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여행의 의미] 사람 냄새 깊숙이 밴 그곳에 나를 던지다

여행하는 사람들, 오지 여행자 이정식

2019-08-27     허진

남들 보기에 ‘왜 저렇게 사서 고생이지?’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중 한 부류가 오지 여행가다. 그저 경치 좋은 데서 편히 누워 쉬다 오는 것을 ‘여행’으로 정의하는 이들에게 오지 여행가는 그야말로 미지의 존재다. 굳이 시간 내고 돈 들여 험한 곳을 찾아다니는 이유가 무엇일까? 외지인의 발길이 드문 그곳에서 그들은 무엇을 보는 것일까? 오지 여행 전문가이자 사진가인 이정식 작가를 만나 그가 말하는 오지 여행의 묘미에 대해 들어 보았다.

 

길을 잃었을 때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

1995년, 오지 여행이란 개념도 없을 무렵이었다. 친구들끼리 모여 고스톱을 치다가 우연히 보게 된 월간 「GEO」 잡지 속 사진 하나가 이정식 작가의 머리를 세게 강타했다. 파푸아뉴기니 서반부 이리안자야주, 그 안에 사는 소수 민족의 모습은 흡사 석기 시대 원시인을 떠올리게 했다.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었구나!’라는 게 제일 처음 든 생각이었어요. 그리고 이 사람들 속에 깊이 들어 가고 싶단 생각을 했습니다.” 이후 이 작가는 오 지 여행을 다니며 노하우를 쌓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지 여행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고 여행자 들을 모아 인솔하는 오지 여행 전문가로 거듭났 다. ‘모른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두려움을 동반한다. 이 작가는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호기심과 두려움 모두 여행의 묘미라고 말한다. 그가 오지 여행에서 기대하는 건 기대하지 않았던 것에서 오는 즐거움이다.
 

왜 오지냐구요? 사람 냄새 맡으러 갑니다

이정식 작가에게 여행은 ‘만남’이다. “제가 만든 말은 아니고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한 말이에요. 내 자신과의 만남이기도 하고 남과의 만남이기 도 한 거죠.” 만남은 어디에나 있는데 왜 ‘오지에 서의 만남’을 고집하는 걸까? 그는 “따뜻한 사람 냄새가 나서”라고 답한다. 아랍권 최빈국인 예맨에서의 일이다. 정부에 서 주는 빵을 배급받기 위해 아침부터 긴 줄을 서서 기다리던 한 할아버지가 사진 찍고 있는 이 작 가 일행을 보자 본인 빵을 나눠줬다. 새벽부터 일 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던 한 일용직 근로자도 이 작가 일행에게 커피 한 잔씩을 대접했다. “가 진 게 많이 없어도 빵 한 조각, 커피 한 잔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인 거예요.” 그가 보기에 오지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 아니다. 오지란 문명의 때를 타지 않아 사람 냄새가 깊숙이 밴 곳, 넉넉하진 않지만 그들만의 문화가 있는 곳 이다. “사람 냄새가 어떤 건지, 그 속에서 나는 어 떤 사람인지 조금이라도 알기 위해 오지를 가는 거죠.” 가장 기억에 남는 만남을 묻자 이 작가는 OBS 다큐멘터리 <람베티의 꿈>에서 봤던 소녀 ‘람베티’를 9년 뒤에 직접 만나게 된 일화를 소개 했다. 람베티는 네팔 서부 테라이의 한 마을에 살 고 있는, 장래에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지닌 16세 타루족 소녀였다. 일행을 이끌고 네팔 여행을 하 던 이 작가는 현지 철도 사정으로 계획이 틀어져 우연히 한 마을에 들르게 됐다. 그곳에서 문득 9 년 전 영상에서 본 람베티가 떠올랐다. 람베티가 살던 곳이 지금 묵고 있는 숙소 근처일 거라는 생 각에 람베티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을 사람 들에게 물어물어 결국 람베티를 만나게 됐다. “불 교에서 말하는 인연이 이런 걸까요? 보통 인연이 아니잖습니까?” 그간 몸이 많이 마른 람베티, 의사의 꿈은 결국 이루지 못하고 결혼해 애를 낳고 살고 있는 람베티에게 9년 전 영상을 보여주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왜 우는지 모르지만 람 베티도 울고 나도 울고 함께 갔던 제 일행도 울고 다들 펑펑 울었어요. 날씨 좋은 1월에 꼭 다시 오라며 저희 일행이 탄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 을 흔들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낯선 세계에 ‘나’를 던지다

열린 마음으로 현지 문화에 동화되려는 의지, 이 정식 작가가 1순위로 꼽은 오지 여행 자격 요건 이다. 이리안자야의 한 원시 부족이 ‘사고’라는 나무를 갈라 그 속에서 나온 커다란 굼벵이를 날로 먹어보라고 권한 적 있다. 함께 갔던 일행 중 굼벵이를 먹은 건 이 작가뿐이었다. “우리는 오지 사람들이 낯설지만, 그들로서는 ‘나’라는 이질적인 사람이 그들 속에 던져진 거예요. 그들이 먹는 문화를 보고 멸시할 게 아니라 함께 요리도 하고  그들이 주는 음식도 먹어보면서 그 사람들에게 내가 충분히 녹아야 하는 거죠.” 사진을 찍을 때도 마찬가지다. 현지 사람들 을 향해 무작정 카메라를 들이밀기 전에 그들과 먼저 어울려야 한다. 사진 찍기 전에 양해를 구하 는 건 기본이다. “함께 오지 여행을 갔던 일행 중 한 명은 항상 사진은 안 찍고 현지 사람들이랑 어 울려 놀아요. 사진은 나중에 몇 장만 찍는데 막상 나중에 사진을 확인해보면 제일 좋은 사진은 그 분이 다 가지고 있어요.” 현지에 ‘동화’되려는 의지는 ‘존중’과도 맞닿 아 있다. 간혹 자신이 오지에 사는 사람들보다 우 월하다는 자만심에 현지인을 열등하게 취급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작가는 달리는 버스에서 몰려 오는 아이들에게 사탕을 뿌리는 일행을 크게 나무랐던 얘기를 꺼냈다. “일단 위험하죠. 흥분해서 몰려오는 아이들에게 달리는 버스에서 사탕을 뿌 리면요. 아이들을 동물 취급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에게 사탕을 주고 싶으면 아이들을 책임지고 있는 마을의 어른에게 사탕 봉지를 주고 나눠 주게 해 혹시 모를 사고를 방지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오지 여행을 꿈꾸는 사람에게 가장 강조하고 싶은 건 현지 사람과 문화에 대한 존중 입니다. 여행하는 방법이니 배낭 싸는 법이니 하는 것들은 각자 가치관에 따라 달라지는 거고요.”
 

나눔의 마음이 자라는 시간

“왜 아이들이 담벼락에서 공부를 합니까?” 한번은 추운 날씨에 밖에서 떨며 공부하는 아이들을 보고 이정식 작가가 교장에게 물었다. “교실이 하나뿐이라 세 학년이 한 교실을 나눠서 쓰고 나머지 세 학년은 교실 밖에서 공부합니다.” 교장에게 상황을 들은 이 작가 일행은 지갑을 주섬주섬 뒤 져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통 크게 1,000불을 내 놓은 사람도 있었다. 파키스탄 훈자 마을 학교 이야기다. 오지 여행을 하다 보면 이렇게 열악한 교육 환경에 처한 아이들을 적잖이 마주친다. 이 작가는 그때마다 도움이 필요한 아이에게 즉석에서 학비를 후원하기도 하고 학용품을 보내주기도 한다. 학비를 후원했던 한 인도 라다크 소녀와는 페이스북을 통해 아직까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정작 당사자들은 불편함을 모를 수도 있고요. 그렇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교육받는 아이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내가 가진 걸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요. 내 몫을 공유하는 게 당연해진달까요.” 이 작가는 올해 65세로 적지 않은 나이다. 현실적으로 오지 여행을 다닐 수 있는 건 앞으로 5년 정도일 거라고 그는 말한다. 오지 여행가로서 남은 5년은 지금까지와 어떻게 다를까. “오지 여행을 가서 소위 ‘거리’가 될 만한 사진만 찍고 돌아올 때가 있었어요. 그러다 보면 허탈하더라고요. 앞으론 현지 사람들에게 보탬이 될 구체적인 방안을 생각해서 나눔을 적극적으로 실천할 계 획입니다. 불교에선 보시라고 하지요?(보시란 자비의 마음으로 다른 이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베풀어 주는 것을 뜻한다)” 이 작가는 사전에 여행자들에게 보시를 실천 하는 여행 취지에 대해 충분히 얘기하고, 그 취지에 동의하는 사람들로 일행을 꾸려서 여행을 다닐 계획이다. “지금까지 오지 여행 덕에 먹고 살았으니 이제 돌려드려야지요.”
 

글. 허진

사진. 이정식 제공