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과의 일상다담] 시흥 법련사 진명 스님

지금 이 순간 지금여기 성불의 꿈 이뤄질지 몰라

2020-04-29     허진
1982년 청도 운문사에서 정심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84년 해인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1988년 범어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운문사 승가대학과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선학과를 수료했다. ‘(사)맑고 향기롭게’ 사무국장,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장, 중국 북경 만월사와 대련 길상사 주지를 역임했다. 문화부장 재임 시절 문화재청 문화재건축분과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위원이다.

“불광미디어 유튜브를 보시는 시청자에게 인사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인터뷰 영상 촬영이 익숙지 않아 어리바리하게 있던 기자를 진명 스님이 능숙하게 리드한다. 사진 촬영을 위해 연출을 요청하자 망설임 없이 바로 앞에 놓인 월간 「불광」 잡지를 대본처럼 맛깔나게 읽으며 라디오 DJ로 변신한다. 스님의 방송 ‘짬바(짬에서 나오는 바이브; 한 가지 일을 오래 했기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노하우)’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스튜디오를 ‘선방’으로 생각한다는 진명 스님을 BTN불교라디오 녹음실에서 만났다.

 


|    목탁 대신 마이크, 선방 대신 녹음실
진명 스님은 BTN불교라디오 ‘진명스님의 지대방’과 ‘아름다운 세상, 진명입니다’를 진행한다. 보이는 라디오(방송을 청취하면서 화면으로 영상도 볼 수 있는 라디오 방송)를 위해 소품을 좋은 위치로 옮기고, 실시간 문자를 모니터링하면서 동시에 청취자와 소통하는 스님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스님은 어떤 마음으로 방송에 임하고 있을까.
“우리 수행자들은 오직 포교 목적으로 방송을 합니다. 저는 연예인이 아니에요. 왜 출가했는지 잊지 말아야지요. 제게 스튜디오는 선방과 다름없습니다.”
진명 스님은 처음 불교방송에서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을 때 한 불자로부터 받은 편지 내용을 아직도 선명히 기억한다. ‘스님, 세상에 인기라는 것은 물거품과 같은 것입니다. 세상의 인기에 좌우되지 마십시오’라는 내용이 담긴 편지였다. 불자의 뼈 있는 충고를 들은 스님은 종일 고민했다.
“보살님 말씀처럼, 제게 ‘방송하는 스님’이란 타이틀이 붙고 사람들이 좋아해 주면 그 인기에 저도 모르게 편승하고 수행을 게을리하게 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방송이란 매체를 통해 딱 내가 수행한 만큼, 체득한 만큼의 부처님 말씀만을 전하자고요.”

|    요리 빼고 다 잘하는 팔방미인
지난 2월 진명 스님은 종교계 인사 중 유일하게 검찰인권위원으로 위촉됐다. 법과 접점이 없는 삶을 살았기에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제안을 받고 처음엔 고민했지만, 오히려 비법조인이기 때문에 보통 사람 눈높이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 거로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대학 다닐 때 교양과목으로 민법을 한 학기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법체계가 어떤지 궁금해서 한번 들었던 건데 그게 인연인가 싶어요. 위원 중 유일한 종교인으로서 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을 할 생각입니다.”
진명 스님은 무형문화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불교보다 이웃 종교인 구성 비율이 높았던 무형문화재 위원에 진명 스님이 위촉된 건 불교계로서는 가뭄에 단비 같은 일이다. 사실 진명 스님은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장 시절부터 조계종단 1호 무형문화재, 연등회를 지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전까지 유형 가치에 관심을 집중했던 종단은 연등회 무형문화재 지정을 계기로 무형 가치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진명 스님은 무형 가치가 있는 대상을 찾아 목록을 만들고 조사했다. 종단 차원의 정리 작업이 추후 무형문화재를 지정하는 데 이바지할 거로 생각했다.
“수륙재 무형문화재 지정 준비까지 해놓고 문화부장 소임이 끝났는데 이번엔 무형문화재위원 소임을 맡게 된 거예요. 소중한 인연이지요. 현재 사찰음식이 무형문화재가 될 수 있도록 연구 중입니다. 4월 말이면 이번 위원회가 끝나고 5월 초 다시 임명을 받게 되는데, 또 하게 된다면 불교계 무형문화재를 국가무형문화재로 만들어가는 데 나름의 역할을 할 생각입니다.”
방송 활동 외에도 여러 중요 소임을 맡고 있어 외부 일정을 최대한 줄이고 있지만 한가할 새가 없다. 봄을 맞아 사찰에 일이 많기 때문이다. 방송을 많이 하는 이미지 때문인지 ‘손에 물 안 묻힐 것 같다’는 말을 가끔 듣는데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대부분 스님이 그렇듯 진명 스님도 기도 수행부터 도량 정리와 행정 업무까지 모두 맡아 하고 있다.
“저는 사찰에 들어가면 완전히 농부처럼 살아요. 얼마 전엔 나무 가지치기도 했고요. 여름엔 직접 예초기 매고 풀 깎는 게 일상이고, 도량 정리에 필요하다면 포크레인 운전까지 하지요. 막노동은 두렵지 않은데 단 하나, 요리에는 재능이 없습니다. 요리 잘하는 스님들 참 부러워요.”

|    ‘때문에’를 ‘덕분에’로 받아들이는 지혜
진명 스님은 요즘 손을 자주 씻는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이다. 요즘처럼 손을 자주, 신경 써서 씻어본 적이 없다. 진명 스님은 이를 두고 코로나 ‘때문에’ 여러모로 불편하지만, 코로나 ‘덕분에’ 생긴 좋은 생활 습관이라고 말했다.
“우리 생활 습관으로부터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코로나 때문에’ 되는 일이 없다고 탓만 하지 말고, ‘코로나 덕분에’ 지금이라도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생활 습관들을 하나하나 바꿔야 한다는 거지요.”
진명 스님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 음식 문화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바이러스 숙주로 박쥐가 언급되고 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가 무슨 음식을 어떻게 먹고 있는지도 고민해 봐야 해요. 앞으로 우린 무얼 먹어야 하고, 음식을 어떻게 조달해서 먹어야 하며, 농사짓는 분들의 노고가 얼마나 큰지 그 은혜도 생각해야 하고요. 하루빨리 코로나바이러스가 소멸해서 더는 아픈 분들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불자들은 습관처럼 ‘성불하세요’라는 인사를 주고받는다. 인사말처럼 수행자든 재가자든 모든 불자의 원력은 붓다가 되는 일, 즉 ‘성불’을 향한다. 그런데 정말 스스로 붓다가 되리라고 생각하는 불자는 몇 명이나 될까. 붓다가 되는 건 정말 먼 나라 이야기일까. 붓다처럼 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렵다고 할 수만도 없다고 말하는 진명 스님이다.
“저는 사실 발심할 때, 가부좌 틀고 앉아만 있어도 도가 뻥뻥 터지고 뒤에 후광이 훤해질 줄 알았어요(웃음). 그런데 출가하고 보니까 깨달음도 현실 속에 있는 거예요. 우리가 막연히 생각한 깨달음이 현실 속 어디에 있는지 제대로 알아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뜬구름만 잡게 되더라고.”
경전을 보다가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막연하게 깨달을 게 아니라 의심해야 한다. 아직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이미 깨달은 경지에서 하신 붓다의 말씀에 의문을 품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저도 공부하면서 ‘정말 이럴 수 있을까? 부처님 거짓말쟁이 아니야?’라는 생각 많이 했습니다(웃음). 납득되지 않는 일에 의문을 품는 건 잘못된 태도가 아니에요. 부처님은 우리가 일상 안에서 터득하고 깨닫는 것을 원하지, 막연한 깨달음을 위해 정진하라고 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진명 스님은 현재를 산다. 막연한 과거나 미래보다 현재가 중요하기에 앞으로의 계획에도 선을 긋지 않는다. 스스로의 원력으로 살고 있지만, 살다 보면 하기 싫어도 피치 못 하게 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제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을 살며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제 유일한 계획이자 목표입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지금처럼 방송에서 부처님 법을 전하는 역할을 꾸준히 하지 않을까요?”    

 

 

글.
허진
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