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잡한 일상에 쉼표 하나, 스님과 함께 걷다. 삼척 천은사 주지 동은 스님

특집 | 열려라, Six-Sense[六根] | 숨겨진 길, 포행

2020-03-31     불광미디어

 

예부터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쳤으며, 사람은 걸었다.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언제부터인가 필수였던 걷기는 선택이 됐다. 사람은 걷기를 멀리하게 됐다. 분초를 다투는 시대가 오자 기차, 자동차가 사람의 발이 됐다. 걷는 시간보다 앉는 시간이 많아졌다. 의자에 앉아 공부하고 업무를 처리하며 밥을 먹고 졸기도 한다. 운동 부족과 비만 등 건강상 문제가 생겼다. 사람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걷기는 다시 필수가 됐다. 
전국 각지의 명산에는 트레킹 코스와 올레길, 둘레길이 생겼다. 1분만 투자해 인터넷을 검색하면 풍광 좋은 길 수십 개가 나온다. 길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길이 생겼다. 하지만 묻는다. 길은 넘쳐나지만 정작 길을 걷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어디로 갈 것인가, 왜 걷는가, 색다른 길은 없을까? 비밀스러운 길이 있다! 스님들이 즐겨 걷는 포행길이다. 행선(行禪)이라는 거창한 말을 붙이지 않아도 걷기는 비움이자 쉼이다. 

바쁜 일상에 번잡한 마음에 쉼표 하나 
찍어본다. 삼척 천은사 주지 동은 스님과 숨겨진 길을 밟으며 내 마음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동행은 언제든 환영이다. 

|    겨울비 맞으며 걷는 
포근한 ‘동안(動安)길’

“장삼이 젖기라도 하면…, 한기라도 들면 안 되는데…. 포행 괜찮을까요?” 
걱정부터 늘어놨다. 동은 스님은 괜찮다며 ‘빗님’에게 고마워했다. 생명을 길러내는 비라며 ‘님’자를 붙인다고 했다. 간간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걷는 포행도 좋다면서 스님은 앞장서 걸었다. 걱정이었던 비가 봄 재촉하는 운치 있는 ‘빗님’이 되는 순간이었다. 
스님의 비밀스러운 포행길 이름은 ‘동안(動安)’이다. ‘동안’은 고려말 문신이자 민족의 대서사시 『제왕운기(帝王韻紀)』를 저술한 이승휴(李承休, 1224~1300)의 자호다. 스님은 “평생 직언으로 파직당하는 일이 많아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당신을 ‘움직이는 게 편하다’고 하시며 쓰신 호”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공양을 마치면 꼭 이 길을 걷습니다. 
발바닥으로 흙을 느껴보고 새소리를 들으며 초목과 꽃을 마음에 담지요.


동안길은 천은사 영월루에서 이승휴의 사당 동안사(動安祠)로 내려가는 길에서 시작했다. 동안사 뒤로 난 길이 바로 스님의 포행길이었다. 스님은 천천히 걸으면 오가는데 40~50분쯤 걸리는 거리라고 했다. 두 사람 정도 나란히 걸어도 좋은 폭이었으며, ‘빗님’에 살짝 젖어 촉촉한 땅은 부드럽고 포근했다. 맨발로 걸어보고 싶은 유혹을 간신히 떨쳐냈다. 
“공양을 마치면 꼭 이 길을 걷습니다. 발바닥으로 흙을 느껴보고 새소리를 들으며 초목과 꽃을 마음에 담지요. 나를 괴롭히는 현실적인 문제도 불현듯 답이 떠오르곤 해요. 걸을 땐 걱정을 떠올리지 마세요. 지금, 이 순간 자기 앞을 스쳐 지나가는 자연의 여러 모습을 놓치고 맙니다. 저기, 보이나요? 어제는 보이지 않았던 상사화가 하룻밤 사이에 땅 위로 푸른 줄기를 뻗고 있습니다. 땅이 굉장히 촉촉한데 느껴지나요? 저 나무는….”
질문 하나 던지고 다음 질문을 생각하던 찰나, 스님 말씀은 마음을 현재로 되돌려놨다. 어쩌면 질문은 쓸데없는 행위였는지도 모른다. 내려놨다. 스님이 매일 안부를 묻는다는 나무, 초록 줄기를 뻗어 올린 상사화, 땅 위에 흩뿌려진 낙엽, ‘빗님’에 젖은 흙, 약간 거칠어지는 숨소리 등등. 걸으면서 모든 감각이 자연스럽게 현재에 집중했다. ‘걸으면 (마음이)평안하다’는 스님 말씀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    “글로 배우지 마세요, 걸으세요”
동안길 걷고 난 뒤 스님의 처소 수연재(隨緣齋)에서 다탁을 가운데 두고 보이차를 마셨다. 포행 뒤 차를 즐기는 스님의 루틴(Routine, 습관적인 동작이나 절차)이다. ‘인연을 따르는 집’이라는 처소 이름처럼 물 흐르듯 다시 길과 포행으로 대화 주제가 옮겨갔다. 
“사람마다 앞에 놓인 길이 다르죠. 출근길도 있고 퇴근길도 있으며, 출가수행자로 향하는 길도 있어요. 포행(布行)이란 말은 절에서 스님들이 쓰는 말입니다. 산책이나 보행이라고 해도 되는데 왜 굳이 ‘펼 포(布)’자를 썼을까요. 열심히 수행해서 중생을 널리 제도하겠다는 뜻도 담긴 겁니다. 걷기를 수행으로 보는 거죠.”
걸으면서 화두를 들 수도 있고, 발에 느껴지는 촉감과 이때 일어나는 마음을 알아차리는 명상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스치는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고 새소리에 귀가 즐겁고, 꽃과 나무의 향기가 청량하다면 온전히 그 순간에 존재하는 자신을 깨닫는 체험도 가능하다는 게 스님 말씀이다. 
“목적지를 정하고 걸어야겠다 생각하면 여러 가지 자료를 봅니다. 사진도 보고 글도 보고 정보를 수집하는 거죠. 하지만 정보일 뿐입니다. 길이 아니에요. 직접 걷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걷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고 가시에 발바닥이 찔릴 수도 있죠. 그러면서 길과 걷기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수행도 인생도 마찬가지에요. 그때 ‘내 것’이 됩니다. 월정사에서 무릎 깨지면서 끝까지 삼보일배로 적멸보궁에 다다른 행자들 눈물의 뜨거움은 당사자가 아니면 모릅니다.”
걷지 않으면 말짱 헛것이다. 스님의 지론이 “길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걷는 자의 몫”이다. 

 


거문고 줄을 너무 팽팽하게 당기면 끊어지고 맙니다. 
아주 느슨하지도 않으면서 팽팽하지도 않고 소리를 잘 나게 하려면 이완이 필요해요. 


|    발에 가시가 들어와도!
동은 스님은 예나 지금이나 걷기 마니아다. 출가 전 이야기다. 청년은 군대에서 완전군장 30km 산악구보 선수로 뽑히기도 했다. 방황도 걸으면서 했다. 길어야 2~3년 더 살 수 있다는 의사의 백혈병 진단이 청년을 갈림길에 서게 했다. 1985년이었다. 오대산으로 걷고 또 걸었다. 출가초발심은 부처님과 약속이었다. 
“못나고 억울한 중생, 운명이란 그물에 걸려 허우적거리다 부처님 품으로 들어왔습니다. 출가수행 인연공덕으로 병 나으면 남은 생 덤으로 생각해 하프고 힘든 중생을 위해 살겠습니다.”
어쩌면 스님에게 길은, 인연의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 걷기 탓인지 출가수행자의 길을 걸어서인지 확실친 않지만 스님의 삶은 계속되고 있다. 월정사 단기출가학교 초대 교장으로서 맨발 탁발체험을 고안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미얀마 마하시수행센터서 공부할 때 따라 나간 새벽 탁발에서 착안했다. 
“노스님이 앞장서고 20~30명이 뒤따랐습니다. 발우 들고 조각난 돌이 어디 갈려있는지도 모를 시골길과 생선가게 앞 등 중생이 사는 길을 맨발로 걸었죠. ‘부처님께서는 평생 맨발로 이런 길을 걸으셨구나.’ 발바닥이 날카로운 돌조각에 찔려 피도 났지만 그때 느낀 환희심은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포행과 걷기, 하나 덧붙여 순례를 생각할 수 있다면 스님은 말보다 눈으로 보길 권했다. 2017년 방영된 KBS 대기획 ‘순례’다. 이 다큐는 ‘안녕, 나의 소녀시절이여’ ‘신의 눈물’ ‘집으로 가는 길’ ‘4,300km 한 걸음 나에게로’ 등 총 4부작이며, 영화로도 나왔다. 티베트 한 가정의 장녀 16살 ‘쏘남 왕모’가 행복한 삶을 찾아 출가를 고하고 순례 ‘패드 야트라(발의 여정이라는 뜻)’를 하는 이야기가 뛰어난 영상미와 함께 펼쳐진다. 

|    포행길 끝에 부처님 있다면 금상첨화!
동은 스님은 공부할 선방을 물색할 때 꼭 먼저 살피는 게 있다. 바로 포행길이다. 그만큼 스님에게 걷기는 필수다. 좌선(坐禪)도 좋지만 몸이 조금 불편한 것도 이유다. 무릎과 허리가 좋지 않아 앉는 것보단 자연을 벗 삼아 조용히 걸으며 공부를 챙기는 포행이 잘 맞아서다. 
스님에게 걷기 좋은 포행길 다섯 곳 추천을 요청했다. 일반인에게도 편안한 길과 가파르지만 걸어볼 만한 길을 적절하게 섞어서 추천했다. 순서대로 사찰만 나열하자면 해인사, 월정사, 백장암, 봉암사, 도솔암이다. 
해인사 선방 뒤로 난 길에서 마애불로 향하는 포행을 첫 번째로 꼽았다. 해인사 승가대학 재학 중이던 스님이 연골이 찢어진 무릎을 부여잡고 ‘졸업 전 꼭 마애불을 참배하겠다’는 원력으로 걸었던 길이다. 2km 거리에 오르막도 있지만 험하지 않아 걷기 좋은 길이라고. 두 번째는 전나무숲길과 상원사에 이르는 옛길을 복원한 월정사 선재길이다. 황톳길을 조성해 흙의 감촉을 맨발로 느낄 수 있다. 추천 이유는 가파르지 않고 깨끗한 천혜의 자연이라서다. 
백장청규로 유명한 남원 백장암에서는 옛날 백장암 스님들이 동네 장을 보러 오갔던 길이 포행길이 됐다. 한 사람만 걸을 정도의 폭은 오롯이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선사해 좋단다. 백장암에 가면 해우소 ‘다불유시(多佛留是, 부처가 머무는 곳)’를 놓치지 말길. 해우소의 영어표기 ‘더블유시(WC)’를 한자로 바꾼 스님들의 센스가 돋보이는 곳이다. 1년에 한 번 산문을 연다는 문경 봉암사도 계곡을 옆에 끼고 마애불로 가는 길이 포행에 좋다고 추천했다. 마지막으로 지리산 해발 1200m고지에 있는 함양 도솔암은 오르는 길 자체가 걷기수행이자 포행이라고 했다. 오르면 천왕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나무 중에 귀족이라 불리는 자작나무가 일품이다. 물론 동은 스님의 해석이다. “귀족은 남작, 백작 하면서 ‘작’을 붙이는데 자작나무니까 나무의 귀족”이라며 웃는다. 
보이차가 식어가고 사찰 특식 채식라면이 익어갈 무렵, 스님이 마지막 말을 건넸다. 격무에 시달리며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를 위한 위로였다. 
“거문고 줄을 너무 팽팽하게 당기면 끊어지고 맙니다. 아주 느슨하지도 않으면서 팽팽하지도 않고 소리를 잘 나게 하려면 이완이 필요해요. 걷기라는 방편으로 균형을 잡을 수 있습니다. 땀 흘려 걷고 퇴색한 암자 툇마루에 앉아 땀을 식힐 때 문득 들려오는 풍경소리를 들어보세요.”    
 

글. 
최호승
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