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 광배의 비밀

강우방의 자전적 에세이

2020-03-31     강우방

『한국미술의 탄생-세계미술사 정립의 서장』은 실제로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했는지 구체적으로 작품들을 분석해 가면서 설명하기로 한다. 2000년부터 학문적 변화가 서서히 일어나 7년 만에 『한국미술의 탄생』이란 저서가 나온 것은 이미 ‘세계미술의 탄생’을 넘어 ‘인류미술의 탄생’을 예고한 것이었으며, 지난 2020년 1월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렸던 <강우방의 눈, 조형언어를 말하다>는 그 과정을 증명하는 미증유의 대규모 개인전이었다. 미술사학자로서 개인전을 연 것은 내가 처음이며 더구나 두 번째 전시여서 사람들의 관심이 컸다. 전시에 맞추어 낸 저서인 『강우방의 눈, 조형언어를 말하다』에서 다룬 인류의 조형 예술품들은, 모두 잘못 알고 있거나 무엇인지 몰라서 동서양의 어느 학자들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지만 아무도 그런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무엇을 알고 있으며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동양은 물론 서양의 누구도 보지 못하고 그 상징을 읽지 못했으므로 선종(禪宗)의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세계이기도 한 경지이며 한 번에 보이지도 읽히지도 않는다. 언어도단이란 말은, 궁극적인 진리는 언어가 모두 끊어진 경지라는 말이다. 옛사람들이 문자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한 진리를 조형언어로 표현했음을 처음 밝혔으니 세기적인 사건이라고 확신한다. 


불교학자들은 문자언어로 된 경전을 중하게 여긴다. 평생 깨달은 경지를 설했던 세존께서도 마지막에는 한 마디도 설한 적이 없다고 말했는데 비록 선가의 말이라 하나 새겨들을 만하다.  문자언어만으로 궁극의 진리를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나는 불교 예술품을 연구하며 그것들이 불교를 넘어 모든 종교의 절대적 진리를 표현하고 있되 문자언어가 전달하고자 하는 진리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냈다. 즉 문자언어에 상대하는 조형언어를 극적으로 찾아냈다. 이 연재는 그 과정을 찾아내는 내용이 될 것이며, ‘불립문자(不立文字)’에 비견되는 ‘침묵의 조형언어(造形言語)’라고 감히 말하고자 한다. 

그림1 고구려 벽화에 보이는 기(氣)표현의 다양한 횡적(橫的) 전개 원리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는가.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대학원의 초빙교수로 강단에 서면서 착수한 첫 연구가 불상의 광배(光背)였다. 용어의 연원은 알 수 없지만, 진리의 빛이란 말과 관련지어 지은 말 같다. 이상하게도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불꽃무늬라 부를 뿐, 광배에 대한 논문이 없었다. 불상을 연구하며 광배를 모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림2 고구려 벽화에 보이는 기(氣)표현의 다양한 횡적(橫的) 전개 원리

 

어떻게 연구를 시작해야 하는가가 고민이었다. 당시 나는 텔레비전에서 충격적인 9·11테러를 접했다. 그 사건 일주일 후 미국에서는 내가 전시 기획자로 참여한 <고대 동양 불상전>이 열릴 예정이었고, 전시에 앞서 계획된 심포지엄에 논문만 보냈다. 그때 발표하려고 준비한 논문은 지금 찾을 수 없다. 불상 전시회 관련이었을 것이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고구려 벽화에서 찾아낸 영기문(靈氣文)을 다룬 것만은 틀림없다. 그 무엇인지 모를 기호들을 ‘텔레파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고구려 벽화의 무엇인지 모를 조형들을 처음으로 해독하려고 시도했던 것이며 오리무중 상태에서 그래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화두처럼 붙들고 있다가 불상 광배 연구를 시작한 것이다. 


2002년 9월 발행된 『미술사 논단』에 발표한 논문을 찾아보니 이미 조형언어를 찾아가고 있음을 알았다. 20년 만에 찾아 읽어보니 그 서두는 다음과 같다.


“예술품을 볼 때 생명력을 느낀다. 위대한 작품일수록 강한 생명력이 느껴지며 오래도록 우리의 마음을 끈다. 말하자면 예술품은 공간적으로 생명력이 발산하는 자장(磁場)을 폭넓게 형성하며 위대할수록 자장의 범위는 무한대로 확장된다. 동시에 시간적으로는, 지속적으로 작용하여 미래로 갈수록 생명력은 강하게 작용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품은 온 인류의 것이며, 영감의 영원한 원천이 된다. 그러면 예술품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예술품은 그것을 만든 예술가의 자기실현이며 동시에 그것이 만들어진 시대정신의 구현이다. 예술가의 정신과 시대의 정신이 위대할수록 예술품은 위대해진다. 따라서 위대한 예술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당시 작가나 시대가 도달했던 만큼 우리가 정신적으로 성숙해져야 한다. 한편 감성은 예술창조의 원동력이므로 우리는 성숙한 감성을 갖추어야 한다. 과학자도 감성을 갖추어야 창조적 이론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예술작품이 형성하는 자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으며 그때 비로소 예술품을 이해하며 기뻐할 수 있다. 그래야 작품을 사랑할 수 있으며, 마침내 기쁨과 행복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가질 수 있다. 정신이 위대할수록 예술작품의 생명력은 강하게 작용하고, 생명력이 강할수록 예술작품은 아름답게 보인다. 그리고 예술가가 천부적이어야 하듯 예술품을 이해하는 사람도 어느 정도 천부적이어야 한다. 이러한 생명력이나 정신이 바로 이 논고에서 다룰 기(氣)다. 이상이 한국의 불교미술을 연구하면서 지니게 된 예술 및 예술품에 대한 나의 새로운 관점이다. 예술에 있어서 기운생동(氣韻生動)이란 표현 방법은 동양화에서만 중요시되는 것이 아니다. 동서양의 모든 장르에 적용된다.” 

그림3 우리나라 삼국시대 불상 광배의 기(氣)표현의 원리

 

이처럼 나의 목소리는 전과 달라 있었다. 학문의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자장이란 고구려 무덤벽화에서 체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종교미술에서 어떠한 미적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가. 불교미술의 핵심인 불상은 불신(佛身)을 주체로 하여 광배와 대좌로 구성되어 있으나 그 어느 하나 풀린 것이 없음을 알았다.

사진1 고구려 연가(延嘉) 7년명 금동여래입상 | 6세기
사진2 고구려 영강(永康) 7년명 금동 광배 | 6세기
사진3 백제 석조 광배 부분 | 7세기

 

결국 고구려 벽화 전체를 그 당시 1년 동안 살펴보았음을 알았고, 그 결과 불상 광배를 풀어나가기 위해 이미 조형언어 법칙을 찾아냈음을 알고 새삼 놀랐다. 이미 그 당시 제1영기싹의 중대함을 인식하고 있었다. 아직 ‘영기문‘이나 ’영기화생’이란 말은 만들지 못하고, 따라서 제1영기싹, 제2영기싹, 제3영기싹이나 보주 등을 아직 알지 못하여 용어도 만들지 못했던 것을 알았다. 그러나 조형언어의 기본적 전개를 어느 정도 찾아내었고, 그것으로 불상 광배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인류 문화사에 큰 변혁을 일으킬 징후가 이미 그 논문에 잉태하고 있었다. 당시 쓴 논문에서 몇 가지 작성한 조형언어의 전개 방법을 정리한 것을 싣는다. 물론 그때는 내가 조형언어를 찾아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정리한 세 가지 도면이 각각 3페이지 차지할 것이나 매우 중요한 출발점이고 아직도 유효한 것이어서 싣기로 했다. (그림 1, 그림 2, 그림 3) 그리고 삼국시대의 금동불의 광배가 풀리고 있음을 자신했다. (사진 1, 사진 2, 사진 3) 광배의 무늬는 불꽃무늬도 빛도 아니고 강력한 기의 표현, 여래와 보살로부터 발산하는 기의 표현임을 알았다.     

 

강우방
1941년 중국 만주 안동에서 태어나, 1967년 
서울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 미술사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과 국립경주박물관 관장을 역임하고 2000년 가을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로 초빙돼 후학을 가르치다 퇴임했다. 저서로 『원융과 조화』, 『한국 미술, 그 분출하는 생명력』, 『법공과 장엄』, 『인문학의 꽃 미술사학 그 추체험의 방법론』, 『한국미술의 탄생』, 『수월관음의 탄생』, 『민화』, 『미의 순례』, 『한국불교조각의 흐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