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성학] 가정의 두 얼굴

지혜의 뜰, 삶의 여성학

2007-09-16     관리자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은 우리가 언제나 돌아가고 싶고 생각만 해도 그리운 살뜰한 곳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가정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얼굴 - 즐겁고 편안하고 서로 위해 주는 행복한 곳 만을 생각하고 싶어 한다. 가정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은 부부간의 사랑싸움이며 또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그러는 것이며 살다가 보면 '그럴 수도 있다'는 식으로 흘려버리고 행여 '행복한 가정'의 이미지가 흐려질까 두려워하며 가정폭력을 수수방관하기도 한다. 가정폭력은 즐거운 가정과는 거리가 먼 또 하나의 얼굴 - 폭력과 고통, 증오와 살인으로 일그러진 상처투성이의 얼굴이다.
고통스런 가정은 두 얼굴을 가진 가장에 의해 만들어 진다. 한 남자의 두 얼굴, 그것은 남 앞에서 친절하고 인격자연하는 정상적인 사회인인 반면 집에 들어오면 가족을 학대하고 아내를 구타하는 폭군으로 변화한다. 이같은 이중적인 인격을 두고 심리학자 레오노르 워커 박사는 지킬박사와 하이드에 비유하고 있다.
며칠 전 신문지상에는 가정폭력에 희생된 비운의 모녀에 관한 슬픈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칠순에 접어든 친정어머니가 상습적 구타자인 사위가 흉기를 휘두르며 딸에게 달려드는 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딸을 보호하려다가 사위를 죽인 기막힌 사연이었다. '92년 보건복지부가 조사한 것을 보면 전국 기혼여성의 61%가 남편에게 구타당한 경험이 있으며 이중에서 15%는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위협을 당한 적이 있다고 하니 무서운 일이다. 뿐만 아니라 구타 남편의 사회적 지위를 보면 각종 직업이 다 있지만 그중에 경찰도 있고 교수, 장교, 실업자, 의사, 성직자 등 사회지도층이 있는가 하면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68%(김광일 연구)나 된다고 하니 더욱 놀랍다.
어머니를 때리는 아버지를 제지하다 못해 죽이게 된 아들 이야기도 있다. 친부를 죽였다는 그 아이는 별명이 '희생 김'이라고 할 정도로 착한 아이인데 어떻게 아버지를 죽였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담당형사는 말했다.
평생 구타한 폭력남편을 더 견디지 못해 순간적으로 남편을 죽인 매맞는 여성의 기막힌 사연도 있다. 이 아주머니가 파출부로 일을 나간 집주인은 팔 년 간 자기집에서 성실하게 일한 그 여성을 변호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내고 상담소로 재판정으로 구명운동을 하기 위해 애쓰는 것을 보았다.
남편을 죽이는 상황에 몰린 매맞는 아내, 폭력을 휘둘러온 아버지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아들, 폭력에 떠는 딸을 구하기 위해 사위를 죽이게 된 할머니의 절박한 심정을 떠올려 보면 살인으로 나타난 결과만을 문제 삼아야 할 것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다. 그렇게 되기까지 우리 이웃은 무엇을 했으며 경찰은 왜 그들을 도와줄 수 없었는지?
그리고 가정 안에서 막무가내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폭력을 예방하고 제재할 수 있는 법이 우리 나라에 왜 없는지(다른 나라에는 있다는데) 정말 답답하다. 15대 국회가 개원하면 여성의 전화가 주축이 되어 여성단체에서 가정폭력 예방을 위한 '가정폭력 특별법'을 국회에 상정한다고 하는데 이 기회에 꼭 통과되어 여성과 어린이, 노인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하겠다.
이런 끔찍한 비극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내 여편네 내가 때리는데 간섭하지 말라'는 태도나 가정문제를 부부싸움으로 치부하고 내버려두고 구경만하는 우리들의 고리타분한 의식을 바꾸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남편의 폭력으로 가정이 깨어지고 집밖으로 나도는 청소년문제가 생기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만신창이가 된 여성이 제대로 살 수 조차 없는데다 살인까지 일어나는 상황은 이미 가정 내 문제의 범위를 벗어나서 심각한 사회문제로서 우리 모두가 함께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불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전생에 무슨 업보가 쌓여 있길래...'라든가 '전생 인연, 인연 맺히는 것 무섭다'라는 생각을 한다. 인연법으로 생각하면 언뜻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이런 문제로 상담하면서 느끼는 것은 때리고 맞는 비참한 구타관계를 인연과로 풀어 상담하면 피해자를 도울 수 있는 길이 없는 경우가 많아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 당신이 전생에 저 사람에게 죄를 지었으니 이생에서는 당신이 맞고 살 수밖에 없다는 처방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피해자에게 현실적으로 너무 절망적이고 잔인한 답이 될 것 같아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언젠가 여러 종단의 성직자가 모인 자리에서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다. 나중에 자유토론 시간에 이 문제를 가지고 의견을 나누어 보았다. 첫째 해석은 매맞는 여성이 전생에 자기 남편에게 해를 주었기 때문에 상대가 구타하는 것이므로 이생에서 빚을 갚기 위해서는 매를 얼마를 때리든 그 빚이 다할 때까지 맞아주어야 한다는 단답형 해석이었다.
둘째 해석은 그 여성이 빚을 진 것은 분명한데 갚는 방식에 있어서 위의 방법과 달랐다. 그 자리에 앉아서 그냥 맞는 것은 상대로 하여금 두 사람 간 인연의 악순환의 고리에 말려들게 하고 죄를 짓게 하는 것이므로 가능한 한 피경법을 쓰고 상대를 위해 복을 지어 주거나 다른 곳에 보시를 하여 빚을 갚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해석이었다. 인연법이 없는 타종교의 해법은 전혀 달랐다. 한 인간이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은 큰 사랑의 법칙에 위배되는 죄라는 것이었다.
가정, 가족은 우리를 있게 하는 소중한 인연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힘찬 버팀대이고 우리를 성장시켜보고 보람을 함께 하는 터전이다. 그러한 가정에서 주먹질에다 흉기를 동원한 매질을 일삼는다는 것을 상상을 해보라. 그런 사람은 이미 스스로 '사람' 이기를 포기하고 짐승의 대열에 들어간 것이 아니겠는가. 옛날 한 농부는 밭을 가는 황소를 생각하여 황정승에게 귀속말로 일 잘하는 소 이야기를 했다는 설화도 있다. 인간적이란 말은 상대의 인격과 인권을 존중하는 태도로 말하고 행동할 때 쓰는 말이 아닌가 한다. 어떤 종교든 근본 교리는 폭력을 죄악시하고 선을 권장한다. 종교간에서 일어나는 폭력사태와 종교적인 이념 때문에 지금도 피를 흘리고 싸우는 다른 나라를 보면서 종교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종교 신자의 이름을 달고 욕설과 주먹과 흉기로 외부와 단절된 집안에 있는 자기 아내와 약한 자신을 무차별 구타함으로써 풀고자 하는 것을 푸는 비겁하고 비열한 사람은 되지 않아야겠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최소한 자신의 정신적 . 정서적인 갈등을 신앙과 종교적인 수행으로 해결하는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시집간 딸이 사위에게 맞고 집에 왔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남편은 결혼한 다음날부터 빰을 때리는 것으로 시작하여 20년을 맞고 살았어요. 이제는 더 못참겠어요. 아이들도 그렇고 이혼하고 싶은데 어떻게 먹고 살지요? 매맞는 여성들의 호소가 끊어질 날은 언제쯤일까? 종교계에서 개인 구원, 가정평화, 사회평화, 세계평화 차원에서 가정폭력 예방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지도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 것일까?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권창선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