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만나는 불교] 우스꽝스럽지만 성스러운 이야기 영화로 만나는 불교 / 김천

영화

2019-12-03     김천

성과 속은 욕망의 경계에서 나누어진다. 타이 영화 <성자 2(The Holy Man, Luang phiii theng 2, 2008)>는 탐욕이 결국 자신과 타인 모두를 해친다는 불교의 전형적인 가르침을 담은 코미디 영화이다. 배우이자 감독인 노트 천 임(Note Chern-Yim)은 2005년 전작 <성자> 1편의 성공으로 모두 3편의 연작을 만들었다. <성자> 2편은 크게 성공하여 그해 타이에서 두 번째로 흥행한 작품이 됐다. 이 영화는 그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출연도 했다. <성자 2> 에서 스님 역을 맡은 조이 보이는 타이 힙합의 대부로 불리는 가수 겸 프로듀서이다. 젊은 층에 가장 영향력이 크고 인기 높은 인물이다. 때문에 영화 속에서 그는 특유의 랩으로 법문을 하고 신자들은 새로운 설법에 환호한다. 타이는 국민 열에 아홉 이상이 불교 신자이다. 불교는 문화뿐 아니라 생활 모든 면에서 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1997년까지 불교는 타이의 국교였고 아직도 단기 출가는 의무이다. 때문에 다양한 불교 영화가 만들어지고, 아예 불교가 영화 장르의 하나로 분류된다. 심각하고 진지한 영화도 있고, 악령을 쫓는 공포 영화도 만들어진다. 그리고 성자 시리즈와 같은 코미디도 있다. 불교 영화의 인기가 높다 해도 자유롭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시나리오는 엄격한 사전 검열을 거쳐 종교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다는 판정이 나야 제작이 가능하다. 종교인들에게 자신이 믿는 종교의 완결성과 권위는 절대적이다. 그 어떤 비판이나 풍자도 불경하게 취급되고 신성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인다. 종교적 권위 또한 예술가들에게는 늘 도전의 대상이 돼왔다. 율법을 인간성에 대한 억압으
로 받아들이거나 시대착오로 파악하거나 이성에 대한 도전으로 생각하는 작가들도 있다. 그들은 늘 종교가 쳐놓은 선을 넘으려 하고 충돌과 파멸을 경험한다. 인간의 예술은 그런 과정을 통해 조금씩 전진해왔지만, 아직도 작품 때문에 형벌을 받거나 위협을 겪어야 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성자 2>는 코미디 영화답게 악인은 제어하지 못하는 탐욕 때문에 스스로 파멸하고 마는 권선징악의 과정을 다룬다. 주인공 루앙 피 텟 스님은 불법의 진리를 깨치기 위해 길을 떠나는데 출발부터 곤경을 맞는다. 길은 끊어지고 폭풍을 만나 발우와 소지품을 잃어버렸고 그도 바람에 날려 나무 꼭대기에 매달린다. 온몸에 상처를 입고 길을 잃었다가 찾아간 곳은 채석장 인근 마을. 발파 작업에 날아온 돌 때문에 절은 부서지고 헬멧을 써야만 지낼 수 있는 곳이다. 채석장 주인은 악행을 거듭하며 사람들의 고통엔 아랑곳하지
않은 채 폭력배를 고용해서 대항하는 이들을 억압한다. 젊은 루앙 스님까지 저격하려 하지만 다행히 총알은 발우를 맞고 비켜 갔다. 악인은 자신의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법이다. 욕망은 더 깊은 악으로 이끌고 우리는 눈이 먼 채 채울 수 없는 갈망의 쾌락에 휩싸여 들어간다. 주지스님은 젊은 스님의 분노에 악을 악으로 맞서지 말라고 가로막았다. 채석장 주인의 악행은 거듭되어 마을 사람들은 채석장의 먼지 때문에 기침하고 돌에 맞아 상처를 입고 일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게 됐다.


영화를 포함한 드라마 연출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희극이라고 한다. 비극은 슬픔을 통해 감정을 정화한다. 서양 예술론의 바탕이 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詩學)’은 비극은 연민과 두려움을 상기시켜 우리 감정을 정화한다고 말했다. 비극 속에서 주인공은 보통 사람들보다 잘난 모습을 보여주고, 희극 속에서 못난 모습으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비극은 인간의 아름다움을 일깨우고 희극은 추한 면을 드러낸다고 했다. 희극의 주인공은 대부분 모자란 생각과 과장된 행동으로 표현되기 일쑤이다. <성자 2>에서도 스님들은 뒤섞인 언행으로 사람들을 웃긴다. 희극의 이야기는 어렵지 않아야 하고 주인공의 고뇌는 진지하기보다는 우스꽝스럽게 그려져야 한다. 때문에 코미디는 늘 직업과 계층에 대한 폄하라는 비난의 위험 앞에 서 있다. 풍자와 경멸의 경계는 늘 모호하다. 주지스님의 병이 위급해져서 병원으로 옮겨야 할 때 스님들은 호들갑을 떨면서 차로 급히 출발하지만 정작 환자는 놔두고 떠난다. 루앙 스님이 노스님을 업고 따라가지만 차에 탄 스님들은 끝까지 빨리 가야 한다고 소리만 지를 뿐 환자가 타지 않았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영화는 이처럼 모든 상황이 비틀리고 꼬여 있다. 황당하고 과장됐으며 심지어 살인자조차 두렵기보다 우스꽝스럽다. 문화의 힘은 강하다. 우리 문화가 세계 시장을 앞서가는 분야도 있다. 주요 국제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는 늘 주목받고, 대중음악은 정상에 우뚝 섰다. <성자 2>의 앞부분에서도 스님이 소녀
들을 향해 “동방신기, 안녕하세요”를 말할 정도로 영향력을 가졌다. 국내에서도 종종 불교 영화가 만들어지긴 하는데 너무 진지하고 예술 지향적이다. 수행 과정은 늘 폭포 아래서 눈을 질끈 감거나 고뇌에 사무쳐 눈밭을 구르는 장면으로 정형화되고 수행자는 고행 속에서 괴로워한다. 진리는 멀고 불법은 어렵다.

예술 영화로서 가치는 어떨지 모르지만 영화를 보는 대중들에게 불교는 현실과 동떨어진 별세계에서 뭔지 모를 것을 찾아 고민만 하는 모습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가물에 콩 나듯 나온 불교 소재의 코미디 영화는 당시 시류에 편승한 조폭 주제의 영화라서 애매하다. 불교의 세계는 물론 진지하고 수행의 길은 성스럽다. 그렇다 하여 공양간에서 농담도 하지 않는 비현실의 종교는 아니다. 웃으며 수행할 수 있고 참선과 만행이 고통스럽지 않은 행복하고 즐거우며 재미있는 모습을 영화 속에서 볼 수 있다면 좋지 않겠는가. 불자들이 설혹 남보다 못한 모습으로 과장된 언행으로 그려질지라도 그 모습에 지혜와 자비심을 담을 수 있다면 대중들의 사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너무 심각하면 금세 지치고 만다.

루앙 스님은 결국 마을 사람들과 함께 채석장 주인에게 맞섰고 권선징악은 이루어졌다. 마을은 평화를 얻고 잘 먹고 잘살게 됐다. <성자 2>의 결말이다. 지나친 욕심은 당신의 인생을 더 큰 고통으로 이끌어갈 뿐이다.

● <성자(The Holy Man)> 1·2·3 편 모두 유튜브에서 영문 자막판을 볼 수 있습니다.

김천
동국대 인도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방송작가, 프로듀서로 일했으며 신문 객원기자로 종교 관련기사를 연재하기도 했다. 여러 편의 독립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지금도 인간의 정신과 종교, 명상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