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들] 나만의 방식으로 불교를 세상에 알리다

불교 그림·카툰 작가 용정운

2020-01-02     허진

 

용정운 작가는 불교 관련 홈페이지 디자인부터 불교 캐릭터, 불교 책 삽화, 명상 카툰까지 불교를 소재로 한 그림이 들어가는 일이라면 안 해본 일이 없는 한국 불교계를 대표하는 불교 그림·카툰 작가다. 최근 <용작TV>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새로운 도전에 나선 용정운 작가를 만났다.
‘행복하게 잘 살자’라는 불교의 보편적 가르침을 쉽고 재미있게 전하고 싶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바른 스승, 바른 도반과의 만남으로 시작된 불교 인연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용정운 작가는 불교 미술사를 공부하며 처음으로 불교의 매력에 빠졌다. 특히 반가사유상과 석굴암 본존불상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압도당해 온몸의 세포들이 반응하는 것처럼 심장이 두근거렸다고 한다. 하지만 용 작가의 불교에 대한 애정이 어느 날 갑자기 툭하고 튀어나온 것은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스님들 탁발하러 오시면 한번도 그냥 보내드린 적이 없어요. 어릴 때 소설 『등신불』을 읽고 가슴이 아프고 감정이 벅차올라 수업 시간에 펑펑 운 적도 있고요. 저도 모르는 불교와의 인연이 아주 오래전부터 쌓였던 것 같습니다.”
불교에 관심을 두고 있던 용 작가가 본격적으로 불교를 공부하게 된 건 직장에 다니면서부터다. 친하게 지내던 회사 언니 손에 이끌려 법상 스님이 운영하던 <젊은 법사의 불교 이야기>라는 다음 카페의 오프라인 모임에 나갔던 게 시작이었다. 이후 용 작가는 매주 모임에 나가 법상 스님의 지도하에 도반들과 함께 불교를 공부했다. “그때 만난 친구들 중 출가해 스님이 된 분도 있고 재가자도 있어요. 지금도 소중한 그 인연을 이어가고 있죠.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끔찍하게 서로를 위하는 친구로 지낸다는 건 정말 큰 복인 것 같습니다.”
처음 불교 일러스트를 그리게 된 것 역시 법상 스님과의 인연이었다. 당시 웹디자인 일을 하던 용 작가는 법상 스님이 운영하는 홈페이지 디자인을 맡게 됐는데, 디자인에 활용할 만한 불교 이미지가 없어 곤란했다고 한다.
“홈페이지를 예쁘게 꾸미고 싶은데 불교 쪽 콘텐츠가 워낙 없다 보니 디자인에 쓸 재료가 없는 거예요. 필요한 그림이 당장 없으니까 ‘나라도 불교 그림을 그려봐야겠다’라며 시작하게 된 거지요.”
결혼하고 회사를 그만둔 이후 용 작가는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불교 일러스트와 한 컷짜리 불교 만화를 올리기 시작했다. 이를 시작으로 불교 책 삽화를 그리고, <현대불교신문>에 명상 카툰을 연재하게 됐다. 2018년에는 『걱정하면 지는 거고 설레면 이기는 겁니다』라는 제목의 명상 카툰 책도 펴냈다. 그렇게 인연이 이어지고 이어져 용 작가는 지금 한국 불교계를 대표하는 불교 그림·카툰 작가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마음이 통할 때 느끼는 기쁨
얼마 전 용정운 작가는 한 보살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심적으로 힘들었는데 용 작가의 카툰을 보고 힘을 얻었다며 감사 전화를 한 것이다. 보살님이 보았다는 그림은 <괜찮아, 괜찮아>란 제목의 카툰이었는데, 용 작가 역시 심적으로 힘들었을 때 그린 작품이었다.
“이렇게 제 작품을 봐주시는 분들과 제 마음이 통했을 때가 가장 기뻐요. 저는 주로 제 일상 경험 속에서 작품에 대한 영감을 얻는데,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제 안 깊숙이 자리한 마음을 들여다 봅니다. 거기서 끌어낸 마음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요. 제 작품을 보시는 모든 분들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싶습니다.”
보는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정작 그런 그림을 그려내는 용 작가 본인의 마음은 어떨까? 창작의 고통 때문에 마음이 불안하지는 않은지 물었다. “언젠가 내 그림이 필요하지 않은 순간이 올 것 같아 불안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달래고 위로하면서 그림을 그립니다. 작업하면서 스스로 치유받는 부분도 있고요. 숨죽여서 그림을 그리다 보면 마치 명상하는 것 같습니다. 마음의 때가 씻겨나가는 거 같다랄까요. 미소짓는 동자 표정을 그리려면 저도 따라 웃어야 하거든요. 그러다 보면 내 마음도 밝아집니다. 연꽃 선 하나하나를 그릴 때, 무념의 그 순간으로부터 치유받기도 합니다.”

가슴 설레는 새 도전, 유튜브 <용작TV>
용정운 작가는 지난 11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용작TV>란 이름의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것이다. 유튜브 문외한이었던 용 작가가 뒤늦게 대세 SNS인 유튜브에 뛰어든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최근 슬럼프를 겼었습니다. 마감은 다가오고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뭘 그려야 할지 생각이 안 나서 머리에서 쥐가 났어요. 내가 만든 작업물이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너무 힘들었고요. 이 일을 너무 오래 했나 싶었습니다.”
슬럼프로 침체된 용 작가에게 새로운 도전 거리를 권한 건 다름 아닌 법상 스님이었다.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다 보면 재미있을 거라며 유튜브를 추천한 것이다. 이후 용 작가는 전쟁 같은 한 달을 보냈다. 도서관에서 관련 책 10권을 빌려 인기 유튜버들의 영상을 분석하고 영상 편집 프로그램 프리미어도 독학했다.새로운 배움에 재미를 느꼈다. 기획, 촬영, 녹음, 편집 모두를 혼자 맡아 하다보니 힘에 부쳤지만 들뜨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었다. 새로운 소통 창구를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일단 새로 할 일이 생겼다는 게 반갑더라고요. 영화 리뷰, 불교 관련 책 소개, 신행, 명상 등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넘쳐나고 보여주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영상 편집하다 보면 하루가 꼬박 갑니다.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법상 스님께 말씀드렸어요.”
용 작가는 일상과 불교 신행을 어떻게 조화를 이뤄 유튜브를 통해 보여줄지가 관건이라고 말한다. 얼마 전 <용작TV>에 업로드된 연꽃 스케치 작업 영상이 한 예라고 할 수 있는데, 용 작가에게 지극히 일상적인 작업 과정을 ASMR 형태로 보여주는 동시에 불교적 가치를 담았다. ASMR에 최적화된 용 작가의 목소리와 연필 사각거리는 소리가 압권인 영상이다.
“앞으로 제 아이와의 일상을 공유하며 어떤 마음으로 아이를 키우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하고 싶습니다. 제가 불법을 만나기 전에, 나밖에 몰랐을 때 아이를 키웠다면 지금처럼 훌륭하게 자라지 못했을 것 같아요. 그런 점들, 저의 자연스러운 일상과 함께 공유하고 싶습니다.”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 때까지
요즘 용정운 작가는 유튜브를 통해 젊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현재 <용작TV> 시청자는 거의 40~50대인데, 이들을 두고 굳이 젊은이들에게 다가서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살아가는 법은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이 알아야 하니까요. 젊은 사람들이 고민도 더 많잖아요. 저도 젊었을 때 감당해야 할 삶의 문제들 앞에서 치열하게 고민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제 어른이 된 제가 콘텐츠를 통해 젊은 사람들이 그들 각자의 길을 잘 갈 수 있도록 공감과 위로의 말들을 해주고 싶습니다.”
용 작가는 최근 20~30대 불자 수가 줄어드는 이유 중 하나가 ‘젊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불교’가 너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용 작가는 자신이 20-30대 때 좋은 스승과 좋은 도반을 만나 불교를 재미있게 배우는 복을 누렸던 것을 떠올리며, 오늘날 젊은이들이 그러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법상 스님이 생활 수행 거리를 주시면 미션을 치르듯이 수행했습니다. 3주에 한 번씩 모여 각자 3주간 수행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날그날의 수행 일기를 ‘마음 나누기’라는 이름으로 카페에 올려 공유했어요. 서로의 글을 읽고 공감하고 위로하면서 돈독하게 수행했습니다. 공부는 치열했지만 정말 재밌었죠.”
용 작가에게 불교란 한마디로 ‘행복하게 잘 살자’라는 가르침이다. 우리 삶 속에 존재하는 이 불교의 보편적인 가르침을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다고 용 작가는 말한다. 특히 불교가 젊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불법을 최대한 간단명료하게, 재미있게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 용 작가의 생각이다. 이를 위해 때로는 불교적인 방식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불교를 불교답지 않게 풀어내서 불법을 널
리 알리는 일, 그런 일을 죽을 때까지 하고 싶습니다. 저는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그래픽 프로그램도 다룰 줄 아니까, 이런 재능을 썩히지 말고 많이 써먹어야 할 것 같아요. 제 능력을 써먹을 일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글.
허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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