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묵 스님의 화 다스리기] 화를 버리는 방법 4 화의 원인을 이해하고 화는 실체가 없음을 보아라

2019-12-03     일묵 스님

아홉째, 화의 원인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화를 알아차려도 버려지지 않을 때는 그 원인을 파악하여 화를 버릴 수 있습니다. 화의 원인을 찾을 때는 다음과 같이 화가 일어나는 번뇌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유용합니다.

‘어리석음을 조건으로 탐욕이 일어나고, 탐욕을 조건으로 화가 일어난다.’ 먼저 탐욕을 조건으로 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자신의 문제에 적용해 봅니다. 탐욕, 즉 집착이 없다면 화가 나지 않습니다. 집착하는 것이 있으므로 화가 일어난다는 점에 주목하여 내가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지 조사해 봅니다. 이처럼 화의 원인이 되는 집착을 파악하고 그것 때문에 화가 일어났음을 이해하게 되면 화를 버릴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집착 때문에 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이해했는데도 화가 반복해서 일어난다면 그 집착에 어떤 어리석음이 숨어 있는지를 깊이 조사해야 합니다. 집착에 숨어 있는 어리석음을 이해함으로써 집착과 화를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어리석음은 탐욕과 화의 뿌리입니다. 따라서 어리석음을 명확히 꿰뚫지 못한다면 화를 근본적으로 버릴 수 없습니다.

한 여자 수행자는 어떤 모임에서 다른 사람이 주목받는 것을 보고 화가 났습니다. 그때 그분은 화를 내는 자신을 알아차리고 ‘나는 왜 화가 나는 걸까? 나는 무엇을 집착하는가?’ 하고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러자 자신에게 주목받기를 원하는 탐욕이 있었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아 화가 났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이를 아는 것만으로도 화가 버려졌지만, 더 나아가 그 집착 속에 어떤 어리석음이 숨어 있는지 관찰해보았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주목받고자 하는 집착에 ‘내가 있다’라는 어리석음이 숨어 있음을 통찰하였습니다. 부처님은 자아가 있다는 생각은 전도몽상이라 하면서 무아(無我)를 설하셨습니다. 이같이 ‘내가 있다’라는 어리석음 때문에 주목받고 싶다는 탐욕이 일어났고 그런 탐욕 때문에 화가 났음을 이해하자, 즉시 화가 버려졌고 어떻게 화가 일어나고 소멸하는지에 대한 지혜가 생겨났습니다. 이처럼 화를 알아차리고 그 원인을 조사하면 화에 대한 깊은 지혜가 생깁니다.
한 가지 주의할 것은 화가 일어났을 경우 어느 정도 가라앉아 마음이 고요해진 상태에서 그 원인을 조사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화가 난 상태에서 원인을 찾으려 하면, 마음이 이미 화에 압도되어 있어 바른 원인을 찾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화의 원인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화의 원인은 알지 못하고 버리려고만 하면 화를 억제하고 참는 것이 되어 오히려 괴로움을 키우게 됩니다. 마치 몸에 통증이 있을 때 진통제를 복용하지만, 그 통증의 원인을 치료하지 않는다면 병을 계속 키우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화의 원인을 바르게 이해해야 화를 근원적으로 버릴 수 있습니다.
열째, 화를 낼 대상이나 화 자체가 실체가 없음을 보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상당히 깊은 지혜가 필요합니다. 한 남자 수행자는 어떤 사람에 대한 깊은 원한이 있어 그 사람만 떠올리면 화가 불같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분노의 원인을 찾아보니 대상을 나쁜 사람으로 규정하고, 그것에 집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집착이 일어난 이유는 그를 나쁜 사람으로 규정하고 실체화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모든 존재는 무상(無常)하므로 무아(無我)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대상은 변하고 있고 실체가 없음을 뜻합니다. 또 원한을 가졌을 때의 그 사람은 이미 변해 사라졌으며 지금 이 사람은 과거와는 다른 사람입니다. 이처럼 화를 낼 대상은 실체 없음을 이해하게 되면 화는 저절로 버려집니다.
또 자신에게 일어난 화를 자신과 동일시해 ‘나의 화’라고 받아들이면 떨쳐 버리기가 힘듭니다. 우리는 ‘나를 화나게 했고, 내 자존심을 상하게 했고, 내가 상처받았다’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화는 항상 ‘나’와 동일시하면서 일어납니다. 그런데 깊이 통찰해 보면 화도 마음과 대상의 접촉을 통해 일시적으로 일어난 심리 현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만약 화를 낼 대상이 없다면 화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대상을 아는 마음이 없다면 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마음과 대상이 만나는 접촉이 없다면 화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화는 조건 따라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심리 현상일 뿐이며, ‘나’도 아니고 내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화는 작용은 있지만, 실체가 없음을 통찰함으로써 화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열 가지 방법을 염두에 두고 화가 일어나는 상황마다 자기만의 적절한 대처법을 적용해 노력하다 보면 화를 버리는 방법에 대한 지혜가 생겨납니다. 화는 오랜 세월 반복되면서 만들어진 습관이므로 한 번의 노력으로 금방 사라지지 않습니다. 항상 또렷하게 깨어 있는 노력을 지속하면 나중에는 깨어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화가 일어나는 시간이 적어질 것입니다.
화를 버리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아는 것은 지식에 불과합니다. 실제 나의 삶에 적용해서 자신만의 지혜를 쌓을 수 있도록 지속하여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혜는 단순히 생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전 속에서 익혀지는 것임을 잊지 않고 꾸준히 실천해야 합니다.

● 지난 1월부터 연재된 <일묵 스님의 화 다스리기>는 이번 12월호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일묵 스님의 화 다스리기>는 지금까지 연재된 내용에 더불어 새 글을
더해 단행본으로 인사드릴 예정입니다.

글.
일묵 스님(제따와나 선원장)

 

일묵 스님
서울대 수학과 졸업, 해인사 백련암에서 출가. 범어사 강원을 수료한 후 봉암사 등에서 수행정진했다. 미얀마와 플럼빌리지, 유럽과 미국의 영상센터에서도 수행했다. 현재 제따와나 선원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