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광복운동

연재소설, 원효 성사

2007-09-15     관리자


안양촌(安養村), 즉 걸인들이 모여 사는 걸인천은 전승(戰勝)의 기쁨을 채 맛보기도 전에 갑자기 총비상령이 내려졌다. 원효와 사복 장군은 백제에 파견된 간자(間者)들을 전원 귀국시키려 했는데 마지막 남은 간자들의 보고가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정보요원의 중간 책임자들이 보고해온 정보에 의하면 백제 유민들이 광복운동(光復運動)을 일으키려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얼핏 보아 계백(階伯)장군휘하의 오천 병마가 전멸하였으니 광복운동 따위는 아예 없을 것으로 여기기 쉽지만 만일 십만 정예군이 왜국으로 후퇴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십만 대병이 건재하고 있는 이상 백제는 완전히 멸망한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러면 왜국으로 건너간 십만 대병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그 해답을 갖고 돌아온 간자가 어제 안양촌에 당도한 것이다.
사복의 긴급 연락을 받고 원효는 안양촌으로 가서 왜국에서 귀국한 간자들의 보고를 들었다. 간자들은 모두 다섯 명인데 이번에 두 사람이 귀국하고 세 사람은 왜국에 계속 남아 있기로 했다 한다. 돌아온 두 사람은 백제 유민들의 광복운동을 주도할 이천 군에 편승하여 돌아온 것이었다. 백제군 십만 대병은 왜국에 당도한 즉시 소수의 부족국가를 쳐서 거대한 한 덩어리의 나라를 건설하는 일에 착수하였다.
그 결과 수십 개의 부족국가들은 십만 정예군의 이름만 듣고도 항복해 왔으며 진나라(秦)에서 건너온 사국섬〔四國島〕의 중국계 나라는 완강히 저항하다가 인구의 태반을 잃고 마침내 항복해 오고 말았다.
이를 끝으로 왜국은 전 국토를 통일하는 대업을 달성했으며 국호를 일본(日本)으로 하여 새롭게 출발하였다 한다. 일본이라는 국명을 갖기 전에 본국이 나당연합군의 침공을 받고 있다는 기별을 받았으나 지도자들은 이 연합군을 과소평가하고는 적극적인 지원을 하지 않다가 사비성 함락 소식에 접하고는 급거 이천 군 선발대를 파견한 것이었다.
본국의 의자왕(義慈王)이 당나라로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고 왜국에 가 있는 왕자 풍(豊)을 새 왕으로 추대하여 이천 군과 함께 남해안에 상륙, 사비성으로 잠입시켰다 한다.
"이제 멀지 않아 후속부대가 귀국하면 곧바로 광복운동의 기치를 높이 들고 큰 싸움을 벌일 것입니다. 우리 서라벌은 온통 전승의 기쁨에 젖어 있는 듯 하와 걱정이 앞섭니다.
큰스님께서 대결단을 내리셔야 대왕마마와 대장군님께 이 위급한 상황을 알리시고 대처하심이 마땅할까 합니다."
"잘 알았소이다. 이번에 큰 수고를 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원효는 곧 왕궁으로 달려갔다. 마침 상감과 대장군이 함께 있었다. 원효는 간자의 보고를 상세히 아뢰고 덧붙이기를, "왜국으로 건너간 십만 대병이 쳐들어오기 전에 우리가 단단히 무장을 해야겠습니다." "그렇고 말고요." 유신 장군도 맞장구를 친다.
"아무튼 왜국에 다녀온 요원들의 노고가 컸소이다. 후한 상을 내리도록 대사께서 조처하시오."
유신 장군은 사비성에 남겨둔 일만 군의 병사가 더 걱정이 되었다. 원효는 왜국이 통일국가로 탈바꿈하고 있는 데에 더욱 관심이 갔다. 중원천지(中原天地)는 진(秦)이 이미 석권하여 통일을 이루었고 우리 한반도를 중심한 배달족은 이제 우리 신라에 의해 천하통일을 이루고 있는 단계다. 그런데 왜국은 백제인의 손으로 그들 나름의 천하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다니 어쩌면 한반도보다 앞서서 대업을 이룰는지도 모른다.
왜국도 국토가 넓다. 수십 개의 작은 나라들로 이뤄진 왜국이 한 덩이가 된다면 동양권의 큰 세력으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가까운 장래에 중원과 한반도와 왜국을 일컬어 동양삼국(東洋三國)이라 부르게 되는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신라는 서쪽으로 한민족(漢民族)의 거대한 세력과 이웃하고 있으니 배달민족으로서는 항상 위협의 대상임에 틀림이 없다. 헌데 동쪽으로 또 하나의 위협의 대상이 출현한다면 배달민족으로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동쪽 천지가 동족인 백제인의 수중으로 들어간다면? 백제인은 분명 신라인과 동족관계에 있다. 단군 할아버지의 같은 자손이다. 같은 자손이면서 통일국가 건설이라는 대명제(大命題)를 두고 적대관계에 몰입해 있는 것이다. 왜국이 백제인의 나라로 굳혀지는 것이 확실하다면 신라로서는 선린외교를 통해 상부상조(相扶相助)하는 형제국 관계를 수립하여야 한다.
중국의 한민족(漢民族)이 광활한 중원천지를 이미 통일한 이 마당에 우리 배달민족의 삼국이 구태의연하게 정립(晸立)하고 있다면 중국인의 표적의 대상으로서 늘 위협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신라가 이루든, 백제가 이루든 또는 고구려가 이루든 간에 배달민족도 통일국가를 하루 속히 이뤄서 한민족이 감히 넘보지 못하도록 해야만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이다.
가자. 밀고 올라가자. 백제를 병탄한 강한 힘을 구사하여 고구려도 우리 손아귀에 넣어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자. 배달민족이 통일국가를 건설한다면 비록 중원천지를 통일한 한민족인지라도 배달민족을 얕잡아 보지 못하리라. 단군국조(檀君國祖)께서 물려주신 난하(蘭河) 이동(以東)의 요서(遼西)·요동(遼東)과 만주벌판과 한반도 등의 국토가 결코 작은 땅아 아니다. 중원대륙에 버금할 만한 넓은 국토인 것이다. 단군국조께서 물려주신 이 신성한 땅에 하루속히 통일국가를 건설하자. 그리하여 한민족이 감히 넘보지 못할 강대국으로 만들자.
그뿐만이 아니라 통일국가를 반드시 불국토(佛國土)로 승화시키자. 국가가 강대하다 해서 좋은 것은 아니다. 온 민족이 부처님의 정법을 믿고 수행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그리 되어야만 이 땅에 전쟁이라는 비극이 영영 사라질 것이요, 증오와 갈등이 사라질 것이며 안락국토(安樂國土)를 이룰 것이다.
원효는 백제를 치기 전에 조정에서 당나라와의 연합을 논의하는 마당에서 극력 반대하였었다. 통일을 누가 바라지 않을까 마는 이민족(異民族)을 끌어들여 동족을 친다는 것은 의리에 맞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민족과 연합하여 통일을 이룬다 해도 배달민족의 대대손손(代代孫孫)이 이를 성토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원효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았다. 신라는 당나라와 연합하여 이미 백제를 무너뜨렸고 또 몇 년 내에 고구려도 함락시킬 것이다. 이러한 수순이 환히 내다보이는 것은 백제와 고구려의 정정(政情)이 미묘하게도 신라에 유리하도록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를 천운(天運)이라 하는 것인가? 만일 천운이라면 원효로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천운을 따라야 한다. 그렇다면 통일 후에 해야 할 일은 자명(自明)하다. 삼국 국민을 하나로 만들자면 강압과 채찍이 아니라 자비와 관용이 필요한 것이다.
한마디로 국토통일을 이룬 후에는 오직 부처님 법을 통해 보살도정신(菩薩道精神)을 발휘하고 실천하는 길만이 최선의 수습책인 것이다.
그렇다면 통일 이후에는 누구보다도 원효 자신과 동료 수행자들의 역할이 가장 절실히 필요하리라.
원효는 혼자서 여러 청사진을 그리느라 문 밖엘 나오지 않는다. 법장 보상은 당장 왕궁으로 달려가서 백제인의 광복운동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해야 할 원효가 움직이지 않자 가슴이 답답했다. 얼마전까지 대각간이자 대장군의 부인이었던 법장 보살인지라 나라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매우 민감한 분이었다. 원효는 자기 방에 칩거한 지 사흘만에 모습을 나타내더니 사복 장군과 잠시 얘기를 나눈 후 곧 안양촌을 떠났다. 원효는 왕궁으로 가서 상감과 대각간(大角干)과의 삼자회담을 가졌다.
"우리 간자들을 백제 땅 요소 요소에 재배치하였소이까?"
"예 대장군님, 분부대로 지시하였습니다."
"승군(僧軍)을 동원하는 일은 어찌 되었소?"
"승군은 모두 제자리에서 자기 임무에 추호만큼도 소홀히 함이 없으니 안심하십시오."
"거 고마운 일이요. 왜국을 다녀온 간자는 지금 안양촌에 있는가요?"
"다음 임무를 부여받고 벌써 백제 땅으로 떠났습니다."
"나도 부하 장졸을 왜국과의 길목에 고루 배치하였소이다."
유신 장군의 말에 원효는 자기 나름으로 몇 가지를 더 물었다.
"사비성에 원군을 얼마나 더 보냈는지요?"
"군수품과 3천의 군사를 보냈소이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소고는 정말 우리 정보요원들이 몇 갑절이나 더하고 있어요. 그래서 일간에 개선잔치를 위한 물품을 보낼 예정이오. 헌데 대사."
"예."
"잔칫날에는 내가 가서 사복 장군과 부하요원들을 위로할 생각인데 대사의 생각은 어떻소?"
대각간의 말의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번에는 상감이 거든다.
"과인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소. 이번 전투에 큰공을 세운 안양촌 식구들을 찾아가서 위무(慰撫)하는 게 도리라고 말이오. 기왕 위문잔치를 벌인다면 그 때 과인도 참여하는 것이 어떻겠소?"
"황공무지로소이다. 그렇게 고려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너무 심려 마소서."
"대각간께서 결단을 내리시오. 과인과 함께 가도록 말이오."
"상감께서 납신다면 그보다 더한 광영(光榮)이 있겠습니까?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원효는 기쁘면서도 난처했다. 법장 보살이 은거하고 있으니 말이다. 결국 삼자회담은 한가위날 안양촌에 잔치를 벌이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원효는 곧 안양촌으로 돌아가 이 소식을 전하고 대책을 의논하였다.
- 계속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은영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