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 그것은 자연의 법칙

보현행자의 목소리

2007-09-15     관리자


불 교에서는 서양 종교와 달리 초월신을 섬기고 있지 않다. 따라서 서구의 종교학자들은 종종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불교 속에는 철학뿐만 아니라 온갖 학문의 내용이 종합되어 있다. 불교에서는 신을 숭배하지 않으나 법을 존중하고 진리를 숭상한다. 부처님께서는 "이 법은 내가 출현하나 출현치 않으나 무시겁래(無始劫來)로 항상 있는 상주불멸의 진리니라."하였듯이 불교는 서구 종교의 신 대신 법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불교가 근래에 들어서 서양에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불교의 합리성 때문이다. 절대자에 의해서 인간의 화복(禍福)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지은 인과율에 의해서 화와 복이 오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 하셨듯이 현재의 과(果)는 과거의 인(因)이며 현재의 인은 곧 미래의 과이다 불교에서는 기독교의 절대자 대신 인과법 즉 "선인선과, 악인악과(善因善果, 惡因惡果)"의 인과응보 사상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 인과율의 사상은 현대 과학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불교의 인과법이란 물질의 세계뿐 아니라 인간의 도덕적 행위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불교에서 인과응보를 이야기할 때에는 현재의 인이 즉시 과보를 받는 것, 당장 과보를 받는 것, 또는 죽은 후 다음 세상에서 과보를 받는 것, 세가지로 나누고 있다. 우리 주위에서 악한 일을 많이 한 사람도 잘 살다가 편히 세상을 떠나는 일들 많이 보는데 만일 윤회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에 대한 논리적 설명은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윤회라든지 전생 또는 영혼이라는 말을 들으면 흔히 비과학적이고 미신이라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가지게 된다. 그러나 영혼 또는 전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학적 증거는 어디에도 없으며 또한 이들은 현대 과학과도 모순되지 않는다.
단지 여태까지 과학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과학사를 살펴보면 과학의 역사는 오류와 정정의 역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는 무거운 물체가 빨리 떨어진다고 말하였다. 그후, 갈릴레이가 실험으로 물체는 무게와 관계없이 동일한 속도로 떨어진다는 사실을 증명할 때까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받아 들여졌었다.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가 받아들여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일은 과학이 발달한 현재 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연과학적 사실들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지금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적 법칙을 진실로 이해하면서 받아 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단지 증명된 사실이라고 교과서에 나와 있으니까 인정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그처럼 오늘날에는 자명한 사실도 20세기 초에는 일반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러한 사실을 주장한 사람들이 미치광이라고 매도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위대한 인물이나 책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권위는 밀려나고 인간 자신의 오관(五官)에 대한 맏음이 대신 들어서게 되었다. 과학의 발달은 현미경등의 각종 기구를 발명함으로써 인간의 감각 범위를 확장하였으며, 이성은 오관의 관찰을 이론으로 조직화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확장된 인간의 감각범위조차도 한 시간 앞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역사의 기록들을 보면 어떤 사람들은 미래를 예측하거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날 일을 미리 알았다는 기록이 있다. 18세기의 위대한 수학자이며 과학자였던 스웨덴 보르그는 이틀 후 고향에서 일어날 화재를 미리 예측하였으며, 또한 마크트레인이나 아브라함 링컨, 생상스 같은 사람들의 자서전이나 전기를 보녀, 그들의 생애 어떤 때에 그 시각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또는 몇달 내지는 몇 년 후에 일어날 사건을 갑자기 환영으로 보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런 모든 것들을 단지 우연의 일치거나 거짓으로만 돌려 버릴 수 있겠는가? 아직 사후의 세계, 즉 영계에 대한 연구는 완전히 체계가 잡힌 학문은 아니다. 그러나 사후의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런 수많은 불가사의한 심령 현상의 기록들은 어떻게 설명이 될 것인가! 심령과학이나 초심리학은 이러한 사실들을 과학적으로 조명해보려는 목적에서 나왔으며, 보다 계몽적이고, 보다 실천적으로 많은 과학자들의 눈을 뜨게 하는데 공헌 하여 왔다. 심령현상이 다른 자연 과학과 다른 점은 영매(靈媒)라는 특수한 사람들을 매개로 하여 나타난다는 것, 그리고 이 현상이 인간 심리에 의존함으로써 재현성(再現性)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심령 현상에는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인 사술(詐術)이나 오류 -사후 개성의 존속이라는 문제가 조작적인 면에서 검증하기가 너무도 어려운 문제라는 점과 영매를 사용하는 실험에서는 연구자가 완전히 조건을 관리한다는 것이 불가능 하다는 사실-가 수반할 수 있으며 이 사실 때문에 영혼이 존재한다는 결정적인 해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생의 목적은 깨달음이다. 즉 우리의 본성을 깨닫는다라는 뜻이다. 우리가 이 본성을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에 육도와 사생이 벌어져서 인간은 그 사이를 쳇바퀴 도는 것과 같이 윤회를 하며 인간은 이것을 모르고 오욕락에 빠져 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불교나 힌두교에서나 영혼이나 사후의 세계를 당연히 받아 들이고 있다. 티벳 불교의 비밀경전 [사자(死者)의 서(書)]에서는 영혼이 육체를 떠난 후 다시 환생할 때까지의 과정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이 책에서 묘사한 사후의 모습은 사고로 인하여 잠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와 너무도 일치하고 있다. 또한 이것은 번스타인에 의하여 연구된 '최면에 의한 연령퇴행(年齡退行)'으로 태어나기 전까지 나이를 거슬러 올라간 사람들의 증언과도 일치하고 있다. 이런 사례들은 환각이나 조작이 아니라 철저히 조사된 것들이다. 만일 윤회가 객관적으로 인정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자연의 법칙처럼 사람들이 의심없이 받아 들인다면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결론적으로 불교의 가르침은 자기의 일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부처님도 인과만은 어쩔 수 없다고 하였다. 즉 자기의 죄를 다른 사람이 대신 할 수 없으며, 자신의 공부(수행,깨달음)도 다른 사람이 결코 대신 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자신이 씨를 뿌린 행위는 자신이 거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물리학에서의 에너지 보존의 법칙과 같이 한번 자신이 지은 업은 자신이 풀기 전에는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와 같은 것이다. 만일 윤회가 진정 인간이 완성을 향하여 진화해나가는 과정에서 작용하는 자연의 법칙이란 것이 밝혀진다면, 우리의 생활과 사고방식은 획기적으로 변할 것이다. 영혼과 윤회의 문제는 과학적으로 보면 결국 물질과 정신의 상호작용으로 귀결되며 이를 해결하는 것은 물리학이나 심리학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의 긍극적 목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이들 모든 학문이 모순없이 통합되어 있으며 하나의 완벽한 체계를 이루고 있다. 이를 이해하고 깨닫는 것이 불자의 일인 것이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옥정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