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초대석 - 잊지말아요, 4월의 그날

2020-04-29     정태겸

 

 

|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서울 상수동의 어느 골목이었다. <부재의 기억>을 만든 이승준 감독이 약속 장소로 잡은 공간은 그곳에 있었다. 서울 시내 어느 곳보다도 활력 넘치는 공간, 20~30대에게 가장 각광받는 그 공간에 그가 자리하고 있었다.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6년 전, 10대였던 지금의 20대는 또래의 친구들이 세월호 안에서 사그라져가는 걸 목격한 세대다. 이제는 20대로 자라난 그들이 ‘희(喜)’와 ‘락(樂)’을 향유하는 그 자리에서 이승준 감독은 ‘애(哀)’와 ‘노(怒)’의 감정이 뒤범벅된 6년 전 사건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 인터뷰 전, 그 골목에 서서 이 아이러니를 곱씹자니 비로소 희로애락이 이 공간에서 한 몸이 된 것만 같았다.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이승준 감독이 만든 <부재의 기억>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작품이다. 불과 29분짜리 단편 다큐멘터리지만, 미국 아카데미상에 노미네이트되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는 한국 다큐멘터리 역사상 첫 사례. 대형 사건이다. 온 나라가 <기생충> 신드롬에 빠져 한국 영화의 쾌거를 이야기했지만, 이에 못지않은 또 다른 기적이 있었던 셈이다. 박수받아야 마땅한 이 대형 사건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누구도 넘지 못했던 그 문턱을, 이승준 감독은 하물며 세월호의 이야기를 들고 넘어섰다. 수상은 하지 못했다.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그것뿐이다. 


이승준 감독을 마주하고 앉았다. 이미 이곳저곳에서 반복된 소감보다는 이 작품을 들고 나갔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했다. 이 감독은 덤덤하게 말한다. “외국 사람들이 세월호 사건의 맥락에 공감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너무나 절절하게 공감하는 모습을 보았다”라고. 남의 아픔을 공감하게 만든다는 것, 더구나 그 사이사이에 문화의 차이마저 끼워 넣으면 이는 장벽이 되기 십상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장면이다. 이미 우리가 숱하게 봐왔듯, 세월호 희생자들의 장례식은 응축된 분노가 폭발하는 자리였다. 유가족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오열했고 분노를 어찌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 장례식에서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는다. 이 두 차이는 냉탕과 온탕만큼이나 정반대의 모습이다. 


세월호를 둘러싼 여과 없는 감정의 표출을 그들이 이해하고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편집 과정에서 수없이 고민하고 토론해야 하는 지점이었다. 그렇게 지난한 산통 끝에 세상을 향해 내놓은 게 <부재의 기억>이었다. 다행히 걱정은 기우로 끝났다. 국가와 문화의 차이를 넘어서, 가슴을 저미는 우리의 아픔은 바다 건너 그들도 눈물짓게 했다. 세월호 선장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그들도 웅성거렸으며 욕을 내뱉기도 했다. 영화가 끝난 후 발개진 눈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닦고는 이 감독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도 이런 일이 있었다. 국가적인 참사가 있었을 때 정부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해서 국민이 희생당한 역사가 있다.”


|    직시하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
그들은 이승준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했던 알맹이를 정확히 짚어서 이야기했다. 그래, <부재의 기억>은 그런 영화다. 제목의 ‘부재’는 다른 무엇도 아닌 ‘정부의 부재’다. 당시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하려는 영화다. 6년이나 지난 이 시점에, 이런 주제를 선택한 이유가 뭘까.


“이건 끝난 사건이 아니에요. 흐지부지 희미해져 가고 있을 뿐이죠. 누군가는 ‘그만 얘기해라’, ‘보상을 노리고 이러는 거 아니냐’는 식으로 말해요. 비이성적인 목소리가 유가족들과 잠수사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현상이 생겼어요. 고통은 여전한데 그만하라니요. 저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계속 이야기해야 해요.”


<부재의 기억>은 바로 그 지점에서 모든 이야기를 풀어간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 고통은 어디에서부터 시작한 걸까? 세월호 사건이 전개된 모든 상황을 되짚어 올라가 그 근원으로 향한다. 2014년 4월 16일을 기억에서 꺼내고, 그 시간을 들여다보며 그 순간 부재했던 게 무엇이었는지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담았다.


지금까지 세월호를 정면으로 담은 다큐멘터리는 몇 편 있었다. 그런데 <부재의 기억>은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지금까지 나왔던 다른 다큐멘터리는 사건이 벌어진 원인에 천착했고, 이 영화는 원인보다 그 고통의 순간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쉽게 밝혀지지 않는 원인보다는 잊지 말아야 할 그 순간을 직시한다. 그럼으로써 기억해야 한다고 메시지를 던진다. 기억해야만 이 아픔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고, 가려진 진실도 밝혀낼 수 있다.


6년 전의 그 이야기를 다시 본다는 건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다. 구태여 영화를 마주하지 않아도,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괴롭다. 당시 일상까지 깊숙하게 잠식해 왔던 슬픔이 되살아나고 몸서리치며 흘렸던 눈물의 뜨거운 흔적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만 같다. 그럼에도 잊지 않기 위해서, 그 고통을 직시하자는 게 이 감독의 생각이다. 


물론 이 감독 역시 29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동안 냉정할 수만은 없었다. 이 영화가 처음 기획된 시점은 세월호 사건에서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인 2017년이었다. 미국 쪽 제안을 받고 세월호 이야기를 제작하기로 결정한 이후, 이 감독은 동료 PD들이 촬영한 모든 영상을 한데 모았다. ‘416기록단’이라 부르는 그들이 가진 모든 영상이 이승준 감독에게 들어왔고, 그는 그 모든 영상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여기서 세월호 침몰 이후 단원고 학생들이 찍은 스마트폰 영상이며 사진까지 모두 볼 수 있었다. 이 감독은 그걸 다 봐야 하는 게, 편집에 집중하다가도 문득 아이들의 흔적이 떠오르는 게 견디기 힘들었다고 했다. 말과 말 사이에 솟아오른 적막이 그가 겪었던 감동의 동요를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    행복을 이야기하고 싶다
<부재의 기억>이 해외에서 주목받은 게 아카데미가 처음은 아니었다. 2018년 11월 월드 프리미어를 비롯해 암스테르담 등에서 상영됐고, 뉴욕국제다큐영화제(DOC NYC)에서 단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단편 영화가 가진 힘은 이미 그때부터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 아카데미상 후보 노미네이트는 이 영화가 품은 가치를 더 널리 인정받은 결과가 아닐까.
이승준 감독에게 다큐멘터리를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많고 많은 영상 장르 중에서, 왜 굳이 다큐멘터리였을까.


“어릴 때부터 휴먼 다큐멘터리가 좋았어요. 실재하는 것이 주는 감동과 전율이 있거든요. 그래서 휴먼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었죠. 항상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잖아요. 오히려 무섭고 두려운 일이 더 많아요. 그래서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고요. 행복하고 싶은데 행복하지 못하게 하는 게 대체 뭘까. 행복하게 하는 건 또 무엇일까. 이 주제에 관한 탐구를 이어가고 있는 거죠. 이번 영화도 그 연장선상이에요.”


그러고 보면 그의 필모그래피는 항상 사람의 이야기다. <신의 아이들>(2008), <달팽이의 별>(2011), <달에 부는 바람>(2016) 등 이 모두를 관통하는 건 결국 사람과 행복에 대한 이야기였다. 존재론의 질문을 던지는 작품에도 관심이 많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명작 <블레이드 러너>(1982)처럼, 존재의 의미를 깊이 참구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 한다. 휴머니티란 무엇인가, 휴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과연 무엇일까. 인공지능(AI)이 인간 세상에 발을 디디기 시작한 이 시대에 그는 인간성이란 무엇인지를 묻고자 한다. 이 감독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질문을 꺼내기도 전에 그가 먼저 <위대한 침묵>(2005)을 거론하며 불교 다큐멘터리 제작에 대한 욕심을 이야기했다. 아직 뚜렷하게 그릴 수는 없지만, 불교 다큐멘터리라는 장르 안에 그가 담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손에 잡히는 느낌이었다.


다시 <부재의 기억>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물었다. 그래서, 불교계에 바라는 점은 있는지? 
“세월호 사건이 시작된 그때로 돌아가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뚜렷하게 기억해 주었으면 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유가족과 잠수사에게는 위로가 돼요. 잊히는 것처럼 두려운 건 없습니다. 제 영화도 계속 기억하기 위한 거예요. 시간이 흘러도 이 사건을 모르는 세대가 제 영화를 보고 이런 일이 있었음을 기억해 줬으면 합니다.”


그의 이야기에 내 입가에서 말이 지워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불교계가 세월호를 오래도록 기억할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기도? 올해도 여지없이 돌아온 이 잔인한 4월에 낮게 읊조리는 하루의 기도. 어쩌면 그게 그날을 잊지 않는 불교계만의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창밖을 바라보는데, 안개 같은 노란빛이 아른거린다. 아, 올해도 산수유는 다시 피었구나. 그날의 아픈 기억처럼.

글. 
정태겸
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