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근 에세이] 도둑맞은 가난

2020-01-06     김택근

“한국 교회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짐으로써 가난을 도둑맞았다.” 몇 해 전 저명한 목사가 새해 포부를 묻자 한국 교회 현실을 직시하자며 이렇게 탄식했다. 성경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에게 복이 있어서 천국이 그의 것이라 일렀다. 그런데 가난을 도둑맞았으니 큰일이 아닐 수 없다. 민중의 고난 속으로 들어가 약자를 보듬었던 한국 교회가 살이 올라 뒤뚱거리고 있다. 찬양은 우렁차고 의식은 눈부시지만, 돌아보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불편한 일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헌금을 강요하고, 종말론으로 위협하고, 공금을 횡령하고 있다. 교회가 인맥을 찾고 가진 자의 복을 빌어주는 기득권층의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대형 교회는 엎드려 간구하기에는 배가 너무 나왔다.’
그렇다면 불교는 어떠한가. 역시 가난을 잃어버렸다는 탄식이 흘러나오고 있다. 돌아보면 부처님이 보시기에 불편한 일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교회’를 ‘사찰’로 바꿔서 타락의 실상을 옮겨보자. ‘보시를 강요하고, 종말론으로 위협하고, 공금을 횡령하고 있다. 사찰이 인맥을 찾고 가진 자의 복을 빌어주는 기득권층의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대형 사찰은 엎드려 간구하기에는 배가 너무 나왔다.’
출가수행자들은 부처가 계실 때부터 걸식하고, 남이 버린 베 조각으로 옷을 만들고, 지붕이 있는 곳에서는 잠을 자지 않았다. 불교가 이 땅에 전래된 이래 청빈이 수행의 생명이었다. 청허 스님은 “시주를 받을 때에는 화살을 받는 것처럼 하라”고 일렀다. 그래서 도를 이루려면 가난부터 배워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요즘 불교는 너무 많은 것을 가졌다.
탈종교화 시대라고 한다. 종교가 세속에 물들면 더 이상 ‘으뜸 가르침’이 아니다. 종교가 속인들과 적당히 타협을 하면 신도들은 이 땅의 욕심을 그대로 지닌 채 복만을 받겠다고 덤빈다. 결국 믿음을 통해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없다. 한국 불교에 위기가 닥쳤다고 한다. 잇단 불미스런 사건에 그 위상이 추락하고 있다. 또한 다른 종교처럼 신도가 줄어들고 있다. 그렇다면 위기의 근원적인 실체는 무엇일까. 바로 가난을 잃어버림이다. 세속에 물들어 마음에 살이 올랐음이다. 지금 위례 신도시 귀퉁이에서는 ‘천막결사’라 이름 붙인 스님들의 동안거가 진행 중이다. 비닐하우스 상월(霜月)선원에서 ‘서리와 달을 벗 삼아 정진’하고 있다. 스님들은 “고작 한 그릇이면 족할 음식에 흔들리고, 고작 한 벌이면 족할 옷에서 감촉을 탐하고, 고작 한 평이면 족한 잠자리에서 편안함을 구한 탓에 초발심이 흐려졌다 생각하니, 비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불교계가 탐욕을 버리고 새로 깨어나기를 발원한 것으로 보인다.
목숨을 건 스님들의 정진이 새로운 바람을 불러오는 계기를 마련하고 원만하게 회향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비통한 마음으로 탐욕을 없애겠다면서 대대적인 행사를 하고 신도들이 몰려들어 스님들의 동안거를 기리는 것은 보기에 불편했다. 가난한 모습이 아니다. ‘천막결사 수행처가 한국의 붓다가야가 될 것’이라는 고불문에도 아만이 스며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과연 부처님은 어떻게 보실까.
1947년 ‘부처님 법대로 살아보자’는 봉암사 결사가 있었다. 청정한 비구들이 부패한 조선불교를 쳐부수러 깊은 산속에 들었다. 지닌 것이라고는 부처님 가르침뿐이었다. 누가 보지 않아도 자신을 매질하며 스스로에 엄격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한국 불교는 깊은 산속에서 새로 태어났다. 봉암사 결사는 3년 동안 이어졌고 한국 불교가 나아갈 길을 찾아냈다. 부처님 법대로 살아봤기에 현 조계종의 기틀이 잡힌 것이다. 법전 스님은 가장 가난하게 살았던 봉암사 결사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회고했다. 스님은 이렇게
설했다.
“풍요로움 속에선 결코 공부를 이룰 수 없다. 억지로라도 가난해야 한다. 수행자는 시시때때로 삭발한 머리를 만져보며 ‘내가 왜 출가했는가’ 를 물어야 한다.”
한국 불교의 가난은 누가 훔쳐 갔을까. 가난한 마음들이 뭉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새해가 밝았다. 부디 탐욕을 물리치고 잃어버린 가난을 찾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김택근
시인, 작가.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오랜 기간 기자로 활동했다. 경향신문 문화부장, 종합편집장, 경향닷컴 사장,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1983년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글.
김택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