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불교] 티벳불교

세계의 불교

2007-09-15     관리자

수 세기 동안 불교는 아시아 전역에 걸쳐 정신적, 문화적 영향을 끼치며 퍼져 나갔다. 티벳에 불교의 교리가 전해진 것은 7세기 초였으나 이 눈의 나라에 불교가 정신적 지주로 널리 퍼진 것은 그 후 신앙심이 깊은 송짼캄포 왕의 통치기간(서력629-649)이었다. 이 왕은 나란다 사원의 저명한 인도학자 샨타락시타와 카리스마적이면서도 강력한 힘을 지닌 요가수행자 파트마삼바바(티벳인들 사이에 제2의 부처로 알려저 있는)를 초청하여 가르침을 구했다.
티벳에서 수도원의 질서를 처음 세운 것은 산타락시타였으나 파드마삼바바는 부정적 요소들을 제압하고 세계의 지붕인 이 나라에 첫 수도원을 건설했다.
나중에 몇몇 수도원 대학과 많은 소규모 사원들이 건립되었다. 사실, 티벳이 20세기 중반까지 모든 대승 불교의 가르침의 순수성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지리적인 고립성 때문이었다. 불교전통이 아주 깊게 뿌리를 내렸고, 천 년 이상이 흐른 지금 티벴 국민은 이 내적인 정신적 가르침이 어떻게 실천되어야하는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본보기로 여전히 남아있다.

달라이라마
달라이라마는 티벳의 가장 높은 정신적,세속적인 지도자이다. 티벳 전통에 의하면 달라이라마는 지속적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영적 저통의 계승자이며 이는 게룩종 창시자인 라마 총 카피의 제자로서 제1대 달라이라마인 갈와 게둔 드럽(1391-1474)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티벳인들은 이 달라이라마들을 아발로키체쉬바라-모든 유정(감각을 지닌 중생)을 구제 하기 위해 환생을 선택한 연민의 부처의 화신으로 여긴다. 어원학적으로 몽고어에서 파생한 다라이라마라는 단어는 '지존의 스승'을 뜻한다. 그러나 티벳인들은 달라이라마를 보통 예쉬 노르부(소원을 이루게 핸 주는 보석), 혹은 겔와 린포체(존귀한 정복자)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현재 14대 달라이라마인 겔와 덴진 가초는 1935년 7월 6일 티벳 북동부인 암도지방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가 두 살이었을 때 면밀하고 광범위한 전국적 탐색 끝에 그는 그의 전임자인 위대한 13대 달라이라마의 화신으로 인정 받았다. 이 탐색과 이 중요한 종교적 인물에 대한 승인은 달라이 라마청의 한 위원회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위원회는 임시로 티벳을 대표하는 통치자, 현인들, 천리안을 가진 여러 저명한 라마들 혹은 영적 지도자들로 구성된다. 14대 달라이 라마가 16세 밖에 안 되었을 때 중국이 티벳을 점령하자 그는 정치적 전권을 행사하는 동시에 티벳의 지도자가 되도록 요청받았다. 그때부터 그는 처음에는 티벳에서 그리고 나중에는 인도에서 망명자로서 문제의 해결이나 혹은 티벳점령과 관련 된 문제에 관해서 중국과 타협을 이끌어내기 위해 그리고 티벳문화의 파괴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들을 계속해왔다. 그의 갱니적 신조인 비폭력 철학 그리고 모든 유정에 대한 우주적 책임감으로 인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티벳민족의 해방을 성취하기 위한 행동들로 인해 그는 196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망명
1959년 중국의 점령으로 티벳인들은 정치적, 영적 자유를 송두리째 잃어버렸다. 점령 후 약 20만 명의 티벳인들이 그들의 정신적 지도자인 성하 제 14대 달라이라마와 함께 망명했다. 그들은 주로 인도와 네팔에 자리 잡았고 여러 서양 국가들로도 약간씩 흩어졌다. 그들의 신앙에 대한 갚은 믿음과 영혼에 대한 그들의 자연적인 의존으로 인해 티벳인들은 그들의 종교적, 문화적 전통을 지켜 올 수 있었으며 이 커다란 불행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정치적 사회적 정체감을 발견해 올 수 있었다. 이러한 그들의 성공 사례로서 망명지 다람살라(니도 북부)에서 티벳정부를 재건한 것과 미국과 유럽에 번창하는 작은 티벳 공동체들을 세운 것은 물론 남부 인도에 8,000명이 넘는 학승들이 있는 세라, 가덴, 드레풍의 사원대학을 재설립한 것을 들 수 있다.
지난 20년간 많은 서양인들이 아시아로 여행했는데 이들이 덕높은 스승들과 만나면서 불교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드들 중 많은 이들에게 있어 명상은 새로운 생활방식의 기본이 되었으며 지혜로운 것, 어떤 상황에서도 친절히 행동할 수 있는 자가 되려는 목적으로 정신수련을 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이 되었다. 그러한 관심의 결과로서 불교철학을 가르치고 실천하는 센타들이 전세계에 설립되었다.

이탈리아의 티벳불교 역사
이탈리아 불교사에 있어서 가장 큰 공헌을 한 이는 귀도 뚜치(1894-1983)인데 드는 특히 정통한 불교학자일 뿐 아니라 불교가 지닌 정신적 가르침을 진지하고도 겸허하게 숭배한 사람이었다. 그는 여덟차례의 탐험기간 중 아리아인의 땅(인도)과 눈의 땅(티벳)을 방문했다.
아시아 전체에서 밀려드는 순례자들과 함께 그는 카이리쉬산을 돌았다.
1993년 그는 타쉬룬포와 여타 사원들을 조사했는데 거기서 그는 종려나무 잎사뤼에 산스크리트어로 쓰여진 불교사상에 관한 몇몇 자료들을 발견했는데 이들 자료는 회교도의 점령으로 인도의 대학들이 파괴되고 불교의 비구들이 위험에 빠졌을 때 불교를 신봉하는 인도의 현인들이 티벳으로 옮겨다 놓은 것들이었다. 이 조사의 결과는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비문이 복제되고 철학적, 종교적 논문들이 수집되고 역사적으로 흥미를 끄는 장소들에 대한 방문이 이루어졌다. 이 자료는 마침내 이탈리아 중극동연구소에 의해 분류되고 목록화되었다.
그 후 중국이 티벳을 점령한 후인 1960년에 뚜치 교수는 두 티벳 라마들, 남카이노르부 린포체와 게쉬, 잠펠 셍기를 이탈리아로 초청했다. 이들 라마들은 극진한 보살핌 속에서 이탈리아에서 티벳어와 문화에 대한 지식과 불교의 전반적 수행법을 전파했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옥정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