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매일, 기도하고 기도하라] 기도란 스스로 맑은 물이 되어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비추는 것

재가불자 박미용 보살

2020-01-21     허진

 

“안녕하세요!” 큰 소리로 인사하며 다가오는 박미용 보살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피부, 환한 미소, 맑은 목소리. ‘암 투병 중인 환자 맞아?’라는 생각과 함께 인터뷰 직전까지 가지고 있던 걱정은 단숨에 날아갔다. 본인은 괜찮다고 했지만 인터뷰를 끌어가야 하는 입장에서는 내심 장시간 인터뷰가 환자 몸에 무리를 주진 않을지 걱정했던 터였다. 박미용 보살은 작년 10월 유방암 4기 판정을 받고 지금까지 암 투병 중이다. 암을 발견했을 당시 암세포가 뼈까지 퍼지기 직전의 위급한 상태였다. 어떻게 이렇게 밝고 건강한 모습일 수 있는지 비법을 묻자 ‘모두 부처님의 가피’라며 웃는다. 근래 만난 그 누구보다 ‘생기 있던’ 박미용 보살에게 일상 속에서 실천하고 있는 기도 수행에 대해 들어봤다.

Q ─ 암 투병 중이시라고 들었는데 현재 건강이 어떠신가요?
보시다시피 좋습니다. 먹는 걸 조심할 뿐 일반 사람들과 거의 똑같이 생활해요. 처음 암 선고를 받았을 때 딸 무릎 위에서 대성통곡했어요. 제가 명색이 참선하는 사람인데 막상 암 판정을 받으니 두렵더라고요. 하지만 암선고를 받고 치료를 결정한 이후 이어진 부처님의 가피는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바라던 대로 임상 치료 대상자로 선정됐고 치료비를 병원에서 전액 지원받게 됐습니다. 치료도 문제없이 잘되고 있고요. 가장 큰 부처님의 가피는 제가 두려움을 극복하게 된 것입니다. 임상 치료를 앞두고 처음 검사를 받을 때 정신을 집중하고 명상을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제 몸이 마치 공중에 붕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처음 그런 경험을 하고 나서 저는 앞으로 암을 극복할 희망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두려움이 전혀 없었거든요.

 

Q ─ 기도를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2008년도에 남편을 떠나보내고 힘들어하던 중 당시 제가 운영하던 피부관리샵의 고객이던 한 보살로부터 조상에게 기도를 드려보라는 조언을 들었어요. 그 길로 청계사로 가 백중 천도재를 지내며 불교를 접하게 됐습니다. 이후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관세음보살 기도를 포함해 안한 기도가 없을 정도로 기도가 생활인 삶을 살았어요. 처음엔 아이 둘을 홀로 키워야 하는 현실이 힘들어 성공을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제가 힘든 것이 대상 없는 그리움 때문이란 걸 알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나의 자리, 나의 불성 자리를 그리워했던 거 같습니다. 부처님이 내 안에 있다는 걸 모르고 밖에서 찾아 헤맸던 거지요.

 

 

Q ─ 어떤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나요?
초반에는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 ‘사랑하고 싶다’ ‘애무하고 싶다’ 등 본성과 감각에 치우친 기도를 드렸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제 한계성에 대해 명확히 인지하고 기도를 드립니다. 암 선고받은 이래 저는 단 한 번도 병을 고쳐달라는 기도를 드린 적이 없어요. 대신 ‘맑은 물’로서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기도를 드립니다. 제가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맑은 물로 있어야 오늘 하루의 색깔이 제게 제대로 비출 테니까요. 만약 제가 커피색 물인 채로 하루를 시작하면 오렌지색을 알고 싶어도 두 색깔이 섞여서 본래 색을 제대로 알 수 없겠지요. 기도를 드리다 보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맑아져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Q ─ 기도를 시작한 후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기도하기 전과 후는 참나를 알기 전과 후예요. 기도를 드리기 전에는 참나와 육근을 별개로 생각했고 저 박미용이라는 껍데기가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운명을 바꿔보기 위해 개명도 하려고 했고요. 그런데 지금은 참선을 통해 제 꺼풀을 벗기고 참나를 마주하게 됐습니다. 15시간의 긴 수술을 끝내고 나왔을 때 가족들이 제게 너무 잘 참아줘서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저는 ‘수술해주신 선생님들이 힘들었지, 나는 마취해서 고통이 없었는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수없이 많은 주삿바늘이 꽂혀있는 제 몸을 가만히 보면서 이 고통을 제 육근이 참아주고 있고 그 덕분에 제가 살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육근만이 나라고 생각했을 때는 몰랐는데 한 발짝 떨어져서 ‘참나’, 즉 본성 쪽에서 육근을 바라보니까 제 육근이 객관적으로 보이더라고요. 기도를 통해 제 육근에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끼게 된 거지요.

Q ─ 보살님에게 기도란 무엇인가요?
제게 기도는 무언가를 원하고 바라는 기도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기 위한, 본질을 바로 보기 위한 명상과 참선에 가까운 기도입니다. 아잔브람 스님의 법문 중 제가 암 투병을 하면서 큰 힘을 받았던 대목이 있습니다. 바로 스님의 제자가 폐암 말기에서 완치됐다는 내용인데, 눈에 띄는 사실은 그 제자가 암 치료를 위해 ‘아무것도 한 게 없다’라는 거예요. 즉, 진정한 명상은 무엇인가를 추구하고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릴렉스(Relax), 아무것도 하지 않는(Do Nothing) 명상이라는 거지요. 일반적인 생활 역시 기도고, 갈고 닦는 명상도 기도입니다.

 

Q ─ 평소에 기도를 어떻게 실천하고 있나요?
제게 기도는 별도의 시작도 끝도 없는 그저 일상생활입니다.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보면 대기해야 할 일이 많은데 저는 그런 기다림을 오히려 즐깁니다. 병원 로비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핸드폰에 담긴 각산 스님 명상 멘트 파일을 재생시키고 명상을 시작하면 지루함 없이 시간이 흘러가거든요. 석촌호수로 산책하러 나갈 때도 벤치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면서 명상을 합니다. 명상하는 동안 제 머릿속에서 저는 한 척의 배를 타고 호수를 돌면서 바람을 즐겨요. 제가 석촌호수에서 명상하는 모습을 지나가다 우연히 봤다는 병원 직원이 있었어요. 저는 일상 속에서 명상을 실천하면서도 ‘내가 밖에서 명상하는 모습이 혹시 남들에게 추하게 보이진 않을까,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주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명상하는 모습을 봤다는 그 직원에게 ‘내 모습이 어땠냐’ 라고 조심스레 물었더니 근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지고 멋있더래요. 운동하는 사람들, 웃고 떠드는 사람들로 정신없는 주변 상황에도 흔들림 없이 명상하는 제 모습이요. 이후 저는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고 명상을
즐기고 있습니다.

Q ─ 치료할 때는 어떻게 기도를 드리나요?
저는 치료할 때마다 정신을 호흡에 집중하고 명상을 시작합니다. 그러면 치료하면서 고통을 거의 못 느껴요. 믿기지 않겠지만 정말입니다. 치료가 끝나고 명상에서 깰 때 제 모습을 본 사람들이 하나같이 말해요. 제가 아주 편안한 얼굴로 미소짓고 있다고요. 보통 사람들은 항암 치료받을 때 온몸의 감각기관이 모두 말라 피부가 쩍쩍 갈라지고 이가 빠지고 손발톱이 깨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고통 모두 안 겪었습니다. 밥도 잘 먹고요. 전 그게 명상을 통해서 가능했다고 봅니다. 정말 중요한 건 마음이거든요. 치료 전 느끼는 두려움이 치료의 고통을 배가시키는데, 명상을 통해 이 두려움이 사라지면서 고통이 완화되는 거지요. 제가 아무리 보편적인 암환자들보다 치료 과정에서 고통을 덜 느껴도 암 투병 중인 환자잖아요. 호르몬 영향으로 저 나름대로 우울할 때도 많고 피곤함을 느낄 때도 많은데 그럴 때마다 바로 명상에 들어갑니다. 그럼 푹 자고 일어난 것처럼 개운해져요.

Q ─ 지금 행복하신가요?
네, 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나갈 때마다 행복합니다. 각산 스님께서 항상 ‘나의 문제를 해결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깨우치고 열반에 들어도 당장 직면한 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냐는 거예요. 제 인생을 돌이켜보면 굽이굽이마다 고비가 있었고 괴로움도 많았는데, 그때마다 기도와 참선을 통해 고통과 맞닥뜨리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왔습니다. 12년, 길다면 긴 시간 동안 기도 생활을 하면서, 갈망하면서, 외로워하면서, 갈증을 느껴가면서, 헤매면서 지내왔던 시간이 지금의 행복한 저를 만든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게 끝이 아닙니다. 지금은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 또 배고파하고 아파할 일이 생길 거예요. 그래서 매
일, 매 순간 수행해야 하는 거지요. 운동선수가 평소에 꾸준히 연습해서 닦은 실력으로 실전 경기에 임하듯이 저도 일상생활 속에서 기도와 참선을 꾸준히 실천할 생각입니다. 이때까지 그래왔듯이 말이지요.

Q ─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특별하게 달라질 건 없고 제가 가진 좋은 원을 향해서 수행의 길을 걸어갈 계획입니다. 저는 부자로, 최고로 살고 싶습니다. 지금도 저 혼자 먹고 살만큼의 능력은 있습니다. 하지만 제겐 제 몫을 많은 사람과 나누고, 세상에 회향하고 싶다는 원이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부자로, 최고로 살아야 합니다. 제가 제 앞가림도 못 하면서 남한테 함께 봉사하고 회향하자
고 권하면 “너나 잘해”라는 말을 들을 겁니다. 만약 제가 돈을 많이 벌면 사람들은 “저 여자는 저렇게 부자로 사는 거 보니 무슨 방법이 있나 보다”라면서 제가 사는 방법을 따라 하고 싶을 거고요. 회향을 위해, 봉사를 위해 부자로 살고 싶다는 제 원은 좋은 원이잖아요. 저는 앞으로 이 원을 이루기 위해, 어느 방향으로 첫발을 내디딜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기도할 겁니다.

글.허진

사진.최배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