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포교의 새벽을 연 광덕 스님, 스님의 전법 정신을 이어받다! 광덕 스님 상좌 지홍 스님 인터뷰

특집 | 창간 45주년, 다시 보는 월간 「불광」 | 제자, 스승을 말하다 1

2019-11-07     양민호

불교의 생활화, 현대화, 대중화를 기치로 전법과 도심 포교에 앞장섰던 광덕 스님. 지금도 스님의 뜻은 ‘불광(佛光)’이라는 이름 아래 빛을 발하고 있다. 광덕 스님이 강조했던 가르침은 무엇일까, 스님이 그렸던 불교의 모습에 오늘날 한국불교는 얼마만큼 근접해 있을까. 광덕 스님의 뒤를 이어 불광의 정신을 세상에 펼쳐온 상좌 지홍 스님을 만나 광덕 스님의 삶과 가르침에 대해, 앞으로의 새로운 불광운동에 대해 들어봤다.

Q ─ 월간 「불광」이 45주년을 맞이했습니다. 현재 발행인이자, 그 시작과 역사를 함께해 온 스님이시라 소감이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월간 「불광」은 1974년 11월 대각사라고 하는 사찰에서 출발했습니다. 그 시작을 옆에서 지켜봤죠.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변변한 사무실도 없었고, 글 써줄 사람 구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중간에 잠시 쉬거나 중단해야 하나 고민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단 하나, 전법에 대한 원력이었다고 봅니다. 초기에는 제 은사이신 광덕 스님의 원력으로, 이후에는 잡지를 만드는 실무자들 개개인의 원력이 불광을 여기까지 이끌어 온 것이죠. 지금껏 함께해준 모든 분들, 현장에서 일하는 실무자와 또 잡지를 구독해 주신 독자님들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아마 광덕 스님께서도 크게 감격하고 고마워하고 계실 겁니다.

Q ─ 45주년을 맞아, 불광의 뿌리라 할 수 있는 광덕 스님의 삶과 가르침을 되짚어보고자 합니다. 누구보다 가까이서, 오래 광덕 스님을 지켜보셨을 텐데요. 광덕 스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전혀 꾸밈이 없는 분이셨습니다. 늘 진지하고 진솔하게 사람들을 대하셨죠. 제자와 수행자들에게는 아주 엄격했던 분이지만, 재가자들에게는 한없이 자상하셨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주려고 하셨죠. 설사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이 거짓으로 말을 하더라도, 그것이 뻔히 두 눈에 보이더라도 무시하거나 모른척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을 보살처럼, 부처님처럼 대하라.” 그런 말씀을 항상 제자들에게 강조하셨습니다. 출가자로서 본분에도 소홀함이 없었습니다. 수행 정신과 책임감이 투철했습니다. 매일 철저하게 수행에 임하고, 맡은 바 소임에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언제나 한국 불교의 내일을 고민하고 하느라, 조금의 여유도 없이 사셨습니다. 한마디로 자기 관리가 아주 철저한 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Q ─ 지홍 스님과 광덕 스님의 인연이 궁금합니다. 어떻게 사제의 연을 맺게 되셨는지, 또 두 분 사이에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출가의 동기가 공부하고 싶어서였어요. 공부할 형편이 안 되는 환경에서 자랐는데, 어느 날 어머님이 스님은 평생 공부하며 산다더라 하시는 말을 듣고 출가를 결심했습니다. 1970년에 범 어사로 가 행자 생활을 시작하면서 광덕 스님을 처음 뵀습니다. 당시 사중의 어른이셨던 스님께 수계를 받고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971년 광덕 스님이 총무부장이 되어 서울로 가실 때 함께 따라와 20여 년을 곁에 머물며 스님을 모셨습니다. 돌아보면 긴 시간을 함께한 것인데, 특별한 일화라고 할 만한 것은 없습니다. 왜 그럴까 저도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요. 은사스님과의 생활이 언제나 똑같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새벽에 일
어나 예불하고 기도하고… 하루가 그런 삶의 반복이었습니다. 특별할 게 없었죠.

Q ─ 광덕 스님께서 평소 강조하신 말씀이나 가르침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은사스님의 원력을 세 가지로 요약하면 전법, 포교, 불교 대중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련하여 스님께서 저에게 항상 하셨던 말씀이 “출가자에게는 전법이 생명이다, 전법이 곧 수행이다”였습니다. 그런 가르침에 자연스럽게 동화되어서, 제 삶 역시 전법의 길로 들어선 것이 아닌가 합니다. 1990년대를 지나며 전법도량을 만들고, 전법 조직을 구성하고, 각종 사업을 전개해 나갔던 것도모두 은사스님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Q ─ 광덕 스님으로부터 시작된 도심 전법과 포교 활동이 한국 사회와 한국불교계에 미친 영향이 적지 않다고 봅니다. 그간의 성과를 어떻게 보시나요, 혹시 아쉬운 점은 없으신가요?

한국불교의 도심 전법은 불광이 문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당시만 해도 어느 누구도 도심에 절을 세워 운영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절은 당연히 산속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죠. 그때 광덕 스님이 나서 불교의 대중화, 현대화, 생활화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잠실 땅에 불광사를 짓고 본격으로 도심 전법에 사선 겁니다. 당연히 시작은 열악했죠. 하지만 열기는 대단했습니다. 매일 일요일 법회 때가 되면 불광사는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다른 스님들이 가능성을 확인하고 서서히 도심에 절과 포교당을 열기 시작한 겁니다. 광덕 스님이, 불광사가 일종의 롤모델이 된 것이죠. 한국불교사의 큰 업적이자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더 손쉽게 불교를 배우고 부처님 가르침을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었으니까요. 다만 아쉬운 것은 다양한 방식으로 전법에 나서지 못한 점입니다. 복지, 교육, 문화 영역 등 다양한 분야로 폭넓게 전법에 나섰다면 어땠을까… 불광사를 필두로 도심에 사찰들이 줄지어 들어섰듯 그런 시도가 촉매제가 되어 한국불교가 더 많은 사회 영역에서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Q ─ 오늘날 불자들에게, 또 한국불교계에 광덕 스님의 가르침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요?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지만, 한국불교는 지금 기복신앙에 지나치게 경도돼 있습니다. 앞으로 불교가 종교로서 제 역할을 다하려면 이러한 모습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봅니다. 광덕 스님이 처음 불광 운동을 시작할 때, 순수불교라는 것을 주창하셨는데요.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는 뜻이었습니다. 이는 곧, 불교는 수행의 종교로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현재 한국 불교는 신도 수 감소와 출가자 감소 등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는데요.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 그 출발점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Q ─ 광덕 스님이 말씀하신 순수불교로의 회귀. 그 가르침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앞으로 어떤 구체적인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광덕 스님의 제자로서, 또 현재 한국불교를 널리알리고 대중화하는 일에 큰 책무를 진 포교원장으로서 그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우선은 수행의 종교로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기초 작업들을 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한국불교에는 계율, 간경, 염불, 참선이라는 전통 수행법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이런 수행법을 제대로 배우고 참고할 만한 지침서가 없습니다. 수행의 방법과 과정을 일관되게 설명한 텍스트가 없다는 얘깁니다. 이래서는 불교의 대중화든 생활화든 요원하다고 봅니다. 잘 정리된 수행 지침서를 만들어 보급하고, 이를 통해 수행하고 지도하는 풍토가 정착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침서에 따라 체계적으로 수
행하고, 수행을 통해 변화를 느끼고 성취를 맛볼때 자연스럽게 더 많은 사람이 불교에 귀의하리라 봅니다.

Q ─ 지홍 스님이 그리는 한국불교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저는 사찰이 한 지역에 존재하는 이유가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역 사회가 요구하고 필요로 하는 것을 충족시켜 주는 것, 이것이 오늘날 사찰이 가져야 할 시대적 사명이라고 봅니다. 부처님의 자비와 평등 정신에 입각해 교육과 복지, 생명과 환경, 공동체로서의 건강한 삶, 전 국민의 숙원인 통일과 평화 등 여러 분야에 관심을 두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그런 모습으로 세상 사람들의 눈에 비칠 때, 불교의 내일이 밝지 않을까요? 그런 미래를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글.
양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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