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여행의 의미] 인문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여행의 역사와 기원

2019-08-27     정지우

고통으로서의 여행의 기원

여행은 어느덧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휴가철이 되면, 먼 저 여행을 생각한다. 돈벌이와 온갖 의무들로 얼룩진 공간에서 떠나, 새로 움을 만끽하고 즐거움과 휴식을 얻기 위해 일단 떠나려고 하는 것이다. 그 곳에는 강과 바다가 있고, 쾌적한 호텔이 있으며, 우리를 설레게 할 남다른 풍경들이 기다리고 있다. 더불어 그렇게 떠난 여행은 그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우리에게 소비를 부추기기도 한다. 평소라면 동전 한 푼이라도 아끼려 하겠지만, 여행지에서 쓰는 값비싼 숙박비, 식사비, 기념품을 사거나 체험을 하기 위한 돈은 기꺼이 지불하게 된다. 열심히 일하며 하루하루 버티듯이 살아낸 이유가 무엇인가? 그렇게 아끼고 모은 돈을 쓰며 자유로움을 느끼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렇 게 여행은 우리 시대의 훌륭한 상품이자 소비의 핵심에 자리하게 되었다. 그런데 여행이 언제부터 그렇게 즐거운 소비가 되었을까? 조금만 생각 해보더라도, 조선 시대의 여행이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그 시절의 여행에 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은 지금과 대단히 다르다. 가령, 학창 시절 교과 서에서부터 우리가 접한 과거의 여행기들은 대부분 유배지로 떠나던 기록 이나, 외교나 교역을 위해 길을 나서던 기록 같은 것들이다. 과거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자신이 나고 자란 고장에서 벗어나질 않았으며, 여행은 기껏 해야 놀이패나 상인, 외교관, 관료 등의 몫이었다. 사정은 서양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행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원들은 상업이나 전쟁 등 실용적인 목적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들은 이 웃 나라와 필요한 물자를 교환하기 위하여, 혹은 타국을 점령하기 위해 여 행을 떠났다. 그럴 때 여행은 언제나 위험한 것이기도 했다. 지금처럼 문명 이 촘촘하게 엮여 있기 전 여행이란, 목숨을 걸고 떠나 온갖 위험과 만나는 것이었다. 여행을 뜻하는 단어 Travel의 어원이 고통을 뜻하는 Travail에서 왔다는 것은 여행이 원래 ‘쾌락’이나 ‘즐거움’보다는 생존과 정복을 위한 ‘고 통’이나 ‘위험’과 더 가까웠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새로운 여행의 순간들

그런 여행의 경향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나타나는 건 종교적인 순례자들이 등장하면서였다. 인도의 사문들, 서양의 기독교나 이슬람교의 순례자들은 종교적 깨달음을 위하여 고행을 자처했다. 그들은 현실적인 목표를 위해서 가 아니라, 종교적인 수행을 위해 세상에서 가장 험하고 낯선 땅들을 걷기 시작했다. 종교마다 추구하는 목표가 다소 다르긴 했지만, 그에 이르는 방 법 면에서 그들에게는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었다. 신체를 극한의 상황에 몰아넣으면서 세상의 진리를, 인간 내면의 진실을, 종교적인 깨달음을 얻으 려 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여행은 현대에도 여전히 계승되고 있다. 단순히 종교적 순례자 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그런 ‘고행’을 떠난다. 영화 <와일드(Wild, 2014)> 는 어머니의 죽음과 이혼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4,285km에 이르는 태평 양 종주길(PCT)로 떠난 한 여성의 실화를 그려내고 있다. 이 길은 수많은 산 맥과 사막, 평원과 화산지대, 눈 덮인 고산 지대까지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자연환경을 거처야 하는 ‘악마의 코스’로 불린다. 발바닥이 터지 고, 온몸이 부서질 듯한 고통을 경험하면서도 그녀는 그 여행의 끝에서 삶 을 바꾸는 어떤 경험을 해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녀는 여행을 ‘다시금 채 워주는 힘’이라 말한다. 신체가 겪는 극한의 고행이 그녀의 영혼을 치유하 고, 무언가를 준 것이다. 이는 아마 실제로 체험해본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한편, 서양에서는 새로운 여행이 탄생하기도 했다. 이른바 ‘그랜드투어 (Grand Tour)’라 불리는 상류층 자제들의 유럽 여행이었다. 주로 17세기부터 19세기 사이에 많이 이루어진 이 여행은 당대 교양 문화의 통과 의례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이들은 대체로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등을 여행하면서 교양을 배우고, 고대 그리스, 로마의 유적들을 살펴보는 긴 여행을 하고 돌 아와야만, 성인으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을 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즉, 여행 이 하나의 성장 과정에서 필수적인 의례처럼 자리 잡은 것이었다. 이 여행 에서는 가정 교사나 통역사 등이 대동하면서 그들에게 학문과 승마, 펜싱 등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러한 여행은 근래의 배낭여행과 닮은 점이 있기도 하다. 청년들은 넓 은 세상을 경험하며 무언가를 배우고자 하는 열망으로 먼 땅으로 떠나기도 한다. 유럽 여행을 준비하는 많은 이들이 유럽의 역사, 문화, 예술에 대해 미 리 공부하기도 한다. 그들은 문화 예술 기행, 역사 탐방을 통해 세상에 대해 무언가 알기 위해 여행을 나서는 것이다. 이러한 여행의 근원에 ‘그랜드투 어’가 있다고 봐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유럽 여행을 떠나는 이들은 그랜드투어의 일반적인 코스를 당연하듯이 밟아 나가기도 한다. 대 성당, 박물관, 유적지, 미술관 등을 두루 구경하면서 말이다.
 

여행의 대중화와 상업화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그랜드투어는 철도 여행의 보편화로 점차 전 대중 에게 확대된다. 최근에는 저가 항공과 에어비앤비, 게스트하우스 등이 널리 퍼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큰 부담 없이 여행을 즐기고 있다. 나아가 패키지 상 품이 적극적으로 등장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편안하게 낯선 이국의 핵심 코 스를 여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만 매년 2,000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해외 로 떠나고 있다. 80년대 처음 해외여행이 자유화되었을 때 떠난 인구가 100 만 명 정도였다면, 단순 수치상으로도 여행 산업은 수십 배 성장한 셈이다. 하지만 동시에 여행의 부작용 또한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특히, 다 소 가난한 나라들이 적극적으로 여행 산업에 뛰어들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잠시 머물렀다 소비하고 떠나고, 그로써 전통문화나 환경이 파괴되는 현상 이 심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공정 여행’ 혹은 ‘착한 여행’이 하나 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기도 하다. 현지의 문화나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한 도 내에서, 최대한 그곳의 문화를 지키고 보존하는 여행을 하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여행은 매 시대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되며 이어져 오고 있 다. 여행에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도 저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단순 히 휴식을 위해, 즐거움과 쾌락을 위해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반면, 누군가 는 세상으로부터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배우기 위해 먼 땅으로 나선다. 또 누군가는 종교적인 목적으로, 내면의 깨달음이나 상처의 치유를 위해 여행 길에 오르기도 한다. 그런 각각의 모습들에 모두 역사와 기원이 담겨 있다. 우리는 아마 또 여행을 떠날 것이다. 누군가는 당장 내일 떠날 수도 있 고, 다음 연휴나 휴가에 떠날지도 모른다. 여행은 오래전부터 인류와 함께 했고, 이제 우리 모두의 것이 되었다. 그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 느끼고, 누릴 것인지는 각자에게 달려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우리보다 앞서 여행을 떠났던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들은 중요한 참고가 될 것이다. 여행을 떠나기 에 앞서, 여행의 역사에 관한 책들을 가벼이 펼쳐봐도 좋겠다. 과거와 미래 가, 먼 이국의 사람들이 여행으로 이어진다. 여행은 그렇게 끊임없이 재발 견되고 있다.

 

정지우

작가 겸 문화평론가. 고려대학교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쓴 책으로는 『청춘인문학』, 『분노사회』, 『당신의 여행에게 묻습니다』, 『고전에 기대는 시간』, 『행복이 거기 있다, 한 점 의심도 없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