보였다. 위험천만함 속에 놓인 상황이 우리를 자꾸 웃게 했다. 뭐 그리 대단한 풍광을 보겠다고 굳이 이 위험한 곳을, 우리는 참 대단해, 평범한 거지 그런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모두 글을 쓰는 사람들이었는데, 글 쓰는 일을 세상에서 가장 힘들어하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게다가 우리는 저마다 직업 또한 달랐다. 주부, 학생, 선생, 기자. 나이도 서로 다 달랐다. 삼십 대부터 오십 대까지, 글 쓰는 일 말고는 우리는 각자 다른 삶을 살았다. 


사는 게 다 고만고만했다. 지난 일들 때문에, 다가올 일들 때문에 종종 슬퍼했다. 슬픔과 우울을 바다로 치자면, 튜브 없이 안전조끼 없이 잘 버틴다 싶다가도 어느새 다른 한 사람이 우울함에 푹 빠져 있곤 했다. 그 우울의 밑바닥은 모두에게 익숙한 세계여서 우리는 함께 우르르 우울했다가 또 함께 우르르 나아지곤 했다. 


우리가 다 함께 어떤 방향으로든 우르르 몰려갈 때, 개중 멀쩡한 친구가 나서서 여행을 도모했다. 자주 바다에 갔다. 다들 그러하겠지만 여행지에 도착하면 평소와 다른 행동들을 하곤 한다. 갑자기 숨어서 담배를 피우는 친구,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지나는 사람들의 사진을 연거푸 찍는 친구, 말없이 사라져선 혼자 산책을 하는 친구. 


나는 그들 곁에 우두커니 서 있다가 돌을 줍곤 했다. 


이 돌은 낙산사에서 주웠다. 연말이었나, 연초였나 그즈음이었다. 해가 바뀔 때마다 타종식을 한다는 2m 남짓한 크기의 종을 쳐다보면서 우리는 또 세월 타령을 하고 있었다. 우리의 우울은 사실 미미했다. 우울함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누구도, 뭐 하나 포기할 생각을 안 했으니까. 


사는 일과 쓰는 일을 병행하면서 다들 거창한 포부와 원대한 결심을 안고 뛰어들었다. 그런 마음이 글을, 삶을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줄 거라 믿었다. 타박상을 감수하고 온몸을 던져 다이빙하듯 뛰어들었는데, 삶은 아이가 걸음마를 떼듯 천천히 나아가는 일이라는 걸 깨달은 뒤에 찾아오는 안도감 동시에 허무함. 


우리 넷의 닮은 점은 거기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포기와 성공을 강요받았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려면 더 큰 포기를 감내하는 결심이 필요한 줄 알았다는 것. 그런 점에서 우리는 동갑이었다. 어렸다. 

 


 

그 절벽 가장자리에 종이 있었다. 엄청 큰 종이었다. 우리는 종을 둘러싸고 서서 감탄했다. 
아, 엄청 크다. 종소리가 수평선까지 닿겠다. 한번 울려보고 싶다. 종소리 들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던데. 


실제로 얼마간의 돈을 내면 종을 칠 수 있게도 해주었다. 우리는 해볼까 해볼까 하다가 말았다. 글을 쓰는 일이, 사는 일이 힘들지 않게 해주세요라는 소원을 빌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우리는 그저 세월 타령만 했다. 또 한 살 먹었다. 내가 마흔이라니. 야, 나는 오십이야. 


그때 우리가 나눈 대화는 젊지 않음에 대한 아쉬움이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거야말로 우리가 알아챈 유일한 희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만큼 써왔고, 이만큼 했으니 또 이만큼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 우리는 내심 그 희망을 믿었으니 아무도 돈을 내지 않았던 것 같다. 달리 보면, 소원은 이미 이루어졌으니까.  

돌은 그 종 아래 있던 것이다. 누군가는 담배를 피우러 먼저 내려가고 누군가는 카메라를 꺼내 들고 누군가는 탑돌이를 하듯 혼자 걷기 시작할 때, 나는 이 돌을 주웠다. 희고 기다란 돌. 보자마자 문진으로 쓰면 되겠다 싶었다. 막상 주워보니 보기보다 훨씬 단단하고 무거웠다. 더할 나위 없는 문진이었다. 그날 이후 돌은 내 책상에 놓여서 지금까지 문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내가 문진으로 책을 고정해두고 잠시 책 읽기를 멈추는 경우는 단 하나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몹시 좋아서 한달음에 내처 읽을 수 없을 때, 그때뿐이다. 펼쳐진 책을 지그시 누르고 있는 돌, 책의 시간을 멈추게 하고 문장을 고정하는 돌. 


그사이 나는 잠시 생각한다. 종소리가 널리 퍼지듯이, 아름다운 문장이 내 안에서 울려 퍼지는 기분을, 그 반향을 즐긴다. 그럴 때의 나는 끝없이 진동하는 종 같고 문장을 가두는 돌 같다.
그동안 책은 돌처럼 가만히 멈춰있다. 


여행을 갈 때마다 나는 돌을 주웠다. 언제나 주먹만 한 크기의 돌이었다. 겉이 매끄럽고 모서리가 닳은 것, 시간의 손길에 매만져진 것. 손에 쥐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 그런 돌들을 하나씩 주워다가 책상 위에 놓아두고 한동안 보고 지내다가 훌쩍 다른 곳에 내던지고 왔다. 


있던 자리에서 전혀 다른 자리로 옮겨두기, 나는 그 자체를 좋아했다. 돌이 품고 있는 시간의 양을 가늠해보고, 돌에게 시간이란 하염없이 작아지는 과정이라는 걸 상기하면서, 그게 돌과 시간이 맺는 유일한 관계라는 걸 감탄하면서 동시에 안타까워하면서, 삶은 노력이라는 명제를 상기하면서, 한편으로는 몹시 싫어하면서, 나는 돌을 옮겼다. 그러면서 내가 돌의 시간을 달라지게 만들었다고 믿었다. 


돌은 얼마나 오랫동안 여기 있었을까, 그 시간을 가늠하다 보면 돌연 아찔했다. 내가 그 무한함과 무구함의 세계를 바꾸었다고 여겼다. 그리고 그런 행위가 내게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 돌을 줍기 전까지만 해도 내게 돌은 다른 용도로는 절대 환원될 수 없는 무언가였다. 내가 돌을 줍고 다른 장소에 두고 올 수 있었던 건, 돌은 어디까지나 돌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나는 이 돌을 다른 어느 장소에 두고 오기 싫다. 이 돌은 더는 그러한 돌이 아니다. 돌이 아니라 문진이다. 그렇게 남았다. 다른 장소로 건너와 다른 존재가 되었다. 


숨 막히게 아름다운 책의 가장 빛나는 페이지에서, 쉼표처럼 놓여있는 이 돌에 얼마 전 충동적으로 눈을 그려 넣었다. 이제 이 돌은 문진이면서 물고기이기도 하다. 돌은 이제 모든 돌과 달라졌다. 시간과 무관하게 다른 무언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이 돌은 모든 차원을 초월한 채 오늘도 내 책상에 있다. 


나이면서 나 아닌 것, 돌은 가뿐히 돌 아닌 것이 되어 광활한 바다를 자유롭게 오가는 물고기처럼 아름다운 문장을 붙들고 있다. 덕분에 나의 어지러운 방도 바다가 되곤 한다. 어떤 결심도 포부도 없이 단번에 바다, 바다가 된다.    

황현진
2011년 장편소설 『죽을 만큼 아프진 않아』로 제16회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두 번 사는 사람들』, 『달의 의지』, 『부산 이후부터』, 『호재』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