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의 한 물건] 기차에 관한 내 모든 것

달리지 못하는 연필깎이

2019-12-04     임수현

나는 기차에 관해서라면 일가견이 있다. 나는 역이 자리한 마을에서 태어났고, 소년 시절 신문 배달 월급을 받는 날이면 혼자 기차를 타고 1시간 남짓 떨어진 시로 여행했다. 신문에서 오린 영화 포스터와 문화면에서 읽은 소설가 신작 기사가 붙은 일기장은 어리고, 혼자인 승객의 유일한 동행이었다. 대학 시절 초반에는 젖은 머리로 새벽 기차를 타고 그 시까지 통학했다. 아침에는 졸았고, 오후에는 무료했다. 어제 흘러갔던 풍경이 오늘도 되돌아와 나는 딴청을 부리며 다른 곳을, 다른 계절을, 다른 인간을 창밖 풍경에 덧댔다. 지금도 고향에 가 옥상에 올라가면 넓은 들 한가운데로 옮긴 대로 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내 고향 집은 역 주변을 벗어난 적이 없다. 한마디로 나는 역, 역전의 아이였다.
지금도 그 간이역들을 기억한다. 횡천, 양보, 다솔사, 완사, 진상, 옥곡……. 목포에서 부산까지 많고 적건 지금도 누군가의 집이 있을 그 숱한 지명들. 가본곳보다 가지 못한 곳이 훨씬 많은 그 역들을 나는 지금도 거의 외고 있고, 어쩌다 그곳에서 발생한 뉴스를 접할 때면 나도 모르게 ‘나의 기차 시절’로 수렴하곤 했다.
스무 살 시절에는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다 불쑥 어느 간이역에 내려 다음 기차가 도착할 때까지 주변 마을을 서성거리고는 했다. 짧은 일탈의 시간이 배꽃이 흐드러진 봄이었는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신발이 몰래 과자를 깨무는 것 같은 늦가을이었는지 투명하기만 한데, 어느 집 뒤꼍에 옹기종기 앉은 장독대, 처마 아래 가지런하게 쌓인 하늘색 소주 공병, 하얗게 마른 수돗가와 갈색 펌프, 감나무 아래 놓인 역기……는 지금이라도 손을 내밀면 만질 수 있을 것만 같다. 낯선 마을 또한 간헐적으로 기적 소리에 포박되는 역 근처이기는 마찬가지였을 텐데, 내가 그 고요한 오후에 매혹된 건 아마 다른 역의 풍경들을 연습하고 싶어 했던 백일몽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살고 있는 역은 온종일 시끄러웠다. 오히려 몇 시간에 한 번씩 우렁찬 소리로 기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서는 게 그 모든 소란을 잠재우는 호루라기 같았다. 내가 알고 있는 역은 온갖 소문의 온상이었고, 싸움터였다. 가족보다 술을 사랑하는 아비들이 화물차가 부려놓은 시멘트 포대를 하역하는 직장이었고, 외상값에 시달리는 어미들이 드잡이하는 마당이었다. 따돌림당한 아이가 통운 마당에 쌓인 모래산 뒤에 숨어 눈물을 훔치는 놀이터였고, 콜타르가 흘러 내리는 드럼통을 집적이다 옷이 얼룩진 아이가 욕을 내뱉는 하굣길이었다.
내 세계는 그 모두였고, 그 모두가 아니었다. 한 달 하루를 뺀 나머지 동안 내게 역은 지옥이었지만, 주머니에 돈이 넉넉한 월급날이면 뱀처럼 나를 친친감았던 기찻길은 똬리를 풀고 내가 꿈꿨던 극장과 서점의 세계를 향해 길게, 길게 펼쳐졌다. 아무도 내리지 않는 간이역 좁다란 대합실에 비치된 종이들을 읽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침목과 쇄석을 밟으며 혼자 걸어가는 그 잠깐의 일탈 동안 나는 내가 그토록 오래 꿈꿨던 다른 세계에 오롯이 몰입할 수 있었다. 그렇게 차곡차곡 내 마음에는 ‘이야기’의 선로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연필깎이를 바라보고 있다. 첫 책이 나왔을 때였나. 직장에서 만나 같은 해 등단한 뒤 친구가 된 소설가에게 선물 받았던 연필깎이이다. 나는 ‘기차’에 관한 이야기를 어느 정도 흘려놓고 새 연필 한 자루를 찾아 기관차 모양의 연필깎이를 꺼냈다. 이 글은 기차를 통과한 날씬한 연필로 퇴고하고 싶었다. 그리고 철석같이 은하철도 앞머리를 시늉한 ‘하이샤파’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연필깎이가…… 오래된 자동차라는 사실을 깨닫고 만다.
나는 바퀴 달린 연필깎이는 모두 기차라고 생각했다. 어릴 적 그토록 갖고 싶었지만 소유해본 적 없는 ‘하이샤파’가 아닐 거라고는 추호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심이 닳은 연필을 끼우고 손잡이가 헐거워질 때까지 돌리는 동 안 나는 버릇처럼 역이 배경인 기억을 떠올리곤 했다. 그 기억은 대개 연필로 그린 듯 흑백이고, 나란 존재는 지우개로 지운 듯 흐릿했다. 어쩌다 이렇게 멀쩡해져 버렸을까. 나는 달리지 못하는 기차를 붙들고 다른 세계를 꿈꾸며 밑줄 긋고, 휘갈기고, 말줄임표를 이어왔던 내 기억의 궤적들을 우두커니 들여다봤다. 그러나 그 모든 게 착각이었다.
지금이라도 나뭇가루를 삼키며 연명하는 바퀴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된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차마 연필깎이에 새 연필을 꽂지 못하고 심이 뭉툭한 몽당연필 한 자루를 찾아 구멍에 넣고 손잡이를 돌렸다. 유사한 연상물에 대한 굳건한 오해와 스스로마저 깜빡 속여 버린 ‘거짓말’을 되새겼다. 마치 기차에 오르자마자 딴생각에 빠졌다가 그만 한 역을 더 가서 되돌아가는 기차를 기다려야 했던 오후의 낭패가 떠올랐다. 소년이었는지, 스물이었는지 흐릿한데 나는 간이역 주변을 기웃거리지 않았다. 그냥 대합실 의자에 앉아 책가방을 끌어안고 멍청한 나를 미워하기 바빴다. 집이 그토록 그리운 건 처음이었다. 배가 고팠고, 아무것도 읽고 싶지 않았다. 얼른 낡고 허름하지만 편안한 내 역전으로 돌아가 밥과 김치를 아귀아귀 먹고 싶었다. 나는 스스로 만든 감쪽같은 착각에 배시시 웃음이 난다. 그 역에 관한 고백 또한 누군가에겐 엉터리 거짓말로 여겨질 수 있지 않을까. 이웃은 저녁마다 반찬을 나누고, 아이들은 벚꽃 같은 윗니를 드러내고 온 역을 놀이터로 삼았다고. 늘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설레는 마을이었다고. 그렇게 나와 다른 기억들이 나란한 선로가 돼 궤적을 이룰 때 기차에 관한 이야기는 비로소 완성되는 게 아닐까, 확고했던 내 착각마저 사각사각 기꺼워진다.

나는 처음으로 기차, 아니 자동차 연필깎이의 생김새를 이모저모 살펴본다. 바퀴 뒤쪽 연필 부스러기가 담긴 플라스틱 상자를 처음으로 꺼낸다. 내가 ‘거짓말했던’ 글씨들의 부스러기는 흑백이 아니라 무지갯빛이다. 내가 그토록 미워했던 역전의 기억 또한 이렇게 다양한 빛깔을 품고 있었을 텐데, 다른 세계만 욕심냈던 나는 역을 그만 시멘트처럼 답답한 색깔로 눈감아버렸던게 아닐까.
나는 기차가 지나가는 마을에 웅크려 연필을 쥐고 아무에게도 들려주지 않은 가장 내밀한 거짓말을 시작했다. 내 작은 몸이 거짓말의 세계를 더 이상 담아낼 수 없을 때 나는 어린 노동자가 됐고, 한 달에 한 번 기차에 올랐다. 그렇게 거짓말 너머에 있던 세계는 기차를 통해 조금씩 가까워졌고, 이제 ‘역전’은 나로부터 가장 먼 곳이 되었다. 지금 내 세계는 조금씩 쓰고 지우다 또 한뼘 줄어든 몽당연필 같다. 꽃잎처럼 깎이고 깎인 나뭇결은 되돌아갈 수 없는 시간의 선로에 쇄석처럼 흩뿌려져 있고, 나는 점차 소실점이 되어간다.
오래전 먼 남쪽 읍 간이역에서 시작된 거짓말은 내 생의 어느 지점에서 마침표가 될까. 먼 훗날 그 종착역의 이름은 무엇이라 부르게 될까. 나는 한 번도 달린 적 없는 바퀴를 바라보며 내가 지나온 생의 간이역들을 하나하나 불러본다.

임수현

1976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2008년 문학수첩 신인상에 「앤의 미래」가 당선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이빨을 뽑으면 결혼하겠다고 말하세요』, 『서울을 떠나지 않는 까닭』, 장편소설 『태풍소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