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 부처님 가르침을 전파한 분, 숭산 스님의 정신을 이어 나가다 숭산 스님 상좌 청안 스님 인터뷰

특집 | 창간 45주년, 다시 보는 월간 「불광」 | 제자, 스승을 말하다 3

2019-11-07     남형권

숭산 스님은 전 세계를 누비며 한국불교를 해외에 널리 알리는 데 선구자 역할을 하며 ‘세계일화(世界一花)’를 강조했다. “세상은 한 송이 꽃과 같다.” 불법에 있어 나라와 인종 차이가 무의미하다는 것. 숭산 스님 상좌이자 헝가리 원광사 주지인 청안 스님을 만나 숭산 스님 가르침을 듣고, 현대인들은 마음공부를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알아보았다.

Q ─ 스님 소개와 더불어 숭산 스님과 사제관계를 맺게 된 계기를 듣고 싶습니다.
헝가리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번역 일을 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학 때부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사회에서 아들로, 친구로, 학생으로, 직장인으로 무대 위 배우처럼 다양한 역할을 하며 살아가지만 진정 그 역할을 지시하는 감독은 누구인지, 어디서 태어나 어디로 가는지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저에게 철학과 과학, 심리학, 예술, 종교 등 어떤 것도 올바른 대답, 믿을 수 있는 대답을 제시해주지 못했죠. 티베트 불교와 요가에도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았지만 제가 찾
는 길을 열어주진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1991년 4월, 숭산 스님의 두 번째 헝가리 참선 법회에 참석하며 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숭산 스님 가르침에 확신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1995년 해인사에서 사미계를 받고, 통도사에서 비구계를 받았습니다. 이후 화계사에서 6년간 수행했습니다. 1999년엔 숭산 스님으로부터 헝가리인 최초로 지도 법사 인가를 받게 됐습니다.

Q ─ 특히 기억에 남는 숭산 스님과의 일화가 있다면요?
1991년 4월 법회에서 처음 숭산 스님을 뵈었을 때 “생각하지 말고 그저 행동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생각도 행동이라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라고 여쭤보았죠. 그러자 스님께서 “생각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애착, 과학적 사고, 자유로운 생각, 없는 생각, 그냥 생각, 너는 이 가운데 어느 생각을 좋아하느냐?”라고 하셨어요. 그때 스님의 선문답에 깜짝 놀랐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죠. 더는 헤매지 않고 누구를 찾을 필요 없이 스승님을 만났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숭산 스님은 제게 계속 가르침을 주신다고 하셨고, 공부법이 마음에 분명하게 와닿았습니다. 배우는 학생으로서 이제야 길을 찾았다는 생각에 환희로 찼습니다.

Q ─ 숭산 스님의 가르침은 무엇이며 현재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요?
숭산 스님이 열반하신 지 어언 15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숭산 스님의 가르침은 중요합니다. 현재 사회가 건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문제가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많아지고 복잡해지는데 인내와 관용, 연민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버스에서도 지하철에서도 서로 매일 화를 냅니다. 기후 문제나 환경 파괴도 심각하고요. 숭산 스님은 누구나 깨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누구나 불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깨닫고 나눌 수 있다고 하셨어요. 명료한 가운데 정확히 행동하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 말씀에 따라 무엇을 하며, 무엇을 보고, 어디에
있는지 명확히 알아차리라고 강조하셨어요. “오직 할 뿐”, “오직 모를 뿐”은 스님께서 분별하지 말고 본성으로 돌아가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좋은 선생님에게 좋은 가르침을 받는다면 깨어나 보다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숭산 스님께서는 한자리에 3년을 있어야 하며 자기가 살아야 할 땅을 찾아 자리 잡고 혼자만의 공부가 아닌 함께 하는 공부를 하라고 하셨는데요. 부처님 진리와 함께라면 세계 어디든 가서 참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고향인 헝가리로 돌아가 원광사에서 한국불교와 선, 숭산 스님의 가르침을 널리 전파하고 있습니다. 유럽 최초 한국식 사찰인 이곳에서 동안거와 하안거 등 스님과 재가자가 모두가 참가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선방이 좁아져 내년에 다시 불사를 시작할 계획입니다. 마음이 깨치려면 그에 맞는 공간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식 사찰은 그런 면에서도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Q ─ 숭산 스님께서 행동을 강조하셨는데 좋은 행동을 스스로 실천하며 마음이 평화롭다가도 좋은 행동이 무너질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마음을 멈추고 지켜봐야 합니다. 우리 실체는 거울과 같습니다. 이 거울을 제대로 닦지 않으면 무명에 빠집니다. 우리 밖의 실체를 찾으려 하지 말고 참된 성품, 불성을 일깨워야 합니다. 우리 마음 거울이 깨끗해지면 다른 사람이 어떤 마음인지, 어떤 고통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럼 바른 행동이 가능해지고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습니다.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면 그 업을 깨우쳐 부처님 법을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됩니다. 너무 많은 정보와 생각은 사람 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진정 중요한 것을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매 순간을 계속해서 깨어있으면 답이 있을 것입니다.

Q ─ 신도 수 감소 및 대중적 이미지 하락 등 불교가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널리 전파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통적인 방식도 훌륭하지만, 불교를 가르치는 방법을 조금 바꿀 필요도 있는 듯합니다. 특히 참선은 무척 중요한 문화입니다. 90일간의 하안거와 동안거는 한국만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은 없고 중국은 없어졌다고 하죠. 이런 문화를 바탕으로 한 대중적인 명상 커뮤니티 구축이 무척 중요합니다. 단순하게, 접근이 쉽게끔, 실용적인 방식으로 현대 시대 사람들에게 불교가 다가가야 해요. 많은 한국 사람이 불교가 연로하신 분들이 다니는 종교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젊은이들에게도 불교의 가치는 무궁무진합니다. 숭산 스님은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어떻게 도와 드릴까요?”라고 질문하며 먼저 다가가셨어요. 마음을 열고 질문과 답변이 자유롭게 오가며 함께 명상하고 수행해나간다면 불교가 좀 더 많은 사람의 기대를 충족시키리라고 생각됩니다.

Q ─ 우리나라가 OECD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다고 합니다. 자살률이 적은 사회, 어떻게 만들어 갈 수 있을까요?
슬픈 일이고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특히 건강하고 아름다운 많은 젊은이가 스스로 생을 끊는다는 사실이 고통스럽습니다. 부처님 말씀이 하나의 해결책이 되긴 어려울지 모릅니다. 자살은 더 원할 것도 없고 모든 걸 포기하겠다는 것입니다. 문제와의 단절이지요. 분명한 건 우리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고통스러운 마음도, 몸도 본래 없다는 사실을 아셨으면 좋겠어요. 일단 주변에 힘든 사람이 있다면 서로 찾아 묻고 소통했으면 합니다. 모두가 깨어나 고통에서 해방되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Q ─ 월간 「불광」이 45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전 세계를 누비며 포교하신 숭산 스님의 제자로서 앞으로 월간 「불광」에 바라는 점이 있으시다면요?
45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월간 「불광」은 불교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도 막중한 일을 해야 할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미디어의 역할이 그렇겠지만 월간 「불광」 역시 관계를 형성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정보를 주고받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합니다. 마치 택시가 필요하다고 하는 사람에게 즉시 택시를 불러다 줄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독자가 월간 「불광」을 통해 새롭고도 좋은 행동과 습관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글.남형권 사진.최배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