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상담실] 어린 시절의 상처

열린 상담실 , 지혜의 뜰

2007-09-16     관리자

그녀는 매우 두꺼운 화장을 하고 있었다. 약간 부은 듯한 얼굴을 감추기 위해서인 듯 눈썹을 짙게 그렸고, 입술도 빨갛게 칠한 모습이었다. 진료실에 처음 들어와서는 말문을 열지 못한 채 머뭇거리면서 입술만 깨물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서 무엇인가 말하기 어려운 비밀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참의 침묵이 흐른 뒤에야 겨우 입을 떼었다.

"직장에 근무를 하는데 다른 직원들은 모두 대학을 졸업하였는데, 나만 고등학교밖에 나오지를 못했어요. 그런데 아무도 내가 고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했다고는 상상도 못할 거예요. 워낙 열심히 일을 하고 실적이 좋기 때문이지요. 그 때문에 월급과 수당도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월등히 많이 받고 있어요."

"그렇다면 그것은 오히려 자신에 대하여 자랑스럽게 여겨야 할 일이 아닐까요. 어떤 의미에서 학력 같은 것은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니까요. 정말 중요한 것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아닙니까?"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학벌이 좋지 않으면서 성공한 사람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주었다.

매우 유능해 보이는 젊은이들이 이와 같은 콤플렉스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을 본다. 그런데 자세한 사정을 듣고 보면 남들은 전혀 개의치 않거나, 오히려 동정을 받을 만한 일을 가지고 혼자서 괴로워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의외로 옛날부터 감추고 싶은 비밀을 따로 가지고 왔던 경우도 있었다.

말하자면 정작 감추고 싶었던 비밀은 따로 있는데, 그것을 떠올리기에 너무 괴로우니까 다른 사소한 비밀까지도 감춤으로써 덮어버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 여자의 경우는 어린 시절이었던 여섯 살 때에 일어난 사건이 문제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직업군인이었다. 아버지는 가족과 떨어져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경제적으로도 힘이 들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직장을 다녔고 아이들은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동네아이들과 어울려서 노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가운데는 중학생쯤 되는 동네 오빠들도 있었다. 하루는 그 중의 한 명이 여섯 살난 그녀를 빈방으로 불러들이더니, 옷을 강제로 벗기고는 성행위를 하였던 것이다. 그 당시 매우 아팠지만 엄마에게 말을 하면 큰일이 날 것 같아서 그냥 넘어갔다고 한다.

그러나 초등학교를 들어가서부터는 그 때 일만 생각하면 너무 걱정이 되고 불안하여 공부가 안 될 지경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는 배가 조금만 불러도 임신이 아닌가 걱정을 하게 되었다. 사춘기가 되면서 성에 대하여 알게 되자 "아, 나는 이미 몸을 더럽혔구나. 나는 평생 결혼을 하지 말고 혼자 살아야 되겠구나." 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정작 자신을 성추행한 남학생을 원망하기보다는 자신이 이런 상태가 되도록까지 무심하게 내버려둔 부모님을 원망하게 되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아버지를 특히 미워하게 되어서 19세 되던 때부터 3년 동안은 아버지와 아예 말을 하지 않고 지내기도 하였다.

감추어야 할 비밀이 많은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사람을 피하게 되는 모양이다. 왜냐하면 자기도 모르게 비밀이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불안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이런 불안이 좀 더 심해지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이상하게 쳐다본다거나 자신을 보고 이상하게 수군거린다는 착각에 빠지게 될 때도 있는 것 같다.

그녀가 처음으로 직장생활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은 성실하게 근무를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동료들이 자신만을 따돌린다는 생각이 들어서 괴로워하였는데 어느날 돈계산이 맞지 않는 일이 생기자 사람들이 자신을 의심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표를 내고 말았던 것이다.

그 후부터는 자신을 자학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술만 마시면 상대방이 누구이든지 관계없이 자신의 몸을 허락하는 자포자기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낮동안에는 그렇게 얌전하고 요조숙녀였지만, 밤이 되어서 술에 취하게 되면 창부(娼婦)와 같은 행동을 하게 되었다. 그 결과 생긴 여러 번의 임신을 모두 낙태수술로써 지워버렸던 것이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진정으로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과연 무엇이 아름답고 영리한 이 여인을 이토록 불행의 굴레로 밀어넣었을까?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그녀 스스로 파멸의 길에 이르게 될 것은 명백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그 원인은 어린 시절에 받은 성적인 상처 때문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몇 명의 사람들을 보게 되면서 그것만이 원인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보다 더 깊은 뿌리는 한마디로 말해서 '외로움'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혼자 내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이 모든 불행의 싹이 트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외로움의 근원은 한창 보살핌을 받아야 할 어린 시절에 부모님의 무관심 때문에 혼자 내버려지는 데 대한 두려움이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여섯 살 때에 중학생에게 그렇게 쉽게 끌려가서 성폭행을 당한 것도 아무에게도 도움을 청할 때가 없다는 절망감이 밑바닥에 깔려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대가 발전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바빠지고 있다. 특히 맞벌이를 하는 경우 주부들은 항상 시간과 여유에 쫓기고 있다. 그러나 바쁠수록 더욱 우리의 주위를 잘 살피고 아이들을 보살펴야 할 것이다.

언젠가 필자가 아는 어느 정신과 의사가 경봉 스님을 찾아뵌 적이 있었다. 마침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마당에 나가니 경봉 스님이 새벽산책을 하기 위하여 느릿느릿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 정신과 의사도 경봉 스님의 발걸음에 맞추어서 뒤따라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경봉 스님이 뒤를 돌아보면서 "자네는 왜 그렇게 급하게 걷나!"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분명히 경봉 스님의 발걸음에 보조를 맞추어서 느릿느릿 걸었는데도 불구하고 급하게 걷는다는 꾸중을 들은 동료의사는 갑자기 영문을 몰라서 어리둥절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까, 발걸음의 속도를 말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 속의 조급함을 지적하셨다는 생각이 들어서 두고두고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가 그토록 바쁘게 일을 하고 돈을 벌려고 하는 까닭도 따지고 보면 자신과 가족이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한 목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정작 돈이나 물질을 벌기 위해서 아등바등하는 사이에 우리 아이들은 동네 한구석에 버려진 채로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린 시절에 받은 마음의 상처는 평생을 두고 아이를 괴롭히는 어두운 그림자가 되는 것이다. 누군가가 이야기했던가. 증오보다 무서운 것이 바로 무관심이라고.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권창선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