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들] 쇼 미 더 하트(Show Me The Heart), 랩으로 펼친 반야심경의 세계

2020-02-19     허진

가수 마이다스 엑스(Midas X)

2019년 여름, ‘반야심경’ 역사상 쇼킹한 사운드가 나왔다.
한 번도 안 들은 사람은 있어도한 번만 들은 사람은 없다는 마이다스 엑스의 첫 번째 싱글 ‘반야심경’이다. ‘반야심경’ 260자를 중저음의 보컬 위에 얹어 랩으로 표현했고, ‘아제아제 바라아제’ 구간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중얼거리게 만든다. 이어 나온 두 번째 싱글 ‘금강살타 백자진언’.
한 아티스트에게서 2연타 불교 색이 짙은 음악이 나왔다.
색다른 조합에 힙합 마니아들은 ‘힙합으로 성불하자’며 응원을 보냈다. 관리가 편해서 민머리를 유지한다는 마이다스 엑스를 만나 ‘반야심경’ 랩탄생기 그리고 힙합과 불교의 상관관계, 지향하는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10년 만에 다시 살아난 음악에 대한 불씨

음악을 쉰 지 10년. 나이는 서른 중후반. 음악을 다시 시작하기엔 용기가 필요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이런 악조건에도 마이다스 엑스는 거짓말 처럼 스멀스멀 살아나는, 마음속 깊이 잠자고 있던 음악에 대한 열망을 무시할 수 없었다고 한다.
‘날고 기는 아티스트들이 많은데, 이 나이에 무슨 음악이야’라는 마음 한편의 두려운 감정을 애써 무시하고 찾아간 곳은 신촌의 한 랩 레슨실이었 다. 바로 그때 레슨 선생으로 만난 17살 어린 블라드 (Vlad of Ape X) 는 현재 마이다스 엑스 모든 음악의 프로듀싱을 담당하고 있으며 피처링도 도와주고 있다.
“랩하는 감이나 잡아보자는 마음으로 찾아간 곳에서 블라드를 만나 즉석에서 가사를 쓰고 녹음을 해봤습니다. 녹음한 걸 들어봤는데 괜찮더 라고요. 이후 블라드와 친해졌고 함께 놀면서 곡을 만들었습니다. 그 친구가 주로 음악 만들고, 제가 노래하고 랩하고. 그렇게 1집, 2집, 싱글 두 개 ‘반야심경’ ‘금강살타 백자진언’까지 내게 됐죠.”
10여 년간 꺼져있던 불씨를 어렵게 살려 음악을 다시 시작했지만, 생각처럼 따라주지 않는 대중의 반응은 상처가 됐다. 1집은 특히 반응이 적어 음악에 대한 의욕이 잠깐 시들해지기도 했다. 나름대로 반응이 좋았던 그의 2집 앨범도 들인 비용에 비해 수익이 크진 않았다고 한다. 대중의 평가는 언제나 가혹하다. 그의 표현처럼 음악을 하는 건 누구에게나 ‘무모한 도전’이다. 좋아 하는 음악을 하면서 돈까지 벌 수 있는 것, 소수아티스트에게만 해당되는 꿈같은 이야기며 그가능성을 알 수도 없는 미지의 세계다. 그럼에도 그가 음악을 하는 건 어떤 이유일까.
“사람들의 의식을 고양시키는 가사를 쓰고 싶다는 생각,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큰 것 같습니다. 제 안의 에너지를 표출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고요.”
하지만 정작 음악을 즐기고 있냐는 질문에는 자신이 없다는 그다.
“마음을 온전히 비워야 음악 하는 게 즐거울 텐데 욕심을 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마음에 욕심이 들어오는 순간 ‘판단’을 하게 되고 괴로워집 니다. 제가 즐기면서 만들고 스스로 만족했던 음악도 판단이 들어가면 남과 비교하면서 ‘왜 이것 밖에 못 만들었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쉽진 않지만, 마음에 욕심을 들어올 때마다 이를 비워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집착을 버리기 위해 기도도 하고요.”

인연과 인연이 이어져 탄생한 마이다스 엑스 표 ‘반야심경’

원불교 신자인 아버지 덕분에 어릴 때부터 반야 심경을 자주 접하긴 했지만 음악으로 만들 계획은 없었다. 랩에 ‘반야심경’을 접목할 생각을 한건 당시 알고 지내던 한 할아버지로부터 목탁소 리를 비트에 넣어 음악을 만들어보라는 말을 듣고 나서다. ‘목탁소리와 비트의 조합’ 아이디어로 시작된 반야심경 싱글앨범 작업은 뮤직비디오 촬영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두 번째 싱글앨범, ‘금강살타 백자진언’을 만들게 된 인연도 재미있다. ‘반야심경’ 뮤직비디오 촬영에 필요한 승복을 사러 조계사 앞으로 갔다가 우연히 ‘마니승 복’이란 승복 가게에 들어가게 됐는데 승복을 돈을 받지 않고 빌려줬다. 그 인연을 이어가다가 한달에 한 번 오대산 상원사에 광명진언 기도를 드리러 가는 사장을 따라가 기도를 드렸는데 마음이 편해지는 경험을 했다. 이후 집에서 이런저런 기도를 드리다가 백자진언을 알게 됐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백자진언을 만들고 싶어 곡을 만들 었다. 마니승복 사장은 마이다스 엑스의 ‘반야심 경’을 행사 수익을 안겨 주는 ‘효자 곡’으로 만드는 데에도 큰 도움을 줬다고 한다. 완성된 반야심경 뮤직비디오를 보고 제 일처럼 크게 기뻐한 사장은 마이다스 엑스에게 사찰마다 앨범을 돌려 보라면서 사찰 리스트를 적어줬다. 마이다스 엑스는 스쿠터를 타고 직접 사찰을 돌아다니며 앨범을 돌렸는데 관문사의 상명 스님이 앨범을 건네받은 그 자리에서 바로 음악을 들었고, 관문사 산사음악회에 와달라며 섭외를 요청했다. 상명 스님과의 인연으로 홍천 강룡사 공연도 가게 됐다. 목탁소리를 비트에 넣는 아이디어를 준 할아 버지부터 승복을 빌려주고 홍보를 도와준 마니 승복 사장, 기회를 준 상명 스님까지 모두 소중한 인연이다.
마니승복 사장의 적극 홍보와 상명 스님의 지원 으로 불자들에게 이름을 점점 알리기 시작한 마이다스 엑스. 하지만 공연 경험이 많은 마이다스 엑스에게도 사찰 공연은 생소했을 것이다. 청년 층이 많은 클럽 공연장과 달리 중장년층이 많은 사찰에서는 관중의 반응도 다를 수 있다. 트로트 장르를 좋아하는 어르신들 앞에서 승복을 입고 생소한 랩 장르 음악을 선보이면 거부감을 보이 거나 당황스러워하지는 않을까.
“반야심경 반응이요? 관중들 난리 납니다.
박수 치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관광버스 춤 추시 고…‘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 하’ 부분에선 떼창 (큰 무리의 구성원들이 같은 노래를 동시에 부르는 것) 나오고요 (웃음) . 관중이 좋아해주면 저도 더신나서 지팡이로 바닥 쾅쾅 찍으면서 과감하게 퍼포먼스 합니다. 가끔 ‘스님도 아닌데 왜 승복 입었냐’며 찡그리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어쩌다한 분이고, 대부분은 정말 좋아해주세요.”
물론 사찰 공연이라 따로 신경 쓰는 부분은 있다.
“사찰 행사에서는 아무래도 제가 더 조심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처음으로 사찰 공연에 불러 주셨던 상명 스님께서도 공연 때 비속어는 자제 해달라는 부탁을 하셨고요. 제 노래 중 비속어가 많이 없기도 하지만 간혹 가사에 거친 단어가 있으면 바꿔서 부릅니다.”

힙합과 불교 간 시너지는 ‘염불’

힙합 장르와 불교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보인다. 힙합 음악에서 종종 드러나는 저항정신, 디스 (상대방을 공격하는 힙합의 하위문화) , 남성성에 대한 집착, 소수자 혐오, 자기과시 등은 불교의 무소유, 중도 정신, 겸허함 등의 가르침과는 결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자기 안의 울분을 토해내는 과정에서 뒤따 라오는 혐오, 디스 등이 ‘일부’ 힙합의 모습이기도 하고 그런 힙합을 무시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제가 추구하는 음악은 그런 종류의 힙합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듣거나 불렀을 때 기분 좋은 가사, 인간과 삶에 대한 통찰로 사람들의 머리를 띵하게 울리는 음악을 만들어서 힙합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어요.”
오히려 힙합과 불교 간 시너지가 나는 지점도 있다.
“스님들이 외는 염불에도 랩 적인 요소를 넣으면 또 색다른 느낌의 염불이 될 여지가 많습니 다. 염불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음 없이 랩처럼 빠른 속도로 외시는 스님을 실제로 본 적이 있는데 정말 멋있더라고요. 스님 대부분이 염불을 트로 트의 꺾기 창법, 일명 ‘뽕삘’로 하세요. 물론 그것도 좋지만 힙합, 록 등 각 음악 장르의 리듬을 접목한 다양한 스타일의 염불이 나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염불을 불교 예술로서 즐길 수있도록요.”

단독 콘서트를 야단법석처럼

백자진언’이 대중들에게 젊은 불교 예술로 받아들 여지길 바라고 있다. 또 이를 통해 불교의 좋은 가르침이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길 바란다.
“이건 제 꿈인데, 나중에 단독 콘서트를 하게 되면 제 공연장을 마치 법회 가서 스님의 법문을 들은 것처럼 머리가 맑아지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제 음악을 들은 사람들이 각자의 깨달음을 얻고 관점과 마음가짐을 바꿔 새로운 세상을 살게 되는 그런 공간이요.”
그는 최근 불교적 가르침뿐만 아니라 종교를 초월하는 삶의 보편적인 진리에 관심을 두고 있다. 얼마 전에는 불교적 관점에서 기독교의 진리를 탐구하는 내용의 도서 ‘예수, 부처를 만나다’ 를 인상 깊게 읽었다. 인생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아직 찾지 못했다. 방황하던 20대 때에 비하면 인생에 대해 조금 알 거 같다가도 또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며 웃는 그다.
“앞으로 제가 음악을 계속하게 될지 아닐지, 잘 모르겠어요. 인연 따라 미래가 펼쳐질 것이기 때문에, 제 미래 계획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어요. 다만 음악을 계속하게 된다면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진리와 통찰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바람입니다.”

글.허진 사진.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