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나이 듦에 관하여] 출가, 자유를 찾아 떠나는길

인생 제2막, 다시 사는 사람들 은퇴 후 출가자 영만 스님

2019-09-26     허진

시간에 순응해 늙어가는 것이 아닌, 노년의 삶을 적극적으로 꾸려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 가장 전복적이고 획기적인 제2의 삶이라 할 수있는 ‘출가’를 선택한 사람이 있다. 지난해 1월1일 조계종에서 은퇴출가제도가 시행되고 처음 배출된 은퇴 출가자1기, 여수 흥국사 영만 스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Q─출가를 결심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자유를 찾아 불법 문중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나를 구속하는 ‘욕망’이란 족쇄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고 그 길이 불교 안에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출가 전까지 제 삶은 내면적으로 항상 의문을 갖는 삶이었습니다. 바쁘게 살며 잊고 지내다가도 한가해지면 문득 나는 누구이고 앞으로 어떤 길을 갈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 다. 그러던 중 후배가 건넨 한마음선원 대행 스님 의행장기 『무』라는 책을 읽고 부처님 가르침을 잣대로 내 삶을 계량해 보게 됐습니다. 제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보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구도의 길을 가고 싶다고 생각했지요. 노년을 보내는 여러 선택지 중에 출가를 선택했다기보다 깨달음을 얻고 정신적으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이 길밖에 없었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Q ─늦은 나이에 출가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나요?

출가 후 60년 간 속세에서 쌓아온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미련은 없었습니다. 부, 권력, 명예, 사회적 지위, 권위 등은 철따라 갈아 입는 옷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름되면 겨울 옷을, 겨울 되면 여름 옷을 자연스럽게 벗게 되지 않습니까? 권위, 권력이라는 옷을 입어도 그건 내 본질이 아닌 거지요. 출가 전 저는 존경받는 선생님이란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제 본질이 아니라 삶 속에서 하나의 역할이었을뿐입니다. 스님이란 것도 마찬가지로 가치 있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길 중 하나일 뿐이지 제 본질이 아닙니다.

Q ─늙어 간다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늙는다는 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어린애가 변하면 성장한다고 생각 하고 어른이 변하면 죽어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생물학적 관점이고, 사실 변화는 늘 새로운 것입니다. 제가 늦은 나이에 새 출발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시각에서 제 삶을 봐 왔기 때문이고요. 물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몸이 노쇠해가는 건 어쩔수 없지요. 하지만 늙음을 소멸해 가는 것으로 바라보는 사람과 새로워지는 것으로 바라보는 사람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능성 면에서요.

Q ─출가 후 삶이 어떤게 변했나요?

출가 전보다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워졌습니다. 속세에서는 책임져야 할 가족도 있고, 경쟁 사회의 일원으로서 어느 정도 사회의 요구에 부응해야 했기 때문에 항상 미래에 대한 걱정을 염두에 두고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구도자의 길은 미래보다 오늘이 중요합니다. 여기서도 역시 여러 사람과 더불어 살지만, 속세와 다른 점은 공동의 가치관을 가지고 한 방향을 바라 보는 사람들이란 점입니다. 외적인 성취나 물질 적인 바람을 이루기 위해 서로 경쟁하지 않으니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할 수 있지요.


Q ─속세와 멀어져 산다는 것이 고독하지 않나요?

고독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면 새로운 나의 세계와의 만남입니다. 출가하면 호적뿐 아니라 심적으로도 가족 간의 끈끈한 정을 끊어야 합니다. 이를 보고 밖에서는 출가자가 외로운 삶을 산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외로움은 크게 문제 되지 않습니다. 흔히들 가족과 이웃, 경제적 능력이 고독감을 해결해줄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 모든게 완벽하게 갖춰져도 정신적인 고독감은 옵니다. 또 나이가 들면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아프기 시작하고 언젠가 혼자 남게 되는 순간이 오게 되고요. 이런 고독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도록 평소에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는 노후 준비를 경제적, 물질적인 준비로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경제적 준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기 내면을 바라보는 훈련입니다.

Q ─스님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요?

'이것이 행복이다’라고 하면 또 ‘어떤 것은 불행이다’라고 하는 이분법적인 생각이 되고 행복의 크기, 종류가 생기게 됩니다. 그러니 행복을 따질 수는없습니다. 그냥 하루하루 매 순간 숨쉬는 것,오르락내리락하는 삶의 궤적 자체가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를 누리면서 마음이 홀가분한 것을 일반적인 의미의 행복이라 말한다면, 일과를 마치고 사무실에서 떠날 때가 가장 홀가분합니다.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조석으로 하는 예불 시간도 저한테는 행복한 시간인 것 같습니다. 저는 원통전에서 혼 자 예불할 때 최대한 느리게 합니다. 의미를 생각하면서, 그것을 마음속 세포 하나하나에 새긴다는 자세로요. 부처님과 조사에 대한 예경의 시간인 그때가 엄숙하지만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
 

Q ─출가한 지 2년 정도 됐습니다. 지금 삶에 만족하시나요?

네, 만족합니다. 사실 제가 가고자 했던 길은 선방에 들어가 다른 스님들처럼 가부좌 틀고 앉아서 화두 드는 것이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대신 종무를 보고 있지요. 처음엔 종무를 총괄하는 일이 의미 없는 일인줄알았는데, 막상해보니까 이 안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더군요. 수행이라는 것이 장소와 시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니 여기서도 의미를 찾아보고자 했습니다. 지금은 자부심을 가지고 제 일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매 순간 숨 쉬는 것, 오르락내리락하는 삶의 궤적 자체가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Q ─출가자로서 어떤 목표를 가지고 계신가요?

처음엔 개인적인 구도의 길, 깨달음을 목표로 출가했습니다. 지금은 포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제 원력을 포교로 바꿨습니다. 저는 행자 때부터 절 안내를 했는데, 하다 보면 박수가 많이 나오고 조언을 구한다며 전화번호를 달라는 사람도 부지기수였어요. 속세에서 목말라 하는 게 무엇인가를 잘 알고, 이해하기 쉬운 말로 부처님 법을 전하는 강점이 제게 있더라고요. 아무래도 늦은 나이에 출가했고, 그만큼 세상 사람 들과 같은 울타리 안에서 오랫동안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감정에 가까이 다가갈 수있는 이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사람들의 가려운 곳을 잘 긁어줌으로써 많은 사람이 불문에 귀의하고, 깊은 부처님 말을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Q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한 말 부탁드립니다.

은퇴 후 출가를 마음에 두고 있는 분들에게, 혹은 이런 길을 아예 생각지도 못했던 분들에게 ‘이런 사람이 실제로 있구나’ 하는 하나의 사례로서 제 삶이 보여지길 바랍니다. 뜻깊은 이 길에, 더 많은 사람이 마음을 낼 수 있길 바랍니다.

글.허진 사진.최배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