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불교, 여성을 말하다] 법(法)을 설한 여성들

초기 불전에서 대승 경전까지

2019-12-04     조승미

불교는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다소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질문이지만, 이것은 사실 불교사적으로 적지 않은 기간 동안 논의되어 왔던 주제이다. 짧게는 1980년대 이후 우리가 사회적으로 남녀평등을 광범위하게 말하게 되면서 불교학 내부에서도 불교의 여성관을 검토한 것을 볼 수 있지만, ‘불교의 근본적인 가르침에는 성차별적인 것이 없기 때문에 불교는 남녀 평등한 종교임’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일제 시대에도 확인되고 있어 그 역사가 현대에 한정 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뿐이 아니다. 초기 대승 경전들 중에는 여성관에 대한 더 뜨거운 논쟁이 제기된 것이 있으며, 그러한 경전의 주인공은 대부분 여성들인 점이 무척 흥미롭다. 대승 경전은 여성 주인공을 통해 기성 불교의 불완전한 교설을 비판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아니 여성들이 새로운 불교 경전을 통해 성차별적 관념을 넘어서고자 하였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를 두고 대승불교 전체가 여성 차별을 극복하였고 기존 초기불교는 성차별적 경향을 본질적으로 내포하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대승불교의 여러 경전과 논서 중에는 여성관에 대한 다양한 관점의 차이가 있으며, 심지어 단일 경전 내에서도 상반되는 입장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아가 불교 전체가 단일한 여성관을 담지한다고 보는 것도 보류될 필요가 있다. 불교가 성평등한가 아닌가를 ‘판정’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면, 그동안 읽을 수 없었던 새로운 여성의 모습과 그 의의가 불전 속에서 충분히 발견될 수 있다. 자, 그러면 불전 속에서 이 새로운 여성들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기로 하자. 그리고 불교가 여성들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했는가가 아니라, 여성들이 직접 불교의 법을 어떻게 설했는가를 보고자 한다. 초기 불전과 대승 경전에서 각각 하나씩 그 사례를 살펴보면서 법을 설한 여성의 이야기가 이어져 왔음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먼저 재가 여성이 암송한 경전이 있다는 것은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데, 『여시어경(如是語經)』 즉, 이띠웃따까(Itivuttaka)가 그것이다. 이는 쿳줏따라(Khujjuttarā)라고 하는 여성이 암송한 것으로 총 112개의 경으로 이루어져 있고, 다섯 번째 경장인 소부 니까야에 수록되어 있다. 그녀가 경전을 암송하게 된
것은 매일 법문을 듣고 이를 왕궁의 여인들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인데, 단순한 전달자에 그친 것이 아니라 불교 역사 속에서 법을 설한 여성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상윳다 니까야』에서는 “쿳줏따라가 나의 재가 여성 신도들 가운데 표준이고 모범이다”라고 붓다에 의해 칭송되기도 했고, 『법구경』 주석서에서는 그녀가 매일 붓다의 법문을 듣고 이를 전해주다 보니 어느덧 삼장을 외우게 된 ‘다문제일 우바이’, ‘경을 많이 듣고 법을 잘 설하기로 으뜸인 우바이’라고 찬탄하였다.

쿳줏따라가 이처럼 법을 많이 듣고 설하게 된 배경은 이러하다. 그녀는 본래 왕비 사마와띠(Sāmāvatī)를 위해 매일 아침 꽃을 사러 나가는 곱사등이 시종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꽃장수가 부처님에게 공양 올리는 것을 도우면서 법문을 듣고는 수다원과를 증득하게 된다. 그리고 법을 이해하면서 그동안 받은 돈
의 반만큼만 꽃을 샀던 행동을 고쳐 꽃을 두 배로 사가지고 가게 되었는데, 이를 본 왕비는 자신도 불사의 감로수를 마시고 싶다고 법을 청하였다. 쿳줏따라는 낮은 자리에서 법을 설할 수 없다 하며, 향기로운 목욕물과 아름다운 옷을 준비해 달라고 하고는 법상에 앉아 왕비와 오백 여인들에게 법을 설했다. 그녀에게 법을 들은 여인들은 모두 수다원의 과위를 얻었으며 쿳줏따라에게 삼배를 올리면서 계속 부처님께 법문을 듣고 돌아와 그대로 들려주기를 청했다.

한편, 사마와띠 왕비는 또 다른 후궁이 그녀를 질투하여 그만 처소에 불을 질러 시녀들과 함께 모두 타죽는 참변을 당하였다. 그런데 이때 왕비는 여인들에게 동요하거나 분노하지 않고 자애의 마음으로 삼매에 들게 하여 모두 죽기 전에 사다함이나 아나함과를 증득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모습을 보인 사마와띠 왕비는 ‘자애의 마음이 으뜸인 우바이’로 선언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왕비를 비롯하여 왕궁의 여인들이 이처럼 극악한 상황에서 자애삼매에 들어 도과를 증득할 수 있었다는 것은 다시 한번 쿳줏따라가 전한 법의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 보여준다.

다음으로 대승 경전 속에서 법을 설한 여성들을 살펴보자.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사리불과 대론을 펼친 『유마경』의 천녀 이야기가 있지만, 특히 초기 대승 경전 중에는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대승 사상을 설하고 보살도를 서원하여 이를 부처님이 인가, 수기하시는 사례가 적지 않다. 그리고 이들은 여성 성
불 불가라고 하는 쟁점에 대해 대승법에 입각하여 강력하게 비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초일명삼매경』에서 장자의 딸 혜시가 여성에게 5장애가 있어 성불할 수 없음을 말하는 비구 상도에게 본래 없음의 공(空) 사상을 설하면서 조목조목 비판하는 장면이 있다.

한편, 여성 성불을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전들이 남자로의 변성을 통해 그 진실성과 성취를 증명하여야 했는데, 『해룡왕경』의 경우는 변성 없이 여성의 몸으로 수기를 받고 있어 그 진일보성이 확인된다. 즉, 해룡왕의 딸 보금(寶錦)은 가장 보수적인 성문 제자 마하가섭과 논쟁하였는데 그의 여성 성불불가론에 대해 그녀는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여자의 몸으로 성불도를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남자의 몸도 역시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도의 마음에는 남녀가 없기 때문이다. 눈, 코, 입, 몸, 마음에는 남녀가 없다. 모두 공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허공과 적멸에는 남녀가없다.”

대승 경전의 여성 주인공들은 대개 법에 대한 높은 이해와 보살행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진 것으로 그려졌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성문승뿐 아니라 대승의 주요 보살들을 논박할 정도로 뛰어남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수마제보살경』에서는 8세 소녀 수마제가 보살 문수사리에게도 법을 설파했는데, 부처님은 수마제가 이제 비로소 무생법인을 얻었지만 문수사리보다 먼저 발심한 스승이었다고 하여 그녀의 높은 위상을 보여주었다. 또한 『득무구녀경』 혹은『이구시녀경』에서는 이구시(離垢施)가 8명의 성문승과 8명의 대보살에게 법에 대해 어려운 질문을 던져 이들의 말문을 막히게 했으며, 『월상녀경』에서 유마힐 장자의 딸인 월상이 변재가 뛰어나 모든 성문과 보살들을 논파하였다. 이와 같은 대승 경전의 여성들을 역사적인 인물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여성들은 대승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이미지를 반영하며, 이들을 통해 새로운 불교 운동으로서의 대승이 여성 성불 불가설이 포함된 기존 교설을 어떻게든 극복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여성 주인공들이 공을 설하면서 규정된 종성은 없음을 보이자 500여인들이 기뻐하고, 혹은 만 명의 용부인들이 그녀가 성불한 나라에 태어나기를 서원하였다 한다. 이것이 바로
법을 설한 여성들이 불교사에 지속하였던, 그리고 또 지속하여야 할 이유가 아닐까.

이와 같은 대승 경전의 여성들을 역사적인 인물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여성들은 대승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이미지를 반영하며, 이들을 통해 새로운 불교 운동으로서의 대승이 여성 성불 불가설이 포함된 기존 교설을 어떻게든 극복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여성 주인공들이 공을 설하면서 규정된 종성은 없음을 보이자 500여인들이 기뻐하고, 혹은 만 명의 용부인들이 그녀가 성불한 나라에 태어나기를 서원하였다 한다. 이것이 바로 법을 설한 여성들이 불교사에 지속하였던, 그리고 또 지속하여야 할 이유가 아닐까.

 

조승미
동국대학교에서 불교학 전공으로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연구교수, 서강대학교 종교연구소 선임연구원,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조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로 『열정적 깨달음, 딴뜨릭불교의 여성들』(번역), 『불교와 섹슈얼리티』(공저), 『한국여성종교인의 현실과 젠더 문제』(공저) 등이 있다. 동아시아 여성 선사를 비롯하여 불교 여신 신앙, 그리고 딴뜨릭불교 여성 성취자에 관한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