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드림(Do Dream), 트렌드를 디자인하라] 춘천에 있는 빨간 벽돌집, 그곳에 가면 한국의 나란다대학이 있다

수행공동체 ‘제따와나선원’

2020-02-20     남형권

춘천에 인도 기원정사와 나란다대학이 있다?
우리나라에 기원정사로 알려진 초기불교 성지이자 부처님이 가장 오래 머물며 가르침을 폈다는 ‘제따와나’. 일묵 스님은 이를 모티브로 부처님 본래 가르침을 지향하며 초기불교 수행도량 제따와나선원을 세웠다.

일묵 스님은 대승불교를 표방하는 한국불교 토양에 초기불교 가르침과 수행방편으로 공동체를 일궈냈다. 비결이 뭘까. 요약하자면 춘전 제따와나선원 건축미학에 드러나있다.
선원은 전통적인 한국사찰 양식을 벗어났다.

그렇다고 완전히 탈피한 건 아니다. 사찰처럼 한옥이 아니라 콘크리트 구조로 뼈대를 만들었고 기원정사 유적을 상징하는 벽돌로 옷을 입혔다. 한국사찰의 전각 배치도 고려했다. 일주문 거쳐 천왕문, 이어 대웅전등 직선방향으로 오르는 길을 고려해 선원의 주법당까지 향하는 길을 직선 대신 세 번꺾어놨다. 초전법륜지 사르나트 박물관에 있는 부처님을 고스란히 닮은 불상도 모셨다.

이쯤되니 궁금했다. 외관은 초기불교 건축양식인데 한국사찰의 전각 배치를 심어놨으니 말이다. 제따와나선원에 모여 수행하는 공동체가 어떤 가르침으로 무슨 수행을 하는지, 지도하는 일묵 스님은 어떤 생각으로 이 공동체와 선원을 이끌어나가는지 궁금즘을 가득 안고 일주문에 들어섰다.

대중수행은 무게중심 잡는 기초단계

스님은 요즘 세상살이가 힘들고 괴로우니 명상에 대한 관심이 많이 생겨났다고 말한다. 자연스 럽게 수행공동체를 향한 관심도 늘어났는데, 수행공동체는 무엇보다 수행을 효과적으로 실천하고 배울 수 있는 길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수행은 꼭 공동체에서 하는 게 좋은가.

홀로 수행하는 게 더 좋진 않을까. 입시라면 시험 치르고 점수라도 나올텐데. 수행의 진척도는 가늠할 수 없다. 자기 마음속 일이니까.
“수행을 혼자 하다 보면 자기 세계에, 또 스스로 오류에 빠질 위험이 상당히 많아요. 홀로 하는 수행이 대단하다고 생각해도 막상 대중 속에 들어와 보면 수행 단계 중 그저 한 과정에 불과하 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어느 방송에서 초보자가 카약을 탔는데 그의 굳은 의지와 다르게 무게중심이 약간만 한쪽 으로 쏠려도 배가 뒤집혀 물을 먹는 모습을 본적 있다. 스님이 말하는 수행도 그렇다. 초심자 때는 혼자서 제어하기도 객관화해서 보기도 쉽지 않다.
“먼저 공부한 스승이나 선배들 지도를 받으면 도움이 되고 지속적인 점검을 받을 수 있는 게장점이죠. 대신 홀로 수행하면 대인관계에 신경쓸 필요가 없고 자기 방식대로 자유롭게 수행할수 있는 장점이 있겠죠. 그래서 일정 시간은 같이 정진하고 또 나머지 시간은 각자 수행하는 이런 조화가 적절히 이뤄지는 방향이 좋습니다.”

일묵 스님은 출가한 지 십여 년이 흘렀을 때수행과 공부가 답답하고 잘 안 풀리고 있다는 한계를 느꼈다. 그때 본격적으로 초기불교 경전들을 접하기 시작했고 이렇게 보고만 있을 게 아니라 직접 가봐야겠다고 결심해 미얀마 파욱국제 수행센터를 찾았다. 이후 전 세계 수행공동체를 찾아 떠나는 여정이 시작됐다. 세계적인 명상 지도자 아잔브람이 있다는 호주 보디냐나, 틱낫한 스님이 세운 프랑스 플럼빌리지, 영국 아마라와띠 등에서 두루 수행했다. 다양한 세계 수행공동체 경험이 제따와나선원을 만드는 데 바탕이 되진 않았을까.
“미얀마 파욱국제수행센터에서 가장 오래 수행했는데요. 교학과 수행이 잘 연결되어 있었고 체계가 잘 정비되어 있었습니다. 수행 지도 역시 단계적으로 잘 이루어지고 수행자들이 원할 때마다 인터뷰를 통해 수행 점검을 받을 수 있었죠.

미얀마에만 머무르면 시야가 좁아지지 않을까 우려가 생겨 이후 유럽 등을 돌며 여러 곳에서 수행했고, 한국에 돌아가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수행센터를 만들어야겠다고는 생각했어요. 초기불 교를 기반으로 하되 우리나라 문화와도 잘 맞는 균형감을 가진 수행공동체를 만들고 싶었지요.”

한국불교에 뿌리 내리다

한국불교는 통불교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역사적 전통과 특수성을 한마디로 표현한 말이다. 종파, 사상과 관계없이 모두가 성불의 길로 통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래서 헷갈리는 점도 있다.

일묵 스님은 복잡할수록 본질로 돌아가서 길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처럼 모든 불교 형태가 다 있는 곳에서는 공통분모가 중요하고, 그게 개인적으로 초기불교라고 생각했어요. 사성제가 그 핵심이 라고 봤고요. 다만 초기불교 부처님 본래 가르침을 그대로 수용하되 전달하는 방식은 우리나라 전통과 이질적으로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공양도 우리나라 사찰 방식을 그대로 따라가고요. 예불도 기본적으로 한국 방식을 따르되 초기불교 경전인 니까야를 독송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스님은 초기불교가 부처님 본래 고유 가르침을 담고 있으며, 진리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변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초기불교가 미얀마에서 싹틔우면 미얀마불교, 한국에서 꽃 피우면 한국불 교가 된다고 말했다.

초기불교를 기반으로 한 제따와나선원은 자율보시와 더불어 재와 기도가 없이 오로지 법회와 수행 프로그램으로만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수행공동체가 출가자와 신도 수 감소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불교 현실을 개선하는 데 어떤 방향을 제시할 수 있진 않을까.
“미얀마와 같은 나라에서는 절에서 재를 지내진 않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도 제사라는 문화가 부처님 가르침과 썩 어울리진 않고요. 제따와 나선원은 부처님 가르침을 따라 공부하고 규율을 지키며 수행하는 도량입니다. 저는 이러한 수행공동체가 앞으로 어려운 불교 미래에 대안이될 수 있다고 봐요. 특히나 출가는 자기 인생을 거는 겁니다. 출가는 내가 내 삶을 의지할 만큼 가치가 있는지 생각하는 거잖아요. 그걸 파악할수 있는 게 법 공부이고 수행이죠. 공부를 해보니 정말 좋구나, 수행을 직접 해보고 내 괴로움을 벗어날 수 있겠다는 걸 느끼면 당연히 큰 확신이 생기겠죠. 불교가 가진 귀한 가르침이 품은 가치, 정체성을 온전히 느끼게 하는 일. 이게 진정한 전법이라고 할 때 수행공동체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스님 말대로 출가는 단순히 일시적인 흥미로 사람을 모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남은 자기 생을 거는 선택이기에 그 가치가 있는지 엄밀하게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큰 선택을 하려면 그만한 근거가 필요한 법이다. 사찰에 붙어 있는 멋진 풍광의 출가 홍보 포스터와 더불어 눈에 안 보이고 만져지지 않는 실제적인 수행 체험이 더해진 다면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출가라는 새로운 여정을 좀 더 설득력 있게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행 중심으로만 공동체를 운영하면 유지가 어렵지 않냐는 우려도 있다.

“세속적인 경영방식으로만 공동체를 운영하려고 하면 오히려 오래 유지하기 어려워요. 요즘엔 심리학자나 정신과 의사 등 재가자 중에도 유명하신 명상 지도자가 많아요. 출가한 스님이 이런 분들과 차별화될 수 있는 건 전문적으로 수행을 한다는 점, 법에 대한 이해가 깊고 좀 더 탐욕 없이 청정하게 살아간다는 점이겠죠. 제 생각에 수행공동체는 많은 분들께 법보시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어려운 사람에게 부처님 가르침 잘전해주고 잘 수행할 수 있게 도와준다면 수행 중심 도량도 큰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스님도 전문가 시대

옛날엔 경전도 대부분 한문으로 되어있었으나 지금은 다 번역되어 있고 개방된 시대이기에 스님이 재가자와 다른 어떤 전문성을 갖추지 못하면 살아남기 쉽지 않다는 게 스님 생각이다. 그래서 앞으로 스님들이 꼭 수행이 아니더라도 전문 화된 자기 영역을 잘 개발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 다고 강조한다.

일묵 스님은 초기불교가 사회에 무관심하다는 일각의 시선에 고개를 젓는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라는 근본적인 세 가지 번뇌인 탐진치(貪瞋癡) 소멸을 이야기하기에 오히려 우리 현실, 삶과 가장 밀접하다고 강조한다. “탐내고 성내고 하는 일들을 극복하는 게 얼마나 유익합니까? 자기 문제를 발견하고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방법을 제시하는 실제적인 도움에 사람들은 감응합니다. 탐진치가 버려 지는 게 깨달음이잖아요.”

스님은 진정한 수행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필요가 있다고도 말한다. 모두 부처님이 될 씨앗을 갖고 있고, 다르게 말하면 원래부터 모두 부처 님이라고 하는데 왜 세상은 이렇게 어지럽고 고통 천지일까. 부처님이 우리에게 본래 전달해주 고자 한 게 뭐였는지 끊임없이 들여봐야 한다고 재차 힘주어 말한다.

제따와나선원 수행과 교육은 체계적이라고 정평이 나있다. 이 가운데 4박 5일간 진행하는 중도수행 프로그램은 사성제와 청정한 계를 바탕으로 바른 삼매를 닦고, 바른 삼매를 기반으로 바른 지혜를 계발, 바른 해탈에 이르는 부단한 방법인 팔정도를 수행하는 게 목적이다. 이외에도 초심자와 집중수행 등 다양한 수행법석이 열린 다. 호흡을 기반으로 마음을 관찰하여, 선정을 방해하는 장애요소를 내려놓고 바른 삼매를 계발 하는 방법을 지도한다.

매주 수요일 정기법회는 물론 평일에 시간 내기 어려운 직장인들을 배려해 한 달에 한 번은 일요법 회도 연다. 친절한 지도와 고요한 분위기가 대중수행에 제격이라는 평가를 받고있다. 이런 시스템을 고안하고 정착시킨 일묵 스님은 무엇보다 현대 시대에 맞는 교육 시스템 정립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교육 시스템은 아직도 부족한듯해요. 옛날 불교 교육이 도제식이었는데 거기에 머무르면 발전이 없죠. 교육이 뒤처지고 낙후되지 않게 현시대 실제 삶에 도움이 될 수 있게끔 좀 더 개발될 필요가 있어요. 그러니 요즘엔 명상이 서양으로부터 역으로 들어오고 있잖아요. 프로그램을 체계적 으로 만들고 시대를 선도하는 교육 방식을 도입 해야 합니다. 대만 경우만 봐도 사찰이 오히려 문화를 이끌어가는 경향이 있어요. 사찰 안 학교가 제일 사회에서 앞서있기도 하고요. 부처님 가르 침은 본래 우리 삶을 어떻게 해결할지 문제잖아 요. 요즘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 쓰고 무엇 보다 부처님 가르침 핵심을 파고들 수 있는 교육을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구색 맞추기 식 커리큘럼은 아무리 다양한걸 가르쳐도 본질에 다가가지 못하고 깨달음과 울림을 주기 어렵다는 게 확고한 스님 생각이다.

살다보면 여러 가지 길을 만나게 된다. 갈래도 수천 가지다. 같은 길이 또 다른 길로 흩어지고 어디선가 다시 이어지기도 한다. 사방으로 갈라져 보이던 길들도 언젠가 목적지에서 만난다.
일묵 스님 역시 대승불교라는 한국불교 전통을 따라 출가했다. 여전히 우리나라 승복을 입고 한국불교 전통을 존중한다. 하지만 부처님 본래 가르침에 다가가고자 하는 새로운 열망이 초기불 교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전 세계 수행센터를 경험하는 길로 이어졌다. 이후 제따와나선원이 라는 단단한 초기불교 수행공동체를 일궈내며 한국불교 미래에 새로운 길을 제시해나가고 있다.

일묵 스님은 부처님 본래 가르침은 다를 수가 없다고 강조한다. 그 안에서 각자 다른 특색을 가진 공동체들이 많이 생겨났을 때 좀 더 건강하고 밝아질 한국불교 미래를 꿈꾸고 있다.

글.
남형권
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