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근 에세이] 지구에 충성해야 한다, 당장

2020-04-29     김택근

요즘 인류세(Anthropocene)란 용어가 자주 보인다. 어림 20년 전, 네덜란드 대기화학자 파울 크뤼천(1933~)은 인간들이 지구의 환경변화를 일으킨 시대를 인류세로 호칭하자고 제안했다. 달리 말하면 지구의 질서에 순응하지 않고 생태계를 파괴한 주범이 인간이라 선언하자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흘려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갈수록 지구의 숨이 가빠지고 위기의식이 높아지자 인류세란 말이 빈번하게 튀어나오고 있다.  


 생명체가 나타난 이래 지구에서는 5번의 대멸종이 있었고, 이제 6번째 대멸종을 앞에 두고 있다. 이미 진행 중이라고 단언하는 이들도 있다. 인간은 석유 같은 대규모 화석연료 소비로 공기, 토양, 물을 오염시켰다.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절멸의 위기로 몰아넣었다. 기후변화로 빙하와 만년설이 녹고 생명체들이 사라지고 있다. 불타는 숲, 가뭄과 폭염, 지진과 쓰나미, 슈퍼 태풍, 토네이도, 홍수…. 해마다 상상할 수도 없는 자연의 재앙이 일어나고 있다.


 모두 인간들이 쌓은 업(業)이다. 인간끼리만, 우리나라만, 나만 잘살자는 이기적인 삶이 불러온 것들이다. 인간의 업보는 중력을 뚫고 우주로 날아갈 수 없다. 우리에게 돌아온다. 지구촌의 모든 것들에 스며있는 미세 플라스틱만 해도 편하게, 윤택하게 살려는 욕망의 파편이다. 그 파편들은 북극 바다와 깊은 지하수에서도 검출되고 있다. 자연은 청정하지 않고 오히려 위험해졌다. 자연의 역습이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 습격을 받아 공포에 질려 있다. 사실 인류에게 전염병은 전쟁보다 위험했다. 병균들도 인간의 지능처럼 진화했다. 천연두, 결핵, 말라리아, 페스트, 홍역, 콜레라 같은 전염병 앞에 인류는 무력했다. 앞으로도 더 강력한 전염병이 창궐할 것이다. 기후변화로 서식지를 잃어버린 야생동물은 죽음으로 내몰릴 것이고, 그 핏빛 절규와 울음을 삼킨 바이러스는 더욱 독해져서 인간을 공격할 것이다.


 실제로 변종 바이러스 출현의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메르스에 이어 다시 ‘바이러스 재앙’이다. 어떤 생명체도 완전히 고립해서 존재할 수 없는 만큼 앞으로 정글이나 공장형 축산농장, 반려견의 집, 돼지 여물통에서도 변종 바이러스가 출현할 것이다. 더욱이 지구 온난화로 남극과 북극의 얼음주머니가 풀리면 그 속의 병균이 분출하여 예측하기도 힘든 재앙이 밀려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코로나19보다 더 치명률이 높고 전파력이 빠른 변종 바이러스가 발생했다면 과연 지구촌은 어찌 될 것인가. 나라 간에, 이웃 간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극도의 이기적인 행태들이 뒤엉켜 처음과 끝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효율적인 대비책은 없다. 이제 전염병을 한 국가나 도시에 가둘 수 없다. 런던의 선술집에서 누군가 기침을 하면 금세 한국의 작은 골목 카페에서도 여행담을 들려주던 손님이 기침한다. 히말라야 상공을 나는 독수리의 날갯짓이 실시간 내 꿈의 날개가 되는 시대이다.


 사람들의 관심 밖에서 존재하는, 버림받은 누군가의 몸에서 전염병이 발생했다면 지구촌 모든 사람에게 퍼져나갈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공존해야 한다. 강자는 약자를 배려하고 부자는 가난한 이들을 보듬어야 한다. 내가 있음으로 네가 있고, 네가 있음으로 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서로 의지해야 한다. 동물복지가 곧 인간 복지이고, 내 이웃의 행복이 나의 기쁨이어야 한다. 이타적인 삶만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 자비와 사랑이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는 유일한 백신이다.


 세상을 떠나 저 우주에서 ‘창백한 푸른 점’을 바라보고 있을 칼 세이건(1934~1996). 그가 자신의 행성이었던 지구를 떠나며 지구인에게 남긴 말을 들어보자. 

 “인간은 지구라고 불리는 이 자그마한 행성에서만 사는 존재이다. 우리는 희귀종인 동시에 멸종 위기종이다. 우주적 시각에서 볼 때 우리 하나하나는 모두 귀중하다. (…) 우리는 종으로서 인류를 사랑해야 하며, 지구에 충성해야 한다. 아니면, 그 누가 우리의 지구를 대변해 줄 수 있겠는가? 우리의 생존은 우리 자신만이 이룩한 업적이 아니다.”  (칼 세이건 『코스모스』)    

 

 

김택근
시인, 작가.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오랜 기간 기자로 활동했다. 경향신문 문화부장, 종합편집장, 경향닷컴 사장,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1983년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용성 평전』 『성철 평전』 『새벽, 김대중 평전』 『강아지똥별, 권정생 이야기』 『뿔난 그리움』 『벌거벗은 수박도둑』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