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 사는 동물 이야기] 바닷바람이 이어준 사찰과의 인연(因緣)

대부도 쌍계사 항명 스님과 반려견 보리, 반야

2019-09-26     조혜영

가을태풍이온다고하더니하늘이흐리다. 회색빛하늘과서해의수평선이경계없이맞닿은풍경이다. 흐린바다지만늘그렇듯이바다를보는일은어떤설렘을준다. 시화방조제를지나대부도로향한다. 대부도의유일한전통사찰쌍계사로가는중이다.
 

벌 써 20년,절과동물과동고동락한세월

쌍계사입구로들어서니커다란개두마리가객을보며컹컹짖는다. “큰 개가 반야, 작은 개가 보리예요. 일곱 살인 반야는 수컷, 두살인보리 는암컷입니다. 보리는 배타고진도에서 왔어요. 보리 엄마가 우수 진돗개 선 발대회에서3등을 했다는데, 알수는없죠. 진도에서 태어났다고 다진돗개는 아니니까요.” 쌍계사의 반려견, 반야와 보리를 소개해 주시는 주지 항명 스님은 요즘 말 로‘츤데레(겉으론 무심한듯행동하지만 은근히챙겨주는사람을 칭하는말)’다. 특별할게없다 며무뚝뚝하게 말하시지만 반려견들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자연스레 흘러나 온다. “반야는 죽다 살아나서지금도 가끔 경기를 해요. 밖에 나갔다가 덫에 걸 린적이있는데, 이빨로 줄을 끊고 왔는지그덫을질질끌면서 돌아왔더라고 요. 나간 지 6~7일만일거예요. 살아 돌아오려고 얼마나 애를 썼겠어요. 병원 에데려가서목에걸려있던철끈을제거하고고름도치료했어요.반야가예전 엔동네암캐 집에서 며칠씩 있다 오기도 하고 그랬는데, 그사건이후트라우 마가생겼는지풀어놔도밖엘잘안나가더라고요.” 항명 스님이 이곳 대부도 쌍계사와 인연이 된지는벌써20여년이넘었 다.요즘은교통이 편리해져서 관광객이나 외지인들도 많이 찾아오지만,그당 시만해도자동차도많이안다니는섬의외딴사찰이었다고한다. “아는 스님이 두어 달쉰다생각하고 쌍계사에 가있으라 하기에 조금만 머물다 가야지 했는데 어쩌다 보니 20년을 있게 됐네요. 처음에 왔을 때는 절이라고 할수도없었죠. 아홉 평짜리 낡은 법당 하나가 전부는데, 법당에 물 이새서탱화가 다썩어있더라고요. 여름에비만오면 고무대야를 갖다 놓고 물을 받았어요. 그런데도 이절이싫지가 않았어요. 싫으면 못사는데, 뭔가 편 안했다고할까.” 그렇게20여년동안항명스님은 하나둘 불사를 하고 대부도 주민들과도 조금씩가까워지면서현재의가람을만들어왔다.소나무숲아래자리한극락 보전과 삼성각, 요사채 등목조건물의 조화가 아름답다. 특히 쌍계사는 약수 가나오는 ‘신비의 용바위’로 유명하다. 1,600년대 창건된 쌍계사는 창건 당시 엔물이맑다는 뜻에서 ‘정수암’이라 불렸다는데, 이와 관련한 이야기가 전해 져내려온다. “취촉대사가 이곳을 지나던 길에 산마루 중턱에서 휴식을 취하다 깜빡 잠 이드셨는데 다섯 마리 용이 승천하는 꿈을 꾸고 깨어나 땅을 파보니 용바위 밑에서 맑은 물이 솟아났다고 해요. 그자리에 불사를 한사찰이 바로 지금의 쌍계사죠.” 아직도 용바위에서 약수가 솟아나는데,전해지는바에의하면 철분과 탄 산이 많아 위장병 및피부병 등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등산객들이 용바위물로설거지를하기도해서현재는용바위위에법당을지어수질을보 호하고있다.법당바닥을투명한유리로해놓아용바위의신비한모습을눈으 로확인할수있다. 항명 스님이 조롱박 바가지에 약수 한잔을담아건네시기에 감사한 마음 으로 한모금들이킨다. 용바위 설화를 듣고 마셔서 그런지 물맛이 유난히 좋 다. 물한모금으로 숙세의 업이 사라지진 않겠지만 몸과 마음이 정화되길 바 라는마음간절해진다. “보리도물맛을 아는지 따로 담아주는 물은 안마시고 꼭여기와서물을 마십니다.” 누가절에사는개아니랄까봐보리도맑은물의기운을느끼는모양이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산에 오를 때반야와 보리를 데리고 다녔어요.제가 모자를 쓰고 나오면 산에 가는구나 알아차리고먼저들 앞장을섰지요.한번은 얘들이 입주변에 시뻘겋게 피를 묻히고 왔기에 무슨 일인가 살펴보니 고라니를 물어 죽더라고요. 여기 뒷산에고라니랑토끼가 많거든요. 그다음부터 산에는 안데리고 갑니다. 아무리 동물이라도 의미 없이 살생을 하면 안되잖 아요.”

정 든사찰,지역민을위한쉼터를꿈꾸다

반야와보리가쌍계사로오기전에도항명스님은개를키워왔다고한다. “처음엔 절을지키기 위해 개를키워야겠다고 생각했는데,함께살다보니 까정이들었어요. 밖에 나갔다 돌아오면 반겨주는 건개밖에 없더라고요. 차 소리가나면용케도알아듣고절입구로마중을나와주니고맙죠.” 전에 키우던 개중에는 특정 신도 몇명에게만 유난히 짖어대던 개가 있었 다고한다. “이상하게 그신도세사람만 왔다 하면 사납게 짖어대는 거예요. 왜그러 나싶었는데,나중에 알고 보니 절을 흉보고 다니는 신도들이었어요. 어떨 땐 동물이 사람보다 더특하잖아요. 그신도들에게 안좋은느낌을 느꼈던 건 지… 아무튼신기했어요.” 스님이 전에 키우던 개들 중에는 ‘순돌이’라는 이름의 개가 두마리있었 다. 한마리는 순해서 ‘순돌이’라 불고, 다른 한마리는 너무 사나워서 순해지 라고‘순돌이’라불다고한다. “순한순돌이는 새벽 예불할때면 극락보전,삼성각 앞에서순서대로 때맞 춰기다리고 있었죠. 제가 문을 열고 나오면 어디로 갈지 알고 먼저 앞장을 섰 어요.동네집집마다 제집처럼 드나들기도 했어요. 제가여기저기 찾으러다니 면초등학생들이저를보고‘순돌이또가출했어요?’하고물을정도죠.” 어느 날스님이 애타게 찾으러 다녔지만 순돌이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고한다.당시만해도개장수가돌아다니며동네개들을잡아가던때라아마도 개장수에게잡혀간게아닐까추측할따름이란다. “사나운 순돌이는 달리기를 잘했어요. 동작이 날쌔고 빨라 한방송사에서 취재를 오기도 했죠. 제가 멀리서 부르면 어찌나 잘달려오는지… 너무 빨리 달려오는 바람에 가속도가 붙어 멈추기 힘들 때는 전각 외벽에 몸을 부딪치고 는딱서곤 했어요. 그에 비하면 우리 반야와 보리는 많이 부족하죠. 보리 엄마가우수한진돗개다고하지만보리는어째엄마만못한것같아요.” 어쨌거나반야와 보리가 사찰을 잘지켜주고 있는 덕분에 쌍계사를 찾아 오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는 건아닐까.항명스님은 포교를 위해 지역 특성에맞게외국인노동자를위한법회를준비하고있다고한다. “대부도가 행정구역상 경기도 안산에 위치하다 보니 외국인 노동자들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안산에 살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가 2만가구가 된다고 해요. 태국이나 스리랑카 같은 동남아시아에서 온노동자분들이 많은데 그들 대부분이 종교가 불교잖아요. 교육관을 지은 목적도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예요. 바로 실행하기에는 여러 가지 사정이 어려운 상황인데, 아마도 내후년부터는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법회, 교육, 모임 등 을운할수있을것같습니다.누군가는그분들에게가까이다가가야하잖아 요.그일을우리쌍계사에서할수있으면좋겠습니다.” 절일을도와주시는 보살님이 잘익은포도를 씻어 맛보라며 건네주신다. 대부도에는포도농장이많아잘익은 포도를 쉽게 맛볼 수있다고 한다. 칠레 산포도가아닌우리땅에서자란포도의깊은단맛이껍질에서부터느껴진다. “쌍계사에 온지얼마안됐을때어요. 20년전이죠. 당시 40대정도되 는한보살님이 제게 한말이아직도 귀에 생생해요. 점심 공양을 하고 나와 느 티나무 아래서 개들이랑 놀고 있었는데 그보살님이 제게 그러더라고요. ‘스 님, 고생 많이 하시겠네.’ 그래서 제가 그랬죠. ‘이 절에 오래 살려고 온것도아 니고 부산에 일이 있어서 조금 있다가 내려갈 겁니다.’ 그랬더니 그보살님이 말하길, ‘스님, 올때는맘대로 와도 갈때는맘대로 못갈겁니다.’ 그러는 거예 요. 두발이있고, 내두발로가겠다는데 왜못가냐고 되물었더니 ‘그렇게는 안될겁니다. 힘은 들어도 그냥 사세요.’ 그렇게 말하고는 어느샌가 사라졌어 요. 그보살님의 말이 씨가 되었는지 여태 이렇게 살고 있네요.힘은들었지만 그래도잘살아온것같습니다.” 아련하게 과거를 이야기하시는항명스님의 머리 위로 바람이 불어온다. 시원한바닷바람이다. “섬이라 겨울에는 바람이 차지만 다른 계절엔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 어요.” 아무래도 바람이 항명 스님을 이곳 대부도 쌍계사로 이끈 모양이다. 물론 반야와보리도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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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영

경희대신문방송학과졸업,추계예술대대학원상시나리오석사, BBS불교방송및 KBS라디오드라마작가로일했으며,대학에서화,창의성관련강의를 하고있다.

글.조혜영 그림.봉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