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볼 일 없는 그대, 오늘부터 반짝이는 1일

특집 | 열려라, Six-Sense[六根] | 별이 쏟아지는 밤에

2020-03-31     허진

집 앞 화단에 핀 꽃, 깊게 주름진 어머니의 눈가 등 모든 시각 정보가 마음을 울리는 버튼이 될 수 있다. 너무 일상적이어서 의식하지 않고 지나쳐버릴 뿐이다. 너무 흔해서 사람들 관심 밖으로 밀려난 것이 또 있다. 바로 언제나 하늘에 빛나고 있는 별이다. 그런데 바쁜 삶에 치여 ‘별 볼 일 없이’ 살던 사람들도 어쩌다 별 볼 기회가 있으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소원을 빈다. 잠시 하던 걸 멈추고 고개를 들어 별을 보자. 별 볼 일 없는 그대, 오늘부터 반짝이는 1일이다.

 

사진 | 중미산 천문대 제공

 

|    동심으로 돌아가는 곳, 중미산 천문대
서울에서 1시간이라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가장 많은 별을 볼 수 있다는 말에 기대를 품고 중미산 천문대로 향했다. 구불구불 길을 거쳐 산 중턱에 있는 중미산 천문대에 도착하자 기분 좋게 차가운 공기가 코에 훅 들어온다. 빛도, 소음도 없는 이곳에 고립된 듯한 느낌이 나쁘지 않다. 멋진 광경을 미리 봐버리는 것이 아까워 일부러 고개를 들지 않으려 노력하며 천문대 건물에 들어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영향으로 방문객이 거의 없을 거란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토요일 저녁 8시. 함께 별자리 여행을 떠날 적잖은 방문객이 카페처럼 꾸며진 아늑한 대기실 안에서 함께 온 가족, 연인, 친구들과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고 있다. 별자리 여행을 앞둔 방문객들의 얼굴 속엔 설렘이 가득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별 관측에 앞서 강의실에서 별에 관한 짧은 선행학습을 시작했다. “별은 왜 모두 ‘점’ 모양일까요?” 웅성웅성 떠들던 사람들이 교육을 맡은 천문대원이 던진 질문에 조용해진다. 정답은 “너무 멀리 떨어져서”다. 별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탓에 모두 ‘점’ 모양으로 보이지만, ‘점’ 모양이 별의 실제 모습은 아니라고 한다. 문득 세상 만물의 모습은 정지·고정된 모습이 아니라는 불교의 가르침이 뇌리를 스친다. 이어 천문대원은 우리가 지금 보는 별은 사실 먼 과거 모습일 수 있다는 재밌는 사실을 알려준다. 예를 들어 440광년(빛의 속도로 1년이 걸리는 거리를 나타내는 단위, 1광년=약 10조km) 떨어진 별에서 출발한 빛은 440년만큼의 시간이 지난 후 우리의 눈에 들어온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별이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먼 과거에서 보낸 메시지라고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벅차오른다. 마지막으로 오늘 관측할 별자리 이름과 모양을 익힌 후 천문대원 안내에 따라 천문대 옥상으로 이동했다.

 

증미산 천문대

 

|    하늘을 수놓은 아름다운 그림들
칠흑 같은 어둠 속 영롱하게 빛나는 건 하늘의 별뿐이다. 빛 공해를 만드는 스마트폰 사용도 조심스러워진다. 천문대원이 캄캄한 하늘에 지시용 레이저 포인터로 별과 별 사이를 연결하며 별자리들을 소개하자 여기저기서 “와” “저기 있다” 하는 탄성이 들린다. 개중에 별자리를 잘 못 찾는 사람들도 보인다. 기자 역시 그중 하나다.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은 국제 천문 연맹에서 정한 표준 별자리 기준에서 보면 큰곰자리의 엉덩이와 꼬리 부분에 해당한다는 천문대원의 설명을 듣고서야 더는 일곱 개의 별을 국자 모양으로도, 큰곰의 엉덩이 모양으로도 집착하지 않기로 한다. 실체 없는 말에 집착해 별자리를 찾느라 별 자체의 아름다움을 놓칠 수 없지 않은가. 잘 보이지 않는 별자리 수만큼 하트 모양, 강아지 모양, 나무 모양 등 직접 별자리를 만들며 하늘을 수놓은 아름다운 그림들을 눈에 담는다.
이제 천체망원경으로 별을 더 자세히 볼 차례다. 망원경은 세 대가 있고, 천문대원이 오리온성운, 플레이아데스성단, 알마크 등을 볼 수 있도록 여러 차례 세팅해준다. 차례를 기다려 천체망원경에 눈을 들이대자 지구과학책에서나 봤던 멋진 광경이 작은 눈 안에 들어온다. 별을 보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방문객들을 여러 번 지켜봤을 천문대원에게 “왜 사람들은 별 보는 걸 좋아할까요” 하고 묻자 덤덤한 대답이 돌아왔다. “평소에 별 볼 일이 없으니까 좋아하는 거 아닐까요”

|    사랑하는 사람 눈에 보내는 별 하나
별자리 여행 프로그램이 끝날 때 즈음 되자 아쉬운 마음에 습관적으로 스마트폰 카메라를 찾았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 아름다운 광경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그 마음을 알아차린 듯 천문대원은 스마트폰 카메라로 별 찍는 ‘꿀팁’을 알려준다. 스마트폰 카메라 설정 중 ‘프로’ 메뉴에 들어가 ISO를 800으로, 조리개를 10으로, 타이머를 10초로 맞춘다. (스마트폰에 프로메뉴가 있어야 가능하다.) 스마트폰 렌즈를 별 쪽으로 향하게 하고 평평한 곳에 둔다. 촬영 버튼을 누르고 10초를 기다리면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었다고 믿지 못할 고품질의 사진이 나온다. 주의할 점은 손으로 카메라를 들고 찍으면 안 되고 거치대 등에 고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촬영한 별 사진을 바로 가족과 친구들과 공유하자 별을 처음 본 사람처럼 반응이 뜨겁다.
별은 언제나 하늘에 빛나고 있다. 심지어 낮에도 별은 우리 머리 위에 떠 있다. 별은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고개를 들어 별을 바라보며 꿈을 키우고, 소원을 빌고, 사랑을 맹세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자고 스스로 다짐하기를. 그리고 별 자체의 아름다움을 눈에 담아주기를.    

 

 


월간 「불광」이 소개하는 ‘눈[眼]이 즐거운 곳 3선’

때로는 일상에서 접하기 힘든 시각 정보로 눈과 마음에 신선한 자극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서 선정한 ‘눈이 즐거운 곳 3선’, 특별한 경험을 선사할 전시가 여기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1.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
국립현대미술관 ‘기억된 미래’
고종황제 서거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대한제국 시기의 미래 도시를 향한 꿈을 세계 건축가들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전시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및 서울관 야외 공간의 역사적 배경과 독특한 공간의 특성을 바탕으로 설치 작업을 시도하여 우리 근대 유산의 의미를 되짚어보기 위해 기획됐다. 역사적 공간에 담긴 시간을 다루고 있는 다섯 건축가 팀의 작품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특별한 시공간을 펼쳐 보인다.

기간  ~ 2020.04.05. (일)
위치  서울 중구 세종대로(덕수궁), 서울 종로구 삼청로(서울관)  |  문의  02-2022-0600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2.    자연에 대한 눈부신 찬사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모네에서 세잔까지: 예루살렘 이스라엘 박물관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걸작 展’
세계적인 수준의 종합 박물관인 예루살렘 이스라엘 박물관 컬렉션에서 엄선한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106점의 명화를 선보인다. 특히 인상파의 창시자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의 최고 걸작으로 잘 알려진 수련 연작 중 그가 시력을 잃기 전 완성한 <수련 연못 (Pond with Water Lilies), 1907>이 국내에 처음으로 공개된다. 최근 미디어 아트에 편중된 전시추세로 회화 작품을 그리워한 한국 전시 관람객들과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이 삶의 휴식과 같은 작품을 통해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기간  ~ 2020.04.19. (일)
위치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  문의  02-580-1300

 

어둠속의 대화 (주)엔비전스 Dialogue in the dark

3.    눈을 감아야 보이는 것들
북촌 ‘어둠속의대화’
때로는 시각을 포기해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이 전시는 한 마디로 ‘어둠 속 여행’이다. 전시의 모든 과정은 빛이 차단된 완전한 암흑 공간 속에서 100분간 전문 로드 마스터(길잡이)의 인솔 아래 이뤄진다. 시각이 차단된 ‘어둠’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무의식 속에 잠재된 상상력과 창의성을 끌어내어 평소에 모르고 지나쳤던 걸 보게 된다. 전시 내용을 자세히 알고 가면 감동과 재미가 반감될 수 있으니 아무 정보도 찾아보지 말고 그냥 가는 걸 추천한다.

일시  상설 전시, 평일 11:00~20:00 (월요일 휴관), 주말 및 공휴일 10:00~19:00  |  위치  서울 종로구 북촌로  |  문의  02-313-9977

 

글. 
허진
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