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매일, 기도하고 기도하라] 기도하는 마음에 삿됨이란 없다

한국의 대표 기도처 1 강원도 낙산사 홍련암

2020-01-21     양민호

기도 도량은 간절한 마음이 모여드는 곳이다.

한국불교 수행처 가운데 이름난 기도처가 여럿 있다.
그중에서도 불자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이 바로 3대 관음성지. 강화도 보문사, 남해 보리암, 그리고 오늘 찾은 강원도 양양군 홍련암이다. 연중무휴,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기도 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곳에서,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의상대사와 관세음보살 설화가 깃든 곳
홍련암은 신라 시대 의상대사(義湘大師, 625-702)가 창건한 절인 낙산사의 모태가 되는 암자이다. 관련 설화는 이렇다. 관세음보살을 친견하러 온 의상대사가 도중에 파랑새를 만났는데, 새가 벼랑 끝 석굴에 들어가 나오지 않음을 기이하게 여겨 굴 앞에서 정좌하고 7일 밤낮 동안 기도를 올렸다. 7일 후 바다에서 붉은 연꽃이 솟아올랐고, 그 속에서 관세음보살님이 현현했다고 전한다. 그리하여 이름 붙여진 것이 바로 ‘홍련암(紅蓮庵)’이다. 의상대사가 좌선하던 곳이었다는 의상대 아래, 좁고 가파른 길을 따라가면 해안가 절벽 위에 세워진 작은 암자를 만날 수 있다.
짧은 해가 저물고 일찌감치 찾아온 겨울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 앞은 거세게 밀려오는 파도 소리만이 가득했다. 암자 주변으로 짙은 어둠이 깔리고, 평일이라 사람들 발길도
잠잠한 그곳에 서 있으려니 불현듯 두려운 마음마저 일었다. 저녁 기도 시간(6시 30분)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는지라 어찌해야 하나 갈팡질팡하고 있던 찰나, 홍련암에서 총무 소임을 보고 있는 각밀 스님이 손을 내밀었다. 밖이 추우니 안에서 차 한잔하자며 부르신다. 뜨끈한 방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서, 스님이 따라주는 따뜻한 차를 마시며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다. 10여년 전 이곳 홍련암에서 천일기도를 회향했다는 스님. 돌고 돌아 지난해 10월 다시 이곳에 오게 되었단다. 말씀하시는 스님 얼굴이 알고 지낸 벗처럼 푸근하고 편안하다. 홍련암이 전해주는 기운이 그런 것일까. 아니면 오랜 기도의 공덕 때문일까. 알 수 없지만, 홍련암과 스님에게서 받은 첫인상이 마치 관세음보살의 음성처럼 포근했다.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

기도 시간에 앞서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홍련암에 들었다. 오늘 밤 함께 기도 올릴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서였다. 좁은 법당 안에 다섯 명의 재가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저마다 어떤 사연을 안고 온 것일까. 어떤 바람을 이루고자 이곳을 찾은 것일까. 조심스럽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서울에서 함께 올라왔다는 노보살님과 50대 아들은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집안에 일이 좀 있어서…”라며 말끝을 흐리는 보살님. 자세한 사정을 캐묻기 어려웠지만, 한눈
에 봐도 보통 일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들은 말이 없었다. 법당 안 관세음보살상을 응시하는 모자(母子)를 바라보며, 관세음보살님을 향해 이들의 바람을 들어주십사 청을 올렸다. 이들 외에는 모두 혼자 온 사람들이었다. 특별한 우환이나 걱정은 없다고들 했다. 그럼 무엇을 빌러 이곳까지 오셨느냐 물으니 ‘가족’과 ‘자녀’의 건강과 안녕을 빌기 위해 기도한다고 했다. 사회 생활하는 자녀가 일이 잘 풀리기를, 결혼한 자녀 가정에 행복한 일만 가득하기를, 가족 모두 건강하기를…. 개중 누구도 자기 자신에 대한 바람을 말하지 않았다. “절에 와서 기도하는 사람 중에 내가 잘되고자 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대개는 가족이나 친척, 지인들의 건강과 행복을 비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이 잘사는 것이 바로 기도하는 사람이 바라는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법당 한쪽에서 열심히 절을 올리던 보살님 말씀이다. 누군가는 ‘기도’를 불교적이지 않다며 비난한다. 인간이 자신의 삿된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하는 행위라고 평가절하한다. 하지만 기도란 그런 것이 아니다. 기도하는 사람 마음은 절대 삿되지 않다. 다만 그 대상이 부처님만큼 포괄적이지 않
을 뿐이다. 비록 협소한 차원이라도, 거기서 비롯된 마음이 결국엔 세상을 좀 더 환하게 밝히는 초석이 되지 않을까. 가족의 가족, 이웃의 이웃으로 번져가는 염원이야말로 기도가 갖는 힘과 공덕이 아닐까. 적어도 오늘 홍련암을 찾은 이들에게 기도란, 그런 것이었다.

간절한 마음의 소리가 가 닿을 때까지

저녁 기도 시간이 다가왔다. 그 사이 몇몇 사람이 더 들어와 암자 안에는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였다. 기도 시작 전에 각밀 스님의 짧은 법문이 있었다. 스님은 매일 기도 전에 법문을 진행한다고 했다. 홍련암과 낙산사의 유래에 대한 짧은 설명과 함께 기도하는 자세에 대한 당부가 있었다.
“관세음보살님은 사바세계 중생들의 마음의 소리를 듣는 분입니다. 따라서 일념으로, 염원을 담아 지극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통합니다.”
뒤이어 법사 스님이 들어와 본격적인 저녁 기도 막이 올랐다. 기도는 반야심경 합송, 헌향진언, 천수경 다라니 7독, 관세음보살 정근, 축원 순으로 진행됐다. 어느새 법당 안엔 스무 명의 사
람들이 들어차 있었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과 한 뼘 거리에 붙어 앉아 기도 삼매에 빠져들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법당 안을 가득 메운 기도 소리에 매섭게 몰아치던 파도 소리가 잠잠해졌다. 두 시간 동안 계속된 기도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마음이 흐트러지고 모이기를 반복했다. 옆에서 열심히 절을 하며 정근하는 보살님이 사뭇 대단해 보였다. 어디서 저런 힘이 솟을까, 그게 바로 신심이 아닐까 싶었다. 홍련암에서는 하루 네 번 정해진 시간에 기도가 열린다. 새벽 4시, 사시(9시 30분), 저녁 6시 30분, 밤 8시 30분에 두 시간씩 진행된다. 이중 백미는 단연 밤 시간이다. 저녁 기도에 이어서 밤 기도까지 동참하는 분들이 많다고들 한다.

오늘 오신 분들도 다들 그런 각오인 듯했다. 다들 자리를 뜰 생각을 않는다. 홀로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겨 조용히 법당 밖으로 나왔다. 바깥세상은 여전히 어둡고, 파도가 거칠고, 기온은 전보다 더 떨어졌다. 하지만 홀로 있어도 더 이상 두려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짧은 시간에도 기도의 공덕이 쌓인 걸까. 아니, 그보다 홍련암을 찾은 기도객들의 간절한 염원이 주변을 환희롭게 감싸고 있기 때문일 테다.
 

짧은 인터뷰

기도란, 불보살님께 다가서는 발걸음

홍련암 각밀 스님과의 차담

Q ─ 기도란 무엇인가요?

기도는 주로 현실적인 구함과 긴밀히 연결되는 경우가 많지만, 결코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삶에서 바라는 바를 이루고, 거기서 한 걸음더 나아가 참된 진리의 길로 나아가는 데 기도의 목적이 있습니다. 기도 대상인 관세음보살의 원력이 또한 그렇습니다. 단지 중생들의 바람을 이뤄주는 것이 아니라, 그로써 중생들이 한 단계 높은 경지로 올라 깨달음에 이를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이 관세음보살님 원력입니다.
 

Q ─ 기도하는 마음과 태도는 어떠해야 하나요?
어떤 수행법이든, 그 최종 목적은 불보살님께 한 걸음 더 다가가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지은 공덕이라도, 나뿐만이 아닌 사바세계 모든 중생과 함께 나누겠다는 회향의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 전정한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통해 무언가를 성취했다면, 그걸로 끝낼 것이 아니라 반드시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시 기도를 올려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이 넓어지고 기도의 공덕이 커집니다.

Q ─ 일상에서 기도 수행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상에서 기도 수행을 할 때는 가급적 정해진 시간에 꾸준히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살다 보면 그러기가 쉽지 않지요. 그래서 평소에 늘 기도하는 마음을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평소에 기도하려는 마음 자세를 늘 가지고 있으면서, 마음속에 번뇌가 일 때마다 불보살님 행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 마음이야말
로 신심이고 원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Q ─ 기도처를 찾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말씀드렸듯이, 일상에서도 기도 수행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럼에도 굳이 시간을 내 기도처를
찾는 이유는 자신의 기도를 점검하고, 기도를 계속해 나갈 힘을 받아가기 위해서입니다. 기도처, 그리고 사찰은 수많은 세월을 지나며 많은 사람들의 원력이 깃든 곳입니다. 얼마나 큰 기운과 바람이 서려 있겠어요? 현실을 살아가며 자주 흔들리는 마음을 바로잡고, 삶과 수행의 중심을 세우기 위해 이러한 기도처를 찾는 것입니다.

 

Q ─ 수행의 깊이를 점검하는 법이 있다면요?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입니다. 불교 수행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수행이 무르익은 사람 곁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감을 느낍니다. 함께하고 싶고, 무슨 말이라도 나누고 싶어지죠. 이것이 수행을 제대로 한 사람 모습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을 떠올려 보세요. 그 모습이 얼마나 자애롭습니까? 마치 어머니처럼 기대고 싶고, 의지하고 싶어지잖아요. 자신을 가만히 돌이켜 보며, 객관적으로 판단해 봄으로써 자기 수행의 깊이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겁니다.

 

글.양민호

사진.최배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