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즉사이진(卽事而眞), 매사에 진실하라

법계 명성 스님 구순 기념 전집 및 다큐멘터리 등 기록물 발간 소식

2020-01-02     남형권

한국불교 비구니 승가의 큰 별, 명성 스님의 삶과 가르침을 갈무리하다

불광미디어는 지난달 우리나라 최초로 비구니스 님 전집 『법계 명성 전집』(총 20권)을 발간했다. 더불어 명성 스님 구순을 기념해 다큐멘터리 <즉사이진(卽事而眞)의 삶>, 그리고 <감나무를 살게요>와 <스님과 스마트폰> 등 총 두 편의 애니메이션, 오디오북, 법문 및 강의 영상, 명성 스님 평전 소설 영문판 등을 제작했다. 우리나라 근현대 불교사와 비구니사에 한 획을 그은

명성 스님의 삶과 가르침을 담은 기록물을 USB에 담아 배포했다.
스무 권으로 이루어진 『법계 명성 전집』은 명성 스님의 생애와 사상, 명성 스님 논문집, 법문과 강의 및 편서·역서, 남지심 평전 소설 『구름 속의 큰 별 명성』과 명성 스님 여행 일기 및 제자들의 글을 담은 문집, 도록 및 사진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편찬위원장 진광 스님은 간행사를 통해 “전집 발간은 후학들이 모범 삼아 따르고 배워야 할 지남(指南)의 자료를 남기려는 데 가장 큰 뜻이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운문사 가람을 대중창하셨고, 2,100여 명 비구니 제자들을 키워내셨으며, 세계 속에서 한국 비구니 위상을 격상시키는 등 한국불교 역사에 있어서도 한 획을 그으셨습니다. 전집 발간은 한국 비구니 역사에 길이 남을 최초의 일이 될 것입니다.”라고 전했다. 다큐멘터리 <즉사이진의 삶>은 청정하고 아름다운 운문사 도량을 배경으로 명성 스님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고요한 가운데 새벽 예불과 기도, 서예, 강의, 운력, 포행, 저녁예불 등 흐트러짐 없이 늘 한결같으며 충만하고도 경건한 스님의 하루를 고스란히 들여다볼 수 있다. 애니메이션 1화 <감나무를 살게요>는 학인들이 몰래 감서리를 하다가 들켜 화가 난 감나무 주인이 절에 찾아오자 명성 스님이 감나무를 사겠다고 말하며 따뜻하게 학인들을 보듬은 일화가 담겨 있다. 2화 <스님과 스마트폰>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 사용법을 익히는 스님의 학구열을 보여주고 있다.

<법계 명성 전집> 총 20권

법계 명성 스님 구순 축하 및 전집 봉정식 거행

경북 청도 호거산 자락에 자리 잡은 운문사는 우리나라 최대 비구니 가람이자 승가대학과 한문불전대학원, 선원 등을 갖춘 교육과 수행의 터전이다. 지금의 운문사가 있기까지 그 중심에는 현재 회주로, 1970년부터 49년 동안 운문사에서 주지와 학장 등을 겸임하며 비구니 승가를 이끌어 온 법계 명성 스님이 있었다. 40여 동에 이르는 전각과 요사채를 불사해 운문사를 최대 비구니 교육기관인 운문승가대학으로 발전시킨 스님은 구순인 지금도 여전히 운문사한문불전대학원장으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전국비구니회 제8·9대 회장을 지낸 바 있으며 2008년 UN 국제여성의 날 ‘탁월한 불교여성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불교 지도자로 추대되기도 했다.

명성 스님은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저서로『꽃의 웃음처럼 새의 눈물처럼』, 『즉사이진: 매사에 진실하라』 등이 있다.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비구니가 된 스님은 23세 때 부친인 관응 스님의 권유로 해인사 국일암에서 선행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70년 운문사 강원에 강주로 와 주입식 교육 틀을 깨고 논강식 교육을 도입하며 비구니 승가 교육 혁신을 이끌었다. 외학(外典)과의 연계성을 강조하여 철학, 심리학, 미술, 외국어, 유학, 서예 등 보다 다양하고 종합적이고도 통섭적인 교육의 길을 마련했다. 스님은 여성성을 누르고 남성을 닮게끔 종용한 당시 승가 교육과 다른 혁신적인 교수법을 이끌었다. 비구니가 비구니로부터 전강(傳講)을 받는 전통을 만들어 비구니 강사를 대거 배출했다. 지금까지 조계종 비구니 스님 6,000여 명 가운데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2,100여 명의 인원을 제자로 길러냈다. 지난 12월 11일. 운문사 대웅전에서 법계 명성 스님 구순 축하 및 전집 봉정식이 봉행됐다. 조계종 문화부장 오심 스님, 불학연구소장 정운스님, 전 동국대 이사장 자광 스님, 전 포교원장 암도 스님, 팔공총림 동화사 주지 효광 스님, 전국비구니회 회장 본각 스님, 운문사 신도회 회장 박순곤, 전 동국대 부총장 정병조 교수, 서울대 철학과 조은수 교수 등 수많은 사부대중과 내외 귀빈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운문사 주지 운산스님이 1년여에 걸쳐 불광미디어와 협심하여 제작한 『법계 명성 전집』의 발간 경과를 상세히 보고했으며, 이어 율주 일진 스님과 상좌 은광 스님의 전집 봉정이 있었다.

명성 스님은 이날 모인 사부대중과 내외귀빈들에게 인사하는 자리에서 서산대사 오도송의 첫 구인 ‘발백비심백(發白非心白)’을 언급하며 “비록 머리털은 희지만 마음은 희지 않습니다. 덕이 없으면서 칭찬을 받으니 부끄럽고도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반세기 한결같이 학인들과 동고 동락하며 부처님 가르침 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이는 오로지 부처님 가피와 여러분들 신심 덕분입니다. 제 전집을 만들기까지 불광미디어 관계자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라고 소회를 전했다.

봉정식에 이어 명성 스님이 불교 문학 진흥과 신진 작가 발굴을 위해 제정한 제4회 법계문학상 시상식이 진행됐다. 대상은 장편 소설 『블루마운틴』을 쓴 강영애 작가가 수상했다. 『블루 마운틴』은 한 사찰을 중심으로 우연히 만난 세 남녀가 서로를 통해 육체적·정신적 건강을 회복하는 한편 애증의 집착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새롭게 찾아 나가는 작품이다.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부처님 말씀대로 사는 것

봉정식에 앞서 지난 12월 5일 운문사 죽림헌에서 기자 간담회가 열렸다. 국내 최초 비구니스님 전집 발간 소감을 묻는 질문에 명성 스님은 “처음이란 건 부끄러운 일입니다. 실력이 있어서 처음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뽐낼 일이 못 됩니다.”라며 겸허한 모습을 보였다. 덧붙여 “평범한 스승은 말을 하고, 훌륭한 스승은 설명을 하며, 뛰어난 스승은 모범을 보이고, 위대한 스승은 감화를 준다는 말이 있죠. 위대한 스승이 되어야 하는데 감화를 준 위대한 스승이 아니었던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욕교여 선자교(欲敎餘 先自敎)’,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면 스스로부터 가르쳐야 한다는 말입니다. 용서는 제 수행이었고, 칭찬을 교육의 비결로 삼았지요. 한번은 여러 사람이 몰려와 한 학인이 문제가 많다며 내쫓으려고 했었어요. 그냥 내보내면 어디 가서 살겠습니까. 절간은 마치 대장간과 같아서 쇠붙이로 물건을 만드는 장소인데 이렇게 보내면 안 된다고 끝까지 감쌌고 결국 졸업을 시켰죠.”라며 후학을 양성함에 있어서 자신만의 소신과 철학을 밝혔다.

애니메이션 <감나무를 살게요> 중

명성 스님이 학인들에게 중요시하는 가르침은 무엇이었을까. “법화경에 즉사이진이란 말이있지요. 모든 일에 성실하고 진실해야 합니다. 작은 일에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작은 일에 소홀히 하는 사람은 큰일도 소홀히 합니다. (…) 물은 젖는 성질을 가지고 있지요. 낙동강 물이나 양쯔강 물이나 미시시피강의 물이나 물의 습성은 똑같습니다. 이처럼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또 장소를 옮겨도,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나고 살고 죽지만 우리 마음자리는 죽지 않아요. 이를 공부하는 게 불교입니다.”라고 말했다.

명성 스님 상좌인 은광 스님은 “우리 스님 별명이 0.1mm라고 불릴 정도로 매사에 꼼꼼하다.” 라고 말한다. 명성 스님은 이번 전집 원고 교정도 손수 800여 시간을 들여 봤다고 한다. 하지만 엄격할 것만 같은 스님이 강조하는 수행은 바늘 방석이 아니라 솜 방석에 앉은 듯 생각하는 것이다. “물 수변(氵)에 갈 거(去) 자, 그게 바로 법(法) 자잖아요. 물은 흙을 만나면 스며들고, 돌을 만나면 돌아가고, 산을 만나면 아래로 내려가며 바다로 가기까지 멈추지 않습니다. 물처럼 산다고 할 때 법처럼 산다고 하죠. 엄격한 규율이라는 틀이라고 생각하면 더 어렵습니다. 마치 기차가 레일을 따라가듯 부드럽게 가야 합니다. 압박감을 가지면 도리어 탈선하고 사고가 날 위험이 있습니다.” 앞으로 더 하고 싶은 일이 없느냐는 질문에 명성 스님은 “저도, 여러분도 부처님 말씀대로 즉사이진의 생활을 잘하는 것 말고는 바랄 게 없습니다. 깨끗한 마음을 가지는 게 먼저입니다. 한 생각 깨끗한 마음은 바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에 중요하지요. 누구나 부처님이 될 수 있습니다. 한 생각 어디 갔나요? 저와 여러분에게 동시에 부탁하는 것은 마음을 넓게 쓰자는 겁니다. 마음을 넓게 쓰면 온 우주 법계가 가득 차고 마음을 좁게 쓰면 바늘도 용납하지 않는 법입니다. 마음을 허공처럼 넓게 씁시다!”라며 불자의 길을 강조했다.

글.
남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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