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신화 - 길 떠남은 영웅 탄생의 출발

2020-04-29     동명 스님

 

|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여행
할리우드의 스토리텔링 작가 크리스토퍼 보글러는 영웅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모험에 대한 소명’을 뽑았다. 모험은 당면한 문제로 위기에 처한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거나 악마의 위협으로부터 선량한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 또는 뭇 사람들의 소망을 대리만족시켜주는 것이다. 역사상 최고의 영웅 부처님의 생애에도 ‘모험에 대한 소명’이 분명하게 나타나는바, 그것은 병듦과 늙음과 죽음의 고통을 벗어나지 못하는 뭇 생명을 구원하는 것이었다. 어떤 영웅이 떠안은 소명보다도 어려운 이 과제를 청년 싯다르타는 왜 떠안게 되었을까?
그 소명은 신이 맡긴 것도 아니요, 우연히 떠맡게 된 것도 아니다. 세세생생 다져온, 그리고 바로 직전의 전생에 굳건하게 다시 세운 ‘원력’에 따른 것이다. 그 모험의 시작, 소명 실천의 출발은 출가(出家)였다. 출가는 글자 그대로 안락한 집을 떠나는 것인데, 달리 말하면 세상 모든 것을 집으로 만드는 일이자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여행이다.
부처님의 생애를 보건대, 전생에 아무리 원력을 굳건히 세웠다 해도 다음 생애에는 그 원력을 잊어버리기 십상인가보다. 그래서 부처님의 신화는 청년 싯다르타가 출가의 소명을 잊어버릴까봐 하늘의 신들이 자주 개입했다고 말한다. 출가의 소명을 확인시키기 위해 신들은 병자와 노인과 죽은 이와 출가사문을 싯다르타에게 보여주었고, 그것이 싯다르타의 출가 의지를 확고하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    출가를 재촉해준 아들 라훌라의 탄생
싯다르타 왕자의 출가를 재촉한 것은 아들의 탄생이었다. 태자비 야소다라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들은 왕자는 “나를 포로로 붙잡아둘 아수라 ‘라후(Rāhu)1’가 태어났도다. 큰 장애(Rāhula)가 나타났도다”라고 말했다. 라훌라는 새 왕자의 이름이 되었다. 아들의 탄생이 출가에 장애가 된다는 뜻이나, 한편으로는 아들의 탄생이야말로 싯다르타가 홀가분하게 출가할 수 있게 한 면도 있다. 아들의 탄생으로 인해 왕자로서는 아버지의 왕위 계승자를 만든 셈이 되기 때문이다.
아들의 탄생 소식을 듣고 궁궐로 돌아오는 길, 거리는 새 왕자의 탄생을 축하하는 분위기가 한창 달아올랐다. 싯다르타 왕자가 도성 안에 들어오자 왕자의 사촌이기도 한 키사 코타미라는 아리따운 여인이 왕자의 모습을 보고 시를 읊었다.

떠오르는 태양 같은 최고의 지성을 갖춘
아들을 낳은 어머니
지극히 평화롭고 행복할 것이다
떠오르는 태양 같은 최고의 지성을 갖춘
아들을 낳은 아버지
지극히 평화롭고 행복할 것이다
탁월한 힘과 품위 최고의 지성을 갖춘
남편을 둔 아내는
지극히 평화롭고 행복할 것이다

이 노래를 들은 왕자는 가만히 생각했다. ‘과연 어머니와 아버지, 아내는 지극히 평화롭고 행복한가? 나는 지극히 평화롭고 행복한가? 아니다. 모든 것을 갖추었음에도 지극히 평화롭고 행복하지 않다. 어떻게 해야 지극히 평화롭고 행복할 수 있을까?’ 이 화두를 참구하기 위해서는 북대문에서 본 출가사문처럼 길을 떠나야 한다. 왕자의 출가에 대한 결심은 더욱 강해졌다.

|    “마라여, 비키시오, 
    나는 내 길을 갈 것이오!”

왕궁에서는 왕손 라훌라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대한 잔치가 7일 동안 이어졌다. 늦게까지 계속되던 연회가 끝나고 조용하기 이를 데 없는 한밤중에 싯다르타 왕자는 홀로 일어났다. 아름답기 그지없던 무희들은 가지각색의 모습으로 잠들어 있었다. 어떤 무희는 흐트러진 매무새로 입을 벌리고 침을 흘리고 있었고, 어떤 무희는 이를 갈면서 자고 있었고, 어떤 무희는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잠들어 있었다. 왕자는 잠깐이라도 애욕에 빠진 적이 있었는지 돌이켜보면서 애욕을 채우는 것으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음을 절실히 느끼면서 연회장을 나왔다.
‘오늘이야말로 내가 출가하기에 참으로 좋은 날이다.’
싯다르타 왕자는 조심스럽게 아내 야소다라의 방으로 갔다. 아내와 아이가 평온하게 잠들어 있었다. 조용하게 떠나겠다고 마음먹은 왕자는 아내와 아이를 깨워 작별인사를 할 수는 없었다. ‘부지런히 수행하여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얻은 후에 다시 오겠소.’ 마부 찬나의 방으로 가서 조용히 찬나를 불렀다.
“태자님, 이 밤중에 무슨 일이십니까?”
“깐타까에게 안장을 얹어라. 함께 갈 곳이 있다.” 
왕자가 찬나와 함께 애마 깐타까의 등에 올라탄 채 궁궐의 큰문을 나설 때였다. 온갖 생명체의 욕망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먹고 사는 악마 마라(Māra)가 왕자 앞에 나타났다.
“위대한 왕자시여, 출가할 생각일랑 거두시오. 당신은 출가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전륜성왕이 될 것이오. 그 영광스러운 미래를 버리고 어찌 황량한 들판으로 나아가려 하오?”
“마라여,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비명 속에서 내게 전륜성왕의 지위가 주어진들 무슨 소용이란 말이오. 비키시오. 나는 내 길을 갈 것이오.”
왕자의 굳은 결심에 천신들은 환호하며 왕자의 주위를 호위했다. 천신들은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의 눈에 띄지 않게 문을 열고 왕자가 가는 길을 환하게 밝혀주었다. 

|    머리카락이 허공에서 꽃다발 되다
아노마(Anomā) 강둑에 도달한 뒤 왕자는 장신구를 풀어서 마부에게 주면서 말했다.
“벗 찬나여, 말을 데리고 돌아가도록 하라. 나의 장신구는 네가 가져라. 나는 이제 출가사문이 될 것이다.”
“태자님, 저는 평생 태자님을 따르며 살아왔습니다. 부디 저도 태자님과 함께 출가사문이 되어 태자님을 보필하도록 해주십시오.”
“아니다. 너는 돌아가 내 소식을 궁궐에 전해주어야 할 것이야.”
왕자는 긴 머리카락이 수행하는 데 번거로우니 잘라야겠다고 생각하고, 왼손으로 머리카락을 쥐고 칼로 잘랐다. 그러자 손가락 두 개 마디쯤 길이만큼만 남았다. 그 머리카락들은 오른쪽으로 빙빙 돌아서 머리에 착 달라붙었다. 신화는 그 후로 부처님은 한 번도 머리를 자르지 않으셨지만, 그 길이가 항상 유지되었다고 말한다.
『마하붓다왕사』는 또 믿기 어려운 장면을 전한다. 왕자는 잘라낸 머리카락과 태자의 관을 들고 생각했다. ‘만약 내가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얻을 수 있다면 이 머리카락이 허공에 머물 것이고, 그렇지 못한다면 땅에 떨어질 것이다.’ 왕자는 머리카락과 관을 허공으로 힘껏 던졌다. 그것들은 1요자나(소달구지가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 약 12~14km) 높이까지 올라가서 마치 못에 걸어놓은 꽃다발처럼 허공에 그대로 머물렀다.3
실제로 경전에는 부처님께서 삭발하시는 장면은 물론이고 면도하시는 장면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부처님의 머리가 전혀 자라지 않았다는 것은 믿기 힘들지만, 경전에 부처님께서 삭발하시는 장면이 한 번도 나오지 않으니 반박할 수도 없다. 


|    “출가는 널찍한 들판이며 
    번거로움이 없다”

신화에 따르면 싯다르타 왕자의 출가에 대한 천신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왕자의 출가가 마치 천신들의 작품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왕자가 가는 길에 노인과 병자와 죽은 이와 출가사문을 보여준 것도 천신이고, 왕자가 성문을 나서자 어두운 길을 밝혀준 이들도 천신들이다. 이는 고대 인도의 영웅에 대한 의식이 오늘날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스스로 힘으로 영웅이 된 이들이 더 추앙받을 수 있지만, 고대 인도에서는 신의 화신이거나 신들의 호위를 받는 영웅이 더욱 추앙받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런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단정 지을 필요는 없지만 어디까지나 신화다. 다만 바른길을 가는 이에게는 선신(善神)들의 도움이 함께한다고 생각할 수는 있겠다.
나는 출가의 길을 선택한 청년 싯다르타의 고뇌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간다. 싯다르타 왕자에 비하면 가진 것이라고는 참으로 형편없었던 나도 가진 것을 모두 버리고 떠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왕위와 남편과 아버지의 지위를 버리고 출가한 싯다르타 왕자의 고뇌를 이해하는 것, 어쩌면 거기에 불교의 핵심이 있으며, 거기에 우리 불자들이 평생 가져야 할 화두와 그 화두의 답이 있는 것은 아닐까? 위대한 포기를 했던 부처님과 서산대사의 출가에 대한 말씀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본다.
“집에서 사는 생활은 비좁고 번거로우며 먼지가 쌓인다. 그러나 출가는 널찍한 들판이며 번거로움이 없다.”(『숫따니빠따(Sutta-Nipata)』 「출가의 경(Pabbajjā-Sutta)」)
부처님께서 출가하여 깨달음을 얻기 전 마가다국의 빔비사라 왕을 만나 하신 말씀이다. 출가자에게 한없는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이 말씀은 한편으로 ‘널찍한 들판’이자 ‘번거롭지 않게’ 살아야 한다는 출가자의 자세를 제시한 것이기도 하다. 서산대사는 출가자의 자세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셨다.
“출가하여 스님이 되는 일이 어찌 작은 일이겠느냐? 편하고 한가로운 생활을 구하는 것도 아니요, 따뜻하게 입고 배불리 먹고살려는 것도 아니며, 명예와 이익을 얻으려는 것도 아니다. 생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것이요, 시비와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번뇌를 끊으려는 것이다. 부처님의 지혜를 이어 성불하려는 것이요, 삼계(三界)를 벗어나 모든 중생을 제도하려는 것이다.”(서산휴정, 『선가귀감』)     

동명 스님
1989년 계간 『문학과사회』를 통해 등단, 1994년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으로 20여 년 활동하다가 지난 2010년 지홍 스님을 은사로 해인사에 출가하여 사미계를 받았고, 2015년 중앙승가대를 졸업한 후 구족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대학원 선학과에서 공부하면서 북한산 중흥사에서 살고 있다. 출가 전 펴낸 책으로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벼랑 위의 사랑』, 산문 『인도신화기행』, 『나는 인도에서 붓다를 만났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