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행하며 쓰레기 줍는 우리 동네 ‘그린 히어로’ -녹색사찰 1호 금륜사

특집 - earth 얼쑤!

2020-04-27     최호승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보다 짜릿하진 않다. 
사찰이 녹색을 만났을 땐 어딘지 모르게 당연한 인상을 준다. 복합어도 쉽게 추리할 수 있다. 녹색사찰. 
그러나 ‘처음’이라는 단어는 뭔가 짜릿하다. 
낯섦과 누구도 해보지 않았던 어떤 것에서 오는 약간의 두려움, 그래서 더 설레는 두근거림이 미묘하게 교차한다. 사실 맛집 본점은 굳이 들어가 음식을 
맛보지 않아도 입구 앞에 서면 군침이 돈다. 
시장기가 반찬이겠지만, 이름난 집은 대부분 평균 이상의 맛을 보장하기 때문에 침 먼저 마중이다. 누구보다 먼저 녹색사찰 1호 명찰을 단 고양 금륜사
(회주 본각 스님). 금륜사의 문을 두드렸다. 

 

 

|    떡 맛이 궁금해? 장바구니·빈 통은 센스!
주는 사람이 줄 듯 말 듯 장바구니에서 김치통을 내밀었다. 받는 사람도 받을 듯 말 듯 김치통을 받았다. 주는 사람이 말이 없자 받는 사람이 먼저 말을 걸었다.
“빈 통 하나 가져오라고 했더니, 아예 김치통을 가지고 오셨어요(웃음)?”
“떡하고 과일 담아준다길래.”
“잘하셨어요. 다음에도 꼭 빈 통 가져오셔야 해요.”
언뜻,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 상인과 손님 같은 풍경이지만 오해다. 스님과 신도 간 대화다. 빈 통을 요구하는 스님 말투에는 정이 듬뿍 담겼고, 대답하는 신도 표정에는 고마움이 묻어난다. 김치통에 신도 자신의 이름표까지 붙었다. 오래됐다는 증거다. 금륜사는 2년 전인 2018년 불교환경연대와 녹색사찰 협약식을 체결했다. 
금륜사는 일회용품 사용을 거의 줄였다. 가장 큰 골칫거리(?)가 비닐이었다. 부처님오신날 등 사찰 큰 행사 후엔 으레 떡과 과일 등 먹거리를 비닐봉지에 담아 신도 손에 들려 보냈다. 먹거리를 나누는 아름다운 문화를 비닐 탓에 없앨 수는 없는 노릇. 금륜사는 과감히 방식을 바꿨다. 종이봉투에 먹거리를 담았다. 사찰 내 행사 부스에는 뻥튀기 위에 떡을 올렸고, 가급적 먹고 가도록 권했다. 떡을 싸서 가고 싶다면 빈 통과 에코백을 가져오도록 했다. 
제사 풍경도 달라졌다. 제주(祭主, 제사의 주장이 되는 상제)에게 드리는 음식도 종이봉투에 담았다. 처음 온 제주와 가족들에게는 부득이하게 비닐을 사용했지만, 다음엔 꼭 빈 통과 에코백을 가져와달라고 청한다. 2년쯤 되니 이제는 다들 알아서 한다고.
“불만은 없어요. 오히려 젊은 사람들이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시더라고요. 일단 갖고 왔는데 담아갈 게 없으면 어떻게 하냐는 투정(?)엔 이렇게 말씀드려요. 본각 스님이 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뭔가 있을 때 채워서 가져가면 먹을 게 있어서 좋고, 비워서 가면 절에서 내 번뇌를 이만큼 비웠다고 할 수 있어서 좋다.’ 다들 좋아하신답니다(금륜사 주지 효욱 스님).”

 

|    ○○○ 없으면 벌금(?) 1,000원!
금륜사에는 또 다른 진풍경(?)도 가끔 등장한다. 깜빡하고 빈 통 놔두고 장바구니만 가져온 신도가 간혹 있어서다. 이런 일이 생기기도 한다. 
“어? 통을 안 가지고 오셨네요.”
“장바구니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거든요.”
“괜찮아요. 금륜사 통에 담아 드릴게요. 다음에 오실 때 꼭 다시 가져오셔야 합니다. 대신! 벌금 1,000원입니다(웃음).”
“벌금요? 떡값인가요?”
“아뇨. 환경장학금으로 적립해서 좋은 곳에 쓸 거예요.”
금륜사가 책정한 벌금(?) 1,000원은 환경장학금으로 적립된다. 가끔 ‘금륜사 통 다시 돌려드리면 1,000원 돌려받나요?’라고 묻는 신도도 있지만 어림없다. 돌아오는 것은 스님의 미소뿐이다. “아뇨. 환경장학금으로 씁니다.”
환경장학금 벌금의 범위는 성지순례에도 적용된다. 금륜사가 사찰 순례를 떠날 땐 여느 사찰과 좀 다르다. 보통 순례자는 플라스틱병에 담긴 생수를 하나씩 받는다. 하지만 금륜사는 아예 물을 끓여 간다. 끓인 물 담아갈 텀블러가 순례자의 필수 준비물이 됐다. 혹여 준비하지 못한 순례자는 금륜사의 컵에 물을 담아가야 한다. 벌금 1,000원이다. 
이렇게 적립한 환경장학금은 화엄장학회처럼 금륜사의 또 다른 자랑거리다. 화엄장학회는 1995년 인재불사를 목표로 결성, 25년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장학금을 전달했다. 학인스님과 어린이·청소년 총 603명이 화엄장학회와 인연을 맺었다. 환경장학금이 화엄장학회가 되지 말란 법은 없지만, 의미 있는 첫발을 뗐다. 2019년 9월 어린이·청소년 법회 소속 아이 1명이 처음으로 환경장학금을 수여했다. 어린이·청소년 법회 지도법사도 겸하는 금륜사 주지 효욱 스님 목소리에 생기가 돌았다. 
“환경일지를 쓰게 했어요. 부처님오신날에는 캠페인도 하고 쓰레기도 줍고 여러 활동을 함께 해요. 텀블러도 꼭 갖고 다니게 하고요. 요즘 아이들이 더 극성이에요(웃음). 집에서 음식물 쓰레기가 거의 안 나온다고 말해주고, 종이컵은 아예 없다고 자랑도 한답니다. 비닐 등 일회용품 안 쓰기 운동이 사찰 살림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진 않지만, 교육과 문화적인 측면에서 큰 도움을 주고 있어요.” 

 

|    오래된 미래 … 바로 지금, 여기 금륜사
녹색사찰 앞에는 “환경을 지키고 생명을 살리는~”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일회용품 안 쓰기를 중심으로 환경을 생각하고 실천하는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사찰이 녹색사찰이다. 불교환경연대와 녹색사찰 협약을 맺은 사찰은 총 13곳. 고양 금륜사를 시작으로 울산 백련사, 서울 은평 열린선원, 장성 천진암, 의정부 석림사, 울산 여여선원, 서울 법장사, 서울 반야정사, 천안 성불사, 파주 약천사, 오산 대각포교원, 구미 화엄탑사, 의정부 회룡사 순서대로 녹색사찰 대열에 합류했다. 
북 카페가 있는 금륜사는 애초 종이컵보다는 개인 컵을 권유해왔으니 동참이 빨랐다. 그보다 자연을 염려하는 분위기가 일찍 자리잡혀 있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지금은 회주이자 전국비구니회장인 당시 주지 본각 스님이 입버릇처럼 강조하는 게 자연이었다. 사족을 달자면 본각 스님은 전국비구니회관 법룡사에서도 일회용품 안 쓰기 운동에 열심이다.  
금륜사 현 주지 효욱 스님 말씀을 빌리자면 본각 스님 주위에는 늘 쓰레기(?)가 많았다. 2010년 금륜사 불사를 회향하기 전부터 지금까지 도량 주변 쓰레기를 직접 주우며 소참법문을 하실 때가 많았다. “사는 곳에 쓰레기가 많으면 사람 성품도 올바르게 서지 못한다. 주위가 깨끗해야 맑은 사람이 된다.” 금륜사 앞산 밤나무에 밤을 떨궈 먹겠다고 극성인 사람을 보면 “나무가 떨어뜨리는 것만 주워 먹어도 되는데…” 하며 안타까워하는 본각 스님이라고. 금륜사 앞으로 난 길에 버려진 쓰레기도 본각 스님 눈에 띄면 자취를 감춘다. 
아니나 다를까. 금륜사를 찾은 날, 사중스님들이 마스크와 장갑으로 무장(?)했다. 포행 나서는데 자못 비장미까지 흘렀다. 산비탈에 올라 누군가 나뭇가지로 덮어둔 쓰레기를 꺼냈다. 준비한 쓰레기통에 나눠 담았다. 전기밥솥, 플라스틱 용기, 냄비 등 가전용품부터 각종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왔다. 버려진 우산도 눈에 띄었다. 흙과 가까워지려고 금륜사 인근 주말농장을 하는 사람들의 민낯이었다. 스님들은 힘겹게 쓰레기를 수거해 절 뒷마당에서 분리수거까지 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고 알아주지도 않는다. 그래서 녹색사찰 금륜사 사중스님들은 우리 동네 ‘그린 히어로’다.
‘그린 히어로’들이 바꿔 나가고 있는 금륜사. 부처님오신날 관욕단 장엄에 썩지 않는 꽃꽂이 용품인 오아시스 대신 대나무를 활용했고, 택배 비닐포장지와 우편물에 붙은 라벨이나 플라스틱까지 일일이 떼서 분리수거한다. 10월에 한 번, 안 쓰는 물건을 사고파는 장터를 열고, 집마다 안 쓰는 쇼핑백을 수집해 재사용한다. 한 달에 한 번 팔관재계 계첩 읽으며 하늘과 땅을 더럽히며 살아온 어리석음을 참회하고, 모든 생명이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감사하며, 평화롭기를 발원하는 마음들…. 거울은 절대 먼저 웃지 않는다고 했다. 녹색사찰 1호 고양 금륜사 경내 석불에 석양이 내려앉았다. 부처님 미소가 빛났다.     


글. 
최호승
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