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있어서 가장 귀중한 일

이남덕 칼럼

2007-09-15     관리자


올해 음력 정월 초하루는 멋있게 보냈다.
이번 동안거는 갑사(甲寺) 내 대자암(大慈庵)에서 지내고 있는데 오늘 아침예불은 큰스님 집전으로 '세알삼배(歲謁三拜)'를 삼보님께 올리는 새해 인사예불이었다. 보통 때는 본존석가모니불과 그 다음 시방삼세 부처님은 통틀어 올리는데, 오늘은 특별히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불, 미륵 부처님을 한 분 한 분 모시고 삼배씩 대중이 "세알삼배 -"를 합창하여 올린다.
법당 예불 뒤에 나는 칠성각과 산신각에 올라가 예배하고 내려와 조상님들께 합동으로 세배천도제를 올리는 데 동참하니, 시방세계에 가득찬 제불보살님들과 천지신명과 조상들께까지 빠짐없이 공경 예배한 것이 한없이 흐뭇하다.
아침공양 후는 식당에서 큰스님 이하 사중이 다 모여서 성불도(成佛圖) 윷놀이를 했다. 놀이를 하는 중 내내 목탁을 치고 아미타불 정진을 했으니 내 평생 이렇게 뜻깊은 절 풍속의 설날을 보내기는 처음이다. 이런 생활에 감탄하고 즐기면서 하루하루 절식구가 되어 가는가 싶다.
이렇게 생활이 바뀌면서 내 생각도 어느새 속세와는 다른 가치관을 갖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반 년 동안 이 칼럼을 쉬었다가 다시 붓을 들게 된 이유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제 나는 나의 여생에 대해서 절실한 느낌을 안 가질 수가 없다. 늙음의 문제, 죽음의 문제가 발등에 불 떨어진 느낌으로 다가선 것이다.
우리가 참선 공부하는 데는 망상(妄想)과 혼침( 沈)이 두 개의 큰 장애가 된다. 망상이라는 것이 특별히 나쁜 잡념이나 망녕된 생각만이 아니라 생각하는 그 자체가 망상이다. 즉 인간의 제 6 식으로 하는 의식작용으로 하는 '생각' 그 자체가 끊어지지 않는 한은 참선삼매에 들어갈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는 이 조그마한 글 쓰기 행동도 망상에 속하는 것이라 일단 끊어버리려 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이 쉬운 일이 아닐 것은 처음부터 짐작했던 그대로였다. 참선한다는 모양새만 갖춘다고 될 일이 아니다. 말과 문자로 일평생(아니 다생이래) 인이 박힌 습(習)인데, 망상 그게 그렇게 쉽게 떨어질 리가 없다.
아무리 절 생활을 좋아한다 하여도 속인의 일생 연줄이 단번에 끊어질 수도 없다. 근기와 환경 두 가지 나의 현주소를 직시하면서 나는 다시 붓을 들었다. 나와 함께 이 시대를 살아나가는 이들에게, 특히 나처럼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의 심정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도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이런 심정에서 말이다.
내가 스스로 인정하듯이 그다지 수승한 근기는 아니지만 요즘의 나의 본색은 불자요, 수행인인 것만은 틀림없다. 감히 수행자로 자처하는 근거는 하루 24 시간에서 자는 시간, 먹는 시간 등을 제외하고는 불자로서의 심신단련을 주목표로 시간표가 짜여 있는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마치 초등 학교 어린이가 '학교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하듯이 목탁소리, 종소리, 죽비소리에 맞추어 살고 있는 셈이다. 나는 이 생활이 너무도 즐겁고 보람스럽다. 내가 비록 확철대오를 생전에 못하고 가더라도 아무 여한이 없다. 이미 초등 학교에 입학은 했고 하루하루가 즐겁고 보람된 생활인데 금생에 못 깨달으면 또 내생에, 내생 내생에 영원히 계속할 성불로 향한 길이 아닌가. 금생에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나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세속에서 잘 산다는 의미와 종교생활자의 그것과의 차이를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 우리는 자기 생각대로 인생살이를 만들어 나간다. 무엇이 가장 중요한 일인가 하는 생각, 즉 그 사람의 가치관이 자기 인생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가정, 사회, 국가와 세계의 운명을 좌우한다.
불자의 인생관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것은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하겠다. '보리심'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의 준말로 무상(無上)의 정도(正道) 즉 바른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더 줄인 말로는 '발심(發心)한다'고도 하니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서 진리 - 도(道)에 대하여 구도심을 일으키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 불자가 가장 행복하고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일도 그가 진리에 대해서 발심한 사실 그것이다.
여기 온 사람들은 모두 진지하게 자기 인생의 의미를 찾는 사람이요, 보리심을 발한 사람들이다. 이번 안거철에도 많은 노보살들이 동참하였는데 그들이 여기 선방에 앉게 되기까지, 각자의 생활에는 고난과 극복의 역사가 담겨져 있는 것을 나는 안다. 여간한 근기나 인연 아니고는 보리심을 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늘 참 뜻밖에 정조행(正照行) 보살이 절에 왔다. 이분과는 태안사에서 만났던 인연인데 그 훈훈한 인품에서 오는 향기로 하여 '보살'이란 이름을 실감케 하는 분이다. 내 제자 한 사람이 병중에서 고통받는 이가 있어서 보살님에게 전화로 소개하여 나 대신 보살핌을 주시라고 부탁한 일이 지난 여름 안거 떠나오기 전에 있었다.
그로부터 일 년도 안 되는데 그동안에 보살님의 바깥선생님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것이다. 바로 한 달 전에 돌아가셨는데 후두암의 진단이 내린 지 6개월만에 상을 당하신 것이다.
참 세상일이 어이없기가 이와 같다. 대자암의 큰스님과는 두 내외분이 오랜 인연이어서 남편 유언에 따라 시주를 시행하려고 절에 오신 것이다. 보살님은 '76년도에 여기 큰스님께서 법화산림(法華山林)을 일주일동안 세검정 기원정사에서 열었을 때 신문광고를 보고 찾아가서 『법화경』독송을 한 것이 시작이 되어 지금까지 20년 동안 계속하고 있는 분이다.
법화경 독송과 함께 일어난 마음의 변화는 우주법계에 가득찬 것 같은 환희심과 더불어 참회의 눈물을 금할 수 없었으며, 부처님 은혜에 대한 감사, 그리고 지혜를 갈구하는 마음, 자신의 자비심이 부족함을 뉘우치는 마음 등 그때마다 지장보살, 미륵보살, 문수보살, 관세음보살 등의 명호를 염불, 주력으로 백만 독씩을 하였다 한다.
그러는 중에 가슴 답답하던 것을 고쳐주신 은혜에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법화경 사경인데, 본인이 혼자 하는 사경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글자 한 자 한 자 받는 만인과 더불어 하는 사경이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가히 상상할 수가 있다.
동대문시장, 남대문시장 같은 사람이 많은 데나, 또 한 집 한 집 다니면서 구걸하다시피 하였으니 문전박대인들 얼마나 받았을까. "바빠 죽겠으니까 가!" 창피하고 무안한 이런 핀잔과 욕을 3년을 먹고 나니까 속에서부터 "업이 무너지는 것 같더라는 것이다. 나의 아상(我相)을 꺾는다는 건 둘째 문제고 나에게 새 삶을 주신 부처님 은혜에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인데 하기 시작하니까 용기도 생기고 남의 욕에 대해서도 별로 노여웁지도 않고... 그게 수행이 돼대요."
이런 부인의 정진생활과는 평행선으로 남편은 학자로서의 학구생활에만 몰두하였지 부인이 독송하는 법화경 독송에 동참한 일은 없었는데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독송을 시작하여 일독을 마치셨다 한다. 아프신 데도 기대앉지도 않고 단좌하여 경책 밑에는 꼭 새 수건을 깔게 하여 읽으셨다 한다.
"부처님의 세계가 아! 이런 거로군…." 하시고, 임종 때에는 '아미타불' 명호를 십념을 채우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온 가족이 가는 분의 자리에 둘러앉아서 함께 소리내어 "나무 아미타불"을 염송하는 광경을 떠올리며 나는 숙연해졌다.
가시기 직전에는 무언가 하시고 싶은 말이 있는 듯하기에 부인이 옆에서 "당신하고 싶은 말이 이거지요" 하면서 다음과 같이 대변을 하였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부귀영화나 재물이나 지식이나 어떠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것도 애착하지 말고 집착하지 말라. 죽지 않는 영원한 생명의 길이 있으니 그 길을 찾아가도록 하라…. 그 말씀하고 싶은 거죠?" 그랬더니 만족한 듯이 미소지으면서 안도의 큰 한숨을 쉬시고 잠이 드는 듯하시더니 이내 숨을 거두셨다는 것이다. 너무나 아름다운 임종광경에 나는 눈물을 금할 수 없었다.
그렇다. 죽지 않는 영원한 생명의 길을 찾는 그 마음이 즉 아뇩다리삼먁삼보리심이요, 그 마음을 일으키는 일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귀중한 일이다.
"첫 발심 했을 때가 바른 깨달음(初發心時便正覺)"이라 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은영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